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논어(論語)
(1) 머리말
■ 중국 사상의 변천(4기)
■ 제 1 기 : 춘추말 공자의 탄생(B.C 552) --> 후한의 멸망까지(A.D 190) 약 750년간
* 전반기 : 공자의 탄생을 시작으로 노, 장, 양, 묵, 순, 한비 등의 제자백가가 일어난 선진(先秦)제자의 시대.
* 후반기 : 전 한의 무제가 일대의 명유인 동중서에 따라 유교를 尊崇하고, 국교로 대우한데 반하여 다른 제자(諸子)의 사상을 억압하여 유교의 설교만이 당시의 사상을 대표하던 경학시대
■ 제 2 기 : 후한의 말엽(A.D 191) --> 당송까지(A.D 940)
노장사상이 지배하고 인도사상인 불교가 급증하고 노장사상에 도교종단이 확립되어 중국 민중의 사상을 지배하던 유, 불, 선 삼교가 대립하며 서로 번영하던 시대.
■ 제 3 기 : 당말(A.D 940) --> 명의 멸망까지(A.D 1640)
유교가 도교와 불교 철학의 영향을 받아 새로이 개조되어 송명학이란 특색 있는 한 시기를 그린 시대로 송대의 성리학은 주자의 정주학과 명대 왕양명의 육왕학의 두파로 갈리어 서로 특징으로 당대를 풍미하였다.
■ 제 4 기 : 청대의 기간 (A.D 1660~1911)
고증학 형식으로 내용은 한대의 훈고주석학을 진전시키고 서한의 금문학을 새로이 연구한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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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논어란?
① 논어는 공자의 언론(言論), 공자와 제자 및 시대인과의 문답(問答)을 수록한 책으로 고래로 많은 사람들이 애송(愛誦)하여 왔는데, 이 논어가 편찬된 것은 공자가 죽은 뒤 상당한 시일이 지난 뒤의 일이므로, 그 속에는 후세의 문(文)도 혼입되어 있는 듯하다.
② 우리가 논어를 애독하는 것은 이해히기보다도 거기에 나타나는 명언(名言)때문이다.
(3) 공자의 일생
① 이름은 구(丘) 자는 중니(仲尼)로 B.C 552~429에 생존했던 인물.
② 춘추시대 말기 노국(魯國)에서 탄생했으며, 노나라는 문물이 가장 풍부하여 공자는 殷, 周 2代의 우미(優美)한 전통을 종합하여 중국 고대 문화를 집대성했다.
③ 공자의 가르침을 받은 제자는 약 3천명인데 그 가운데서도 유명한 제자는 안회(顔回), 자로(子路), 자하(子夏), 자유(子遊), 자공(子貢), 증참(曾參) 등 70여 명이다.
④ 다음은 공자의 자전이라 할 수 있다.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六十而耳順, 七十
而從心所欲, 不踰拒 : 나는 15세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30세에 모든 기초가 확립되었으며 40세에 사물의 이치에 대하여 의문나는 점이 없었고, 50세에는 천명을 알았고, 60세에 남의 말을 순순히 받아 들일 수 있었고, 70세에는 마음이 하고자 하는 바대로 행하여도 도에 어긋나지 않았느니라.
(4) 논어에 나타난 공자의 이모저모
■ 공자의 명성은 언제나 깊은 지혜를 간결하고도 예리하게 또 묘한 형식으로 또 묘한 형식으로 말하였기 때문에 읽는 이로 하여금 늘 깊은 감명을 준다.
① 공자의 명언
* 不患人之不己知, 患不知人也.(學而)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학이)
■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함을 탓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걱정하라.
* 學而不思, 則罔 : 思而不學, 則殆.(爲政)(학이불사, 즉망 : 사이불학, 즉태.)(위정)
■ 배우고 생각하지 않으면 오묘한 진리를 이해할 수 없고, 생각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한 사상에 빠지기 쉽다. (=易地思之)
*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不知爲不知, 是知也.(爲政)
(유, 회녀지지호, 지지위지지, 부지위부지, 시지야.)(위정)
■ 유야, 내가 너에게 ‘안다’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고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이 진실로 아는 것이다.
* 朝聞道, 夕死可矣.(里仁) (조문도, 석사가의.)(이인)
■ 아침에 도를 들어 깨달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으리라.
*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里仁)
(사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이인)
■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도 남루한 옷과 나쁜 음식을 수치로 여기는 자라면, 더불어 의논하기에는 족하지 못하다.
* 賢哉回也, 一簞食, 一瓢飮, 在陋巷, 人不堪其憂, 回也不改其樂, 賢哉回也.
(현재회야, 일단사, 일표음, 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불개기락, 현재회야.)
■ 현자로다. 회(回)여! 한 소쿠리의 밥과 한 표주박의 물로 누추한 곳에 거쳐하며 산다면 다른 사람은 그 근심을 견디어 내지 못하거늘 회는 즐거움을 잃지 않는구나, 현자로다. 회여. (옹야)
* 德不孤, 必有隣 (덕불고, 필유린)
■ 덕은 고립되어 있지 않다. 반드시 그 이웃이 있다. (이인)
* 後生可畏, 焉知來者之不如今也 : 四十五十而無聞焉, 斯亦不足畏也已.
(후생가외, 언지내자지불여금야 :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
■ 뒤에 나는 사람이 두렵다. 어찌 장래의 그들이 지금의 나만하지 못하다 하요. 그러나 사십, 오십이 되어도 학문과 덕으로 이름을 들음이 없으면, 그런 자는 두려워할 것이 못 된다. (자한)
* 三人行, 必有我師焉, : 擇其善者而從之, 其不善者而改之.
(삼인행, 필유아사언, : 택기선자이종지, 기불선자이개지.)
■ 세 사람이 행하면 반드시 나의 스승이 있다. 그 착한 사람을 가려서 따를것이고, 그 착하지 않은 사람은 고친다. (술이)
* 三軍可奪帥也, 匹夫不可奪志也. (삼군가탈수야, 필부불가탈지야.)
■ 삼군에서 그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을지라도 굳게 다져진 장부의 뜻은 빼앗을 수 없다. (자한)
*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 지혜로운 사람은 당황하지 않고, 어진 사람은 근심하지 않으며,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자한)
* 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군자불이언거인, 불이인폐언)(위령공)
■ 군자는 말로써 사람을 천거하지 않으며, 사람으로써 말을 버리지 않는다.
* 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위령공)
■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잘못이다.
* 子貢問曰,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子曰,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자공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 자왈, 기서호, 기소불욕, 물시어인)
■ 자공이 묻기를, “한마디의 말로 평생토록 실행할 만한 것이 있습니까?”
공자가 말하길 “ 그것은 서(恕)일 것이다. 자기가 원하는 것이 아니면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한다. (위령공)
② 공자의 인간성
■ 진실한 학도 : 자신의 자기완성과 타인의 자기완성을 천직으로 생각하고 이 목적을 완성하기 위해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배웠다.
*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如丘之好學也
(십실지읍, 필유충신여구자언, 불여구지호학야)(공야장)
■ 열 집이 사는 고을이라고 반드시 나와 같은 충과 신이 있는 사람은 있겠으나, 나와 같이 학문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다.
*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오상종일불식, 종야불침, 이사, 무익, 불여학야)(위령공)
■ 내 일찍이 종일토록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자지 않으며, 사색한 일이 있었으나 유익함이 없는지라, 배우느니만 못하였다.
*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 하유어야재)(술이)
■ 묵묵히 깨달으며 배움에 있어 싫어하지 않고, 남을 가르침에 게을리 하지 아니하니 그밖에 또 무엇이 나에게 있단 말인가.
*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덕지불수, 학지불강, 문의불능사, 불선불능개, 시오우야.)(술이)
■ 덕이 닦아지지 않는 것과, 학문이 익혀지지 않는 것과, 의를 듣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과, 선하지 않음을 능히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걱정이다. (공자의 인간적 고민과 근심이 드러남.)
*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
■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재빨리 구하는 사람이다. (술이)
* 學如不及, 猶恐失之. (학여불급, 유공실지.)(태백)
■ 배움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히려 잊어버릴까 두려워하라.
■ 그의 생활
* 飯疏食飮水, 曲肱而枕之, 樂亦在其中矣 : 不義而富且貴, 於我如浮雲.
(반소사음수, 곡굉이침지, 낙역재기중의 : 불의이부차귀, 어야여부운.)
■ 거친 밥을 먹고 물을 마시고 팔베개를 하고 살더라도 즐거움이 또한 그 가운데 있는 것이니, 의롭지 않은 부귀는 나에게 있어 뜬구름과 같다.
