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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 들어가며
어제는 나에게 너무 힘든 날이였다. 일요일 다음 월요일이기도 했고 화요일이 석가탄신일이여서 환자들이 앞서서 오기 때문이다. 병원은 아픈 사람들이 오는 곳이다. 어제는 나도 아픈 사람이 되어 누가 누구를 진료하는지 모르게 지나갔다. 거기에 일요일에 늦게 잔 것이 결정적 원인이 되었다.
요새 며칠 나는 무리를 했다. 책마을 운영자모임 차원에서 그간 우리에게 큰 도움을 주셨던 이 권우선생님을 뵙고 인사드리기 위해 금요일에 서울에 가서 토요일에 내려 왔다. 그리고 무슨 필이 꽂혔는지 멋있는 사람들과 밤새 술잔을 들었다 놨다 했다. 그리고 일요일 아침 안 학수시인께 그의 소설 ‘하늘까지 75센티미터’를 받았다.
일요일은 어버이날이라 부모님이 계신 공주를 다녀왔다. 공주집에서 '건이가 작가에게 죽음에 대해 묻는 프롤로그'를 읽다가 낮잠이 들었다. 저녁에 돼지갈비,삼겹살을 먹으며 어머니의 덕담을 들었다. “ 진호야~ 너만 편하면 된다. 엄만 잘 지낸다.” 평소 신장이 좋지 않고 기러기 아빠로 살고 있는 큰 아들에 대한 염려어린 말씀이셨다. 삼 남매중 나는 어머니와 참 많은 시간을 같이 했다. 그 많은 시간이 주마등처럼 지나갔다. 그리고 멀리 있는 아이들과 안사람이 생각났다. 보고 싶었다. 무엇이 가족일까?
밤에 보령으로 건너와 안선생님에게 전화를 받았다. 벗들과 술 한잔 하자고~ 작가의 목소리는 술에 젖으면 피곤한 슬픔이 묻어 있다. 나는 다음 날 진료를 핑계대고 나가지 않았다. 그리고 소설 책장을 열었다. 사람이 피곤하면 가슴이 답답하고 아파 온다. 내가 그렇다. 그러나 흉통을 느끼면서도 이 소설을 중간에 덮을 수 는 없었다.
이 소설은 장애를 가진 아이의 성장소설이자 가족의 애환을 담고 있는 가족소설이기도 했다.또한 내 소설이기도 했고 나의 가족소설이기도 했다.
II.줄거리
수나는 다섯 살 나던 해 이웃집 형에게 발길질을 당한다. 그로인해 척수손상을 받고 하반시 마비와 곱추가 된다. 어머니는 시골의 가난한 살림에 아이를 건사하지 못한 것에 가슴아파하고 다섯 살 터울 누나는 자신 때문에 동생이 장애를 얻은 걸로 생각하고 죄책감을 갖는다. 아버지는 겉으로 표현은 못 하지만 자신의 무능력을 탓했으리라.
공주에서 대천으로 이사 온 가족은 어머니는 노점상으로, 숙이누나는 식모로, 아버지는 수렛거 인부로 생계를 이어 간다. 어린 수나는 종기와 눈병,피부병,중이염으로 고생을 하지만 무엇보다도 하반신 마비가 풀리지 않아 귀저귀를 한 채 집에 누워 지내게 된다.
수나는 누워 있는 자신의 처지와 그 처지때문에 다른 가족에게 짐이 되는 것을 괴로워하면서 죽음을 생각하고 아주가리 기름을 마신다. 그러나 어머니에 대한 죄스러움과 자신을 이렇게 만든 두성이에 대한 복수심으로 이내 후회한다. 수나는 설사를 심하게 하고 살아 남는다.
수나는 ‘사납고 차가운’ 성격으로 변해 간다. 자신을 괴롭히는 주인 집 손자 민수나 마빡아저씨 아들 영기,그리고 무엇보다도 자신을 이렇게 만든 두성이에게 복수심을 갖는다. 수나는 다리 마비가 풀려 자신보다 3년 어린 친구들과 학교를 다니게 된다. 거친 아이 갱두와 반아이들에게 괴롭힘과 놀림을 당한다. 그는 학교에서 외톨이가 되었고 가슴에 맺힌 응어리는 자신의 뜻과 다르게 곧잘 가족들에 대한 투정으로 나타나곤 했다.
그러나 천성적으로 수나는 여리면서 정이 많은 아이였다. 그는 어머니를 비롯한 가족의 사랑과 이웃집들의 인정, 구두딱이 형 만태와 삽시도 친구 영주와의 우정을 통해 세상과 소통해 나간다. 주인 집 할머니나 모찌떡 아줌마에 대한 좋았다가 싫었다가 하는 감정이나 도넛츠를 훔친 것에 대한 사연은 그가 보통 아이들과 다를 바 없음을 보여준다.
