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측 천 무 후 실 화 |
| 무소의 |
|
|
| 교씨의 시비납매 |
| 측 천 무 후 실 화 모 방 |
|
|
|
|
|
|
| ||
| 딸 |
| 죽 음 |
| 장 주 |
| ||
|
|
|
|
|
|
| ||
| 당 황후 폐 출 |
|
|
| 사 씨 출 거 |
|
사씨는 유씨 가문에서 쫓겨난 후 성도에 있는 시부모의 사당 근처의 수간초옥에서 침선방적하며 살았다. 사씨는 이곳에서 조차 동청과 교씨의 계략으로 살 수 없게 하였다. 동청은 두부인의 필적을 위조해서 두부인이 사씨와 함께 살자는 내용의 편지를 써서 보냈는데 이것이 동청의 두 번째 음모이다. 사씨는 그 편지의 필적이 두부인의 것이라 믿고 가겠다는 말을 전한다. 이러한 동청의 음모는 사씨를 납치해서 냉진의 처로 살게 하기 위한 계략이었다.15)
냉진은 사씨가 온다는 말을 듣고 기뻐하고 있을 때 사씨 또한 두부인에게로 가면 의지가 되어 좋을 것이라 믿고 기쁨을 감추지 못하였다. 앞장에서 약간 소개했지만 조상의 혼령이 효부에게 무심할 수 없었던지 사씨가 밤에 깜박 잠이 든 순간에 시아버지가 나타나 두부인의 편지는 거짓이며, 아직도 7년 재액이 남았으니, 남방으로 수로 5천리를 항해하라고 일러주었다. 만약 시부가 이 사실을 사씨에게 현몽하지 않았다면 동청의 계교에 말려들어 납치되었을 것이다.
|
| 사씨의 납치음모 |
|
|
|
|
|
|
|
동청 |
| 사씨 |
| 교씨 |
|
|
|
|
|
|
| 사씨를 냉진의 처로 삼으려 함 |
|
|
|
| 위조편지 |
|
|
|
|
|
|
|
시부 |
| 사씨 |
| 현몽 |
|
|
|
|
|
|
| 남방으로 피신을 당부 |
|
|
사씨는 시부의 말대로 배를 타고 남방으로 향하게 되나 풍랑이 심하고 앞으로 시종들과 살아갈 일이 막막하여 자살을 시도하였지만 미수에 그쳤다. 사씨는 교씨와 동청에 의해 갖은 고초를 겪게 됐다. 결국 사씨는 교씨의 계략으로 인해 쫓기는 신세가 되었다.
2. 사씨의 구원자
사씨는 시부의 계시로 남방 수로 5천리로 향하여 두부인이 사는 장사로 갔지만, 이미 두부인은 아들과 함께 떠나고 없었다. 사씨는 살아갈 길이 막막하여 굴원이 투신하였다는 회사정에 이르러 죽으려 하자 시녀들이 사씨의 투신을 만류하였다. 기운이 쇠진하여 꿈을 꾸게 되는데, 한 여승이 나타나 두 낭랑이 사씨부인을 뵙고 싶다고 말한다.
두 낭랑은 순임금의 두 왕비 아황과 여영이었다. 두 낭랑은 사씨에게 굴원의 죽음을 본받지 말라는 당부와 함께 부인을 모함한 자는 하늘이 당연히 벌을 내릴 것이라고 위로한다. 두 낭랑이 사씨를 위로해 준 것은 사씨가 처한 상황을 극복하는 환상적 장치를 마련해 준 것인데, 황릉묘 부인의 모티프이다.16)
사씨는 꿈을 꾼 후 대숲이 우거진 곳을 찾아 들어가서 두 왕비의 사당인 황릉묘에 이르러 두 왕비의 화상을 바라보게 되는데, 꿈 속에서 본 것과 다름이 없었다. 이 황릉묘에서 여승 묘혜를 만났다. 이 여승에 대해 좀더 자세하게 소개하면 다름 아닌 16년 전에 사씨에게서 관음찬을 받아간 우화암의 묘혜였다. 사씨가 관음찬을 쓰게 된 동기는 한림이 급제한 후 구혼하는 이가 많자 그의 아버지 유현과 누이 두부인에 의해 한림의 배필을 구하게 되었다.
유현은 두부인에게 현숙하다는 사씨의 덕행을 시험해 볼 수 있는 방법을 물었다. 그러자 두부인은 남녀의 덕행은 필체에 의해 나타나는 것이라고 하며, 사씨의 필적을 받아오면 그녀의 덕행을 알 수 있다고 알려 주었다. 두부인은 자기가 간직하고 있는 남해 관음화상으로써 시험하자고 하며, 우화암의 여승 묘혜를 불러 화상을 가지고 사씨의 집을 방문하게 해서 사씨에게 관음찬을 쓰게 한 것이다.
