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의 아들은 넘겨질 것이다. 제자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하느님의 어린양 주 예수 그리스도 우리의 구원자
그때에 43 사람들이 다 예수님께서 하신 모든 일을 보고 놀라워하는데,
예수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셨다.
44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45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그들은 그 말씀에 관하여 묻는 것도 두려워하였다.
루카 9,43ㄴ-45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주고받음’이 중요하다고 말합니다. 내가 이만큼 주었으면 또 그만큼 받아야 한다는 생각을 늘 가지고 있지요. 마치 정확하게 숫자를 계산하는 회계원들처럼 대변과 차변을 셈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요? 그러나 사실 주고받음은 도저히 균등한 비율로 나눌 수가 없는 것입니다.
맞벌이 부부가 있었습니다. 함께 일하기 때문에 가사 분담을 정확하고 공평하게 나누기로 했습니다. 습식은 남편이, 건식은 아내가 하기로 했지요. 즉, 설거지나 물걸레질, 화장실 청소 같이 물이 닿아야 하는 것은 남편이 담당하고, 재활용쓰레기를 버리거나 먼지를 털거나 장을 보는 것 같은 물이 닿지 않아도 되는 것은 아내가 담당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어느 날 아내가 감기몸살로 너무 아팠습니다. 쓰레기를 버려야 하는데 머리가 아파서 도저히 나갈 수가 없을 것 같았지요. 그래서 남편에게 부탁을 했습니다. 그러자 남편은 “내가 설거지도 했는데 쓰레기도 버리라고? 쓰레기는 자기 몫이잖아.”라고 말하면서 거절합니다.
가사 분담을 정확하고 공평하게 나눌 수 없듯이, 이 세상 안에서 주고받음은 도저히 균등하게 나눌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왜 회계원이 되어 주고받음이 완전히 똑같아야 한다고 생각하는 것일까요? 시간이나 힘이 없어서 상대방이 해준 만큼 줄 수 없는 날도 있었는데, 우리들은 내가 준 것에 대해서는 잘 기억하면서도 내가 받은 것에 대해서는 너무 쉽게 잊어버리고 있었던 것은 아니었을까요?
오늘 예수님께서는 당신의 수난과 죽음에 대해서 말씀하십니다. 그동안 예수님께서 전해주신 사랑을 기억한다면 당연히 수난과 죽음이라는 끔찍함을 당해서는 안 되는 것이지요. 오히려 사람들의 존경과 사랑이라는 대답이 돌아와야 하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러한 대답이 아닌 오히려 자신을 반대할 것이라는 예언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은 ‘사랑을 준만큼 받아야 하는 것이 아닌가?’ 라는 생각을 했는데, 정반대의 이야기를 하시니 소위 요즘 말로 멘붕(멘탈 붕괴)에 빠져 아무 말도 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사랑에 대해 주는 것만큼 받아야 한다는 세상의 논리인 회계원이 되는 모습을 우리들에게 원하시지 않습니다. 오히려 주는 것에 집중하고, 대신 받는 것에는 무심할 수 있는 우리가 되기를 원하십니다. 내가 받는 것은 지금 이 세상에서 취하는 것이 아니라, 하느님으로부터 보상받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정확하게 계산하려고 하는 회계원이 되지 맙시다. 대신 하늘 나라의 계산법을 따르는 사랑을 전하는 주님의 참 제자가 되도록 합시다. (조명연 신부님 「오늘의 묵상」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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빠다킹 신부 조명연 신부님 글 하나 더 드립니다~~~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사랑밭 새벽편지’ 중에서)」
약 10년 전 유튜브 검색에서 우연히 발견한 자신의 동영상. 400만 명이 넘게 조회한 8초짜리 동영상엔 그녀의 어린 시절이 담겨있었습니다. 그리고 댓글은 끔찍했습니다.
“불에 태워 죽이고 싶다”
“세상을 위해 그냥 자살해라”
누가 올렸는지도 모르는 동영상 제목은 ‘세상에서 가장 못생긴 여자’.