수나는 장안선선생님을 통해 글짓기를 배우고 책을 벗 삼게 된다. 4학년 담임 최걸수선생님의 보이지 않는 지도로 사회성과 독립성있는 아이로 성장해 간다.
수나는 어려운 가정환경으로 인해 중학교 진학을 포기 하고 집안 경제에 보탬이 되기 위해 이런 저런 일을 한다. 닭키우기,갯벌에서 일하기,김발만들기등.
수나는 장애를 갖고 태어난 병아리인 석다리를 실수로 발로 밟아 죽인다. 석다리는 어미닭을 따르듯이 수나를 따라 다니다가 봉변을 당한 것이다. 수나는 크게 상심하며 생각한다. 석다리가 자신을 위해 죽었으며 석다리를 위해서라도 불구의 몸에 매이지 않고 살겠다고 다짐한다.
성인이 된 수나는 직업훈련소에 입소한다. 기술을 배우기 위해서다. 어머니의 손을 잡고 그는 맹세한다. "세상 모두가 수나를 괴롭혔지만 세상 모두가 수나를 강하게 키워 냈어요.이젠 수나가 어머니를 위해 살게요..."
그는 전파사 직원, 금은방 직원을 거쳐 만보당이라는 금은방을 운영하게 된다. 여기에서 그는 이 촌민이라는 지역출신 작가와 운명적인 만남을 갖게 된다. 수나의 습작을 눈여겨본 그는 “시인이시오.정식으로 등단해야겠어요”라 말한다.그를 통해 수나는 문학에 눈을 뜨게 된다.
수나는 금은방을 운영하면서 사람들과의 관계에 대해 깊은 이해를 갖게 된다. 수나는 금세공을 하면서 ‘자신 역시 별처럼 보석처럼 아름답기 위해 스스로를 녹이고 두드리고 깍고 다듬고 있다’고 상상했다. 그러나 그는 시간이 갈수록 이 직업에 염증을 느낀다. 금은방영업이 기본적으로 사람을 믿지 못하고 불안해하고 불신하게 만든다고 생각했다. 결국 그는 금은방을 정리하고 스스로 안빈낙업(安貧樂業)선택했다.
수나는 지금 글쓰는 작가가 되었다. 곱추라는 장애를 갖고 죽기를 여러 번 시도했던 고통스런 유년시절을 거쳐 그가 도달한 ‘글쓰기’ 작업. 그에게 글쓰기는 만인과 보석을 나누는 일이 되었다. 자신의 또 다른 자화상인 건이를 생각하며 자신의 긴 이야기를 마친다.
“금붙이는 불에 달궈지고 모루에 두들겨지고 깍이고 다듬어져야만 제대로 빛이 나고,
어떤 생명체든 누구든 세상에 태어날 땐 자기에게 주어진 역할이 있다. 어딘가에게
스스로를 두드리며 제 빛을 찾아가고 있을 건이에게 이 긴 편지를 보낸다.”
III. 반복
깊은 밤 책표지를 덮으며 멍먹해진 이마와 머리를 양손으로 쓸어 넘기고 턱을 괴고 생각에 잠긴다. 창밖엔 푸르스름한 어둠속에 빗소리가 아련히 들려 온다 저 빗소리는 언젠가 들었던 거고 지금 듣는 것이고 내가 죽기전 까지 몇 번이고 반복해서 들을 소리란 생각이 든다. 그러나 내 감성이 살아 있는 한 저 빗소리는 항상 새롭다. 그리고 항상 새로워야 한다. 그래야 내가 살아 있다고 느끼는 것이겠지.
이 소설의 핵심어는 무엇인가? 상처? 사랑? 희망? 나는 ‘반복’이 이 소설의 핵심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다. 이성적 논리로 명쾌하게 설명할 수 없지만 말이다. 빗소리때문일까? 왜 반복이라는 낱말이 떠 오를까?
나는 이 소설을 읽으면서 수나의 삶에 가슴이 아팠지만 크게 감동받지 않았다. 왜냐면 이 세상에는 수나와 같은 삶을 살아왔고 살아 가고 앞으로 살아갈 사람은 수 없이 많기 때문이다. 우리나라에는 240여만명의 장애인이 있고, 지구상에는 8억5천만명의 굶고 있는 사람이 있다. 무엇보다 우리나라는 매년 200여명의 청소년들이 삶을 비관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고 있다. 이것만큼 비극적인 것이 어디있는가? 수나의 삶이 상처라면 금메달급 상처는 지금 이 순간에도 수 없이 반복되고 있다.
