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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권 시민과 정체에 관한 이론
제1장 시민을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
여러 가지 정체의 본성과 속성을 연구하려는 사람은 우선 국가(polis)가 무엇인지부터 살펴보아야 한다. 첫째, 이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하기 때문이다. (...) 둘째, 정치가(poltikos)와 입법자의 모든 활동은 분명 국가와 관련이 있기 때문이다. 끝으로 정체(polteia)란 한 국가의 주민들 사이에 확립된 제도(taxis)이기 때문이다. (131쪽)
국가는 여러 부분으로 구성된 다른 전체와 마찬가지로 하나의 복합체다. 따라서 분명 우리는 먼저 시민(polites)이 무엇인지부터 고찰해야 하는데, 국가는 시민들로 구성된 복합체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를 시민이라고 부를 수 있으며, 시민이란 대체 무엇인지 고찰하지 않을 수 없다. (131쪽)
이제 시민의 개념이 분명해지기 시작한다. 의결권과 재판권에 참여할 권리가 있는 사람은 누구나 그 나라의 시민이다. 그리고 국가는 간단히 말해 자족한(autarkes) 삶을 영위하기에 충분할 만큼 많은 수의 시민들로 구성된 단체다. (134쪽)
제2장 시민에 대한 실제적 정의
실제로는 시민은 아버지나 어머니 가운데 어느 한쪽만이 아니라, 양 부모가 모두 시민인 자로 규정된다. 다른 사람들은 한술 더 떠 조부모, 증조부모 또는 그 윗대도 시민이었기를 요구한다. 그러나 이런 조잡한 정치적 정의에 대해 어떤 사람들은 "그러면 이들 증조부모와 고조부모는 어떻게 시민이 되었지?" 하고 의문을 제기한다. (135쪽)
양 부모가 시민이었어야 한다는 규정은 또 어떤 국가에 처음 거주하거나 국가를 처음 만드는 자들에게는 적용될 수 없다. 그보다는 정체변혁으로 시민권을 획득한 자들의 경우가 더 다루기 어렵다. 예컨대 아테나이에서 클레이스테네스는 참주들을 추방한 뒤 많은 재류외인과 노예들을 부족 단체에 등록했다. 이들의 경우 문제는 '누가 시민인가?'가 아니라 '그들이 시민이 된 것이 정당한가 부당한가?'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부당하게 시민이 된 자도 진짜 시민인가? 부당한 것은 가짜가 아닌가?'라는 질문을 제기하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136쪽)
제3장 국가의 연속성과 정체성
국가는 공동체, 그것도 하나의 정체에 참여하는 시민들의 공동체인 만큼, 정체가 바뀌어 다른 종류의 것이 되면 국가도 필연적으로 더이상 같은 국가일 수 없다. (139쪽)
국가의 동질성을 판단할 때는 주로 정체의 동질성이 기준이 되어야 함이 분명하다. 그러니 같은 사람들이 거주하느냐 다른 사람들이 거주하느냐와 상관없이 우리는 정체의 동질성을 기준으로 한 국가를 같은 국가 또는 다른 국가라고 부를 수 있을 것이다., (139쪽)
제4장 훌륭한 시민의 미덕
시민들도 서로 다르지만 그들 모두에게는 공동체의 안정(soteria)이라는 공통된 과제가 있는데, 여기서 공동체란 다름 아닌 정체다. 따라서 시민의 미덕은 반드시 정체와 관련이 있어야 한다. 또한 정체는 한 가지가 아니라 여러 가지인 만큼, 훌륭한(spoudaios) 시민의 미덕도 한 가지만 완벽한 것일 수 없다. 그런데 훌륭한 사람은 한 가지 완벽한 미덕을 지닌 사람이라고 우리는 말한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의 미덕을 지니지 않아도 훌륭한 시민이 될 수 있음이 명백하다. (140-141쪽)
모든 시민이 똑같을 수 없는 만큼 시민의 미덕과 훌륭한 사람의 미덕은 동일할 수 없다. 훌륭한 시민의 미덕은 모든 시민이 지녀야 하지만 - 그래야만 국가가 최선의 국가가 될 테니까 - 훌륭한 국가의 시민들이라고 해서 모두 훌륭한 사람일 수 없는 만큼 모든 시민이 훌륭한 사람의 미덕을 지닌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141쪽)
치자와 피치자의 미덕은 서로 다른 것이지만, 훌륭한 시민은 이 두 가지에 다 능해야 한다. 말하자면 훌륭한 시민은 자유민답게 지배할 줄도 알고 자유민답게 복종할 줄도 알아야 하는데, 이런 것들이 바로 시민의 미덕이다. 그리고 치자의 절제(sophrosyne)와 정의(dikaiosyne)가 피치자의 그것과 다르다 해도, 훌륭한 사람의 미덕은 이 두 가지를 모두 포함한다. (144쪽)
치자에 고유한 미덕은 선견지명(phronesis)뿐이다. 다른 미덕(절제, 정의, 용기 등)은 치자와 피치자 모두에게 필요한 것 같다. 대신 피치자의 미덕은 선견지명이 아니라 올바른 의견(doxa alethes)일 것이다. 피치자는 피리 제작자와 같고, 치자는 피리를 사용하는 피리 주자(奏者)와 같다. (144쪽)
제5장 직공도 시민이 되어야 하는가?