*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례자야.)
■ 자공이 말하기를 “가난하여도 아첨하지 않고, 부유하여도 교만하지 않으면 어떠합니까?” 공자가 말하기를 “좋은 말이나, 가난하여도 즐겁게 여기고 부유하면서도 좋아하는 사람만은 못하다. (학이)
*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議也.
(사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의야)(이이)
■ 선지가 도에 뜻을 두고도 남루한 옷과 나쁜 음식을 수치로 여기는 자라면, 함께 이야기를 나누기에 족하지 못하니라.
* 奢則不孫, 儉則固 : 與其不孫也, 寧固
(사즉불손, 검즉고 : 여기불손야, 영고)(술이)
■ 사치하면 분수에 넘치게 되고 지나치게 검약하면 고루하여지기 쉽다.
그러나 분수에 넘치는 것보다는 차라리 고루하여지는 것이 낫다.
* 貧而無怨難, 富而無驕易. (빈이무원난, 부이무교이)(헌문)
■ 가난하면서 원망하지 않기는 어렵고, 부자이면서 교만하지 않기는 쉽다.
③ 공자의 정치사상
■ 정명주의(正名主義) : 도의가 땅에 떨어지고 세상이 어지러운 시기에 정치를 개조할 생각으로 정명을 제일 먼저 주장함.
* 齊景公問政於孔子. 孔子對曰, 君君, 臣臣, 父父, 子子.
(제경공문정어공자. 자공대왈, 군군, 신신, 부부, 자자.)(안연)
■ 제나라 경공이 공자에게 정사에 관하여 묻자 공자가 대답하기를, “ 임금은 임금다워야 하고
신하는 신하다워야 하고, 아비는 아비답고 아들은 아들다워야 합니다.
* 季康子問政於孔子. 孔子對曰, 政者正也, 子帥以正, 孰敢不正.
(계강자문정어공자. 공자대왈, 정자정야, 자솔이정, 숙감부정.)(안연)
■ 계강자가 정치에 관하여 공자에게 묻자 공자가 답하기를 “정치란 바로잡는 것이오, 그대가 바르게 통솔한다면 누가 감히 부정할 수 있겠는가.”
■ 덕치주의(德治主義) : 윗자리에 앉는 사람은 반드시 고상한 도덕과 품성을 가져야만 비로소 백성이 잘 순복한다고 주장.
* 爲政以德, 譬如北辰, 居其所, 而衆星共之.
(위정이덕, 비여북신, 거기소, 이중성공지.)(위정)
■ 덕으로써 정치를 하는 것은 마치 북극성이 그 자리에 있고, 여러 별들이 이것을 향해 돌고 있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도지이덕, 제지이례, 유치자격.)(위정)
■ 법제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백성들이 형벌을 면하는 것을 수치로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덕으로써 인도하고 예로써 질서를 유지하면 수치를 알고 바르게 될 것이다.
■ 예치주의(禮治主義) : 공자는 예(禮)를 정치의 근본으로 생각하였다.
* 上好禮, 則民易使也. (상호례, 즉민이사야.)(헌문)
■ 윗자리에 있는 사람이 예를 좋아하면 아랫사람을 부리기 쉽다.
* 恭而無禮則勞, 愼而無禮則葸, 勇而無禮則亂, 直而無禮則絞.
(공이무례즉노, 신이무례즉시, 용이무례즉난, 직이무례즉교.)(태백)
■ 공손하되 예가 없으면 고생스럽고, 신중하되 예가 없으면 남이 두렵게 여기고, 용감하면서 예가 없으면 난폭해지고, 곧되 예가 없으면 긴박하여 진다.
* 林放問禮之本. 子曰, 大哉, 問. 禮與其奢也寧儉, 喪與其易, 寧戚.
(임방문례지본. 자왈, 대재, 문. 예여기사야영검, 상여기이, 영척.)(팔일)
■ 임방이 예의 기본에 대해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 훌륭한 질문이다. 예는 사치하기 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부모의 상을 당하면 형식을 갖추기 보다는 슬퍼해야 한다.
* 興於詩, 立於禮, 成於樂. (흥어시, 입어례, 성어락)(태백)
■ 시로써 뜻을 일으키고, 예에서 뜻이 확립되고, 악에서 뜻이 완성되느니라
* 能以禮讓, 爲國乎何有. 不能以禮讓, 爲國如禮何
(능이례양, 위국호하유. 불능이례양, 위국여례하)(이이)
■ 예법과 겸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린다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느냐? 그러나 예법과 겸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못한다면 예제(禮制)는 무엇에 쓰이겠느냐?
④ 공자의 철학사상
■ 상고적(尙古的) : 공자는 주례(周禮)에 대해 깊은 애착을 가졌다.
*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 (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팔일)
■ 공자가 말하기를 “주나라는 두 왕조를 본받았으니 그 문화가 매우 찬란한지라 나는 주나라를 따르리라”
* 如有用我者, 吾基爲東周乎. (여유용아자, 오기위동주호)(양화)
■ 나를 써주는 사람이 있다면 나는 그 나라를 동쪽의 주나라로 만들리라.
* 久矣, 吾不復夢見周公. (구의, 오불부몽견주공)(술이)
■ 오래 되었구나, 내 다시 주공의 꿈을 꾸지 못한 것이.
■ 경천(信仰) : 경천이라는 전통적 신앙에 대한 공자의 태도는 매우 보수적이었다.
* 子見南子, 子路不悅,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자견남자, 자로불열, 부자시지왈, 여소부자, 천염지, 천염지.)(옹야)
■ 공자가 남자(南子)를 만나 보니, 자로가 기뻐하지 않아서 공자가 맹세하여 말하기를 “내가 잘못한 바가 있다면 벌을 받으리라”
* 子疾病, 子路使門人爲臣. 病閒曰, 久矣哉, 由之行詐也. 無臣而爲有臣, 吾 誰欺, 欺天乎.
(자질병, 자로사문인위신. 병한왈, 구의재, 유지행사야. 무신이위유신, 오수기, 기천호.)(자한)
■ 공자의 병이 심하여지자, 자로가 제자들로 하여금 가신을 삼아 공자 사후의 장례를 치르려 하였다. 공자께서 병이 좀 나아가자 자로를 책망하여 말씀하시기를 “오래되었구나, 유(由)의 거짓 행함이여! 나에게는 지금 가신이 없는데도 가신이 있는 것처럼 하였으니, 내가 누구를 속이리요! 하늘을 속일 것인가?”
* 子曰, 不怨天, 不尤人, 下學而上達, 知我者基天乎.
(자왈, 불원천, 불우인, 하학이상달, 지아자기천호.)(헌문)
■ 공자께서 말하길, “하늘을 원망하지 않고 남을 탓하지도 않으며, 아래로는 인사(人事)를 배우고 위로는 천리(天理)에 통달해 가노니, 나를 알아주는 것은 역시 저 하늘이리라.
* 顔淵死. 子曰, 嘻, 天喪予, 天喪予. (안연사. 자왈, 희, 천상여, 천상여.)(위정)
■ 안연이 죽자 공자가 말하기를 “슬프다. 하늘이 나를 버리셨으니, 하늘이 나를 버리셨으니.”
* 孔子曰, 君子有三畏, 畏天命, 畏大人, 畏聖人之言.
(공자왈, 군자유삼외, 외천명, 외대인, 외성인지언)(계씨)
■ 공자가 말하기를 “군자에게는 세 가지 두려워하는 것이 있느니라. 천명을 두려워하고, 대인을 두려워하고, 성인의 말씀을 두려워하느니라.”
*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자왈,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옹야)
■ 공자가 말하기를 “백성의 뜻하는 바에 힘쓰고, 신을 공경하되 가까이 하지 않으면 되느니라.”
* 季路門事鬼神. 子曰, 未能事人, 焉能事鬼. 曰, 敢問死. 曰, 未知生, 焉知死.
(계로문사귀신. 자왈, 미능사인, 언능사귀. 왈, 감문사. 미지생, 언지사.)(선진)
■ 계로가 귀신을 섬기는 일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길 “사람도 능히 섬기지 못라면서 어찌 귀신섬기는 일을 할 수 있으리오” “그러면 죽음에 대하여 여쭈어 보겠습니다.” 말하기를 “아직 삶도 모르는데 어찌 죽음을 알리오.”
■ 인(仁) : 논어 전체를 통해 인을 말한 장이 58장이고, 인자는 105회 나타났다. 그것은 중국 철학사의 중요한 관념이 됐다.