사씨는 화상을 받아들고 자기는 감히 관음찬을 쓰지 못한다며 몇 번 사양을 하다가 끝내 각오를 하고 나서 손을 씻고, 족자를 걸어 분향재배한 후 관음찬 수백자를 썼다. 묘혜는 그 관음찬을 가지고 유현과 두부인에게 전하였는데, 이들은 관음찬을 보고 크게 칭찬하며 유한림과 사씨를 혼인시켰다
유한림의 부친은 사씨에게 세존지물인 보경일좌와 옥지환 한 쌍을 선물로 준다. 사씨는 묘혜가 관음찬을 청하자, 그것을 써 준 것으로 유한림과 결혼하여 시부모와 두부인으로 부터 귀여움을 받고 살았다. 아들을 낳지 못하자 첩으로 교씨를 맞아들여 그의 음해로 유문에서 쫓겨나 결국은 5천리나 되는 동정호까지 수난을 겪으며 와서 살게 된 것이다.
사씨는 묘혜를 만나 위기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된다. 사씨가 시부모의 묘 밑에 거처할 때 시아버지의 존형이 나타나 사씨에게 현몽하여 ‘4월15일 배를 타고 백빈주에 대었다가 급한 사람을 구하라’ 라고 당부한 말을 묘혜에게 전하였던 것이다.
묘혜는 사씨가 당부한 말을 지키기 위해 배 한 척을 백빈주에다 준비해 놓았다. 이 때 유한림이 동청의 부하들에게 쫓겨 백빈주에 이르게 되었다. 묘혜는 유한림의 구해 달라는 소리를 듣고 배를 띄워 유한림을 구했다. 유한림은 배 안에서 사씨와 만나게 되고 그 동안 겪었던 일들을 말하게 된다. 묘혜의 안내로 사씨의 시종들도 만나게 된다. 묘혜의 질녀 임소저가 양육하고 있던 아들 인아도 만나게 되어 사씨의 고난은 끝이 나게 됐다.
|
| 수로 오천리 |
|
|
|
|
|
|
|
사씨 |
| 유한림 인아 만남 |
| 묘혜 만남 |
|
|
|
|
|
|
| 시부 현몽 실천 |
|
|
한림 |
| 사씨 |
| 인아 |
|
|
|
|
|
|
| 묘혜 |
|
|
|
|
|
|
|
|
| 만남 |
|
|
계림태수에 오른 동청은 냉진의 상소로 죽었고 교씨는 여러 죄목에 의해 타살되고 사씨는 다시 행복을 맞이하게 되었다. 유한림은 좌승상에 오르고 사씨는 승상부인이 되어 80세까지 살다가 안향했다. 이상을 통해 본 사씨의 운명은 음양론적으로 전개되고 있음을 볼 수 있다. 즉 유한림은 4월15일(양력 5월 중순경)에 묘혜에 의해 구출되었는데, 이 시기는 무더위가 시작되는 때다.
이에 교씨와 동청의 기세는 음기이므로 양기가 성하자 꺾이게 되었다. 유한림 부부가 인아를 만난 것은 양력 5월 중순경에서 6월 초순경이므로 양기가 성한 때가 되는 것이고, 이에 사씨의 문제도 풀려 밝아지게 됐다.
사씨의 고난은 음해자로 인해 겪었지만 대개 일상생활에서도 성공한 이들의 이면에는 헤일 수 없는 고통을 극복한 이들이 대부분이다. 이를 이르러 동굴모티프라고 하는데, 이는『삼국유사』권1 고조선조에서 곰이 동굴에 들어가 죽으면서 웅녀로 환생한 것은 곡식이 씨앗이 땅속에서 돋아나는 비유로 보는 것과 같이사씨의 기구했던 운명도 동굴모티프와 관련해서 조명하여 볼 필요가 있다.
Ⅳ. 서포의 의식과 동굴모티프
1. 서포의 무의식의 세계
서포의 부 김집은 청나라 군사가 강화성을 함락하자 자결하였다. 윤씨는 청군의 화를 피하기 위해 어린 만기를 데리고 갯가에 나와 배를 타고 서울로 가던 중 배안에서 서포를 낳았다. 서포는 어릴 때 형 만기와 함께 윤씨의 가르침을 받으며 자랐고, 장성하여 각각 부원군과 대사성에 올랐다. 이렇게 서포를 키워준 모친에 대해 서포는 깊은 애정을 가지고 있었다.