국가 존립에 필요한 사람들이라고 해서 모두 시민으로 간주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확실하다. 예컨대 미성년자는 성인과 같은 의미에서 시민이 아니다. 성인은 절대적인 의미에서 시민이지만, 미성년자는 조건부 시민이다. (145쪽)
정체가 여러 가지인 만큼 시민들, 특히 피지배 시민들도 여러 부류일 수밖에 없다. 따라서 직공과 품팔이꾼은 어떤 정체에서는 필연적으로 시민에 포함될 수밖에 없지만, 다른 정체, 이를테면 미덕과 가치에 따라 공직이 배분되는 이른바 귀족정체에서는 시민에 포함될 수 없다. 직공이나 품팔이꾼의 삶을 사는 사람은 미덕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이다. (146쪽)
많은 나라에서는 법이 외국인들조차 시민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몇몇 민주주의 국가에서는 어머니만 시민이어도 시민이 되고, 사생아가 시민이 되는 경우도 비일비재하니 말이다. 그러나 그들 국가에서 그런 사람들을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완전 시민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 마지막에는 양 부모가 모두 시민인 자에게만 시민권이 주어진다. 이상에서 두 가지가 밝혀졌는데, 그중 하나는 시민에는 여러 종류가 있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국가의 공직에 참여하는 자들이야말로 진정한 의미의 시민이라는 것이다. 그래서 호메로스는 다음과 같이 말하는 것이다. "아무런 명예도 없는 재류외인인 양([일리아스] 제9권 제648행)." (146-147쪽)
훌륭한 사람의 미덕이 훌륭한 시민의 미덕과 같은 것이냐는 문제를 논의하는 과정에서 두 가지 결론이 도출되었다, 하나는 훌륭한 사람과 훌륭한 시민이 일치하는 국가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국가도 있다는 것이다. 두 번째 결론은 훌륭한 사람과 훌륭한 시민이 일치하는 국가에서는 시민이라 해서 모두 훌륭한 사람이 아니라, 혼자 또는 다른 사람들과 협력해 공무를 처리하거나 처리할 수 있는 정치가(politikos)만이 훌륭한 사람이라는 것이다. (147쪽)
제6장 바른 정체와 그른 정체
정체란 여러 공직, 특히 모든 일에 최고 결정권을 가진 기구에 관한 국가의 편제(編制, taxis)이다. 어느 국가에서나 정부(politeuma)가 최고 권력을 가지는 만큼, 정부가 실제로는 정체이다. (148쪽)
공공의 이익을 추구하는 정체는 절대 정의의 기준으로 판단하건대 올바른 정체이고, 치자들의 개인적인 이익만 추구하는 정체는 모두 잘못된 것이고 올바른 정체가 왜곡된 것이다. 왜냐하면 국가는 자유민들의 공동체인데, 그런 정체는 전제적이기 때문이다. (150쪽)
제7장 올바른 정체와 왜곡된 정체의 구분
한 사람이 통치하는 정부들 가운데 공동의 이익을 고려하는 정부를 우리는 보통 왕정(basileia)이라고 칭하며, 한 사람 이상의 소수자가 통치하는 정부를 귀족정체(aristokratia)라고 칭한다. 그런 정부가 그렇게 불리는 것은 가장 훌륭한 자들이 통치한다는 의미에서, 국가와 그 구성원을 위해 최선의 것을 추구한다는 의미에서다. 그러나 다수자가 공동의 이익을 위하여 통치할 경우, 정부는 모든 정체에 공통된 명칭인 정체(politeia) 또는 혼합정체(michis politeia) 라고 불린다. 당연한 일이다. 한 사람이나 소수자가 미덕에서 뛰어나기는 쉬워도, 다수자가 모든 미덕에서 완벽하기는 어렵기 때문이다. 그러나 예외적으로 군사적 미덕은 다수자에게서 기대할 수 있다. 그래서 혼합정체에서는 전사들이 최고 권력을 가지며, 중무장할 재력이 있는 자들이 시민권을 가진다. (151-152쪽)