* 樊遲問仁. 子曰, 愛人. (번지문인. 자왈, 애인.)(안연)
■ 번지가 인에 대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을 사랑하는 것이니라.”
* 仲弓問人. 子曰, 出門如見大賓, 使民如承大祭. 己所不欲, 勿施於人. 在邦 無怨, 在家無怨.
(중궁문인. 자왈, 출문여견대빈, 사민여승대제. 기소불욕, 물시어인. 재방 무원, 재가무원.)(안연)
■ 중궁이 인에 관하여 묻자. 공자가 말하기를 “문을 나설 때는 귀한 손님을 만난 듯하고, 백성을 부릴 때에는 큰 제사를 받드는 것같이 하고, 자기가 바라지 않으면 남에게 베풀지 말아야 하는 것이니 그렇게 하면 나라에 있어서도 원망이 없고 집에 있어서도 원망이 없느니라.”
* 子曰, 巧言令色, 鮮矣仁.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학이)
■ 교묘한 말과 아첨하는 얼굴빛에는 인이 부족하다.“
* 子曰, 剛毅木訥, 近仁. (자왈, 강의목눌, 근인.)(자로)
■ 강직하고, 의연하고, 질박하고, 어눌함은 인에 가까우니라.
*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자왈, 인지과야, 각어기당. 관과, 사지인의.)(이인)
■ 공자가 말하기를 “사람의 허물은 그 종류에 따라 다른 것이니, 남의 과실을 보면 곧 그가 인자인지 아닌지를 알 수 있느니라.”
學而篇(학이편)
學而時習之 不亦說乎[자왈 학이시습지 불역열호] 有朋自遠方來 不亦樂乎[유붕 자원방래 불역락호]
人不知而不溫이면 不亦君子乎 [인부지이불온 불역군자호]
배워 때에 맞추어(timely) 익히니 또한 기쁘지 아니한가 ? 뜻을 같이 하는 자 먼 곳으로부터 찾아오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 ?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아도 부끄럽지 않으니 또한 군자가 아니겠는가 ?
"習(습)"은 學과 병치되는 독립된 개념이다. "習"(익힌다)이라는 것은, 學이 미지의 세계로의 던짐이라고 말한다면, 그것은 실천의 세계를 의미하는 것이다. 그런데 이 실천은 반드시 "때"(時)를 갖는다는 것이다. 문무가 통합된 六藝(육예)를 익히는 과정이란 반드시 때가 있을 수밖에 없다. 어린 아이가 書(서)■數(수)를 할 수는 있으나 射(사)■御(어)를 할 수는 없다. 장년이 되어도 여름의 맑은 날씨에 말달리고 활을 쏠 수는 있으나 추운 겨울날씨에 빙판에서 말달리는 일은 삼가야 할 것이다. 배움의 익힘이란 내 몸의 모든 상태에 따라 그 익힘의 형태가 달라질 것이요(身中時), 또 계절의 형태에 따라(年中時), 또 하루 중에서 아침,점심,저녁에 따라(日中時) 익힘이 달라질 것이다. 때를 잘못 타서 배우고 익히면 그것이 병이 되는 것이다. 공자는 평생을 통해 때를 맞추어 끊임없이 정진하여 삶의 기쁨을 만끽했다는 뜻이다. "不亦說乎(불역열호)"라 한 구문에서 "亦"의 뜻도, 딴 즐거움도 있는데 이것 "또한" 즐겁다는 식으로 새기면 안된다. 여기서 "亦"이란 자기의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을 남에게 전달하고 남의 동의를 얻고자 하는 강조의 뜻으로 새겨야 한다. 그것은 상대적인 "亦"이 아니랄 기쁨의 절대적 경지를 구가하는 것이다. 다음에 나오는 구문의 "不亦樂乎"의 "樂"과 첫 구문의 "說"에 있어서 "說(열)=悅"은 나의 실존적 내면에서 우러나오는 "기쁨"의 뜻이요, "樂"은 인간과 인간의 관계에서 성립하는 "즐거움"을 표현한 말로 보아야 한다. 說은 卽自的(즉자적)이요, 樂은 對自的(대자적)이다. 여기서 말하는 "朋"이란 우리말의 단순한 "친구"가 아니라 "朋黨(붕당)"이요, "同門(동문)"이요, "同志(동지)"다. 그것은 개인적 친구가 아니라, 학을 위하여 뜻을 같이 하는 사람들이란 뜻이다. "遠方(원방)"이란 먼 나라 사람들까지 찾아온다는 뜻만이 아니라 더 중요한 의미는 國을 벗어난 鄙野(비야)의 세계, 즉 편벽한 庶人(서인)의 세계까지 포함해서 말한 것이다. 즉 자로(子路)와 같은 卞(변)의 야인(野人)들도 찾아왔다는 뜻이다. 이것은 곧 공자의 "有敎無類(유교무류)"의 정신을 상징하고 있는 것이다. 정치적 실현을 위하여 배움을 같이 하는 붕당이 형성되었다는 것, 공자의 인생을 회고할 때, 가장 큰 즐거움 이었을 것이다. "人不知而不溫"에서 "人"은 "남"(타인)의 뜻이다. 옛말에 人은 己(자기)와 대비되는 말이다. "不知"는 단순히 "알아주지 않는다"는 뜻이 아니다. 공자의 인생은 자기의 이상을 실현해줄 명군(名君)을 만나기 위하여 주유한 삶이었다. 결국 "人不知"란 뜻은 자신의 인생을 회고할 때, 정치적으로 등용의 기회를 얻지 못하고 좌절된 素人(소인)으로서 마감한다는 뜻이다. "溫"이란 단순히 "부끄러움"의 뜻이 아니라, "속에서 치밀어 오르는 분노", 우리말로 "한"에 해당되는 말이다. 나는 평생을 통해 나의 이상의 현세적 실현을 추구하였다. 그러나 아무도 나를 이해해주는 사람이 없었다. 그래도 여한이 없다! 왜냐? 바로 君子(군자)됨을 추구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不患人之不己知오 患不知人也니라. 불환인지불기지 환부지인야
남이 나를 알아주지 않음을 걱정하지 말고 내가 남을 알지 못함을 탓하라
공자의 일생은 남이 자신을 알아주지 못하는데 대한 한맺힌 생애였다. 그러나 공자는 이러한 한을 새로운 보편적 人의 間의 지평으로 확산시켰다. 남이 나를 알아주지 못한다는 사실에 대한 한이 있다면, 우리는 그 한을 역으로 내가 이 순간 남의 훌륭함을 인식하지 못하고 있다고 하는 자각의 내성으로 회전시켜야 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 구절 제일 끝의 '人'이 빠져 버린 경우가 있는데, 이러한 경우에도 좋은 해석이 가능하다. 이때 '不知'는 단순히 내가 타인을 몰라본다는 협애한 의미를 떠나, 내가 진정으로 '알려지지 못함'을 걱정해야 한다는 뜻이 된다. 다시 말해서 내가 참으로 남에게 인정받을 만한 가치가 있느냐는 것에 대한 냉정한 자기 반성의 뜻이 되는 것이다. 남이 나를 인정해주지 않는 것을 걱정할 것이 아니라, 내가 진정으로 인정받을 수 있는 내면적 가치를 보유하고 있는가를 걱정해야 한다는 것이다.
子曰 巧言令色이 蘚矣仁 자왈 교언영색 선의인
말 잘하고 표정을 꾸미는 사람치고 인한 이가 드물다
공자의 '巧言令色'에 대한 혐오는 단순히 우리가 일상적인 코멘트로 이해해서는 아니된다. 그것은 공자의 仁의 사상을 이해하는데 매우 핵심적인 인식론적 틀을 나타내는 중요한 발언이다. '巧言'이란 문자그대로는 '교묘한 발언'이다. '令色'이란 문자그대로 요염한 안색'정도의 의미가 된다. 色은 때때로 '여자'를 의미하기도 하고, '기미', '분위기', 발출되는 표정을 의미하기도 한다.
'교언영색'은 분명 '仁'이라는 주제와 관련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鮮矣仁'이란 표현은 본시 '仁鮮矣'를 도치시킨 것으로 '鮮'(드물다)이라는 술어를 강화시킨 것이다. 仁은 교언이나 영색으로는 절대 잡힐 수 없는 것이다. 이것은 단순한 덕목을 나타낸 것이 아니라, 인간의 언어에 대한 깊은 불신을 나타낸 것이다. 언어적 표현의 교묘함에 대한 깊은 저주를 나타낸 것이다. 그것은 노자가 '道可道非常道'라 말한 것과 큰 차이가 없다. 道가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라면, 仁 또한 언어로 표현할 수 없는 것이다. 노자는 이것을 우주론적으로 말한 것이다. 공자는 이것을 일상적 삶의 느낌 속에서 이야기한 것이다. 말 잘하는 자치고 인한 자가 드물다!
