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고향
라나 라
나는 어렸을 때 잠을 일찍 자지 않았다. 엄마한테 들키면 큰일 나는 일이었지만, 엄마의 회초리보다 더 나를 끄는 것은 할머니 방에 있던 작은 라디오에서 흘러나오는 《전설의 고향》이었다. 할머니는 내 옆에 앉아 담배를 말고 계셨고, 나는 배를 깔고 엎드려 손에 턱을 고인 채 진지한 마음으로 귀신 이야기에 귀를 기울여 들었다. 라디오에서 나오는 소리는 어둠 속에서 더 선명해졌고, 나는 그 소리에 몸을 맡긴 채 손가락 하나 까딱하지 못했다.
에피소드 하나가 끝나고 나서 내가“할머니, 나 무서워”하면,그게 뭐가 무섭니. 내가 더 무서운 얘기 해줄까?”하시며 정말 이야기를 시작하셨다. 할머니는 참 이야기를 재미있게 잘하셨다. 이야기의 흐름에 따라 목소리를 올렸다 내렸다, 키웠다 줄였다 하시면서.
무덤에서 기어 나와 “내 다리 내놔” 하며 쫓아오는 절뚝배기 송장,“빨간 손 줄까, 파란 손 줄까” 하고 까무러치는 웃음소리로 질문을 던지는 변소 귀신. 정말 들어도 또 들어도 재미있고, 깜짝깜짝 놀라면서도 또 듣고 싶은 이야기들이었다. 무섭기는 엄청 무서웠지만, 나는 이상하게도 할머니의 리드믹한 말소리와, 끝을 알면서도 피할 수 없는 그 긴장감에 매일매일 귀신 얘기에 중독이 되었다.
어느 순간에는 내가 그 이야기 속에 들어가 있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어쩌면 이 터무니없는 이야기 속의 세상이, 내가 그때 살고 있던 세상보다 조금 덜 무서웠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현실은 늘 어른들의 불평과 화난 소리로 가득했지만, 귀신 이야기는 이상하게도 더 평화롭고 단순했다.
하루의 끝에 라디오를 함께 듣고 또 할머니의 귀신 이야기를 듣는 시간은, 왠지 모든 것을 잊고 마음을 안정할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 시간만큼은 아무도 나를 혼내지 않았고,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할머니와 둘만의 시간은 전설의 고향 말고도 종종 있었다. 뭘 또 잘못했는지 엄마한테 맞고 방에서 울고 있으면, 할머니는 당신이 손수 빻아서 금방 찐 뜨끈뜨끈한 쑥떡을 들고 우리 방에 들어오셨다. 그리고 그 크고 거친 손바닥으로 내 눈물을 닦아 주며 떡 한 덩이를 입안에 쏙 넣어 주셨다. 말 한마디 없이 그렇게 하셨다. 그러면 나는 그 큰 덩어리 떡 때문에 더 서러운 듯, 더 크게 엉엉 울었다. 입안에서 떡이 천천히 식어 가는 동안 눈물은 더 흘러내렸고, 할머니는 내 머리를 쓰다듬으시며 그냥 내 우는 모습을 말없이 바라보고 계셨다. 그때의 나는 왜 그렇게 더 울었는지 모르겠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더 위로받고 더 사랑받기 위한 나의 본능적인 계산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때는 왜 할머니와 같이 보낸 시간들이 그렇게 좋았는지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냥 하루가 그렇게 끝났고, 그렇게 잠이 들었다.
하지만 많은 시간이 지난 지금, 내 나이가 그때 할머니 나이보다 한참 더 지났는데도, 나와 할머니의 장면은 자주 떠오른다. 아무 때나 불뚝불뚝. 운전하다가 구름에 눈이 갈 때, 밤에 램프 불 옆에서 책을 읽고 있을 때, 별 이유 없이 그냥 할머니 생각이 난다. 그럴 때면 내가 왜 이 장면을 떠올렸는지 알 수 없어서, 오히려 더 오래 그 기억 안에 머무르게 된다.
나는 잊어버렸던 과거의 일들이 하나씩, 하나씩 내 머릿속에서 되살아나는 것이 신기하다. 내가 몰래 모아 둔 담배꽁초를 구겨진 종이에서 말없이 펴 보이시던 할머니의 모습, 할머니가 화가 나서 외숙모에게 소리 지르다가 분을 못 이겨 기절하시던 모습, 엄마가 나보고 아빠네 가서 살라고 장롱에서 옷을 꺼내 창밖으로 던지고 있을 때, 할머니가 엄마 손을 붙잡고 말리다 바닥에 내쳐진 뒤 다친 몸을 추스르시던 모습. 이 기억들은 서로 이어져 있지도 않은데, 이상하게도 한 장면이 떠오르면 또 하나가 따라 나온다.
나는 이 새로 떠오르는 기억들이 궁금하다. 내 두뇌 어딘가에는 삶 전체의 기억들이 모두 저장되어 있는 걸까. 그렇다면 그 많은 기억들 중에서 왜 하필 할머니와의 장면들이 지금 떠오르는 걸까. 나는 내 두뇌를 꺼내서 분해해 보고 싶다. 그 기억들의 원리를 알기 위해서.
어른이 되면서 나의 삶은 조금씩 더 정리되어 가고, 하루하루의 리듬은 일정해지고 있다. 감정의 진폭도 예전만큼 크지 않고, 비슷한 일상이 반복된다. 그러다 보니 마음 한쪽에 조용한 여백이 생기고, 그 틈으로 오래된 기억이 자연스럽게 올라오는 것인지도 모른다.
어린 시절에는 앞만 보고 살았기 때문에 돌아볼 틈이 없었다. 하지만 지금은 종종 지나온 시간을 뒤집어 보게 되고, 그 과정에서 예전에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장면들의 의미가 새롭게 느껴진다.
가끔씩 내 궁둥이를 두들기며 “내 강아지, 이쁜 강아지” 하시던 할머니의 손길, 내가 울 때마다 입에 뭐를 넣어 주시고 머리를 쓰다듬어 주시던 할머니의 침묵의 위로, 항상 내 옆에서 조용히 시간을 함께 채워 주시던 그 따뜻함.
기억은 억지로 꺼내려 하지 않아도 때가 되면 스스로 떠오르는 것 같다. 필요할 때, 마음이 그 기억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을 때, 예고 없이 모습을 드러낸다. 그런 기억들이 지금의 나를 더 차분하게 해주고, 내가 어디에서 비롯된 사람인지 알려주는 하나의 표식처럼 느껴지기도 한다.
그때의 어린 나는 사라진 것이 아니라 여전히 내 안에 머물러 있고, 시간이 지나도 조용히 나를 이끌어 준다. 할머니도, 어딘가에서 여전히 나를 위로하고 응원하고 계신 것만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