왕정이 왜곡된 것이 참주정체, 귀족정체가 왜곡된 것이 과두정체, 혼합정체가 왜곡된 것이 민주정체다. 참주정체는 독재자의 이익을 추구하는 1인 지배 정체(monarchia)이고, 과두정체는 부자들의 이익을 추구하며, 민주정체는 빈민의 이익을 추구하고, 그 어느 정체도 시민 전체의 이익을 추구하지 않기 때문이다. (152쪽)
제8장 경제를 기준으로 한 정체의 구분
참주정체는 국가공동체를 마치 주인이 노예를 지배하듯 통치하는 1인 지배 정체이다. 재산을 가진 자들이 정권을 잡으면 과두정체이고, 반면 재산을 갖지 못한 무산대중이 정권을 잡으면 민주정체다. (153쪽)
민주정체와 과두정체의 진정한 차이점은 가난과 부(富)이다. 따라서 필연적으로 그들이 수가 많건 적건 재산이 많기 때문에 지배하면 과두정체이고, 빈민이 지배하면 민주정체이다. 그러나 앞서 말했듯이, 부자는 소수이고 빈민은 다수다. 부유한 자들은 적기 때문이다. 반면에 자유는 모두 다 향유한다. 그리고 부와 자유(eleutheria)야말로 과두정체의 지지자들과 민주정체의 지지자들이 정권을 놓고 다투는 진정한 이유인 것이다. (154쪽)
제9장 정치권력의 올바른 배분
민주정체의 지지자들에게 정의는 평등을 뜻한다. 정의가 평등을 뜻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것은 만인이 아닌 평등한 자들만을 위한 평등이다. 한편 과두정체의 지지자들은 공직 배분에서 불평등이 옳다고 생각한다. 그것이 옳은 것은 사실이지만, 만인이 아닌 불평등한 자들에게만 옳은 것이다. (155쪽)
과두정체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한 가지 점에서, 예컨대 부(富)에서 불평등하면 모든 점에서 불평등하다고 믿는다. 민주정체 지지자들은 자신들이 한 가지 점에서, 예컨대 자유민의 신분에서 평등하면 모든 점에서 평등하다고 믿는다. (156쪽)
국가의 목적은 단순한 생존이 아닌 훌륭한 삶을 제공하는 것이다. (...) 해코지당하는 것을 막기 위한 방어동맹이나 교환이나 상호교류도 국가의 목적이 아니기는 마찬가지다. (...) 반면에 좋은 질서(eunomia)를 가진 국가를 추구하는 사람들은 시민의 좋은 미덕과 나쁜 미덕에 관심이 있다. 따라서 이름만 국가가 아니라 명실상부한 국가라면 시민들의 미덕에 관심을 기울여야 한다고 추론할 수 있다. (156-157쪽)
국가는 같은 곳에 거주하는 사람들의 단순한 공동체가 아니라, 상호 간에 부당행위를 방지하고, 교역을 촉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이런 것들은 국가가 존재하기 위한 필수조건들이다. 그러나 그런 조건들이 다 충족된다 해서 국가가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국가란 그 구성원의 가족들과 씨족들이 훌륭하게 살(eu zen) 수 있게 해 주기 위한 공동체이며, 그 목적은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다. (158-159쪽)