子貢曰: "貧而無諂, 富而無驕, 何如?" 자공왈 빈이무첨 부이무교 하여
子曰: "可也.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자왈 가야 미약빈이락 부이호예자야
자공이 말하였다.: "가난하면서도 아첨치 아니하고, 부하면서도 교만치 아니하면 어떠하겠습니까?"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괜찮지. 그러나 가난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것만 같지는 못해."
자공은 돈이 많은 사람이었다. 여기 자공의 질문은 학문하는 자로서 이재에 밝은 자신의 상황에 대한 깊은 반성의 톤으로 시작하고 있다.
"선생님! 빈궁하면서도 아첨하지 아니하고, 부유하면서도 교만치 아니한다면 그래도 훌륭한 삶의 자세라 할 만하지 않겠습니까?"
이 한 질문은 자공에 있어서는 뼈저린 반성의 외침이었다. 내가 지금 비록 부유하지만 교만하지 말자! 또 세상이 바뀌어 내가 돈을 다 잃어 버리고 가난하게 되었을지라도 아첨하지 말자! 이렇게만 살면 우리 훌륭한 공자님의 제자라 할 만하지 않겠는가? 자공은 공자님의 입에서 "너 참으로 훌륭하다"는 긍정의 말씀을 잔뜩 기대했을 것이다. 그 긴장의 순간! 공자의 입술에서 새어나온 한 마디는 무엇이든가?"可也"이 순간 자공의 가슴이 저미어졌을 것이다. 철컹! 결코 긍정의 대답이 아니었던 것이다. '可也'는 부정의 온화한 표현일 뿐이다. 공자가 자공의 질문에 대한 부정 끝에 제시한 새로운 차원의 긍정적 진리는 다음과 같은 것이었다.
"未若貧而樂, 富而好禮者也" 빈궁하면서도 즐길 줄 알고 부유하면서도 예를 좋아하는 자만 같지 못하다.
貧(빈)에 대한 無諂(무첨)이나, 富(부)에 대한 無驕(무교)는 모든 '無'라는 부정사를 전제로 하고 있다. 그것은 부정적 가치인 것이다. 우리의 인생은 부정적 가치에 의한 소극적 대처로서는 군자다운 삶을 만들어 갈 수가 없다. 공자는 貧(빈)에 대한 樂을, 富(부)에 대한 好禮(호예)를 새롭게 제시한 것이다.
爲政篇(위정편)
學而不思則罔, 思而不學則殆 자왈 학이불사즉망 사이불학즉태
배우기만 하고 생각치 않으면 멍청해지고, 생각하기만 하고 배우지 않으면 위태롭다.
공자가 말하는 '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나의 의식의 장으로 '새로움'이 유입되는 것을 의미한다. 배움이란 물음이요, 탐구요, 독서다. 그것은 미지의 세계로의 모험이다. 따라서 새로움의 유입이 없는 독서는 독서가 아니다. 맨 똑같은 소리를 반복하는 신문이나 삼류소설을 아무리 열심히 읽어도 우리는 그것을 독서라 부를 수는 없는 것이다. 나의 인식의 지평의 확대가 일어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나 學은 반드시 思로써 질서 지워져야 한다. 思는 새로운 경험적 사실의 유입은 없지만, 그러한 사실들을 반추하고 서로의 관계를 정연하게 심화시키는 과정이다. 思는 나 홀로 의식의 자내적 반추과정이다. 그런데 學만 있고 思가 없으면 罔(망)하여 진다. 배움만 있고 사유가 없으면 맹목적 혼란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반대로 사유만 있고 배움이 없으면 殆(태)하여진다. 생각만을 깊게하고 새로움의 유입이 없는 체험의 세계는 공허한 것이다. 그것은 선방만을 유랑하는 선승들이 자칫 잘못 빠지기 쉬운 유폐와도 같다. 과거의 훌륭한 선승(禪僧)들은 결코 學을 게을리한 사람들이 아니다. 學에 집착하지 말라는 禪(선)은 있을 수 있어도, 學을 무시하라는 禪은 있을 수 없다
由! 誨女知之乎! 知之爲知之, 유 회여지지호 지지위지지 不知爲不知, 是知也 부지위부지 시지야
유야! 내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 주겠다. 아는 것을 안다 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하는 것, 이것이 곧 아는 것이다.
자로는 본시 용맹스러움을 좋아하는 인간이었다. 이런 사나운 자들은 대체로 모르는 것을 억지로 안다고 우기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공자께서 다소곳이 일러주신 것이다. "내가 너에게 안다고 하는 것을 가르쳐주마!"
참으로 안다는 것을 무엇인가? 과연 안다는 것이 무엇인가? 이렇게 난해한 질문에 대하여 공자는 앎에 대한 인식론적 규정을 회피하고자 한다. 그리고 매우 우회적으로 앎에 대한 우리의 앎을 드러내고자 한다. 안다고 하는 것은 바로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하는 것, 바로 그것이라고 말한다. 즉 아는 것을 안다하고 모르는 것을 모른다고 할 줄 아는 것, 그것이 바로 앎이라는 것이다. 사실 이것은 앎 그 자체의 규정이라기 보다는 앎에 대한 우리의 도덕적 자세를 요청하고 있는 것이다.
인간의 앎에 있어서 가장 큰 병폐는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지를 모르고 있다는 데 있다. 즉 무엇을 아느냐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무엇을 모르느냐가 참으로 중요한 것이다. 자기가 무엇을 모르는 지를 명료하게 아는 인간은, 모르는 것을 안다고 우기는 법이 없다. 그리고 그 무지의 영역으로 전이되리라는 소망의 대상이 된다. 인간은 자기가 무엇을 모르느냐를 확실하게 깨달을 수 있을 때만이 앎의 의미를 갖게 되는 것이다. 즉 '지지위지지'의 영역은 '부비위부지'를 통해서만 반사적으로 드러날 수 있는 영역인 것이다. 바로, 모르는 것을 확실히 모르는 것으로 인식할 수 있는 자에서만 비로소 진정한 앎에 대한 발돋움이 가능케 되는 것이다.
道之以政 齊之以刑 民免而無恥 도지이정 제지이형 민면이무치 道之以德 齊之以禮 有恥且格 도지이덕 제지이예 유치차격
정령(政令)으로써 이끌고 형벌로써 기지런히 하면, 백성들이 면하기만할 뿐이요 부끄러움이 없다.
그러나 덕으로써 이끌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면 사람들이 부끄러움이 있을 뿐 아니라 떳떳해진다
'道之以政(도지이정)'의 '道'는 '治理(치리)'의 뜻이 있고, '引導(인도)'의 뜻이 있다. '政'은 法敎(법교), 政法(정법), 政令(정령) 정도를 의미한다고 보면 된다. '齊(제)'는 가지런히 한다, 정돈한다, 뒷처리한다는 뜻이다. 과거의 법가적 법의 개념은 민법이 아닌 형법이었다. 다시 말해서 법을 통해 민권을 회복하는 것이 아니라, 통치자의 권익을 위한 질서의 강압이며, 형벌의 강제였다. 그러므로 정령으로 이끈 것은 형벌로 정돈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면 백성들은 '면하기만' 한다는 것이다. '免(면)'이라는 글자는 매우 중요하다. 그것은 형벌을 모면키만 하는 타율적 행위를 말한다. 행위의 자율성이나 도덕적 의지는 전무하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無恥(무치)', 즉 수치를 모르게 된다는 것이다. 법령에 의하여 질서가 잡혀지는 사회라 할지라도 그 사회 성원의 수치감이 없다면 그 사회는 별볼일 없는 사회라는 것이다.
동양사회의 전통적 미덕을 한마디로 규정한다면 무엇일까? 그것은 바로 이 '수치'라는 한 마디인 것이다. 우리문화는 '수치의 문화'인 것이다. 사회의 성원이 서로간에 '수치'를 아는 사회,서로 부끄러움을 느낄 줄 아는 인간들이 만들어가는 사회, 그것이 바로 유가가 포기 할수 없는 인간의 측면인 것이다. 그래서 말한다.
덕으로 이끌고, 예로써 가지런히 하면 有恥且格(유치차격)할 것이다. 여기서 우리가 주
목해야 할 것은 德(덕)이 政(정)과 대비되고, 禮(예)가 刑(형)과 대비되었다는 것이다.