서포는 모성에 대한 그리움이 깊어서 유배지에서도 윤씨행장과『구운몽』을 지었다. 이것은 C․G․융의 동굴모티프에 대한 의식으로 고찰할 수 있다.17) 융은 동굴을 자궁에 비유하고 자궁 안에서 어머니의 자양분을 먹으며 생명이 탄생한다고 하였다. 어두운 공간에서부터 태아가 바깥세상으로 탄생되기까지는 어려운 고난을 겪어야 된다. 서포는 모성 의식이 작용하였던 것이다. 사씨가 유씨 가문으로부터 출거 당하고 훗날 유한림과 만나 신분상승을 한 것은 통과제의와 관련됨으로 국조신화의 동굴모티프에도 해당한다.18)
『삼국유사』권1 고조선의 내용은 한국의 역사관이나 사상 문화 윤리 문학 등은 이에 영향을 받지 않은것은 없으니 서포에게도 전수되어『남정기』에서도 국조신화의 동굴모티프가 나타난 것이다.
서포는 숙종이 민비를 폐하고 장씨를 왕비로 맞이하고 또한 그녀의 아들 균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계획을 알고는 바르지 않다는 정론을 펴기 위해 상소했다. 이로 인해 서포는 숙종의 노여움으로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되었는데, 그 관계 양상을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곰 |
| 쑥과 마늘 |
| 웅 녀 |
|
|
|
|
|
서 포 |
| 숙종과 남인의 질시 |
| 대사성 |
|
|
|
|
|
유 배 |
| 남해 배소 |
| 모친 그리움 |
서포는 고난을 극복할 수 있는 정신적인 자세를 모친으로부터 배워 혹심한 유배지라는 극한 상황에서 3년 동안을 살 수 있었다. 이는 곰이 금기를 지켜가며 동굴에서 21일 동안의 고난을 극복한 것과 그 맥을 같이 한다.
『남정기』에서 사씨가 교씨에 의해 겪은 수난상은 동굴모티프의 과정에 비유할 수 있으므로, 서포의『남정기』는 국조신화의 의식이 민족의 심상으로 수용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입사식의 고난을 극복하는 자세는 세계 여러 민족의 신화에서도 나타나고 있으나, 서포는 한국인이므로 국조신화의 의식이 집단적무의식으로 전해진 것으로 보아야 한다.
더구나 윤씨는 한국인이고 고난을 극복한 의지의 여인상이므로 동굴모티프의 심상은 그의 생활 저변에 깔려 있다.『남정기』에서 사씨가 고난을 극복한 정신적인 원형은 유불사상과는 다른 국조신화가 바탕이 되었다는 것을 기초로 하여 논하기로 한다.
2. 사씨의 고난
유한림이 교씨를 첩으로 맞아들인 이유는 사씨가 유씨가문의 대를 잇지 못하게 되면서 자신도 가문에 면목이 없을 뿐만 아니라 후에 사씨가 칠거지악으로 유씨가문에서 쫓겨나게 되는 일이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교씨는 사씨에 의해서 유한림의 첩이 되자 겉으로는 사씨를 손윗사람으로 공경하였으나 시간이 흐르자 교씨의 교만 방자한 인간성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우선 점잖은 양반가문에서 가락음률을 배워 집안을 떠들석하게 한 것은 경거망동한 행동이 은연중에 드러나기 시작한 것이다. 사씨의 주의를 받은 후에 중지하였다. 동청과 교씨의 음란 행위는 유한림이 동청을 서기로 채용한 후 정을 나누고 밀애를 한 것으로 드러난다. 사씨는 친정 모친의 병간호를 위해 친정에 가고 없을 때 유한림은 여가를 내서 처가댁에 다녀오게 됐다.
유한림 또한 산동지방에 흉년이 들어 유민이 많이 발생해 백성의 질고를 살피고 오라는 어명을 내려 출장을 갔다. 유한림은 사씨를 만나지 못하고 떠났다. 사씨와 유한림이 없는 집안에서 교씨와 동청은 집주인 행세를 하며, 부부같이 동거생활을 하였다. 동청은 사씨를 집 안에서 쫓아내려는 계략을 세우고 유씨가문의 세존지물인 보경일좌와 옥지환을 사씨의 시비인 설매와 교씨의 시비 납매에게 훔쳐내게 하고 이를 교씨에게 알리고 냉진에게로 전하였다.
옥지환은 냉진에게 전달되어 신성성을 잃게 된다. 훗날 사씨는 옥지환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으로 되어있지만 이본에 따라서 사씨에게로 돌아오는 것으로 되어 있다. 사씨의 옥지환은 시아버지에게서 받은 유씨가문의 세존지물로써 국조신화에서는 천부인 세 개19)-거울․방울(옥)․칼-중 옥에 해당되는 것이고, 주몽신화의 편검과 같은 신성한20) 물건이다. 사씨가 옥지환을 분실했다는 것은 곧 큰 불행이 닥칠 것을 암시한 것으로 소설에서 복선과 같은 구실을 한 것이다.
