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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7월, 좌담회어서 참고자료 – 개목초(開目抄)
눈앞의 고난을 돌파하면
영원한 행복을 성취할 수 있다
스승과 함께 전진하는 데에 진정한 영광이
‘강한 신심’을 불러일으킬 때는 바로 지금!
<어서전집 234쪽 7행~9행>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제난(諸難)이 있을지라도 의심(疑心)이 없으면 자연(自然)히 불계(佛界)에 이르리라. 천(天)의 가호(加護)가 없음을 의심(疑心)하지 말 것이며 현세(現世)가 안온(安穩)하지 않음을 한탄(恨歎)하지 말지어다.
나의 제자(弟子)에게 조석(朝夕)으로 가르쳐 왔건만 의심(疑心)을 일으켜서 모두 버렸으리라. 어리석은 자(者)의 버릇이란 약속(約束)한 일을 필요한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
‘개목’은 문자 그대로 ‘눈을 연다’는 뜻입니다.
또 ‘눈을 열라’는 대성인의 호소로 배독할 수도 있습니다.
감긴 마음의 눈을 어떻게 뜨게(열게) 할 것인가.
무명(無明)의 어둠을 어떠한 광명으로 비출 것인가.
그 해결의 길을 여신 분이 말법의 본불이신 니치렌 대성인입니다.
※ 개목초(開目抄)
상하(上下)2권(卷). 1272년 2월. 니치렌 대성인이 51세의 때, 사도유죄 중에 쓰카하라에서 술작하시어 문하일동에게 주신 어초.
니치렌대성인 어서 5대부, 10대부의 하나. 관심의 본존초가 법본존개현(法本尊開顯)의 어서라면, 개목초은 인본존개현(人本尊開顯)의 어서에 해당한다.
당체의초문단에서는 일련정종의 교행증(敎行證)으로서 개목초는 일대성교(一代聖敎)의 승열천심(勝劣淺深)을 교판(敎判)하고, 5단(段)이 교상(敎相)을 설하는 고로 ‘교(敎)’의 핵심으로 삼고 있다.
일련정종 제26세 니치칸저(著) ‘개목초문단(文段)’에는 ‘개목초’라고 제호한 요지는 맹목(盲目)을 여는 의(義)에 있다 하고, 진실의 삼덕(三德)구비의 구원원초의 본불을 모르는 일체중생의 맹목을 열게 하는 상(相)을 밝히는 고로 ‘개목초’라고 이름지었다고 되어 있다.
그리고 ‘니치렌은 일본국의 제인(諸人)에게 주사부모(主師父母)이니라’라고 결론짓고 있듯이, 니치렌대성인 자신이 수량문저하종의 주사친삼덕을 갖춘 말법의 본불이라는 것을 명백히 밝힌 논문이다.
또한 니치칸상인은 개목초의 ‘일념삼천의 법문은 단 법화경의 본문·수량품의 문저에 잠겨 있느니라 (중략) 다만 우리의 천태지자만이 이것을 마음에 품었느니라’의 일문(一文)을, 수량문저심비(沈秘)의 진문(眞文)으로 하여 ‘삼중비전초’를 저술하고, 이 일문(一文)을 3단(段)으로 나누고, 의(義)에 십문(十門)을 열어서 대성인의 삼중비전(三重秘傳)의 오의(奧義)를 상설(詳說)하고 있다.
☞ 어서사전 33~34쪽
◇
서원을 관철해야 할 ‘필요한 때’
니치렌 대성인은 이 어서의 앞부분에서 “결국은 천(天)도 버리시고 제난(諸難)도 당하여라.”(어서 232쪽) 하고 말씀하시고 말법의 일체중생을 구제하기 위해 신명을 바쳐 광선유포를 위해 싸우는 대서원을 나타내셨습니다.
그런 스승의 사자후에 호응해서 ‘제자들이여, 불이의 신심으로 일어서라’고 만감을 담아 외치신 것이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로 시작하는 글월입니다.
일생성불을 향해 나아갈 때 ‘삼장사마(三障四魔)’가 다투어 일어나고 ‘삼류강적’이 출래하는 것은 경문에서 설하는 대로입니다.
대성인은 제천의 가호가 없는 점이나 현세가 안온하지 않는 점을 의심하면 안 된다, 한탄하면 안 된다고 거듭 가르치셨습니다. 불신(不信)과 방법(謗法)은 신심을 파괴하기 때문입니다.