여기서 말하는 덕은 '孝(효), 弟(제), 慈(자)'를 일컫는 것으로 보면 된다. 인간을 刑(형)대신 예로써 가지런히 한다. 얼마나 아름다운 이상일까 보냐 마는 물론 그것도 결코 쉬운 이야기는 아닐 것이다. 예를 刑(형)괴 대비시켰다는 것을 보면, 예가 과거 유교사회에서는 어떤 구속력을 갖는 개념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格(격)'은 '바르게 된다'는 뜻으로 풀면 좋을 것이다.
爲政以德, 譬如北辰居其所而衆星共之 위정이덕 비여북신거기소이중성공지
정치를 하되 덕으로써 하는 것은, 비유하면 북극성이 제자리에 머물러 있어도 나머지 모든 별이 그를 중심으로 고개 숙이고 도는 것과도 같다.
이장에서 말하는 '衆星共之(중성공지)'의 해석은 우리가 좀 신경을 써야할 문제가 있다. 共을 衆星(중성)의 운행의 구심점으로서 북극성을 '공유한다'는 뜻으로 풀 수도 있지만, 이 '共'을 '拱'자로 해석하면, 모든 별들이 이 북극성을 향해 소매를 들어 공수하면서 고개숙여 절하고 있는 어떤 아름답고 평화로운 그림으로 생각할 수 있다.
子曰 자왈
吾十有五而志于學, 三十而立, 오십유오이지우학 삼십이입
四十而不惑, 五十而知天命, 사십이불혹 오십이지천명
六十而耳順, 七十而從心所欲, 不踰矩 육십이이순 칠십이종심소욕 불유구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나는 열 다섯 살에 학문에 뜻을 두었고, 서른 살에는 우뚝 섰으며, 마흔살에는 미혹됨이 없었고, 쉰 살에는 천명을 알았고, 예순 살에는 귀가 순해졌고, 일흔 살에는 마음이 원하는 바를 따라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었다
이것은 공자가 자신의 삶을 회고하면서, 그 삶의 체험과정을 몇 단계로 나누어 서술한 것이다. 여기 분명 '칠십'이라는 구절이 삽입되어 있는 것을 보아도 이 말은 그가 70세 이후 그리고 그의 생애를 73세로 마감하기 이전의 어떤 시기에 발출된 것으로 간주할 수 있다.
'志于學(지우학)'이라 할 때 '志'는 매우 중요하다. 이것은 어떤 나의 삶의 총체적 지향성을 말하는 것으로 주체적 결단을 의미하기 때문이다. 나이가 차서 학교에 입학한다든가, 남이 하는 대로 서당에 간다든가, 부모님께서 공부하라고 하시니까 공부를 시작한다든가 하는 따위의 이야기가 아니다. 이것은 공자의 삶의 최초의 자각을 의미하는 것이며, 그 자각이란 배움을 향한 자각이었다.
인간의 깨달음의 최초의 계기는 이미 15세 전후에는 대강형성되는 것이다. 될성부른 나무는 떡잎부터 알아본다는 속담이 있듯이 한 인간의 일생을 지배하는 어떤 체험의 깊이는, 상상력의 폭이 넓은 15세 전후의 소년시절에 이미 형성되는 것이다.
'삽십이입!' 이것은 과연 무엇을 의미하는가? 나이 삼십이 되어 '홀로 설 수 없는 인간'은 정말 별 볼일 없는 인간이다. 立이란 부모나 친지의 도움이 없이 자력으로 '선다'는 것이다. 이 선다는 말에는 인생에 대한 자신감, 나는 이제 내 두발로, 내가 살아가는 이 땅의 세계를 딛고 설 수 있다는 자신감이 강력히 표출되어 있다. 그것은 바로 자기가 건설하고자 하는 인생에 대한 대강의 청사진이나 방향감각이 완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사십이불혹'이란 단순히 의혹이 없어진다는 것을 의미하지 않는다. 나이 사십이란 인생의 과정 중에서 가장 왕성하게 활동할 시기이며 따라서 주변상황이나 사람들과의 충돌이 많은 시기인 것이다. 이렇게 상충되는 의견이 있을 때에 현혹됨이 없이 올바른 자기의 주관에 따라 판단하고 행동하는 것을 공자는 '불혹'이라 표현한 것이다. 불혹은 곧 주체성의 확립이다.
'오십이지천명', 사람이 나이 오십이 되면 이제 한 인간으로서 대강 권위의 정점에 오른다. 주변에서 리더로서의 권위를 인정받게 되는 시기가 되는 것이다. 그리고 삶의 모습이 원만한 작품의 틀을 완성해가는 것이다. 이 때가 되면 마흔 때의 주관적 확신성보다는 나의 판단을 넘어서는 어떤 보편적 기준을 항상 앞서 생각해야 하는 것이다. 이러한 보편적 기준을 '하늘의 명령' 곧 천명이라 부르는 것이다. 불혹은 자기주관을 중심으로 이야기 한 것이므로 주관적 측면이 강하다. 그러나 천명은 모든 사람이 공유하는 보편적 원리를 말하는 것이며 객관적 측면이 강하다. 그것은 '나'라는 개체의 철저한 부정 위에서 성립하는 어떤 보편적 가치의 세계에 대한 확신인 것이다. 공자는 죽음에 직면했을 때도 태연히 거문고를 뜯으며 외쳤다. "저들이 날 어찌하리오. 이몸에 주공(周公)으로부터 내려오는 문화가 깃들어 있을 진대, 하늘이 정녕코 이 문화를 버리지 않으시려 한다면 저들이 날 어찌하리오!". 공자의 生死는 이미 개인적 주관적 판단에 따라 결정될 수가 없는 상황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그가 믿었던 것은 하늘의 소리요, 하늘의 명령이었다. 그것은 이미 나라는 개체의 논리를 떠나, 보편적으로 공유되는 문화적 가치였다. 이러한 문화적 가치를 그는 '斯文(사문)'이라 불렀고, 그것이 곧 그의 '天命(천명)'이었던 것이다.
'육십이순', 이 말은 정말 우리의 일상적 언어 감각에 리얼하게 와 닿는 말이다. '이순'은 '귀가 순해진다'는 말인데, 이것은 모든 것을 통달하여 거슬림이 없다는 그런 達者(달자)의 모습을 그린 것이 아니고, 순수히 인간의 감성과 관련된 '용서'의 함의가 더 강하다는 것을 말해주고 싶은 것이다. 인간에게서 가장 다스리기 어려운 것은 이지적인 냉철함이나 논리적인 일관성이 아니다. 감정적으로 남이 나에게 어떠한 역한 소리를 해도 그것을 역한 소리로 듣지 않을 수 있는 감성의 순화! 이것이야 말로 인간에게는 최종적으로 다스리기 어려운 것이다. 나이 60이 되면, 이미 신체적으로도 사양길이요 쇠약의 일로를 걷는다. 그리고 이성의 날카로움보다는 단연 감성의 원만함이 돋보여야 할 시기인 것이다. "난 예순이 되니까, 아무리 날 욕하는 소리를 들어도 화가 안나!" 혹은 "아무리 세파의 거스리는 일들이 귓전을 때려도 감정의 동요가 없어!"라는 정도의 이야기가 아닐까?
'칠십이종심소욕,불유구!', 이 공자의 최후의 독백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그의 삶의 과정이 도달한 최후의 경지, 그것은 진정한 자유가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말해주는 것이다. '종심소욕'이란 문자그대로 마음이 欲(욕)하는 바를 따른다는 뜻이다. '불유구'의 '踰(유)'는 '넘는다', '건넌다'는 뜻이다. '矩(구)'는 원래 목수들이 쓰는 기역자 모양의 곡척을 말하는 것이다. 콤파스를 뜻하는 規(규)와 함께 '법도', '규칙', '기준', '준칙'의 의미가 된다. 불유구는 법도에 어긋나지 않는다. 일정한 질서의 기준을 넘어가지 않는다는 뜻이다. 내 마음이 원하는 바를 마음껏 따라 가도 조금도 법도에 어긋남이 없는 경지! 이것이 진정한 인간의 자유가 아니고 무엇이랴!
