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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간선수로 답사 (2)
둘째 날 – 4월 28일. (율소리~비비정~후정리)
오늘은 매우 수고를 많이 한 날입니다. 거리도 좀 길지만 비비정 수도를 찾아 사진 찍으려고 애를 꽤 썼기 때문입니다.
출발, 율소리.
대수로를 따라 걸어 내려가기 시작.
얼마 걷지 않아 큰 수문이 나타납니다. 최근에 새로 지은 듯 산뜻하고 관리도 잘 되고 있습니다. 물때를 자주 씻어내고 있는 듯, 한 옆에 자루솔도 마련되어 있군요. 일제강점기에 지은 것을 1988년에 다시 지었나 봅니다. 하지만 설계는 당시와 꼭 같고, 휘호를 새긴 원래의 돌도 제 자리에 올려놓았습니다. 휘호는, 철책에 가려 잘 안 보이지만, ‘福祉滿流(복지만류)’로 읽힙니다. ‘복이 가득 흐르는 물’이라는 뜻이겠지요.
새로 지으면서 새 사람이 새로 쓴 ‘栗所制水門(율소제수문)’ 머릿돌은 측면에 올려놓았군요.
이 제수문을 지나면서 또 한 번 물은 낙차를 만들며 세차게 떨어집니다.
물이 깨끗하고 넉넉한 것이 왠지 마음까지 풍요롭습니다.
조금 더 지나면 율소교. 여기까지는 주변이 깔끔하고 경치가 좋은데요…
농장이 시작되는 곳을 만나자마자 사정은 달라집니다. 수로 속에 개인이 구조물을 설치하거나, 쓰레기를 모아 태우거나…
이미 봉동읍 장기리에 들어서 있습니다. 우리가 들렀던 ‘상장기공원’의 이름의 유래가 된 그 장기리. 예전에는 봉동읍 일대가 장기면이었다지요? 양쪽으로는 넓은 평야가 펼쳐져 있고 멀리 오른쪽으로 그리 높지 않은, 그러나 ‘후지산’처럼 안정적인 삼각형 산 하나가 보입니다.
율소교에서 약 1.5 킬로미터는 쭉 곧은 직선 코스로 흘러갑니다. 도중에 걸린 몇 개의 다리와 폭넓은 강이 외국의 전원풍경을 연상케 합니다. 은하교에 도달할 때까지.
대수로를 벗어나 주위의 논밭으로 통하는 「중간수로」를 보면 거의 물이 말라있고 오래도록 쓰지 않은 곳도 있습니다. 예전처럼 물길에만 의존하지 않고 양수기와 호스로 자기 논밭에만 따로 물을 댈 수 있게 되었으니 굳이 물꼬에 의존하지 않아 그런 모양이라고 혼자 생각합니다.
은하교 부근에서는 대수로의 물이 여울져 흐릅니다. 흔치않게도 이 근처는 바닥에 돌이 있나 봅니다. 이 물이 상수원으로 관리되고 있다는 푯말을 보며 다소 걱정스럽습니다. 상류에서 그렇게나 많은 쓰레기를 버리고 태우고 하고 있는데.
은하교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거리에 또 하나의 큰 제수문.
장기제수문입니다. 여기에도 휘호가 있습니다. “滿流不竭(만류불갈).” 가득 차 흐르되 마르지 아니한다.
또 길고 긴 직선 코스가 기다립니다.
쌍계교, 서두교를 지나 구미리로 접어듭니다.
동네이름을 딴 다리, 무슨 리, 무슨 마을… 그런 것은 다 행정상의 이름이고, 그저 한 없이 펼쳐진 들판 가운데 먼발치로 점점이 몇 집씩 모여 있는 것이 보일 뿐입니다. 이런 것을 괴촌(塊村, 덩어리 진 마을)이라 한답니다.
서두교 바로 옆에 한 정자가 있어 발을 잠깐 쉬기로 했습니다.
이 정자는 비교적 깨끗하군요. 아마도 어지르거나 할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이 아닐까…
얼마 지나지 않아 또 하나, 서두제수문입니다. 여기에도 수문 꼭대기에 휘호를 쓴 돌판.
“滿流不息(만류불식).” 가득 차 흐르며 쉬지 아니 한다.
가까운 곳에 완주산업단지가 있어 꽤 큰 중간수로가 산업단지를 향해 흐르고 있습니다.
공업용수로도 쓰이는 거겠지요.