올 해 스물여섯 살인 리지는 157cm의 키에도 체중은 25kg을 넘지 못 합니다. 하루 60번씩 소량으로 먹지만 지방이 몸에 쌓이지 않는 희귀병에 걸렸습니다. 튀어나온 앞니와 두 눈, 뼈와 가죽밖에 없는 몸, 하얗게 변해 눈동자도 잘 안 보이는 오른쪽 눈...
리지는 유치원 첫날부터 왕따를 당했지만 유튜브에서 전 세계적인 조롱거리가 된 그날부터 그녀는 세상의 편견에 맞서기로 했습니다. 자신의 이야기를 소재로 사람들에게 동기를 부여하는 연설가가 되었죠. 그녀는 자신을 조롱하는 이들에게 당당하게 말합니다.
“남을 보는 것을 멈추고, 이제 좀 배우세요.”
“겁쟁이들, 그렇게 자신 있으면 모니터 밖으로 나와 얼굴을 보이세요.”
“사람들은 내게 죽으라고 했지만 난 살아서 행복해질 것을 선택했어요.”
리지는 자신의 희귀병이 오히려 축복이라고 말합니다.
세상의 시선이 중요한 것이 아닙니다. 그 세상을 바라보는 내 시선이 더 중요한 것입니다. 어떤 시선으로 바라보느냐에 따라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움을 안고 살아갈 수 있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뭐라 해도 당당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모두 서로를 돕길 원하다. 인간 존재란 그런 것이다. 우리는 서로의 불행이 아니라 서로의 행복에 의해 살아가기를 원하다(찰리 채플린).>
연중 제25주간 토요일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루가 9,43ㄴ-45)
「この言葉をよく耳に入れておきなさい。
人の子は人々の手に引き渡されようとしている。」
弟子たちはその言葉が分からなかった。
彼らには理解できないように隠されていたのである。
(ルカ9・43b-45)
“Pay attention to what I am telling you.
The Son of Man is to be handed over to men.”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aying;
(LK 9:43B-45)
聖トマス西と15殉教者記念日
“너희는 이 말을 귀담아들어라.
”ノヒヌン イマル キダマドロラ。
사람의 아들은 사람들의 손에 넘겨질 것이다.”
サラメイドルン サラムドレ ソネ ノンギョジル コシダ。"
그러나 제자들은 그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였다.
그 뜻이 감추어져 있어서 이해하지 못하였던 것이다.
(루가 9,43ㄴ-45)
「この言葉をよく耳に入れておきなさい。
코노 코토바오 요쿠 미미니 이레테오키나사이
人の子は人々の手に引き渡されようとしている。」
히토노 코와 히토비토노 테니 히키와타사레요오토 시테이루
弟子たちはその言葉が分からなかった。
데시타치와 소노 코토바가 와카라나캇타
彼らには理解できないように隠されていたのである。
카레라니와 리카이데키나이요오니 카쿠사레테이타노데 아루
(ルカ9・43b-45)
“Pay attention to what I am telling you.
The Son of Man is to be handed over to men.”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aying;
(LK 9:43B-45)
Saturday of the Twenty-Fifth Week in Ordinary Time
LK 9:43B-45
While they were all amazed at his every deed,
Jesus said to his disciples,
“Pay attention to what I am telling you.
The Son of Man is to be handed over to men.”
But they did not understand this saying;
its meaning was hidden from them
so that they should not understand it,
and they were afraid to ask him about this saying.
2024-09-28「人の子は人々の手に引き渡されようとしている。彼らは、怖くてその言葉について尋ねられなかった。」
+聖トマス西と15殉教者記念日に、神に賛美をささげよう。
おはようございます。
今日聖トマス西と15殉教者記念日です。
救い主・イエス・キリストと天の元后聖マリア、聖母の配偶者聖ヨゼフ、聖トマス西と15殉教者、諸聖人の大いなる祝福がありますように!