나중에 유한림이 비복들을 엄하게 문초하였지만 교씨의 치밀한 계획으로 인해 증거가 없어 미해결로 남게 되었다. 사씨는 교씨의 흉계라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참을 수밖에 없었다. 동청은 옥지환 사건으로 실효를 거두지 못하자『사기』의 측천무후의 고사를 모방하여 사씨는 유씨가문에서 출거켸 하고 교씨는 유한림의 정실이 되었다.
동 청 |
사 주 | |
납매 죽 | 장 주 임 |
사 씨 |
출 거 |
교씨
| 음 모
|
사실 |
| 거짓 |
| 설매살인 |
| 유한림문초 |
| 춘방자백 |
| 거짓 |
| 시실판명 |
사씨는 동청과 교씨의 음모로 유씨가문에서 쫓겨나게 되고 인아는 간악한 교씨의 손에서 양육되고 사씨는 출거 후 시부모 사당 근처 초가집에서 살았다. 다행이 시부의 현몽 계시를 받아 황릉묘에 이르러 꿈을 꾸었다. 순임금의 두 왕비인 아황과 여영을 만나 앞으로 좋은 일이 있을 것이라고는 말애 희망을 가지게 되었으니, 환신하는 것과 관련된다.21) 꿈에서 깨어난 후 황릉묘를 발견하고 그곳에서 뜻밖에 늙은 여승을 만나 유한림과 인아도 만나게 되었다. 인아는 교씨에 있다가 시비에게 연못에 빠져 죽이라고 했는데, 그냥 숲에서 눕히고 돌아왓다. 남경상인이 인아를 보고 생김이 보통아이와 다르게 생겨 배를 타고 천리거리나 되는 마을에 놓고 떠났다. 마을 지나다가 모혜의 질녀 임소저가 데;려다 양육하여 만나게 된 것이다.
사씨가 유씨가문에서 출거되어 묘혜를 만나기 전까지는 죽음과 다름없는 입사식의 과정을 치르고 살았다.22) 묘혜가 백빈주에 배를 대기시켜 동청의 무리들에게 쫓기는 유한림을 구출하고 얼마 후에는 꿈에 그리던 인아도 만나게 됨으로써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됐다. 뿐만 아니라 유한림의 벼슬이 높아 되니 사씨의 신분이 상승되어 부귀영화를 누리게 된다. 이것은 동굴모티프의 수용이라고 할 수 있다.
사씨가 강물에 투신하여 죽으려 했던 것은 심청이 인당수에 제물이 되려 했던 것과 같은 제의적 죽음의 의미니 입사식의 고난으로도 비유될 수 있다. 사씨는 여러 고난을 겪은 후 승상부인으로 신분상승을 하게 되는데, 사씨가 운명에 좌절하지 않고 바르게 살은 인과응보 관계다.
Ⅴ.『사씨남정기』에 나타난 운명관
1. 교씨와 장씨와의 관계
서포가『남정기』를 지은 것은 궁중에서 일어났던 현실을 바로 알리기 위함이다. 즉 교씨가 유한림의 첩이 되자 교활한 본성을 드러내며 사씨를 출거시킨 것은 숙종 때 희빈 장씨가 갖은 수단과 방법으로 민씨를 폐출시킨 행위를 풍자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남정기』를 통해 볼 때 교씨의 인간성은 매파가 사씨에게 한 말에서도 잘 나타난다. 교씨는 본래 사대부의 딸로 태어났지만 일찍 부모를 여의고 큰아버지 집에서 자랐다. 어릴 때부터 빼어난 미모에 재주도 겸하였다. 그러나 그녀는 경제적으로 궁핍한 가정에서 성장하였기 때문에 사대부의 정실이 되기보다는 첩이 되어 부귀영화를 누리려고 한 인물이라고 한 말에서 인간됨이 드러난다.
사씨는 매파의 말을 듣고 사대부가의 딸이기 때문에 품행이 바를 것이라고 판단하여 유한림에게 교씨를 데려오도록 권하여 유한림의 첩으로 맞이했다.
교씨는 유한림의 첩실이 되어도 그의 근성은 버리지 못한 잔악한 인간이다.23) 유한림과 사씨는 교씨를 기쁜 마음으로 맞아들인 반면 두부인은 냉담한 반응을 보였다. 두부인은 사씨에게 교씨의 인물됨에 대하여 절대가인이지만 성품이 불량하여 사씨나 유씨가문에 화를 미칠까 두렵다는 말을 했다. 이것은 사씨의 앞일을 예징한 말이다. 이에 사씨는 인물이 뛰어나더라도 어진 사람이 있다는 고사를 들면서 교씨를 감싸주지만 두부인은 ‘인물값’을 하게 되어 우환을 불러들일 것이라고 말했다.