주동교를 지나면 나지막한 산을 배경으로 한 마을이 나타납니다. 상구미마을.
대수로에 바로 접한 마을이어서 잠깐 들러보기로 합니다.
거대한 은행나무와 멋진 서원이 보이는군요.
반남 박씨가 들어와 마을을 일구었다 합니다. 구호(龜湖)서원은 그 조상을 기리려고 세운 곳이랍니다.
구미리도 매우 넓고 오래된 곳입니다만 사람은 거의 볼 수 없습니다. 다 둘러보지 못하고 나옵니다.
금방 나타나는 수문은 ‘九尾(구미)’제수문.
여기는 ‘구미’를 잘못 쓴 것 같습니다. ‘구호서원, 구미리’ 등에서 ‘구’는 거북 구(龜)로 썼을텐데 이 수문에서는 아홉 구(九)를 썼군요.
지명에 쓰는 ‘구’는 「(다산·재물·부귀를 뜻하는) 거북 알을 꼬리 쪽으로 낳는다」는 의미에서 ‘거북꼬리[龜尾]’로 쓰는 것이 보통입니다. 설마하니 ‘아홉 꼬리’를 뜻했을까요? 구미호도 아니고.
이 수문에도 휘호가 걸렸으되, ‘和而均霑(화이균점)’이라 썼군요. “(물을) 다투지 말고 화합하여 골고루 나누어 쓰라”는 뜻이겠습니다.
금방 나타나는 상구미교를 지나, 또 다시 나타나는 진짜 구미교에도 여전히 ‘九尾(아홉 꼬리)교’로 잘못 썼습니다.
물은 맑고 도도한데, 잘못 쓴 글자들이 ‘깨게’ 하는군요. 차라리 한글로 그냥 쓰지.
구미교를 건너 대수로의 왼쪽 둑으로 옮겨 탑니다. 여기서부터는 대수로가 오른쪽으로 120도 가량 휘어져 다시 직선을 이룹니다.
수계(峀溪)제수문이 눈에 들어옵니다. 수계리로 들어선 것입니다.
여기에도 휘호가 있는데 ‘互惠以和(호혜이화)’, 화합으로써 서로 혜택을 나누자.
왜인들이 우리를 식민통치하면서 그들 나름으로는 목민(牧民)한다는 개념이 있었는지 이런 글귀를 도처에 많이 썼군요.
수계리 초입의 정자에 잠깐 들렀다 나옵니다.
이 지역 모정의 특성의 하나는, 건물을 매우 높은 주춧돌 위에다 올리는 것입니다. 너무 높아 올라서지도 못할 정도로.
수계리도 매우 큰 마을입니다. 예전 만경강 직강 공사를 하기 전에는 구불거리면서 흐르는 강 때문에 어떤 곳은 김제, 어떤 곳은 익산... 그렇다가 강을 곧게 펴면서부터는 행정구역이 막 바뀌는 혼란이 있었다고 하네요.
대수로의 남쪽, 그러니까 만경강 쪽으로 큰 정자나무가 눈에 띄어 또 가 봅니다.
수계리 신포마을의 팽나무인데 250년 쯤 되었다는 설명. 예전 만경강에 인접해 있던 당시 네 그루 있던 팽나무 중 하나로서, 물에 떠내려가지 않고 유일하게 남았답니다. 팽나무 옆의 이 정자도 높디높은 주추 위에 서 있습니다. 정자에 앉아 쉬는 ‘사람’이 역시 안 보입니다.
바로 옆 큰길 건너편에는 보금자리 주택단지 건설사업이 한창입니다.
이미 삼례읍 경계에 들어섰습니다. 가던 길을 계속 갑니다.
신포교. 오랜만에 만나는 ‘다리 아래를 지나는 둑길’입니다. 다리 폭이 넓어 그 아래 그늘이 시원하군요. 대신 둑의 높이가 낮아져 대수로의 수면이 매우 가깝습니다. 큰물이 지거나 할 때 괜찮을까요?
수계리를 지나 석전리로 들어섭니다. 난간 없는 다리 두 개를 지나면서 계속되는 직선 코스. 햇살이 따갑기 시작합니다. 눈도 부시군요.
대수로 주변에는 농사 부산물을 마구 버려 놓았습니다. 이런 거 좀 안 하면 안 될까, 싶습니다. 심지어 멀칭으로 썼던 검정 비닐이 물속으로 떨어져 다릿발에 걸린 채 길게 너울거리고 있기도 해요.