그럼에도 이 소설에 끝까지 집중시킨 힘은 무엇일까? 그것은 우리와 이웃의 상처받은 영혼의 평범한 삶이 수나의 삶속에 그대로 녹아나 있기 때문이다. 정도의 차이가 있지만 인간은 누구나 자기 한계속에 살아 가고 그 안에서 상처를 받고 살아 간다. 이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고 살아가는가가 관건일 뿐이다. 결국 독자는 어느 정도 수나가 될 수 밖에 없다. 도너츠를 훔치고,석다리를 기리고,친구들과 어울리고, 셋방에 눈칫밥을 먹고 누군가를 죽이고 싶을 정도로 분노하고, 한번쯤은 죽음을 생각하는 것이 비단 수나만의 고유한 삶이겠는가? 수나의 삶에는 우리의 수 많은 삶이 녹아나 있다. 사실 장애가 없는 사람이 있을까? 한치 앞을 내다 보지 못 하는 인간이야말로 본질적으로 장애인이다. 수나를 괴롭히는 갱구나 사람들의 차별적인 시선이 장애고 수나 본인의 틀어진 시선이 장애의 본질이다. 이렇게 곱추라는 장애를 일반화시키면 내 인생이 수나에게서 보이게 되는 것이다.소설을 읽으면서 나도 그랬는데 하는 동감이 드는 것이 바로 그 증거다. 수나의 어머니가 내 어머니고 수봉이가 내 동생이고 숙이누나가 바로 내 누나이다. 실제로 소설의 남매도 3남매고 나도 3남매다. 성별순서도 같고 터울도 비슷하다.
그렇다 하더라도 수나의 삶을 우리와 같다고 할 수 없다. 곱추라는 장애는 결코 평범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장애를 대하는 태도에는 두가지 편향이 있다. 하나는 장애를 극복하고 그 어떤 성공을 거두는 것이다. 그리고 ‘나도 했으니 당신도 따르라’고 한다. 여기서 문제는 본인은 박수 받아 마땅하지만 이것이 이데올로기가 되어 ‘너는 왜 못 하냐!’의 도구로 사용되어선 안 될 것이다. 이것은 또 다른 폭력이 되기 때문이다. 두 번째는 막가파식 자포자기형. 이 경우는 ‘그래! 나 장애자다. 나 이런 사람이니 맘대로 하라’는 태도다. 내 가족중에 이런 분이 있었다. 많은 사람들을 괴롭히고 교통사고로 돌아가시긴 했지만 세상에 이런 분들이 적지는 않은 것 같다. 그러나 수나는 이 두가지 편향을 슬기롭게 극복해 나간다. 성장기에 장애가 장벽이 되어 자신을 괴롭혔지만 장애를 내세워 그 어떤 성공을 이루거나 위세를 떨지 않았다. 그리고 인간적인, 참으로! 인간적인 수나만이 지금 현재를 살아가고 있다.
수나가 겪은 삶의 상처 그 자체는 현실의 수많은 사람들이 나름 경험하는 것으로 감정의 역치가 높아져 있다. 그래서 에피소드로 가면 재미있는 이야기꾼의 이야기일 뿐이라고 혹평할 수 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고뇌하고 고민하고 각성하고 실천하는 삶이 있기에, 너무나 인간적이고 깨어 있는 영혼이 수나의 삶에서 느껴지기에 서서히 밀물처럼 다가오는 깊은 감동이 있다.
창가의 빗소리가 잦아들다 세졌다 한다. 이제는 진짜 시간이 늦어졌다. 자야할 시간이다. 반복되는 빗소리를 뒤로 한 채 잠자리에 든다. 어차피 인생은 외로운 것이고 결국 혼자 가는 것이다. 기왕에 그럴 바에 영혼이 깨어 있고 인간적으로 살아야 한다. 그래야 덜 외롭고 행복하지 않겠는가? 정신적 행복을 위해 경제적 가난을 선택한 수나처럼.
IV. 나가며
이문구작가의 ‘관촌수필’이 있다.이 소설은 50,60년대에서 70년대 초입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작가 자신이 태어나고 자란 대천 갈머리를 공간적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 속에는 옴미버스식으로 그 시대에 그 공간에 살았던 사람들의 삶에 대한 기록이 있다. 안학수작가는 이문구작가의 무릎제자이다. 그 분들의 나이 차는 13년. 이번에 나온 ‘하늘까지 75센티미터’는 60,70년대에서 80년대 초입까지를 시대적 배경으로 하고 역시 공간적 배경은 대천 보령이다. 관촌수필의 인물들과 ‘하늘까지 75센티미터’의 인물들을 서로 비교해 가면서 읽어 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 같다. 독자인 나와 작가와는 12년차. 내 또래의 유능한 지역작가가 있다면 대천 보령을 배경으로한 성장소설이 나오면 어떨까 싶다. 물론 소망 사항이지만 말이다.