반대로 ‘의심하는 마음이 없으면’, 다시 말해 대성인과 같이 불석신명의 ‘강한 신(信)’을 관철하면 어떠한 고난도 이겨내는 힘찬 생명력을 용현시킬 수 있습니다. 그리고 ‘자연히’ 성불의 경애를 열 수 있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점들은 대성인이 전부터 제자들에게 가르치셨지만 현실에서 난에 맞닥뜨리자 많은 사람이 의심을 일으켜 퇴전하고 말았습니다. ‘필요한 때’에 사제의 약속을 결코 잊지 말고 강한 신심으로 맞서야 합니다.
이케다(池田) SGI 회장은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니치렌 대성인 불법의 진수는 ‘신(信)’, 다시 말해 ‘성불’입니다. 그 ‘신’은 자신과 만인의 성불을 믿는 ‘깊은 신’이라는 점이 핵심입니다. 또 어떤 일이 있어도 끝까지 해내는 ‘지속하는 신’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어떠한 마성에도 지지 않는 ‘강인한 신’만이 성불을 결정짓습니다.”
불퇴의 마음으로 신앙을 관철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라고 확신하고 씩씩하게 전진하지 않겠습니까.
☞ 법련(16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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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의 가혹한 환경 속에서 집필
<개목초>를 쓴 유래에 대해 대성인 자신이 <사도초>에 자세히 쓰셨습니다.
“그리하여 모두 돌아갔기에 거년(去年)의 십일월부터 생각해 오던 개목초(開目抄)라는 문(文) 이권(二卷)을 만들었는데, 참수(斬首) 당한다면 니치렌의 불가사의를 남겨 두려고 생각하여 침사(沈思)하였느니라.
이 문(文)의 심(心)은 니치렌에 의하여 일본국의 존망(存亡)은 결정되리라. 비유컨대 집에 기둥이 없으면 지탱할 수 없고 사람에게 혼(魂)이 없으면 사인(死人)이니라. 니치렌은 일본 사람들의 혼이로다. 헤이노사에몬은 이미 일본의 기둥을 쓰러뜨렸느니라.
지금 세상이 혼란하여 이렇다 할 사유 없이 꿈과 같이 망어(妄語)가 출래하여 이 일문(一門)을 동족상잔(同族相殘)하고 후에는 타국으로부터 침공당하리라. 예컨대 입정안국론에 자세히 말한 바와 같으니라. 이와 같이 적어서 나카쓰카사사부로자에몬노조의 사자(使者)에게 주었노라”(어서 919쪽)
이 구절은 1272년 2월 <개목초> 집필 당시의 마음을 후에 회고하신 내용인데, 우선 ‘거년의 11월’ 즉 사도 도착 직후인 1271년 11월부터 <개목초>를 구상했다고 말씀하십니다.
대성인이 혹한의 땅인 사도의 쓰카하라에 도착하신 때는 11월 1일, 사도의 쓰카하라삼매당이란 “사자(死者)를 버리는 곳”(어서 916쪽) 즉 묘지에 있는 당(堂)을 말합니다.
한 칸 정도의 작은 건물로, 모셔야 할 부처도 없고 마룻바닥은 틈이 벌어졌으며 벽은 헐고 부서져, 완전히 폐가와 다름없었습니다. 찬바람이 사정없이 몰아치고 눈이 쌓이는 환경에서 도롱이를 입고 바닥에는 모피를 깔고 하루하루를 보내셨습니다.
익숙지 않은 북방의 혹한에 더욱이 식량도 부족하여, 11월에는 함께 따라온 몇 명의 제자도 돌려보내셨습니다.
“필단(筆端)으로 쓰기가 어려우니라”(어서 956쪽)라고 하시듯이, 필설로 다할 수 없을 정도로 열악한 환경에서 현신(現身)에 아귀도(餓鬼道)를 느끼고, 팔한지옥(八寒地獄)에 떨어졌다고 느끼는 상황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곳에 유배된 자는 끝내 살아난 일이 없으며, 설혹 살아났다 하여도 돌아간 일은 없느니라. 또 때려 죽였다 해도 책망하시지 않는다”(어서 917쪽) 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러한 열악한 환경에서 니치렌 대성인은 깊이 사색하면서 인류를 구제하기 위한 대저(大著)를 쓰셨습니다. 지금의 200자 원고지로 말하면 200여 매에 상당하는 저술을 약 3개월 동안 구상하고 집필하셨습니다.
대성인은 사도에 도착하고 바로 민중 구제의 서(書)를 쓰기 시작하셨습니다.