子曰 人之過也, 各於其黨. 觀過, 斯知仁矣 자왈 인지과야 각어기당 관과 사지인의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사람의 과실이란 각기 그 편벽한 습벽을 따른다. 사람의 과실을 살펴보면 곧 그 인함을 알 수 있다
주자의 집주의 입장에서 '각어기당(各於其黨)'이라는 의미를 해석하면, 인간의 오류는 그 당류에 맞게 일어나고 있다는 식으로 그 해석의 가닥을 잡는다. 즉 군자는 군자다운 오류를 범하며, 소인은 소인다운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즉 군자는 인정이 후하기 때문에 과실을 범하고, 소인은 인정이 박하기 때문에 과실을 범한다는 것이다. 군자는 지나치게 사랑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하고 소인은 너무 잔혹하기 때문에 오류를 범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자 신주의 해석은 인한 사람이나 군자라 해서 오류가 없을 수는 없다는 보편주의적 사고가 배태되어 있다. 즉 군자는 완벽하고 소인은 오류 투성이라고 하는 식의 이원론적 인간상이 배제되어 있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인간의 과실의 형태만 보아도, 그 과실이 주체인 인간이 인한지, 인하지 못한지를 판단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인간에게 완벽이란 있을 수 없다. 모든 인간은 허물을 저지르지 않을 수 없는 존재이다. 그러나 그 허물 그 자체가 인한 허물이 있고, 불인한 허물이 있다. 그 허물을 보아서 우리는 그 인함을 알 수 있는 것이다. 인(仁)의 정체는 그것의 부정적 상태에서 드러난다는 신주의 입장은 공자사상의 매우 소박하고 인간적인 측면을 잘 드러내고 있다.
朝聞道, 夕死可矣 자왈 조문도 석사가의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다.
고주는 이 공자의 고백을 정치사적 맥락에서 푼다. '문도(聞道)'의 道는 도덕의 정치가 실현되는 세상의 출현을 의미한다. 공자는 죽음에 임박할 때까지 자신의 고국, 노 나라에 그러한 인(仁)에 의한 정치의 밝은 세계가 도래하기를 꿈꾸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몸은 쇠해가고 죽음의 그림자가 엄습한다. 아~ 아침에 그러한 도의 세상이 밝았다는 소식 한번만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여한이 없을 텐데!
그런데 신주는 이러한 정치사적 맥락과 무관한 공자의 일상적 체험, 즉 진리를 갈망하는 애절한 호소로서 풀고 있다. 주자는 말한다.
"도(道)라는 것은 사물이 제각기 정당한 모습을 지니는 이치이다. 만약 그 도를 얻어 듣는다면 삶이 순탄하고 죽음이 편안하여 다시 한을 남기는 일이 없게 될 것이다. 아침과 저녁을 말한 것은 그 때의 가까움을 매우 극적으로 표현한 말이다."
士志於道, 而恥惡衣惡食者, 未足與 議也. 토지어도 이치악의악식자 미족여 의야
선비가 도에 뜻을 두고서 나쁜 옷과 나쁜 음식을 부끄럽게 여긴다면, 그와 더불어 의논할 수가 없다.
악의(惡衣)와 악식(惡食)은 부끄러움의 대상이 아니다. 도(道)에 뜻을 둔 선비가 악의■악식을 부끄러워 한다면, 어찌 그를 친구 삼아 말벗을 할 수 있으리오? 아무리 비싸고 사치스러운 의식이라 할지라도, 더러운 것 투성이일진대, 오히려 그것을 멀리하는 것이 선비의 아름다움이요 멋이다.
能以禮讓爲國乎? 何有? 不能以禮讓 爲國, 如禮何?
능이례양위국호 하유 불능이례양 위국 여례하
예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린다면, 도대체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예와 겸양으로써 나라를 잘 다스리지 않는다면 도대체 예를 어찌할 것인가?
'예양(禮讓)'의 '양(讓)'은 '사양', '겸손', '겸양'의 의미를 나타낸다.
공자는 말한다. 예양으로써 한 나라를 다스린다면, 그 나라를 다스림에 과연 무슨 어려움이 있겠는가? 통치자가 양보할 줄 알고 그 밑의 지배관료들이 서로 양보할 줄 안다면 그 나라는 다스려지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다. 서로가 서로의 욕심을 채우려고만 하니까 그러한 이해의 충돌 속에서는 국민들의 원성만 높아지는 것이다.
사람들이 예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면 별 어려움이 없을 것이건만, 사람들이 예양으로써 나라를 다스리지 아니하고 욕심만 부리고 있으니, 모처럼 인간세의 문명의 결정체로서 공자가 제시한 예(禮)가 아무 소용이 없지 아니한가? 그 고귀한 예를 어찌할 것인가? 사람들이 겸양의 미덕을 발휘하지 아니한다면, 예는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 되어 버리고 만다는 공자의 개탄이다.
德不孤, 必有隣. 덕불고 필유린
"덕은 외롭지 아니하다. 반드시 이웃이 있게 마련이다."
덕(德)이란 근원적으로 어떠한 경우에도 고립될 수 없는 것이다. 덕은 나의 존재에 축적되어 가는 것이며, 그것은 또한 관계 속에서만 형성되어 가는 것이다. 그 관계를 공자는 '유린(有隣)'이라 표현한 것이다.
옹야 (雍也)
賢哉라 回也여 一簞食와 一瓢飮으로 在陋巷을 人不堪其憂어늘 回也는 不改其樂하니 賢哉라 回也여
현재 회야 일단식 일표음 재누항 인불감기우 회야 불개기락 현재 회야
「어질도다 안회여! 한 도시락 밥과 한 표주박의 물을 마심으로 좁고 더러운(누추한) 집에 있음을 사람들이 그 근심을 견디지 못하거늘, 회는 그 속에서도 그 즐거움을 고치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회여!
「어질도다. 안회여! 한 그릇의 밥과 한 표주박의 음료로 누추한 골목에서 사는 것을 다른 사람들은 그 괴로움을 감당하기 어려운데, 안회는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아니하니, 어질도다. 안회여!」 字意 賢(현) 어질디 簞(단) 대그릇 瓢(표) 표주박 陋(루) 좁다 )巷(항) 거리 堪(감) 견디 다 憂(우) 근심하다 哉(재) 어조사 語義 및 集註 賢哉(현재)라 어질도다 回也(회야) 안회(顔回)는 一簞食(일표음) 한 대그릇의 밥 一瓢飮(일단사) 한 표주박의 음료 在陋巷(재루항) 누추한 골목에서 사는 人不堪其憂(인불감기우) 다른 사람들은 그 어려움(근심)을 견디기 어려워하거늘 不改其樂(불개기락) 그 즐거움을 바꾸지 않다.
知者는 樂水하고 仁者는 樂山이니
지자 요수 인자 요산
知者는 動하고 仁者는 靜하며 知者는 樂하고 仁者는 壽니라.
지자 동 인자 정 지자 낙 인자 수
지혜로운 사람은 물을 좋아하며 어진 사람은 산을 좋아하니, 지자는 동적이며 인자는 정적이며, 지자는 즐겁게 살며 인자는 장수한다.
子見南子 子路不說 夫子矢之曰 予所否者 天厭之 天厭之.
자견남자 자로불열 부자시지왈 여소부자 천염지 천염지
공부자가 南子(衛靈公(위령공)의 부인으로 不貞(부정)한 女人)를 만나자 子路(자로)가 이를 불쾌하게 여겼다. 孔夫子는 子路에게 단호한 어조로 ■내가 만일 하자가 있다면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 하늘이 나를 버릴 것이다■라고 응수했다
孔夫子가 당시 衛靈公의 부인으로서 행실이 좋지 않았던 南子를 만난 것을 두고 직선적인 성격을 지녔던 子路가 못마땅하게 여겼다. 이를 안 孔夫子는 단호한 어조로 당신이 南子를 만난 것은 한 점의 부끄럼도 없는 시도이고, 또한 어떤 잘못이 있었다면 하늘이 자신을 버릴 것이다 라고 두번이나 힘주어 말했다. 南子는 당시의 유명한 미남자인 宋朝와 불미스런 소문이 있었던 여인이었다. 미남자가 여인들에게 인기가 있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한 현실임을 논어를 통하여서도 느낄 수 있다. 공부자는 당신의 經綸(경륜)을 펼치기 위해 衛(위)나라의 靈公을 만나야 했고, 그러기 위해서는 小君(衛靈公의 부인)을 먼저 만나는 것이 古禮(고례)였다고 애써 論語集註(논어집주)에서는 변명을 했지만, 子路의 느낌대로 석연치 않은 것은 사실이다. 아마도 孔夫子는 權道(정당한 목적을 위해 방법상의 융통성)적 인식에서 南子를 만났던 것 같다. 사마천 史記 ■孔子世家■에서는 휘장을 사이에 두고 孔夫子가 南子를 만났다고 했지만, 당시로서는 聖人과 淫女의 만남을 두고 논의가 분분했던 사건이 아니었던가 한다. 南子를 징검다리로 하여 衛靈公을 만나서 세상을 濟度(제도)하겠다는 孔夫子의 간절한 충심을 읽을 수 있다.