교씨는 처음에는 한림과 사씨의 뜻을 따르며, 극진히 마음을 다하는 모습에 모두 칭찬을 하였다. 교씨가아들을 낳자 사씨와 한림은 좋아했다. 교씨는 사씨가 잉태를 하자 시기하여 사씨가 낙태하도록 시도하지만 실패하자 간악한 수단을 다 쓰게 됐다. 이렇듯 교씨는 자신의 욕망 충족만을 위해 사는 인간이다. 교씨는 사씨와는 근본적으로 대립되는 인간형인데 악의 인물이다. 악인의 대명사이기도 한 교씨는 천하무쌍의 악녀였다. 교씨는 유씨가문에서 자기의 위치를 확고히 하기 위해 사씨를 출거 시키고 아들도 죽이게 했다.
서포는『남정기』에서 숙종 때의 장씨와 민비의 인간됨을 대상으로 나타냈으니, 그 관계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
|
|
|
|
| 양 극 화 현 상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악의 화신 |
| 교씨 |
|
|
|
| 사씨 |
| 선의 화신 |
|
|
|
| 죽음 | 음 |
|
|
| 첩 | 정실 |
|
|
| 양 | 안향 |
| ||
|
|
|
| 장씨 |
|
|
|
| 민비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 불 상 용 |
|
|
|
|
|
| |||
|
|
|
|
|
|
|
|
|
|
|
|
위 도표애서와 같이 사씨와 민씨는 교씨와 장씨는 절대적 선악의 상대적이고 불상용의 관계된 인물이다. 본 소설에서 교씨는 유한림의 서기인 동청과 음모를 꾸며 사씨를 출거케 하고 유한림을 해치려고 하며 또한 냉진과 야합함으로써 그녀의 악행은 극한 상황에 이르게 됐다. 사씨는 유씨가문에서 쫓겨난 뒤 시부모의 사당 근처에서 살며 시부모를 조석공양을 한 효부였다.
사씨는 그곳에서 조차 살 수 없게 되어 남방으로 수로 5천리의 길을 항해하는 고생까지 했다. 그 후 교씨는 자가당착인 행위를 일삼아 자행하다 그 벌로써 죽었다. 이것은 국조신화의 범의 행위와 같은 것을 의미한다. 즉 범이 환웅과의 약속을 지키지 못하고 동굴을 벗어남으로써 짐승의 탈을 벗지 못한 행위와 같다. 교씨의 행위는 잘못된 행위에 의해 처벌당하는 악인의 운명을 보여 준 것은 서포가 살던 당시의 장씨의 행위와 일치하고 있다.
2. 유한림의 인물됨과 운명관
서포가 본 소설을 쓴 의도는 유한림과 사씨, 교씨의 삼각관계를 통해 숙종과 민비, 장씨의 관계를 풍자한 것은 널리 알려져 왔다. 유한림은 사씨의 권유로 교씨를 첩으로 맞이하였는데 사씨의 실수였다. 유한림은 우유부단한 성격 때문에 이러한 일을 문제 삼지 않았다. 교씨의 행동은 곧 장씨로 비유될 수 있다. 우선 교씨의 외모가 출중하였다는 점을 들 수 있으며, 교씨가 아들 장주를 낳음으로써 유한림의 사랑을 독차지한 것과 같이 숙종은 장씨가 아들 균을 낳자 더욱 그녀를 사랑하였다. 숙종은 장씨가 자신의 소원인 아들을 낳아주자 그녀가 원하는 것은 무엇이든 들어 줄 정도로 총애하였다. 숙종이 균을 세자로 책봉하려고 했던 것도 장씨의 청에 의해 행해진 일이다. 이에 김만중은 숙종이 균을 세자로 책봉하려는 것이 부당하다고 상소를 올렸는데, 이것이 숙종의 노여움을 사서 남해로 귀양간 것이다. 서포가 남해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 것은 당파로 인해 남인들에게 서인들이 당한 정치적 보복이었다. 서포는 옳고 그름을 잘 판단해서 바른 상소를 올렸지만 숙종의 노여움만 사게 되었다. 결국 서포는 살아 돌아올 수 없는 남해 노도에서 유배생활을 하게 된 것이다.