도다 선생님은 대성인이 사도에 유배당하실 때의 경지(境地)에 대해 “성불의 경애란 절대적인 행복경(幸福境)이다. 그 무엇에도 침범당하지 않고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으며, 순간순간의 생명이 맑은 대해와 같고 구름 한 점 없는 허공과 같은 것이다.
사도유죄 당시, 대성인은 이와 같은 경애였다고 배견된다.
그러면 “이 몸을 법화경과 바꿈은 돌을 금(金)으로 바꾸고 분(糞)을 쌀로 바꾸는 것이니라”(어서 910쪽), “니치렌의 유죄는 금생의 소고(小苦)이므로 한탄스럽지 않노라. 후생에는 대락(大樂)을 받게 될 것이니 크게 기쁘구나”(어서 237쪽)라고 말씀하신 것은 본불님의 경애라고 생각한다.” 라고 말씀하셨습니다.(<도다 조세이 전집>제3권)
사실, 니치렌 대성인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역경에서 어떻게 하면 전 인류를 부처로 할 수 있을 것인가를 고민하셨습니다.
그리고 <개목초>와 <관심의 본존초>를 집필하여 그 방도를 명확히 나타내셨습니다.
옛날부터 대난을 참고 견딘 자는 있었습니다. 그러나 대성인이 더욱 위대한 까닭은 그 대난에서도 자신보다 민중 구제와 인류 구제를 위해 고뇌하셨다는 점입니다.
☞ 개목초 강의 - 제1회 ‘개목(開目)’에서
http://cafe.daum.net/seikyoohknews/WK7G/9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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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요할 때’에 싸우는 사람이 부처
고난은 인간을 강하게 합니다.
대난은 신심을 단련시킵니다.
난에 도전하여 신심을 단련하면 나의 ‘기심(己心)’에 ‘불계(佛界)’를 나타낼 수 있습니다. 대난이 덮쳐 와도 ‘사자왕의 마음’으로 싸우는 사람은 반드시 부처가 됩니다.
니치렌 대성인 불법(佛法)의 진수는 ‘신(信) 즉 성불(成佛)'입니다.
그 ‘신’은 자신과 만인의 불성을 믿는 ‘깊은 신’이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일이 있어도 관철하는‘지속의 신’이어야 합니다. 또 어떤 마성도 지지 않는 ‘강인한 신’이 성불하게 합니다.
이 ‘신’ 즉 ‘성불’의 깊은 뜻을 설한 <개목초>의 다음 한 구절은 정말 유명합니다.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弟子)는 ··· ··· ” (어서 234쪽)
어떤 고난에 직면해도 ‘의심하는 마음’을 일으키면 안 됩니다. 제천의 가호가 없고 현세가 안온하지 않더라도 ‘한탄하는 마음’에 빠지면 안 됩니다.
불퇴의 마음으로 신앙을 관철하는 사람이 진정한 승리자입니다. 신심의 핵심을 밝힌 가장 근본적인 지도이며 영원한 지침입니다.
사제(師弟)의 정수를 밝힌 일절
이 어서의 첫머리에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라고 호소하십니다.
<개목초>에서 니치렌 대성인 자신은 근원악(根源惡)인 방법(謗法)과 싸우는 ‘진실한 법화경 행자’이고, 일본을 법멸(法滅)과 망국(亡國)의 위기에서 구제하는 ‘일본의 기둥’이며, 범부성불을 밝힌 대법을 나타내어 말법 시대 어둠을 영원히 비추는 ‘말법의 본불’이시라고 밝히십니다.
그리고 대성인은 “결국은 천도 버리시고 제난도 당하여라, 신명을 바칠 뿐이로다.”(어서 232쪽)라고 각오하시고 “나는 일본의 기둥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의 안목(眼目)이 되겠노라, 나는 일본의 대선(大船)이 되겠노라.”(어서 232쪽)고 서원(誓願)을 사자후하며 정신의 핵심을 밝히셨습니다.
이 말씀과 비교하면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로 시작하는 구절은 스승이신 대성인의 정신과 호응하는 신심을 제자들에게 가르치십니다.
“나의 제자들이여, 스승과 함께 일어서라!”
“사자왕의 자식답게 의심과 한탄을 타파하라!”
“필요한 때에 신심을 망각하는 어리석은 자가 되면 안 된다!”
‘대성인과 함께’라는 스승과 같은 결의로 일어서서 광선유포에 매진하는 이가 진정한 제자입니다.
누구든지 대성인과 같은 마음에 서서 “니치렌의 일문”(어서 1360쪽)이 되었을 때 이미 성불의 길은 널리 열려 있습니다. 그 대도(大道)를 똑바로 걸어가면 ‘자연히’ 성불합니다.