국가의 목적은 훌륭한 삶이며, 앞서 말한 것들은 이 목적을 위한 수단이다. 국가는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을 위한 씨족들과 마을들의 공동체다. 그리고 완전하고 자족적인 삶이란 행복하고 훌륭하게 사는 것을 뜻한다. 따라서 국가 공동체가 존재하는 것은 모여 살기 위해서가 아니라, 훌륭하게 활동하기 위해서라는 것이 우리의 결론이다. 따라서 그런 공동체에 가장 많이 기여하는 자가 자유와 신분에서는 같거나 더 우월하지만 정치적 미덕에서는 더 열등한 자들보다, 또는 부에서는 더 우월하지만 미덕에서는 뒤쳐지는 자들보다 국가에서 더 큰 몫을 차지한다. (159쪽)
* '앞서 말한 것들'은 158쪽에 나온 같은 곳에 거주함, 무당행위를 방지함, 교역을 촉진함 등을 지칭함. (박희택)
제10장 국가의 최고 권력
'누가 국가의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하는가?'이다. 대중(plethos)인가, 부자들(hoi plousioi)인가, 유능한 자들(hoi epieikeis)인가, 가장 훌륭한 한 사람인가, 아니면 참주인가? 그러나 그 어느 쪽을 택하든 문제점이 있기는 마찬가지다. (160쪽)
법도 과두정체나 민주정체로 기울어질 경우 우리가 논의하고 있는 문제를 해결하지 못할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똑같은 결과가 나올 테니 말이다. (161쪽)
제11장 집단의 판단은 현명하다
소수자인 가장 훌륭한 자들보다 대중이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견해는 받아들일 만하고, 다소 문제점이 있기는 해도 나름대로 일리는 있는 것 같다. 다수자(polloi)는 비록 그중 한 명 한 명은 훌륭한 사람이 아니더라도 함께 모였을 때는 개개인으로서가 아니라 전체로서 소수자인 가장 훌륭한 사람들보다 더 훌륭할 수 있기 때문이다. (162쪽)
권력을 갖는 것은 배심법정이나 평의회나 민회의 개별 구성원이 아니라 배심법정과 평의회와 민회 전체이며, 앞서 말한 개별 구성원, 즉 평의회 회원과 민회 회원과 배심원은 이것들의 부분 또는 구성원에 지나지 않는다. 따라서 대중이 더 중요한 업무들에서 최고 권력을 갖는 것은 정당하다. 민중과 평의회와 법정은 여러 사람들로 구성되는데, 그들의 재산을 다 합치면 혼자서 또는 소수 가운데 한 명으로서 고위 공직을 맡고 있는 자들의 재산보다 더 많기 때문이다. (162-163쪽)
올바르게 제정된 법(nomos)이 최고 권력을 가져야 한다는 것과, 통치자는 한 명이든 여러 명이든 모든 경우에 보편타당한 규정을 만들기 어렵기 때문에 법이 정확한 지침을 제공할 수 없는 업무들만 조정해야 한다는 점이다. (...) 법은 필연적으로 그것이 속하는 정체에 따라 좋거나 나쁘거나, 정당하거나 정당하지 못할 것이다. 확실한 것은 법은 정체에 맞아야 한다는 것뿐이다. (166쪽)
제12장 정의와 평등
모든 학문과 기술의 궁극적인 목적은 좋음(agathon)이다. 이 점은 모든 학문과 기술의 으뜸인 정치(politike)에 특히 가장 많이 적용되는데, 정치에서의 좋음은 정의이며, 그것은 곧 공동의 이익이다. 다들 정의는 일종의 평등이라고 생각한다. 그리고 그들은 [윤리학]에서 내가 설명한 정의의 철학([니코마코스 윤리학] 제5권 제6장)에 어느 정도 동의한다. 말하자면 그들은 정의는 특정한 사물들을 특정한 사람들에게 배분하는 것을 조정하며, 평등한 사람들에게는 평등해야 한다고 말한다. 여기서 우리가 간과해서는 안 될 점은, 무엇에서 평등 또는 불평등인가 하는 점이다. 이 역시 하나의 난제로, 정치에 대한 철학적 사변이 필요하다. (167쪽)
