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프랑크푸르트에서 동북쪽 Fulda
방향으로
45분 가량 운전해서 가면 Steinau(슈타이나우) 라는 작은 도시가 있다. 정식 명칭은 Steinau an der Strasse인데 독일에는 같은 이름을 가진 마을들이 많이 있어 이를 구분하기 위해 도시명 다음에 지역의 특징을 구분하는 단어가 들어 갈 때가 있다. 가령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독일의 관문인
Frankfurt는
Frankfurt am Main이라 하고, 베를린 동쪽 폴란드 국경에 있는
Frankfurt의 경우 Frankfurt an der Oder라고 한다. 이는 Main 강과 Oder강변에 있는 Frankfurt를 구분하기 위함이다. 슈타이나우 역시 같은 이름의 마을이 많이 있기 때문에 뒤에다 an der Strasse라고 붙였다.
Strasse는 길을 의미하는 단어인데 마땅히 붙일 만한 도시의 특색이 없어서였는지 뭔가 억지로 갖다 붙인 느낌이다.
인구가 1만 명에 불과한 이 도시는 얼마 전 프랑크푸르트에서 오랜 기간 거주하고 있는 지인이 강력히 추천한 곳이다. 독일에 주재하는 동안 손님이 오시면, 모시고 가서 인증샷을 찍는 1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곳은 하이델베르크와 로렐라이 언덕이 대표적이다. 색다른 곳을 잘 알지도 못하고, 또 발굴할 만한 여유도 없었던 터라 감사한 마음으로 쉽게 차에 몸을 실을 수 있었다.
슈타이나우는 동화작가로 유명한 그림(Grimm)형제가 아버지를 따라가 5년간 살던 도시다. 현재 그림형제 박물관으로 사용되는 건물은 아버지가 관사로 사용하던 곳이라 한다. 1785년과 86년 연년생으로 태어난 이들 형제는 전원적이고 아름다운 이곳에서 유년시절을 보내는 동안 앞으로 창작하게 될 많은 동화의 영감을 받지 않았나 싶다.
솔직히 말하자면 나는 그림형제가 누군지 몰랐다. 창피하지만 그림을 그리는 유명한 형제 정도로 알고 있었다. 난 어릴 적 어머니로부터 동화책을 들으면서 잠을 자던 세대가 아니다. 이런 측면에서는 5, 60대 연령층의 공통점이 아닌가 싶다. 요즘과 같이 화려한 그림책을 어머니가 읽어 주면서 잠을 청하는 아이들의 모습은 당시에는 상상할 수 없었던 것은 오히려 당연한 것이라 생각한다.
슈타이나우에 가서 그림형제가 살던 곳을 둘러 보고 박물관을 살펴 볼 때까지만 해도 주옥같은 수 많은 동화의 저자가 그들 일 줄은 까맣게 모르고 있었다. 우리 귀에 너무 익숙한 <잠자는 숲속의 공주>
<신델레라>
<빨간모자>
<헨델과 그레텔> <개구리 왕자>
<브레멘 음악대> <백설공주> 등이 그림형제의 작품이다. 이 중 다수는 월트 디즈니의 애니메이션을 통해 접해 본 적이 있어 오히려 월트 디즈니가 만든 동화로 생각하고 있었다. 더욱이 영화 속에 등장하는 귀엽고 개성 있는 캐랙터들이 머리 속에 각인돼 있어 다른 사람의 작품으로 생각해 본 적이 한 번도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런 동화들이 무뚝뚝한 독일인의 작품일 것이란 상상을 해 본 적은 더더욱 없었다.
나는 행여 나만 무식한 것인지를 확인하기 위해 50대 이상이 대부분인 기업대표 모임에서 그림형제에 대해서 질문을 해보았다. 하지만 대답은 별반 차이가 없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신델레라>
<백설공주>와 같이 그토록 유명한 작품이 그림형제 혹은 독일인에 의해서 창작된 것인지 모르는 것은 너무 당연했고, 적지 않은 사람들 역시 그림 그리는 형제 아니냐고 반문하였다. 하지만 내겐 무척 다행스럽기만 한 결과였다.