난간 없는 다리 하나를 건너 수로의 오른쪽 둑길로 옮겨 걷습니다.
건너편 비닐하우스에서 내던져버린 각종 자재들이 흘러내려 물속으로 쌓이고 있는 장면이 볼썽사납군요.
석전리에서는 꼭 볼 것이 하나 있습니다.
지금까지 흘러내려온 우산천 대수로가, 멀리 북쪽에서 내려오는 석탑천을 만나 흡수·합류되는 지점. 바로 그 자리를 보고 싶었던 것이죠.
신정교를 지나 5백여 미터, 석탑천과 만나는 어귀에 농어촌공사의 양수장이 있습니다.
대수로의 물을 퍼올려 저수조에 가두어 두고 펌프로 공기 중에 분수처럼 흩뿌리면서 산소를 공급하는 시설입니다. 농업용수라 하더라도 탁해진 물을 공급할 수는 없겠지요. 논밭은 여러 생명이 함께 사는 환경이 유지되어야 할테니까요.
석탑천에 걸린 난간 없는 옛 다리를 건너 호남고속도로가 머리 위를 지나는 곳 아래를 통과.
서쪽으로 흐르던 우산천은 대수로로서의 수명을 다하고 이제 석탑천이 되어 남쪽으로 흐릅니다. 합해진 후의 대수로는 폭이 더욱 넓어집니다. 지금까지 우산천의 폭이 약 30미터였다면 이제는 60미터로 도도한 수량(水量)을 품어 안고 흐릅니다.
물이 합해지는 곳에 특별한 장치는 없더군요. 나지막한 보를 설치하여 석탑천 물이 역류하지만 않도록 한 정도.
대수로의 폭이 넓어진 만큼 이제 다릿발 세 개로는 커버하지 못하여 다릿발이 다섯 개로 늘어났습니다.
긴 다리를 건너 원석전마을의 정자에 들러 봅니다. 정자나무는 정말 커다란 느티나무인데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지 않습니다. 나무 아래에 돌이 있는 것은 최근까지도 당산제를 지냈다는 뜻인데…
이곳 정자 역시 매우 높은 주추 위에 서 있습니다. 한 노인이 올라가지 못해서 그러는지 그냥 마룻전에 기대선 채 나를 맞습니다.
이 지역 모정의 또 하나의 특성은, 정자에 이름이 일체 없다는 것입니다. 보통 마을이름을 딴 현액 하나쯤 걸려 있을 법 한데….
노인과 작별하고 다시 길을 걷습니다.
재미있는 것을 하나 발견했습니다!
원석전마을을 지나 눈앞의 별산교 못 미처 다리 하나가 걸려 있는데 왠지 보통 다리와 좀 달라 보입니다. 시커멓게 때가 탄 것이 오래된 것은 틀림없는데, 폭이 좁아 보여요.
가까이 가서 보니 수로였습니다! 강 위를 건너가는 수로. 무려 60미터가 넘는 대수로를 가로지르는 길고 좁은 수로라…
물을 보내지 않게 된 지 오래인 듯 말라 있었고, 사람의 통행도 금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내가 누구입니까. 들어가 보았죠.
높이(깊이?)는 허리 정도까지, 폭은 두 사람이 겨우 비껴지나갈 수 있는 정도. 양쪽 끝은 모두 막혀 있습니다.
이런 것은 「농업유산」이기도 하지만 재미있는 놀이터로 활용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를테면 무주 두문동에서 본 「낙화놀이」의 무대라든지.
진기한 구경을 하고 나니 오늘 나온 목적의 절반은 달성한 것 같습니다.
길을 서둘러야겠습니다. 오늘 일정은 비비정까지 가야하니까요.
부지런히 석탑천 대수로를 따라 남하를 계속합니다. 350미터 정도의 위치에 거대한 수문이 나타납니다. 이번 것은 아마도, 어우리의 큰 취수문을 제외하면, 지금까지 본 것 중 가장 넓고 큰 것일 듯합니다. 비교적 최근에 지은 것으로 보이는데 돌판에 설명문이 새겨져 있습니다.
‘공사명 삼례지구 배수개선사업
공사개요 배수로 개수 L=3965M
공사기간 1987. 12 ~ 1997.12 운운…’
‘배수로 약 4킬로미터를 개수했다’는 것인데 이 수문과 무슨 상관일까? 오히려 궁금증을 더 일으키는 불친절한 설명입니다. 10년이나 걸린 큰 공사 치고는 지나치게 간단한 설명이네요. 바로 옆에 농어촌공사 사무실도 있지만 아무도 없어 들어가 물어볼 수도 없습니다. 다시 길을 갑니다.