정치에서 이런저런 불평등을 내세워 공직을 요구하지 않는 것이 분명 합리적이다. (...) 공직을 요구하는 자들은 국가 존립에 필요한 부분들에서 서로 경쟁해야 한다. 따라서 명문 자제들이나 자유민이나 부자들이 공직을 요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공직자들은 자유민이어야 하고 납세자들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 부와 자유민 신분이 필요하다면 정의감과 전사로서의 미덕도 필요하다. 국가는 부와 자유민의 신분 없이는 존립할 수 없고, 정의감과 전사로서의 미덕 없이는 잘 다스려질 수 없기 때문이다. (169쪽)
제13장 공직에 대한 요구
국가의 존립만을 고려한다면, 이런 우월성들의 전부 또는 적어도 일부가 공직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한 듯하다. 그러나 훌륭한 삶을 고려한다면, 앞서 말했듯이(제3권 제9장 끝부분) 교육과 미덕이 공직을 요구하는 것이 가장 정당하다고 할 것이다. (170쪽)
다수자가 전체로서 더 훌륭할 경우, 가장 올바른 법을 제정하기를 원하는 입법자가 입법할 때 고려할 사항은 (...) '올바른'이라는 말은 '평등하게 올바른'의 뜻이며, '평등하게 올바른' 것이란 국가 전체의 이익과 시민들의 공동 이익에 연관되는 것이라고 대답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시민이란 일반적으로 번갈아가며 지배하고 지배받는 사람이다. 시민은 정체의 형태에 따라 달라지지만, 최선의 국가에서는 미덕을 추구하는 삶을 위해 자진하여 지배하고 지배받을 수 있는 사람이다. (172-173쪽)
민주주의 국가들에서는 도편추방(陶片追放, ostrakismos)을 도입했다. 이들 국가는 무엇보다도 평등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 부와 수많은 친구와 그 밖에 다른 정치적 영향력으로 권세가 너무 커졌다고 보이는 자들을 도편추방하여 일정 기간 국외에 나가 있게 했으니 말이다. (174쪽)
* 기원전 508~507년 클레이스테네스가 아테나이에 도입한 것으로 백성들이 기피하는 저명인사를 재산은 몰수하지 않고 10년 동안 추방하는 제도임. (174쪽 주48)
왜곡된 정체들에서는 도편추방이 나름대로 정당하고 편리한 것이 사실이지만, 그런 제도가 거기서는 절대적인 의미에서 정당하지 못한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최선의 정체에서는 그런 정책을 쓰기가 매우 어렵다. 누군가 세도나 부나 영향력 같은 것이 출중할 경우에는 어려울 것이 없지만, 누군가 미덕에서 출중하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176쪽)
* '거기서'는 앞 문단에 나오는 '당파 싸움의 도구로 이용'을 뜻함. (박희택)
제14장 왕정의 다섯 가지 유형
첫 번째는 영웅시대의 왕정으로 자진하여 복종하는 자들에게 행사되며 특정한 기능에 한정되어 있다. 말하자면 왕은 장군이자 재판관이며 종교의식을 주관한다. 두 번째는 이민족의 왕정으로 세습되는 전제정체이지만 합법적이다. 세 번째는 이른바 아이쉼네테스의 왕정으로, 선출된 참주정체다. 네 번째는 라코니케 왕정으로 간단히 말해 세습되는 종신 장군직이다. 방금 말한 이것이 이 네 가지 유형의 차이점이다. (180-181쪽)
그 밖에도 다섯 번째 유형의 왕정이 있는데, 여기서는 마치 개별 국가나 개별 부족이 공공 업무를 처리하는 것과 같은 권한을 갖고 단 한 사람이 모든 업무를 처리한다. 이런 유형의 왕정은 가부장적 가사 관리에 해당한다. 가부장적 가사 관리가 가정에 대한 왕정이듯, 이런 유형의 왕정은 한 국가 또는 한 부족 또는 여러 부족에 대한 가부장적 가사 관리이기 때문이다. (181쪽)
