곰스크로 떠나는 기차가 떠오른 이유를 알것 같다. 달랑 배낭 하나 메고서 자신의 자리를 떠나는 자들의 자유의지란, 그리 쉽게 얻어지지 않는것들. 적어도 만톤 정도로 쌓인 일상의 무게를 발로 걷어치워야 가능하다.
한때는 나도 그런 과감함이 있었다. '나는 파리의 택시운전사'를 옆에 낀 채, 소록도의 중앙공원, 여수앞바다를 삽시간에 수놓던 오동도의 짙은 물안개, 보성의 녹차밭, 이름없는 간이역들, 그리고 부산의 태종대와 해운대, 한때의 영광을 훑고 지났을 레드카펫위를 신나게 걸었다. 도나우강의 잔물결, 퐁네프의 연인들, 아우슈비츠, 개선문, 퐁피두센터...그리고 에펠탑처럼 이국적이지 않은곳. 나는 단지 곰스크만을 염원한다. 이때의 집시같은 낭만은 주로 무궁화호의 첫번째나 마지막칸에 매달려 있었다. 그리고 텅빈 좌석보다는 승객들로 가득한 입석에 있었다. 캔커피와 캔맥주와 오징어다리. 이때의 나는 캔맥주 서너개 정도는 한 번에 마실수 있었다. 마셔도 약간의 트림만 했을뿐 내 신체는 아무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코끝에 바람이 불면 과감히 떠나야한다. 때로는 어떤 핑계를 대고서라도 무조건 떠나야 한다. 존재는 시간에 묶여있고 시간은 유한하니까. IS의 인질이 아니더라도 우리가 선 세계에서 어느 순간에 존재와 시간이 하나가 될지 모르니까. 현실의 열차는 좀처럼 내가 기다리는 간이역에 서지 않는다. 그 간이역마저 하나둘씩 사라진다. 하여 곰스크로 떠나는 기차는 이제 환영일 가능성이 높다. 컹컹 짖어대는 강아지도 코트깃을 여미는 중년의 여자도, 그리고 어제의 신문을 펼쳐든 사내도 없다.
그래도 나는 빈 정류장에서 기다린다. 지금 내가 매일 타야하는 버스는 중앙시장 스탠다드차타드은행 220번이나 303번이지만....저기 밤 열시만 넘으면 상대원 고개를 초스피드로 질주하는 220번 버스가 온다. 차가운 기계음성이 아닌 상냥한 버스 안내양이 문을 열어준다. 승객들은 많지 않다. 새로산 교통카드는 받지 않는다. 백원짜리 동전으로 차비를 내기전 나는 상냥한 그녀에게 묻는다. 저기요! 곰스크로 가기 위한 제 일상의 무게는 지금 저 구식 동전함에 얼마나 차 있을까요? 죄송하지만 백원이 부족합니다. 돌아오는 음성은 다시 차가운 기계음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