그런데 이상한 변화가 감지됩니다. 이 「배수개선사업」 수문을 지나면서부터 대수로의 물이 적어진 것입니다. 수심이 매우 얕아졌을 뿐 아니라 강 가운데에 모래톱 같은 땅이 생겨 그 위에 온갖 식물이 자라고 있습니다. 물은 마치 만경강 본류처럼 모래톱을 피해 매우 복잡한 흐름을 보이며 여러 갈래로 나뉘어 가늘게 구불구불 흐르고 있습니다. 지금까지는 이런 일이 없었거든요.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요?
(아래 사진 : before)
(아래 사진 : after)
백두교를 지나고, 새 다리를 크게 짓고 있는 곳을 지나갑니다. 백두마을을 지나는 큰 길이 생길 모양입니다.
신금마을 옆을 지날 때, 둑길 옆 농장의 소행인 듯 버린 토마토들이 잔뜩 쌓여 있습니다. 그뿐 아니네요. 신금교 부근에서는 철거된 건축자재들이 산더미처럼 버려져 있습니다. 농민들이 일손이 부족해서 그럴 거라고 이해해 주기로는 하지만, 기본은 지켜야 할 것 같습니다.
이름 없는 한 다리에 올라섰습니다. 우석대학교의 높은 건물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대수로의 수면을 내려다보니, 지금까지 무심히 지나쳐온 강바닥에 시멘트 구조물이 보였습니다. 왼쪽 삼분의일 정도와 오른쪽 삼분의일 정도 폭을 차지하고 있는 이 넓고도 편편한 시멘트 판은 아마도 「배수개선사업」의 산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농업용수와 음용수로 쓰이는 대수로의 물을 「배수」할 리는 없으니, 시멘트 구조물은 하수를 실어 내보내는 도수구일까? 그 하수는 어디로 나가는 걸까? ‘약 4킬로미터의 공사를 했다’고 했으니 대충 그 수문에서부터 삼례 폐수처리장까지의 거리와 비슷하기는 한데… 등등, 온갖 추측을 다 하게 됩니다. 이런 쓸데없는 추측은 모두 불친절한 설명문에서 비롯됩니다.
대수로 가운데의 모래톱도 그 공사 때의 실수로 바닥의 흙이 뒤집어져 나와 생긴 것은 아닐까? 그런 생각도 해봅니다.
하리교. 다리 아래 대수로에는 얕은 보가 깔려 있어 물이 넓게 퍼지며 작은 낙차를 이루어 떨어집니다. 이쯤에서 물 가운데의 모래톱은 더 이상 보이지 않게 됩니다.
작은 체육공원을 지나면 ‘동학농민혁명 삼례봉기 기념비’가 있고(마침 어제가 그 날이었네요),
마침내 거대한 수문 여러 개가 동시에 빙 둘러쳐져 있는 가장 복잡한 곳, 삼례 독주항 수로 입구에 도착했습니다.
이곳은 이미 우리가 만경강 따라걷기 때 지나온 곳이니 긴 설명은 빼기로 합니다만,
참 대단한 일을 해놓은 것만은 사실입니다.
후학으로서 앞 사람들이 해놓은 자취를 따라 다니며 이해하는 것만도 복잡한데,
이를 설계하고 실시하고, 테스트해봐서 예측대로 되지 않으면 다시 수정하고… 하는 일을 직접 해낸 사람들은 얼마나 고초가 많았을까요?
내가 답사에 가장 많은 시간을 소모한 곳도 이 일대입니다.
일제강점기에 이 부근의 수로를 개량한 팀은 예전부터 있던 독주항 수로를 더 잘 쌓고, 그보다 더 먼저 있던 비비정 언덕 아래를 관통하는 ‘터널수로’[隧道]를 더 넓게 파서 물의 흐름을 더욱 원활하게 고쳤답니다.
하지만 이 터널은 이미 대수로의 주경로를 벗어난 곁가지가 된 지 오랜데 일제는 왜 이 터널을 확장하느라 에너지를 썼던 걸까요? 터널 입구와 출구에 모두 ‘飛飛亭隧道’(비비정수도)라고 돌판에 이름까지 새겨 달면서.