제15장 왕정과 법의 관계 1
법조문에 얽매인 정체는 최선의 정체가 아님이 분명하다. 하지만 치자들은 분명 보편적이 원칙도 갖고 있어야 한다. 게다가 감정에서 자유로운 것이 감정을 타고난 것보다 나은데, 법은 감정이 없는 반면 인간의 마음은 언제나 감정에 휘둘리기 마련이다. (...) 최선의 한 사람은 분명 입법을 하고 법을 제정해 두어야 한다. 그러나 그 법들은 다른 경우에는 최고 권력을 유지하되 적절치 못할 때는 최고 권력을 가져서는 안 된다. (183쪽)
모두가 훌륭한 다수자의 통치를 귀족정체라 하고, 한 사람의 통치를 왕정이라 한다면, 왕이 친위대를 거느리든 말든 왕정보다는 귀족정체가 국가를 위해서는 더 바람직하다. 똑같이 훌륭한 다수자를 구할 수만 있다면. (184쪽)
* 정체의 왜곡은 왕정 - 귀족정체 - 과두정체 - 참주정체 - 민주정체 순으로 일어난다고 아리스토텔레스는 개진하고 있음. (184-185쪽)
제16장 왕정과 법의 관계 2
법의 지배를 요구하는 자는 다름 아닌 신(theos)과 이성(nous)이 지배하기를 요구하는 것이고, 인간의 지배를 요구하는 자는 거기에 야수적인 요소를 덧붙이는 것이다. 욕망(epithymia)은 야수와도 같은 것이고, 분노(thymos)는 통치자들과 가장 훌륭한 인간마저도 오도하기 때문이다. 따라서 법은 욕구(orexis)에서 해방된 이성이라 할 수 있을 것이다. (188쪽)
정의(dikaion)를 구하려면 중용(meson)을 구해야 함이 분명한데, 법이 바로 중용이다. 그 밖에 성문법보다는 관습법이 더 중요하고 또 더 중요한 일에 관계된다. 그래서 사람의 지배가 성문법의 지배보다는 더 안전하다 해도 관습법보다 더 안전하지는 못하다. (189쪽)
제17장 왕권의 최선의 형태
정치적 미덕에서 걸출한 가문이 국가를 통치하는 것을 본성적으로 잘 참고 견디는 주민들은 왕정에 맞고, 정치적 미덕에서 걸출하여 통치할 능력이 있는 자들에 의해 자유민으로서 지배받는 것을 본성적으로 잘 참고 견디는 주민들은 귀족정체에 맞고, 재산 있는 자들에게 가치에 따라 공직을 배분하는 법에 의해 지배받기도 하고 지배할 수도 있는 주민들은 혼합정체 맞다. (191-192쪽)
그토록 걸출한 사람을 죽이거나 , 영구추방하거나, 일정 기간 도편추방하거나, 그에게 교대로 지배받기를 요구하는 것은 분명 적절치 못하다. 부분은 전체보다 우월할 수 없는 법인데, 그만큼 걸출한 인물의 다른 사람들에 대한 관계는 부분에 대한 전체의 관계와 같다. 그렇다면 유일한 대안은 그가 최고 권력을 갖고, 사람들은 그에게 번갈아가면서가 아니라 영구히 복종하는 것이다. (192쪽)
제18장 이상적인 왕의 교육
올바른 정체는 세 가지가 있고, 그중 가장 훌륭한 정체는 필연적으로 가장 훌륭한 자들에 의해 통치되는 정체다. 이런 정체는 한 사람, 한 가문 전체 또는 다수의 사람들이 미덕에서 걸출하되 피치자들도 치자들도 가장 바람직한 삶을 위해 제 역할을 다할 수 있을 때 가능하다. (193쪽)
최선의 국가에서는 가장 훌륭한 사람의 미덕과 가장 훌륭한 시민의 미덕은 필연적으로 같다는 것이 밝혀진 만큼, 귀족정체든 왕정이든 최선의 국가를 세우는 수단과 방법은 훌륭한 사람을 양성하는 데 쓰이는 수단과 방법과 같은 것이 분명하다. 따라서 훌륭한 사람을 양성하는 교육이나 습관도 그를 훌륭한 정치가나 훌륭한 왕으로 양성하는 교육이나 습관과 대체로 같다고 할 수 있다. (193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