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중 스파이' 혐의로 복역하다 스파이 교환으로 영국으로 간 전 러시아 정보요원이 딸과 함께 런던에서 초주검 상태로 발견됐다. 비슷한 사건이 이미 한번 일어난 바 있어 러시아가 그 배후로 꼽힌다. 도대체 무슨 일이 있었길래, 이런 미스테리한 일들이 자꾸 일어나는지..
'제2의 리트비넨코'인가?
영국에서 러시아 스파이 출신의 세르게이 스크리팔(66) 대령과 그의 딸이 지난 4일 의문사 가능성이 제기되자, 당장 떠오르는 게 리트비넨코다. 그는 영국에서 러시아 비판 저널리스트로 활동하던 2006년 11월 의문사했다. 조사 결과, 방사성 독극물 '폴로늄(polonium)' 중독으로 드러났다. 영국 정치권에서부터 난리가 났고, 러시아를 독살 배후로 지목하며 강경 대응하기도 했다. 영국 BBC 방송은 "스크리팔의 초주검 상태는 러시아 정보국인 연방보안국(FSB) 요원 알렉산드르 리트비넨코의 암살 사건을 떠올리게 한다"고 보도했다.
외신에 따르면 런던의 한 벤치에서 축 처진 상태로 발견된 스크리팔 대령도 10여년 전까지 러시아 군 정보부(GRU)에서 근무하며 영국 국외첩보부 MI6에 협조한 '이중 스파이' 였다.
그는 MI6 관계자와 접선할 때, 주로 루이뷔통 가방을 들고 나가 '루이뷔통 스파이'로 불렸다. 스크리팔은 지난 2004년 MI6에 러시아 정보기관 인물들의 신상을 넘겼다가 러시아 당국에 체포돼 징역 13년을 선고받았다. 이후 2010년 미국과 러시아 간 스파이 맞교환 때 풀려나 영국으로 건너왔다.
현지의 한 언론은 "누군가 스크리팔 몸에 마약류 진통제인 '펜타닐(fentanyl)'을 주입했을 가능성이 제기됐다"고 보도했다. 펜타닐은 효력이 모르핀의 200배, 헤로인의 100배다. 소량 복용만으로도 심한 환각 증상을 겪다가 사망할 수 있어 암살용으로 쓰인다고 한다.
2010년 그와 맞교환돼 러시아로 돌아간 여자 스파이 중에는 '그 유명한' 안나 챔프만이 있었다. 챔프만은 러시아 복귀 후 모델 겸 방송인으로 활동했고, 패션 사업에도 성공해 '백만장자 스파이'로도 불린다. 스크리팔이 쓰러진 이날 그녀는 태국 해변에서 비키니 차림으로 활짝 웃는 모습을 인스타그램에 올렸다. 둘의 운명으로 극적으로 엇갈린 순간이다.
반면 리트비넨코는 1998년 FSB 근무 시절 반 정부 성향의 기업인을 암살하라는 임무를 거부하고 비판했다가 1년간 징역형을 살았다. 출소 후 그는 영국으로 망명했다. 영국에서 푸틴 대통령을 겨냥한 독설을 날리던 그는 2006년 11월 돌연 눈썹과 머리카락이 모두 빠지고 시름시름 앓다가 사망했다. 영국 경시청의 정밀 조사 결과, 그는 한 달 전 런던 호텔에서 옛 FSB 동료를 만나 녹차를 마셨고, 그 녹차 속에 방사성 독극물 '폴로늄'이 들어 있었던 것으로 드러났다. 폴로늄은 독 성이 청산가리의 2억5000만배로 '초소형 핵폭탄'이라 불린다.
아이러니한 것은 당시 리트비넨코를 만나 문제의 녹차를 넘겨준 것으로 영국 경시청이 지목한 안드레이 루고보이는 FSD에서 나온 뒤 러시아 하원 의원이 되는 등 출세의 길을 걷고 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