저 혼자만의 추측입니다만,
“본류를 벗어났다고 하여 석탑천 곁가지 물을 그냥 버릴 것이 아니라 상수원으로 활용하자. 그러기 위하여 수도산(우리가 이미 들러 보았습니다)에 양수장과 정수장을 설치하고 석탑천의 남는 물을 뽑아 올려 쓰자. 비비정수도는 부근의 낮은 지형과 전주천의 합류 때문에 침수되곤 하는 물을 배수시키는 통로로 살려 활용하자.”
그렇게 설계 컨셉트를 정했던 것은 아닐까.
아니면 또 다른 추측으로, 남의 문물을 받아들여 자기들의 아이디어를 가미한 다음 원래부터 자기들 것인 양 자랑하기를 잘 하는 왜인들답게, 원래 있던 터널을 넓히고 이름을 붙여 자기들의 작품인 것처럼 알리려는 목적이었을까? 추측에 불과하기를 바랍니다만.
(위 사진 : 독주항수로를 타고 삼례역 뒤쪽으로 흐르는 대수로)
하지만 그로부터 다시 1백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는 이미 수도산의 용도가 없어지고, 석탑천 물을 품어 올릴 일도 없어지고, 비비정 수도는 갇힌 물이 되었습니다.
완주군이 이 일대를 공원화하려고 많은 에너지를 쓰고 있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갇힌 물’가의 둑을 새로 쌓고 구름다리를 놓고, 하수처리장 건너편에 「금와 생태습지」공원을 만들고, 만경강변을 따라 산책로를 만드는 등.
비비정 정자 부근은 ‘카페 비비정이야기’, ‘관광예술열차’ 등이 있어 많은 사람들이 찾는 관광명소가 되어 있습니다. 비비정기(記)를 굳이 여기서 해석하지는 않겠습니다.
정자 아래로 내려가 보았습니다.
예전 사진에는 바위 절벽 옆 만경강 수면 위로 낚싯배의 모습을 볼 수 있는데, 지금은 낚시꾼들이 대를 드리우고 있는 철교 아래의 산책로입니다.
절벽에 새긴 글씨 한 폭을 발견했습니다. 오랜 풍화로 글씨가 상당히 흐려져 있네요.
‘湖山淸波(호산청파)’ 넉 자. 정자 뒤쪽에 ‘호산서원’이 있는 것과 맥이 같습니다. 그만큼 이 일대는 경치가 좋았었군요.
삼남길이 통과하여 역참이 있는 등 요충지인 데다 경치마저 좋았으니 비비정과 같은 정자가 강변 언덕에 있는 것은 당연했겠습니다.
“넓은 모래톱을 기착지 삼아 내려앉는 기러기떼[飛飛落雁]와, 강위를 떠다니는 고깃배의 불빛[寒川漁火].” 모두 만경8경에 있는 내용이죠?
이 사진 찍는 데 꽤 애 먹었습니다. 글자가 잘 나오게 찍으려고 물에 빠질 위험을 무릅쓰고 가파른 둑 사면을 기어 내려가 겨우 찍었거든요. 이 터널 출구 아치 석문도 잦고 심한 공사로 이미 윗부분 돌들이 물러나기 시작했습니다. 특별한 조치가 없으면 오래 버티기 힘들 것 같군요.
(아래 사진 2장 : 비비정수로의 출구, 정자 서쪽)
(아래 사진 2장 : 비비정수로의 입구, 정자의 동쪽)
옛 사진과 오늘의 사진을 비교해 보십시오.
(위 사진 : 용수로 연장은 저수지까지 35리 14킬로미터로 한다. 익산군 후정리 부근. 수로의 경사는 8천분의1)
위 사진의 다리가 아래 사진의 후정리로 건너가는 다리인 듯합니다.
아까 상류에서 보았던 ‘배수로 개선사업’의 물밑에 묻힌 하수관은 만경강변의 하수처리장으로 잘 들어왔을 것으로 믿고, 더 고민하지 않기로 합니다.
오늘 여행은 후정리 수몰민촌 근처에서 마무리 합니다.
언제 어느 수몰로 인한 이민인지는 확실치 않지만(80년대 대아저수지 둑 높이기 공사 때였을까, 혼자 추측해봅니다), 호남고속도로를 타고 가다 보면 꼭 같은 삼각지붕 집들이 정연하게 늘어서 있는 곳이 보이지요? 바로 거깁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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