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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주정씨 화이팅
 
 
 
카페 게시글
[ 여천 정철중 ] 한통의 편지봉투, 1885년 거문도사건을 증언하다, 정철중
정철중(23세) 추천 0 조회 259 19.10.19 12:05 댓글 5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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댓글
  • 작성자 19.10.19 18:29

    첫댓글 최근, 응교공파 수사공종중총회, 대종회게시판 및 대종회 주관 시조공시제 등에서 시조공은 정세운 장군이라는 검증되지도 않은 사실을 공공연이 게시하거나 강연하여, 종중 및 종원들을 현혹하고 있어 심히 우려되는 바이다. 이 분과 감정적 대응을 하게될까봐 자제하고 시조공 연구도 심도있게 하지 못하였지만, 논리가 빈약하고 비약이 많은데 이를 기정사실화하고 있으며, 종중의 추인을 거쳐 확정하지고 강변까지 하고 있다니 참으로 개탄스럽다. 지난번, '시조공의 대사헌 이야기'가 남의 집안 사람 이야기였고, 겸재공 산소가 도봉구 월계동에 있다고하여 확인해보니 남의 집안 산소를 지칭하고 있었다. 그럼에도 이 말들에 수긍하는

  • 작성자 19.10.19 18:37

    분들이 많다는데 문제가 있다. 저 대종회 게시판에 올라온 글들을 냉정하게 읽어 보시면 얼마나 비논리적인가! 주장은 할 수 있어도 사실로 왜곡시키는 우는 범하지 말아야 한다. 대다수가 말하지 않는 것은 동의하는 것이 아니다. 개인적으로 연구를 하지 않아 반박하지 않거나 잡음을 싫어하기 때문인데, 주장에 이의를 제기하지 않으면 그대로 확정시킨다는 해괴한 강박을 하고 있다. 역사란 조작되어서는 않된다. 더군다나 광주정씨의 시조사실을 허술하게 변조시킴은 언어도단할 일이다. 개인적으로 심증이 없는 것은 아니나 역사적 기록이 뒷받침되지 않는다. 적어도 상고의 묘비나, 묘소가 발견되어 시조공 기록이 발현되기를 바랄뿐이다.

  • 19.11.19 23:09

    심증은 가나 확고한 고증이나 물증이 없고 고려말에는 화장의 풍습이 강하여 묘소를 찾을수 없고
    지금 시조단만 있을뿐 임으로 아주 그분이 시조
    인지 아닌지 단정짓는 것은 불가 합니다
    훗날을 기약하여 선조임금 이전의 기록이나 혈연관계를 증명할 확실한 증거를 찾을때 까지는 보류하여 둠이 아직은 마땅한듯 합니다

  • 19.11.19 23:21

    겨우 족보 편찬도 1800년대에 하였음을 볼때 상고하기가 무척이나 어렵고 힘든 작업일것으로 봅니다
    제일 좋은 기록은 모든 문집을 뒤져 찾는 방법과 아니면 선조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명확함을 밝히거나
    정세운 장 군의 묘소를 찾는다면 DNA분석을 통하여 혈연관계를 밝힐수 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기록은 그러나 고려사나 고려사 절요의 기록이 정세운 장군을 죽인자들의 후손이 쓴 기록임으로 명확히 하였을리 만무하며 고려사 정사에 신자 호자의 정확한 기록이 보이지 않으니 조금은 답답합니다
    어찌되었건 정확한 고증이나 물증없이 족인의 승인하에 추정을 기정 사실화 하는 것은 옳다고 볼수 없음을 다시 한번 말씀 드립니다

  • 19.11.19 23:24

    짧은 소견이나마 철중종숙님의 의견과 동일합니다
    그러므로 섣부르게 단정짓는 어리석음을 저지르지 않이하기를 바랍니다
    24세 정윤칠 배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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