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성 들판에서 하늘을 벗삼아 지내고 있는 저에게 한 도반이 전화를 걸었습니다.
거기 좋지? 의젓한 품위로 항상 그자리에 있는 산, 갈대사이로 물이 흐르고 기러기가 헤엄치며 노는 강, 넓고 푸른 들판, 흰구름이 둥실 떠가는 하늘, 머물지 않고 지나가는 바람.. 그래, 좋을 거야. 그러나 거기 머물면 안되는 거 알잖아! 아름다움에도 머물지 않고, 깨끗함에도 머물지 않고, 편안함에도 머물지 않아야 하는 거 알잖아? 내일 법회에 나와!
할말이 없었습니다. 부처님은 '좋은 도반이 공부의 전부'라고 말씀하셨다죠? 정말 그런 것 같습니다. 예나 지금이나 도반 덕에 공부합니다. 놀게 내버려두지도 않고 다른 짓에 빠지는 것을 놓아두지도 않습니다. 이 글을 읽으시는 도반 분은 그런 도반이 있으신가요?
하여튼 그렇게 해서 지난 목요일 법회에 나갔습니다. 백봉선생님의 설법을 녹음한 테이프를 틀어 놓고 듣는 법회는 지난 5월에 시작한 것으로 기억합니다. 가운거사님의 주도로 시작했는데 저도 선생님의 법문을 듣고 싶어 초기에 참석하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그 사이에 법회 형식이 많이 달라져 있었습니다.
가운거사님, 청봉거사님, 여운거사님, 지행거사님, 그리고 성함을 알지 못하는 분 들, 이렇게 모두 열네분이 참석하셨는데 8시에 시작한 법회가 10시 반에 끝날만큼 뜨겁고 다이나믹한 분위기였습니다. 이런 분위기는 초반에 만들어졌습니다. 예전처럼 가운거사님이 혼자 잔잔하게 설명하지 않고 여운거사님, 청봉거사님에게 질문을 하고 두 분이 답변을 하는 방식으로 진행되었습니다. 뒤에 이러한 형태가 팀 티칭(team teaching)이라는 이름의 최신 교육기법임을 알게 되었는데 백봉선생님의 법문청취가 끝난 후에도 이런 팀 티칭이 이어졌고 이로 인해 질문과 경험담이 쏟아지지 않았나 생각합니다. 많은 질문이 있었는데 그 중 몇 개만 적겠습니다.
1. '허공성이라는 것'과 '자체성이 없다'는 것은 같은 의미인가?
2. 보림선원에서 공부하기 위해서는 지적 능력이 있어야 하는 것 같다. 지식과 분별력을 필요로 하는 것 같다. 나는 지금까지 화두를 잡고 공부해 왔는데 선공부를 할 때 지식과 분별이 필요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어렵다. 내가 잘못 이해하고 있는가?
3. 화두를 잡고 탐구하면 화두의 답을 얻는다. 새말귀를 잡고 수행하면 어떻게 되는가?
9일의 목요법회에서는 금강경의 초분, 법회인유분에 대한 백봉선생님의 설법을 경청했습니다. 1974년 사직동에 계실 때 하신 법문이죠. 선생님의 설법은 쉽지 않았습니다. 금강경이 난해하기 때문만은 아닙니다. 당시 설법을 듣는, 몇 분 안되는 청중들이 모두 고수들이었기 때문에 굳이 쉬운 말로 설명하실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이 어려운 법문을 팀 티칭으로 좀 더 이해하기 쉽게 도와주는 것은 참으로 요긴한 일이라고 생각됩니다. 앞으로는 계속 금강경의 진도를 나가겠다고 하니 금강경을 공부하고 싶으신 도반들도 관심을 가지실만 합니다.
저는 여전히 안성에 머무는 것을 좋아합니다. 아침부터 날이 개더니 지금은 푸른 하늘 여기저기에 흰구름이 떠가고 있습니다. 서운산, 위례산, 성거산에는 여기저기 흰구름이 일어 중턱부터는 산을 에워싸고 있습니다. 아마 저녁 노을도 대단할 겁니다. 여전히 공부가 부족해서 좋은 것에, 아름다운 것에, 평화로운 것에, 시비가 떠난 것에 머뭅니다. 그러나 그 도반이 또 전화를 하면 법회에 나갈 것입니다. 전화를 받을 때까지는 모른 체하고 이 곳의 평화와 아름다움에 빠져있을 겁니다.
도반 여러분들, 반가웠습니다. 건강하시기를 빕니다.
첫댓글 오랜만에 운초거사님 글을 보니 너무 기쁩니다. 다음 법회 날에는 저도 뵐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항상 건강하세요. _()_
좋은 법회은 도반이 같이 만들어 가는것 같습니다.
정말 다음 목요법회가 기대가 됩니다~
지난 목요일 공부 참 좋았습니다. 운초거사님 꼭 그 도반분이 전화드려야 오실라나요? 전화가 가기 전 후배(?)도반인 제가 부탁드려봅니다^^ 운초거사님 목요법회 때 오셔서 같이 공부하시는 거 어떠신가요?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