|
|
| 숙 종 |
|
|
|
|
|
|
|
|
| |
| 왕비에 오름 |
| 어 명 |
| 남인 |
|
| 장 씨 |
| 균 |
| 세 자 |
|
|
| |||||
| 남해 귀양 |
| 반 대 상 소 |
| 서인 |
|
|
|
| 서 포 |
|
|
|
|
|
|
|
|
|
유한림과 숙종은 현실의 그릇된 일을 바르게 볼 줄 모르는 우유부단한 인물이다. 이것을 통해서 살펴볼 때『남정기』는 당쟁의 소용돌이에서 중심을 잃고 현숙한 민씨를 폐출한 숙종의 우매함을 풍자하면서 그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한 목적소설이라고 봄이 타당할 것이다.24)
유한림이 뒤늦게 교씨의 간악함을 알게 되어 단호하게 교씨를 처단하는데, 이것은 숙종이 장씨를 사사시킨 것과 비슷한 양상을 보이고 있으며, 한림이 사씨를 정실로 복귀시킨 것은 숙종이 민씨를 왕비로 다시 맞이한 것과 유사한 내용이다.『남정기』에서 나타난 유한림의 인간됨은 명석하지 못하고 어리석었다. 그러나 유한림은 사씨의 꿈 속 계시에 의해 새로운 삶이 마련됨으로 인해 처음에는 평면적 인물이었다가 나중에는 가장으로서 전형을 이루는 현명한 인물이 되었다.
3. 동굴모티프와 사씨의 운명관
사씨는 유한림과 결혼한 후 행복한 삶을 살고 있었으나, 첩 교씨를여 맞아들인 후 결국 운명이 불행에 늪에 빠져들었다. 사씨는 교씨의 간악한 행동에 의해 유씨가문에서 출거를 당해 고난을 겪었다. 그 고난은 국조신화에서 곰이 동굴에서 삼칠일 동안 쑥과 마늘만 먹는 입사식의 과정과 그 맥을 같이 한다.
사씨는 교씨의 음모로 고난을 겪게 되지만 교씨를 원망하는 빛을 내비치지 않았다. 사시의 인간성은 관음보살상과 웅녀상과 같이 자비로웠다. 사씨는 교씨의 음모로 불행한 삶을 살다가 다시 행복한 삶을 되찾기까지는 고난과정이었다. 그의 삶은 ‘화목-파탄-회복’25)을 거치는 과정이다. 작품의 전체 구조는 사씨의 일생이 ‘행복-몰락-반전-행복’의 변화를 보이고 있다.
사씨의 불행은 고난을 겪은 후에 행복한 삶을 누리게 된다는 국조신화의 동굴모티프와 관계가 깊다. 국조신화는『남정기』의 구성과 같이 ‘발단-전개-전환-절정-결말’의 과정으로 되어 있다. 이 관계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발 단 | 전 개 | 전 환 | 절 정 | 결 말 |
곰 | 짐승의 탈 | 동굴생활 | 웅 녀 | 지 모 신 |
사 씨 | 출거 | 초옥, 수로 5천리 항해 | 승상부인 | 백년해로 |
이와 같이『남정기』는 국조신화와 구성과 내용 모두가 비슷하다. 사씨가 유씨가문에서 쫓겨난 후 시부모의 묘소 근처의 초옥에서 생활한 것부터 유한림을 다시 만나기 전까지의 생활은 바로 국조신화에서 곰이 동굴생활을 한 것과 대비될 수 있다.
서포가 『남정기』를 쓸 때 국조신화의 동굴모티프의 영향을 받아서 지은 것은 아니지만 그 원형의식은 민족의 정서에 집단적 무의식26)에 의해 씌어진 것이다. 곰이 동굴에서 고난을 견딘 것은 사람이 되고자 하는 바람과 환웅과 결혼해 아들을 낳고자 하는 소망을 이루기 위해 힘쓴 결과라고 할 수 있다. 사씨 또한 유씨가문에서 출거 당한 후에도 유한림과 재결합하고 새 삶을 살려는 소망이 있었다. 사씨가 고난을 겪은 후에 승상부인에 오르고, 곰이 웅녀에서 지모신(국모)으로 신분상승을 이룬 것을 같은 유형이라 할 수 있다. 이를 도표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
제 목 | 단 군 신 화 | 사 씨 남 정 기 |
중 심 인 물 | 곰 | 사 씨 |
소 망 | 인 간 | 누명을 벗고 아들을 낳고자 함 |
고난의 매개물 | 마 늘 과 쑥 동 굴 생 활 | 유 씨 가 문 출 거 |
광 명 사 상 | 환 웅 과 신혼 지 모 신 (국 모) | 유 연 수 와 새 생 활 승 상 부 인 |
사씨가 초옥에서 생활한 것과 남방 수로 5천리를 항해하기까지의 과정은 입사식의 고난에 해당한다. 사씨가 시련을 이겨내고 신분상승을 이루는 것 또한 국조신화의 동굴모티프를 집단무의식의 수용이라 할 수 있다. 사씨는 죽은 시아버지의 꿈 속 계시로 힘을 얻어 희망을 가지게 되고 유한림을 만나 누명을 벗게 됐다. 사씨는 유한림과 재결합하여 화락을 누리고 승상부인으로서의 신분상승을 이룬 것은 국조신화의 동굴모티프와 연관된다.