관촌수필을 읽으면 감칠맛 나는 충청도 사투리가 많이 나와 있는데 그 강도는 다르지만 ‘하늘까지 75센티미터’에서도 감칠맛 나는 충청도 사투리가 많이 나온다. 개인적인 취향이지만 수나가 적의를 갖고 외치는 소리 '쥑여 쁄텨~'는 악스런 상황에서 나오는 충청도의 정서를 잘 대변하고 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관촌수필은 실제 갈머리라는 공간적 배경을 하고 있기 때문에 전국의 독자나 문학인들이 탐방을 많이 오는 것으로 알고 있다. 안작가께서 이분 들을 많이 안내한 걸로 안다. 이 참에 안작가의 소설적 배경을 따라 대천 문화탐방을 기획해 보면 어떨까 하는 생각도 해 보았다. 물론 시절이 익어야 행이 절로 나오는 것이니 억지로 할 일은 아닐 터이다.
결론적으로 많은 사람들이 이 소설을 읽고 삶의 의미를 반추해 볼 수 있는 기회를 가졌으면 하는 바램이다.
첫댓글 작가의 사력을 다한 삶에 대한 성찰과 읽는 이가 던지는 책에 대한 교감과 공감이 읽고 있는 저로 하여금 많은 생각을 갖게 하네요.
다른 분들은 독토를 할 시간에 전 원진호님의 이 글을 읽고 있는데 진심에서 우러난 독후감이 감동적입니다.
저도 이 책을 주문했는데 잘 읽어보겠습니다.
잘 읽었습니다. 전 개인적으로 진호님의 글을 좋아합니다. 힘을 주고 분발하게 하며 무엇보다도 따뜻하기 때문입니다.
읽으시느라고 고생하셨네요. 아픈 가슴은 좀 괜 찮으신지요?.....무리하시지 마시고 좀 쉬며 가야 합니다.(의사 앞에 청진기 들이대는 소리겠지만요^^).
세상이 불공평하다고 투덜거리는 제 자신이 참으로 부끄러워집니다.
간접적으로 잘 읽었습니다. 수나의 삶을 들여다 보면서 가슴이 뭉클하고 눈물이 고였습니다. 이웃집 형으로 인해 삶이 달라 졌을때 얼마나 절망적이었고, 그 형을 죽을 만큼 패주고 싶었을까~하늘을 향해서 얼마나 크고 싶었을까~그리고 수나 부모님 마음을 생각하니 가슴이 멍먹하다. 용서와 자식에게 미안한 마음이 교차되는 삶을 생각하니~그러나 수나는 긍정적이고 희망적이다. 수나 누나 부모님 모두 쓰라린 가슴을 쓰다듬어 주고 싶다. 편안해지라고~담 생애는 하늘을 향해 해바라기 처럼 크라고 그리고 화이팅!
선생님 말씀처럼 상처를 어떻게 극복하느냐가 관건인것 갇습니다.. 그리고 주변에 아름다운 사람이 있다는 것 이네요 ~나에게 오는 삶은 하나뿐이고, 소중한데 .... 어느땐 앞만보고 달리다 어느땐 내가 뭐하고 사는건지 자신의 삶이 불확실함이 교차되기도 합니다. 그러나 용기와 희망을 가지고 자신의 아픔을 가슴안에 꼭 숨기지 마시고 나누세요~ 기러기 아빠는 꿈이 뭔지 궁금해집니다. 가족과 꼭 행복해지세요..그리고 이성적이고 객관적인 평이 대단하세요^^
비오는 날 아침 참 많은 생각을 하게 하네요. 진솔한 글 잘 읽고 하나의 과제를 얻고 갑니다. 감사합니다.
반복을 통해 실천하는 힘!! 책을 읽는 힘!! 내면화 시키는 힘!! 대단한 진호씨~ 늘 영감을 주시는 학수씨~ 감사합니다.
잘 읽었습니다.^^ 저도 빨리 읽어야 겠네요. 힘내세요.
안 읽겠습니다. 줄거리 알면 책이 재미 없잖아요. 책읽고 후기 올리도록 하겠습니다.
그리고 책읽은 다음 이 글 읽도록 할께요.
흥수님이 예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