소설을 읽을 때면 작품을 선별하기 전에 주로 작가를 먼저 살펴 보곤 한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레 책과 저자가 머리 속에 머무르게 되지만 동화라는 것은 그렇지 않은 것 같다. 요즘 동화전집에 저자이름이 기재되어 있는 지는 확인 하지 못했지만 어린아이들에게 동화책의 저자가 중요한 이슈가 아님은 쉽게 상상할 수 있다.
독일에는 도시간 여행코스를 연결하는 6개의 주요가도가 존재한다. 일반적으로 지역별 특색을 고려하여 코스가 설계되었는데 역사와 훌륭한 풍광을 만끽할 수 있는 고성가도, 로매틱가도, 환타시가도, 에리카가도가 있고, 문화/문학을 탐방할 수 있도록 설계된 괴테가도와 메르헨가도도 있다. 이 중 메르헨가도는 그림형제가 태어난 프랑크푸르트 인근 하나우에서 <브래멘음악대>의 배경이 되는 브래멘까지의 약 400km에 달하는 길을 말한다. 비록 이 가도에 펼쳐진 도시들의 규모가 작고, 고성가도나 로매틱가도에 비해 선호하는 사람들이 적은 편이지만 조용하고 서정적인 사색을 원한다면 이 코스도 좋을 것이란 생각을 한다. 어쨌든 모든 가도가 테마별로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독일 전역은 어디를 가나 훌륭한 풍광을 느낄 수 있는 것만은 보증할 수 있다.
금번 슈타이나우에 갔다 느낀 바가 매우 크다. 우선 내 스스로가 무식하다는 생각을 했다. 물론 여러 이유를 들어 정당성을 주장했지만 부끄러운 것은 사실이다. 두 번째는 동화의 모티브를 제공한 수 많은 장소와 이를 완성한 사람은 독일에 있는데 돈은 미국에서 벌고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됐다. 슈타이나우에는 우리가 기억하고 있는 신델레라도 백설공주도 그리고 일곱난장이도 없었다. 그 모든 것이 Disney Shop에만 있을 뿐이다.
월트 디즈니는 애니메이션 영화를 통해 소재 별 캐랙터를 창출하고 이를 토대로 상당한 돈을 벌고 있다. 디즈니랜드에서 판매하는 수 많은 캐랙터들은 결코 자신들이 직접 창조한 스토리가 아니라 기존의 동화에 옷을 입힌 것뿐이다. 그리고 이에 대한 판권과 라이센스 판매를 통해 막대한 이익을 거두어 주고 있다. 소위 1960년 대 미국식 창조경제의 단면을 보는 것 같았다.
선진국은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상품보다 라이센스, 제조보다 디자인과 같은 좀 더 부가가치가 높은 사업을 추구한다는 것을 확인한 순간이었다. 재주는 곰이 부리고 돈은 왕서방이 버는 구조 아닐까?
첫댓글 하하하^^^^ 진짜 돈 버는 재주는 다른 데 있는 것 같아요. 그런데 어렸을 적에 그림동화를 안고 잔 기억이 납니다. 아직도 이상주의자라는 말을 듣는게 어릴 때 푹 빠져 살던 동화 때문 같습니다. 지금도 산타클로스가 나타날 거라고 믿고 있습니다. 아마 죽을 때쯤 잠깐이라도 나타나서 내게 찡긋 윙크해줄 것 같습니다. 동화 이야기 하시니까 가슴이 풍선 같아 지네요.^^ 글 재미있어요.
저는 30대임에도 금수강산님 세대와 비슷하네요...당연히 디즈니의 창작이라고 생각했던 제 무식이 부끄럽습니다...
그림동화 이외에 우리가 알고 있는 많은 동요도 독일 것이라고 합니다. 독일의 문화는 실력에 비해 인정을 잘 받지 못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