사씨가 마침내 유한림과 인아를 만나고 교활했던 교씨가 죄로 인해 죽음으로써 그녀의 반동자는 없어졌다. 또한『남정기』는 음양조화의 구조를 통해서도 사씨와 유한림의 관계를 알 수 있다
중화의 기
양 음
사씨의 결혼 전과 사씨 유연수와 교씨,유씨가문에서
결혼 후의 10년까지 재결합 출거
조화
유연수와 재결합
승상부인이 됨
80세까지 해로
사씨가 양적인 생활을 한 것은 유한림과 결혼한 후 10여년이고 음적인 생활을 한 것은 교씨를 유한림의 첩으로 맞은 후에 흉계로 유씨가문에서 출거된 후 다시 유한림을 만나기 전까지로 볼 수 있다. 음양조화에 관계로 살펴보면 사씨가 유한림과 재결합하여 승상부인에 오르고 80세까지 부귀영화을 누리며 산 것이 해당된다.
국조신화에서 음적인 생활은 곰이 동굴에 들어가 삼칠일 동안 어두운 동굴생활을 한 것이고, 양적인 생활은 곰이 웅녀로 변신 후 환웅과 결혼하고 단군을 낳아 국모와 지모신적 존재가 된 것이다. 사씨는 한국의 전통적 여인상인 현모양처였다. 사씨가 경험한 역경과 고생은 바로 민비의 고난으로 파악할 수 있다. 민비는 장희빈의 음모로 폐비가 되었고 고통스런 삶을 살았다.
『남정기』는 장씨와 민비, 숙종 사이의 관계를 서술한 목적소설이므로 결국 민비와 사씨, 숙종과 유한림은 동일선상의 인물이다. 사씨의 운명은 기박했으나 그녀의 인간상은 관음보살과 웅녀상과 비슷하여 국조신화의 동굴모티프를 수용과 관계로 그 내용이 이뤄졌다.
Ⅵ. 맺음말
『남정기』는 장희빈이 인현왕후를 폐비시키고 아들을 세자로 삼으려는 것을 서포가 반대하는 상소를 올리고, 결국 숙종의 눈 밖에 나서 남해로 유배를 가게 되고, 거기서 숙종의 민비외 장희빈과의 관계를 소재로 쓴 내용이므로 목적소설에 해당한다. 경기 성남지구 광산(光山) 김씨문중(金氏門中) 이사를 역임하고 진해 세화여자고등 이사장 겸 용인빌딩 주인인 김용석(金容錫)(70)은 선대로부터 숙종과 인현왕후와 장희빈 관계로 보고 있음을 기정사실로 인정한다고 하였고, 김만중을 일생동안 연구한 정규복(丁奎福) 교수도 목적소설임을 밝혀 목적소설이라는데 이론이 현재까지 제기되지 않는다.
1990년 후반에 일부 학자들은 목적성이 아닌 순수문학이라 하였지만,27) 본고에서는 목적소설임을 밝히는 논거를 전개하였다.『남정기』는 사씨와 교씨, 그리고 유한림간의 삼각관계를 민비와 장희빈, 숙종과의 관계로 대치시킨 것은 풍자의 내용과 관계되기 때문이다.『남정기』는 인과응보의 내용이다. 교씨는 죄가 드러남에 따라 타살되고, 사씨는 유한림이 정실로 맞아들여, 정의가 승리한다는 운명관을 확고하게 드러냈다. 고소설의 대부분이 권선징악적인 내용을 소재로 한 것과 같이,『남정기』또한 그러한 내용을 주제로 했다.
17세기 숙종 때 기사환국에 의해 서인인 서포는 남인에게 화를 입어 남해로 귀양을 갔다. 서포는 사씨와 교씨, 유한림과의 삼각관계를 민비 장씨 숙종의 관계로 부합시켜 놓았다.
. 일설에는 궁녀가 이 작품을 숙종에게 낭독하자 숙종은 죄가 없는 사씨를 출거시킨 유한림을 가리켜 천하의 부도덕한 놈이라고 소리 질렸다고 한다. 숙종이『남정기』를 읽고 양심의 가책을 받아 1701년(숙종27)에 장희빈을 폐출하고 민비를 복귀시킨 사실을 볼 때 서포는 교씨가 앞을 예견해 놓았다. 사전류와 학자들의 논문과 광산김씨 문중에서는 숙종이『남정기』를 읽고 뉘우치어 장씨를 사사하고 민비를 복위하였다고 한다. 항간에서도 이에 대한 일화가 전하고 있다. 서포의 남해노도에서『남정기』를 지은 것은 숙종의 마음을 돌리게 하기 위해 쓴 것으로 되어 있다면 서포가 1692년(숙종18)에 별세 후 10여 년 전에 앞을 내다보고 쓴 것이다. 사씨의 운명은 기구할 정도로 숱한 고난을 겪었는데 민비가 폐위된 후에 생활상과 비견된다. 사씨는 국조신화의 동굴모티프의 의식이 잠재되어 고난을 슬기롭게 극복했다.