また、大天使とすべての天使、私たちの守護の天使が今日も皆さまを見守り平和でありますようお祈りしま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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ルカによる福音
<人の子は人々の手に引き渡されようとしている。彼らは、怖くてその言葉について尋ねられなかった。>
そのとき、9・43bイエスがなさったすべてのことに、皆が驚いていると、イエスは弟子たちに言われた。44「この言葉をよく耳に入れておきなさい。人の子は人々の手に引き渡されようとしている。」45弟子たちはその言葉が分からなかった。彼らには理解できないように隠されていたのである。彼らは、怖くてその言葉について尋ねられなかった。(ルカ9・43b-4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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秀吉時代から徳川家光の時代までの、宣教師として最後の殉教者で、日本26聖人殉教者(2.5記念日)に入らなかった女性と日本人司祭が含まれている。
日本人の司祭であるトマス西、サンタマリアのヤコブ朝長、十字架のビンセンチオ塩塚の3人と、長崎のマグダナレナ、大村のマリナとして知られている女性がいた。またフィリピンの最初の聖人であるロレンソ・ルイズなど、日本から追放されたが死を覚悟して再び来日した外国人司祭もいた。
彼らは、日本で列聖された最初の日本人司祭と女性である(聖人カレンダーか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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チョ・ミョンヨン神父様の今日の黙想文です。
この世の中を生きる中で「与えることと受け取ること」が重要だと言われます。自分がこれだけ与えたら、それに見合うものを受け取るべきだという考えを常に持っています。まるで正確に数を計算する会計士のように、貸し方と借り方を計算し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しかし実際には、与えることと受け取ることは均等に分けることができません。
共働きの夫婦がいました。共に働いているので、家事を正確に公平に分担することにしました。水を使う家事は夫、水を使わない家事は妻が担当することにしたのです。例えば、皿洗いや雑巾がけ、トイレ掃除のように水が触れるものは夫が、リサイクルのゴミ出しやホコリ取り、買い物のように水が触れないものは妻が担当することにしました。しかしある日、妻が風邪をひいてとても具合が悪くなりました。ゴミを捨てる必要がありましたが、頭が痛くてとても外に出られる状態ではなかったのです。そこで夫に頼みました。すると夫は「俺は皿洗いもしたのに、ゴミも捨てろって? ゴミ出しは君の担当だろう」と言って断りました。
家事の分担を正確に公平に分けることができないように、世の中での与えることと受け取ることは均等に分けることができないものです。それにもかかわらず、なぜ私たちは会計士になって与えることと受け取ることが完全に同じで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うのでしょうか? 時間や力がなくて、相手がしてくれたことと同じだけ返せない日もあったのに、私たちは自分が与えたものについてはよく覚えている一方で、自分が受け取ったものについてはあまりにも簡単に忘れてしまっているのではないでしょうか?
今日、イエス様はご自身の受難と死についてお話しされました。これまでイエス様が示してくださった愛を思い出せば、当然ながら受難と死という恐ろしい運命を迎えるべきではありません。むしろ、人々からの尊敬と愛が返ってくるべきですが、イエス様はそうではなく、ご自身に対して反対されることを予告されます。そこで弟子たちは「愛を与えた分だけ受け取るべきではないか?」と考えましたが、正反対の話をされるので、あまりにもおどろきで、何も言えなくなってしまったのです。
主は、愛について与えた分だけ受け取るべきだというこの世の論理、つまり会計士のようになることを私たちに望んでおられるのではありません。むしろ、与えることに集中し、受け取ることには無頓着であることができるようになってほしいと望んでおられます。私たちが受け取るのは、今この世で手に入れるものではなく、神様から報酬として受け取るものだからです。
正確に計算しようとする会計士にはならないようにしましょう。代わりに、天の国の計算法に従う愛を伝える主の真の弟子となることを目指しましょう。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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私たちの救いのためなさった主の御受難と死、復活を信じ、そこまで私たちを愛し受けられたことを信じ、わたちたちもキリストを見倣い、命かけて主と隣人のため愛を実践できますように聖霊きてくださ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