부처가 설한 법은 만인의 생명 속에 부처의 생명이 있다고 밝힙니다.
사람들 가슴속에 그대로 잠들어 있던 ‘불지견(佛知見)’을 열고<開>, 나타내고<示>, 깨닫고<悟>, 들게<入> 한다. 모든 사람을 부처가 되게 해야 부처 출세(出世)의 본회(本懷)가 이루어진다고 법화경에서 명확하게 설합니다.
자기와 같이 만인을 ‘위대한 인간’이 되게 하는 실천이 불교의 본질입니다. 그래서 불교는 어디까지나 스승과 같은 마음으로 투쟁하는 제자를 육성하는 데 주목적이 있습니다. 불교는 ‘사제의 종교’임이 틀림없습니다.
“천도 버리시고 제난도 당하여라, 신명을 바칠 뿐이로다.”라고 말씀하신 니치렌 대성인의 빛나는 혼의 불길이 모든 문하의 가슴속에 불타오를 때 ‘사제불이의 종교’는 완성됩니다.
그런 의미에서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라는 호소에 “나의 문하들이여, 이진 삼진으로 뒤따르라.”는 진심이 담겨 있다고 배견됩니다.
불석신명이 사제의 유대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라는 말씀은 배독할 때마다 金文字(금문자)와 같이 선명하게 떠오릅니다.
보통 종교인이라면 “나의 제자들이여”라고 일방적으로 물렀을 것입니다. 그런데 대성인은 “나와 더불어”라고 말씀하십니다. “나도 그렇다”라고 말씀하시는 마음에 사제일체(師弟一體)의 불법정신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그 사제를 관통하는 강인한 핵(核)이 ‘불석신명’입니다.
스승인 니치렌 대성인 자신도 또한 법에 대해 ‘불석신명’하셨기 때문에 불법을 만인에게 열어 알리는 민중의 지도자라 할 수 있듯이, 제자도 역시 제자의 차원에서 법을 홍통하기 위해 스승과 똑같이 ‘불석신명’을 실천하여 끝까지 투쟁해야 합니다.
‘필요한 때’에 무명과의 투쟁을 잊지 마라
“의심이 없으면 자연히 불계에 이르리라.”고 말씀하시듯이 ‘신’의 일념만이 의심과 한탄 등 무명의 생명을 타파하고 묘호렌게쿄의 역용(力用)을 생명에 나타내는 힘을 지닙니다.
그러나 ‘무명’의 힘도 매우 집요하고 뿌리가 깊습니다. 무명과 진정으로 싸워야 할 때 무명은 우리 마음속에 살면서 다가와 생명을 침해합니다.
그 어리석음을 “어리석은 자의 버릇이란 약속한 일을 필요할 때에는 잊어버리느니라.”고 훈계하십니다.
강성한 ‘신심’을 일으켜야 할 때 반대로 불신을 품고 의심을 일으켜 퇴전해 버린다면 정말 어리석은 일입니다.
“지금이 ‘성불의 때’가 아닌가! 이 대난을 돌파하면 영원히 행복을 이룰 수 있다!”는 대성인이 외치는 혼의 울림이 전해옵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의심하지 않는다. 무슨 일이 일어나도 한탄하지 않는다. 이런 강인한 정신을 가진 사람은 그 무엇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창가학회의 역사에서도 제2차 세계대전 전 마키구치 선생님이 투옥되셨을 때, 대전 후 재건기에 도다 선생님의 사업이 어려웠을 때, 그리고 종문이 삼류의 강적으로서 악랄한 정체를 드러냈을 때 등, 지금까지 여러 대난에 직면했습니다.
이때 무엇을 어떻게 했는가. 여기에 제자로서, 불법자로서 실직적인 본질이 나타납니다.
“필요한 때”에 투쟁하는 신심에 오직 ‘불계’가 빛나는 것을 결코 잊으면 안 됩니다. 이것을 이 어서의 한 가지 결론으로 배견할 수 있습니다.
☞ 개목초 강의 - 제16회 ‘나와 더불어 나의 제자’ 에서
http://cafe.daum.net/seikyoohknews/WK7G/9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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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한 신심으로 이겨내라!
고난을 이겨내라
☞ 2016년 6월, 좌담회 어서(御書) 참고
http://cafe.daum.net/seikyoohknews/QeAV/6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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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감사합니다 덕분에 많은 도움 되었어요 노고에 감사드립니다
강한 신심으로 지금의 고난을 이겨내서 꼭 증명해 보이겠습니다 고맙고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