국조신화에서 곰이 동굴에 들어가 금기일광의 고통을 감내하여 웅녀가 된 것과 사씨가 고난 극복을 감내한 것은 같은 양상이다. 사씨가 통과의례의 고난을 겪은 후 헤어졌던 남편과 아들도 만나고, 이후 승상부인으로 80세까지 부귀영화을 누린 생활은 국조신하의 웅녀상과 비견된다. 이것은 죽음 후에 재생이라는 동굴모티프의 수용과 관계된다.
1) 윤주필,「우언과 정치-정치담론으로서의 한국 우언문학」,『고소설연구』29집, 한국고소설학회, 2010, 19쪽.
2) 황해진,「고전소설 소재 인물의 역사적 삶에 대한 연구」,『고소설연구』29집, 한국고소설학회, 2010, 125쪽.
엄태식,「운영전의 서술 양상과 그 의미」,『고소설연구』28집, 한국고소설학회, 2009, 39~69쪽.
3)김현룡,「사씨남정기연구」,『문호』제5집, 건국대학교, 1969. 136-146쪽.
두창구,「사씨남정기 배경연구」,『관동대논문집』12, 1985.
김귀석,「사씨남정기의 등장인물을 통한 작가의식고찰」,『인물과학연구』, 조선대, 1989.
우쾌제,「사씨남정기」,『고전소설연구』, 일지사, 1993. 605쪽.
4)소재영,『고소설통론』, 이우출판사, 1983. 178쪽.
5)이원수,「사씨남정기의 반성적 고찰」,『문학과 언어』 제3집, 1982. 135-158쪽.
6)우쾌제,「사씨남정기 연구」, 『 숭 전어학문』, 창간호, 1972. 49-68쪽.
7) 이규경,『오주연문장전산고』권7, 소설변증설.
8) 김태준,『조선소설사』, 한예사, 1939. 123쪽.
10) 박태상,『조선조 애정소설연구』,「사씨남정기의 미적가치와 의미」, 태학사, 1996. 378-379쪽.
11) 윤경수,「사씨남정기의 신화원형적 연구」,『도해 조선조 소설의 신화적 분석』, 태학사, 1999. 291쪽.
12) 김광순,「사씨남정기의 몇가지 문제」,『한국고소설론』, 새문사, 1990. 257쪽.
13) 김만중,『서포만필』, 상권 173-147쪽.
14) 장주근,『단군신화의 민속학적 연구』, 집문당, 1995. 21-26쪽.
15) 우쾌제,「가정소설에 나타난 부부의 역할과 가족의식 고찰」, 『우리문학연구』10집, 우리문학연구회, 1995. 343쪽.
16) 박일용,「사씨남정기의 이념과 미학」, 『 고 소 설 연 구 』제6집, 한국고소설학회, 1998. 239쪽..
17) C․G․Jung, The archetype and the collecfiye Uncoascious, Princeton, 1975. p.5.
18) 윤광봉,「심청전의 동굴모티프」,『국학자료눈문집』, 대제각, 1990. 510-511쪽.
19) 이은창,「대전 괴정동 청동기 문화의 연구」,『아세아연국』30호, 아세아문화연구소, 1978. 75-95쪽.
20) 윤경수,『한국고소설의 동굴모티프연구』, 태학사, 1999. 115쪽.
21) 윤경수,「단군신화의 문학적 수용의 현대적 고찰」,『한국문학사상의 현대성연구』, 태학사, 1994. 50쪽.
22) R.S.Peter, Ethics and Education, London, George Allen & Unwin LTD. 1
23) 김명순,「사씨남정기의 성격구조와 그 의미」,『이능우박사 칠순기념호』, 도서출판 한일, 1990. 20쪽.
24) 정규복,「남정기의 저작 동기에 대하여」,『성대문학』제15, 16합집, 성균관대학교, 1970. 1-5쪽.
26) C․G․Jung, Seelenprobleme der Gegenwart, Eurich, 1931, snk.144.
27), 최근에 이 문제를 더욱 심화시켜『열녀전』과 비교해 서포에 고뇌에서 나온 문학적 산 물로 본 논문이 주목된다. (우쾌제,「<남정기>를 통해 본 지식인에 고뇌와 문학적 대응양상」,『 우리문학 연구』제12 집, 우리문학회, 1999.12, 27~50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