子曰 "務民之義, 敬鬼神而遠之, 可謂知矣." 問仁. 曰 "仁者, 先難而後獲, 可謂仁矣."
자왈 "무민지의, 경귀신이원지, 가위지의." 문인. 왈 "인자, 선난이후획, 가위인의."
"백성의 도리에 힘쓰고 ( 務民之義 )
귀신을 공경하되 멀리하면 ( 敬鬼神而遠之 )
지(知)라 말할 수 있다. ( 可謂知矣 ) " 라고 대답했다.
여기서 "지(知)"란 "참다운 앎"을 말하는 것이요, "의(義)"란 "사람의 올바른 도리"를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공자의 말은 "사람이 마땅히 해야 할 도리를 실천하는데 힘을 쓰고, 귀신을 공경하되 귀신의 힘을 빌어 복을 구하고 화를 면하려는 어리석은 짓은 하지 않는 것이 바로 사람의 올바른 삶의 자세다."라는 뜻이다.
子貢曰(자공왈) : 如有博施於民(여유박시어민), 而能濟衆(이능제중), 何如(하여)? 可謂仁乎(가위인호)?
자공이 말하기를 "만약백성들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을 제도할 수 있다면 어떠합니까? 인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子曰(자왈) : 何事於仁(하시어인), 必也聖乎(필야성호)! = 공자가 말씀하시기를 "어찌 인이라고만 하겠느냐, 반드시 성이라 할 수 있겠지! 堯舜其猶病諸(요순기유병제)! = 요와 순도 그것을 걱정했으리라!
夫仁者(부인자), 己欲立而立人(기욕입이입인);己欲達而達人(기욕달이달인) = 대저 어진 사람은 자기가 서고자 하면, 남을 서게 하고 ; 자기가 달성하고자 하면 남을 달성하게 한다.
能近取譬(능근취비), 可爲仁之方也(가위인지장야이) = 가까이서 비유를 취할 수 있다면, 인의 방도라 할 수 있겠다.
子貢이 ■만일 백성에게 널리 베풀고 많은 사람을 구제해 준다면 仁의 실천으로 볼 수 있습니까(子貢曰 如有博施於民而能濟衆 何如 可謂仁乎)■라고 묻자 孔夫子는 어찌 이를 ■仁■이라고만 하겠느냐 ■聖■의 경지에 도달한 것이고, 堯舜(요순)도 그렇지 못함을 걱정했다. (子曰 何事於仁 必也聖乎 堯舜 其猶病諸)■라고 한 후 ■仁■을 다음과 같이 정의했다.
夫仁者 己欲立而立人 其欲達而達人 能近取譬 可謂仁之方也已.
부인자 기욕립이립인 기욕달이달인 능근취비 가위인지방야이
본래 仁이란 내가 이루고 싶은 것을 남도 이루게 하고, 자신이 도달코자 하는 것을 남도 도달케 하는 것이다. 仁은 멀리 있는 것이 아니고 자기 주변의 가까운데서 취하여 비유하면 이것이 바로 仁을 실천하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八佾(팔일)
林放問禮之本.임방문예지본 子曰: "大哉問! 禮, 與其奢也, 寧儉; 자왈 대재문 예 여기사야 녕검
喪, 與其易也, 寧戚." 상 여기이야 녕척
임방이 예의 근본을 여쭈었다.
공자께서 말씀하시었다.
"훌륭하도다, 그 질문이여! 예는 사치스럽기보다는 차라리 검소해야 하고, 상은 질서 정연하기 보다는 차라리 슬퍼해야 한다."
임방이 공자에게 이러한 질문을 던졌을 당시 이미 세속인들의 예에 대한 생각이 그 근본을 버리고 말엽만을 숭상하는 폐단에 빠져있었다는 것이다. 그래서 다시 그 예의 근본을 물었던 임방이 위대하게 여겨질 수밖에 없었을 것이다.
'여기(與其) A 녕(寧) B'라는 관용구는 여(與)는 '.....라기 보다는(than)의 비교를 나타내는 뜻이며, 녕(寧)은 '차라리'의 뜻이다. A 라기보다는 차라리 B, 그러니까 A는 부정적인 맥락에 놓여지며 B는 긍정적인 맥락으로 해석된다.
예에 대한 공자의 설명인 사(奢)와 검(儉)은,사치와 검약이라는 오늘날 우리의 말로 쉽게 이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모든 예식은 화렬하고 사치스러운 장식에 있는 것이 아니다. 예는 간단하고 검소하고 간략할수록 더 좋은 것이다. 예의 검(儉)이 곧 본(本)이다. 이(易)는 형식적으로 잘 치루어지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질서 정연한 어떤 상례의 규칙에 의하여 깔끔하게 진행되는 것을 말한 것이다. 상(喪)의 근본은 사랑하던 사람이 갑자기 상실되었다는 슬픔에 있는 것이다. 질서 정연한 상례를 과시하기 위한 무대가 아닌 것이다. 상(喪_)이란 질서 정연하게 형식적으로 잘 치루어지기 보다는 오히려 그 슬픔이 생생하게 표출되는 것이 그 본질이다!
예의 본질은 사치와 질서 정연한데 있지 아니하고, 검소하고 슬퍼하는데 있다. 예의 본질은 형식이 아니 상황이다. 사회적 과시가 아닌 인성적 표출이다. 외면적 허례가 아닌 내면적 슬픔이다. 우리는 여기서 대악(大樂)은 필이(必易)하고 대례(大禮)는 필간(必簡)이라고 한 <악기>의 말을 되새겨 보지 않을 수 없다.
周監於二代, 郁郁乎文哉! 吾從周.주감어이대 욱욱호문재 오종주
주나라는 하나라,은나라 이대를 거울삼았다. 찬란하도다, 그 문화여! 나는 주를 따르리로다
'감(監)'을 계승발전시켰다는 적극적 뜻으로 풀어, 주나라는 하나라와 은나라의 장단득실을 참고하여 새로운 인문주의 문화를 꽃피웠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하는 자연주의 문화요, 은은 초월주의적 종교문화요, 주는 인문주의적 문화다. 주는 하,은의 변증법적 발전으로 공자의 의식 속에서 이상화되어 나타난 것이다.
'욱욱(郁郁)'이라는 뜻은 성대하고 찬란한 모습이다.
'오종주(吾從周)'나는 주를 따르리로다. 이 한마디처럼 강렬하게 공자의 삶과 이상을 포괄적으로 표현하는 문구는 없다.
公冶長 공야장
十室之邑, 必有忠信如丘者焉, 不 如丘之好學也.
십실지읍 필유충신여구자언 불 여구지호학야
"열가호 쯤 되는 조그만 마을에도 반드시 나와 같이 충직하고 신의 있는 사람은 있을 것이다. 그러나 나만큼 배우기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십실지읍(十室之邑)'이란 열 가호 정도가 옹기종기 모여 사는 작은 마을이다. 읍의 가장 작은 단위로서 강조적인 표현이다. 그렇게 작은 마을에도 충직하고 신험있는 말을 하는 자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충신한 자들이란 좋은 사람들이요, 착한 사람들이다. 이 문장에서 '필유.....'와 '불여....'는 내용적으로 강렬한 대조를 이루고 있다. 나처럼 충신한 자들은 반드시 있을 것이다. 드러나 그 충신한 자들도 나의 호학에는 절대 미칠 수 없다. 나의 삶의 지고의 이상이 '호학'에 있었음을 고백하는 공자의 최종적 설파다.
충직하고 신의있는 인간이 된다는 것은 참으로 훌륭한 것이다. 그러나 그러한 충직함만으로 인간의 인간됨은 완성되지 않는다. 인간은 아무리 충직해도 그 충직함의 울타리에 다시 갇혀 버리게 되고 마는 것이다. 충직의 울타리는 항상 좁은 것이다. 인간은 반드시 그 충직함의 울타리를 다시 개방시켜야 한다. 자신의 충신함을 뛰어넘어 사리를 파악하는 보편적인 안목을 기르지 않으면 안된다. 그 보편적인 안목에로의 끊임없는 자기개방, 자기해탈이 공자에게는 '배움'이라는 것이다. 공자에게서 '배움'이란 어떤 고정된 인격의 덕성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는 습득의 방법을 말한 것이다. 충신은 지역적인 것이다. 그 지역적인 것이 지역적인 특성을 잘 발휘할 수 있기 위해서라도 우리는 그 지역성을 뛰어넘는 보편성을 획득하지 않으면 안된다. 그 보편성의 획득을 공자는 '호학'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호학'은 명사가 아니다. 그것은 '배우기를 좋아함'이라는 동명사적 상태이다. 인간은 충직과 신의로만 인간이 되질 않는다. 인간은 '학문'을 함으로써만 비로소 인간이 되는 것이다. 즉 배움이 없는 인간은 인간이 아니다. 인(仁)의 실천은 인간의 모든 사태를 넓게 통찰할 수 있을 때만 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자신의 충신함이 하나의 방편에 머루를 뿐이라는 것을 자각하지 못하는 인간은 결코 인(仁)할 수 없는 것이다.
자한 子罕
子曰(자왈) 三軍可奪帥也(삼군가탈수야)어니와 匹夫(필부)는 不可奪志也(불가탈지야)니라.
삼군에서 장수를 빼앗을 수는 있어도 한 사나이로부터 그 지조는 빼앗을 수는 없는 것이다.
後生이 可畏니 焉知來者之不如今也리오. 후생 가외 언지래자지불여금야
四十五十而無聞焉이면 斯亦不足畏也已니라. 사십오십이무문언 사역부족외야이
젊은 사람은 두려우니라. 어찌 장래의 그들이 지금의 나만 못하다고 하겠는가
그러나 사오십에도 학문과 덕으로 이름이 나지 않으면 그런 사람은 무서울 것이 없느니라.
知者不惑, 仁者不憂, 勇者不懼. 지자불혹, 인자불우, 용자불구.
깨달은 자는 어떠한 상황에서도 미혹하지 않고 마음이 어진 사람은 근심할 게 없으며
참으로 용감한 사람은 두려워하지 않는다.
知者不惑. 지자는 惑이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智慧가 있는 사람은 인생의 道理를 바로 알므로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에 부닥쳐도 당황하거나 흔들리거나 迷惑하지 않는다.
知는 인생의 광명이요, 無知는 인생의 暗黑이다. 나의 할 일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것이 지혜다. 지혜는 슬기롭고 聰明한 것이다. 事物의 大小輕重과 先後本末과 善惡正邪와 是非曲直을 바로 분별하는 밝은 事理 判斷力이다. 지혜는 참과 거짓을 분간하는 능력이다.
仁者不憂. 인자는 근심 걱정이 없다. 어질고 仁慈한 사람은 私利私慾을 버리고 天道와 天理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다. 仁은 따뜻한 마음이요, 넓은 包容力이요, 사람을 感化시키는 힘이다. 그러므로 孟子는 ■仁者無敵■이라고 말했다. 인자에게는 敵이 없다.
勇者不懼.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용기 있는 사람은 의지력이 강하고 決斷力이 있기 때문에 마음 속에 무서운 것이 없다. 용기는 果敢한 斷行力이요, 鞏固(공고)한 實踐力이다.
(知者不惑. 지자는 혹이 없다. 공자께서 말씀하시기를 지혜가 있는 사람은 인생의 도리를 바로 알므로 언제 어디서 어떤 문제에 부닥쳐도 당황하거나 흔들리거나 미혹하지 않는다.
知는 인생의 광명이요, 無知는 인생의 암흑이다. 나의 할 일이 무엇이고, 해서는 안될 일이 무엇인지를 바로 아는 것이 지혜다. 지혜는 슬기롭고 총명한 것이다. 사물의 대소경중과 선후본말과 선악정사와 시비곡직을 바로 분별하는 밝은 사리 판단력이다. 지혜는 참과 거짓을 분간하는 능력이다.
仁者不憂. 인자는 근심 걱정이 없다. 어질고 인자한 사람은 사리사욕을 버리고 천도와 천리에 따라 행동하기 때문에 마음에 근심과 걱정이 없다. 仁은 따뜻한 마음이요, 넓은 포용력이요, 사람을 감화시키는 힘이다. 그러므로 맹자는 ■인자무적■이라고 말했다. 인자에게는 적이 없다.
勇者不懼. 용기 있는 사람은 두려움이 없다. 용기 있는 사람은 의지력이 강하고 결단력이 있기 때문에 마음 속에 무서운 것이 없다. 용기는 과감한 단행력이요, 鞏固(공고)한 실천력이다.
吾與欺 欺天乎 오여기 기천호
내가 누구를 속이랴, 하늘을 속이랴
내가 누구를 속이자는 것인가? 하늘을 속이자는 것인가?
衛 靈 公 ( 위 령 공 )
君子不以言擧人, 不以人廢言
불이언거인(不以言擧人)하니, 말들어보고 사람을 들어 쓰지 아니하고, 말 잘한 놈치고는 실질이 적어. 불이인폐언(不以人廢言)이라, 사람으로써 말을 폐치 안 해. 아무리 사람이 쓸 것이 아닌 사람이라도 말을 옳은 소리 할 때는 그 말을 취해서 쓴 거여. 그란게는 말 잘한 놈 치고 뭐시기한 놈 없어요.
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 其恕乎! 己所不欲, 勿施於人
유일언이가이종신항지자호 기서호! 기소부욕, 물시어인
자공이 문왈 유일언이가이종신행지자호(有一言而可以終身行之者乎)잇가? 자공이 물어 가로되 한 말이 가이 써 종신토록 행할 자 있습니까? 자 가로되 기서호(其恕乎)인져, 推己及物이라고, 그 恕인져. 뭐인고니는 자기의 하고자 아니한 바를 남에게 베풀지 말어라. 지는 하기 싫은 놈이 놈한테 갖다 베풀어?
「有一言而以終身行之者乎. (한 마디로 평생을 지켜 나갈 수 있는 말이 있을까요?)」라고 물었을 때, 공자는「其恕乎 己所不欲勿施於人. (그것은 恕(推己及人)일거야! 내가 원치 않는 일은 남에게도 하지 말아야 한다.)」(同, 衛靈公篇)
이라고 자공 자신의 착상을 자공에게 돌려 준 것이다. "서"는 나를 포기하는 데서 가능하다.
따라서 공자는 이 말에 의하여, "나"로 부터 떠나라 하고 가르친 것이다. 그리고 이 가르침은 고제인 증자(曾子)가,
부자지도 충서이사의.(선생의 도(道)는 성의와 남을 생각하는 데 있을 따름이다.)(同, 里仁篇)
라고 말하고 있는 바와 같이, 교의(敎義)의 근본을 이루는 것이기도 하였다.
오늘날, "己所不欲 勿施於人"이라는 말은 타인의 인격을 존중하라, 라는 의미로 쓰여지고 있지만, 그것은 자기의 인격의 독립과 존업을 인시하는데서 출발한 모랄리티지만, 공자의 경우는 이와 같은 근대 개인주의 사상과는 반대로 자기 그 자체의 포기를 요청하고 있다는 점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 것을 십분 염두에 두지 않으면 안 된다.
過而不改, 是謂過矣 (과이불개, 시위과의)
잘못을 저지르고도 고치지 않으면 그것이 곧 잘못이다.
吾嘗終日不食, 終夜不寢, 以思, 無益, 不如學也.
(오상종일불식, 종야불침, 이사, 무익, 불여학야)
내 일찍이 종일토록 먹지 않고, 밤새도록 잠자지 않으며, 사색한 일이 있었으나 유익함이 없는지라, 배우느니만못하였다.
술이 (述而)
黙而識之, 學而不厭, 誨人不倦, 何有於我哉.
(묵이지지, 학이불염, 회인불권, 하유어야재)(술이)
묵묵히 깨달으며 배움에 있어 싫어하지 않고, 남을 가르침에 게을리 하지 아니하니 그밖에 또 무엇이 나에게 있단 말인가.
德之不修, 學之不講, 聞義不能徙, 不善不能改, 是吾憂也.
(덕지불수, 학지불강, 문의불능사, 불선불능개, 시오우야.)(술이)
■ 덕이 닦아지지 않는 것과, 학문이 익혀지지 않는 것과, 의를 듣고도 실천하지 못하는 것과, 선하지 않음을 능히 고치지 못하는 것이 나의 걱정이다. (공자의 인간적 고민과 근심이 드러남.)
* 我非生而知之者, 好古敏以求之者也.(아비생이지지자, 호고민이구지자야.)
■ 나는 태어나면서부터 아는 사람이 아니라 옛것을 좋아하여 재빨리 구하는 사람이다. (술이)
* 學如不及, 猶恐失之. (학여불급, 유공실지.)(태백)
■ 배움에는 미치지 못할 것 같이 생각하는 것보다 오히려 잊어버릴까 두려워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