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굴 파는 남자
이인규/소설가
내가 그 사내, ‘공팔진’이라는 다소 촌스러운 이름을 가진 자를 처음 본 것은 남쪽 지방, 두류산이 가까운 동네의 깊은 산골이었다. 그날 나는 어떤 이유에서인지 내가 사는 마을에서 고개 하나를 넘어 그가 사는 곳으로 가고 있었다. 분명 의도하지 않은 그런 나의 돌출행위는 아마 봄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벌써 산나물이며 봄꽃들의 향이 열어놓은 창문을 통해 무던히 불어왔기 때문에, 나는 솔직히 조금 들떠있었다.
아내와 딸아이를 각각 직장과 학교로 보낸 아침나절이었다. 아침밥으로 커피 한 잔과 아내가 삶아 놓은 고구마를 들고 나는 간편한 옷차림으로 무작정 집을 나섰다. 집에서 삼백여 미터 떨어진 곳에 저수지가 있었는데 원래 그곳이 내 행선지였으나, 꽃향기에 취한 것인지, 아니면 가슴 밑바닥에 있는 유목민 기질 때문이었는지 나는 그만 그곳을 지나 집과는 반대 방향인 산으로 가고 있었다. 그 산길의 오솔길 양옆은 온갖 꽃들과 나무들이 즐비했다.
나는 그 향에 취해 점점 산속으로 들어간 것이다. 당연히 민가는 하나도 없었다. 그러자 나는 불현듯 낯선 산짐승과의 만남 때문에 염려가 되었는데 다행히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간간이 다람쥐 정도의 작은 동물들과 작은 새들이 눈에 띄었을 뿐 우려했던 산 돼지 같은 큰 동물은 보이질 않았다.
그렇게 산속의 오솔길을 따라 한 시간 정도 들어갔을까. 오르막에 다다르니 갑자기 급경사로 내리막길이 보였다. 그 밑으로 작은 민가 한 채가 있었다. 마침 목도 마르고 해서 나는 서둘러 아래로 내려갔다. 입구 쪽에 조그만 연못이 있었고 집은 통나무를 얼기설기 엮어, 보기에는 허름했다. 그리고 그 옆에는 언덕이 하나 있었는데 내가 다가갔을 때 그 사내는 동굴 비슷한 곳에서 막 삽을 들고나오고 있었다.
그는 날 보더니 별 표정 없이 입구에 아무렇게 널브러져 있던 페트병을 들어 물을 마셨다. 약간 당황한 나는 간단한 인사를 하려다 말고 엉거주춤 서 있었는데 그가 먼저 말을 꺼냈다.
“목마르면 그 옆에 있는 탁자 위에 있는 것 마시소.”
여전히 무표정한 얼굴이었다. 그는 긴 머리를 뒤로 땋아 넘기고 허름한 작업복에 고무신을 신고 있었다. 강인한 인상답게 눈매가 서늘했다. 아, 이자가 낯선 나를 경계하고 있구나 싶어 나는 얼른 고개를 숙여 안녕하십니까? 저는⋯. 그러나 그는 내 말을 채 듣기도 전에 삽을 들고 재차 동굴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순간 나는 뭐, 이런 자가 있나, 하는 불쾌감이 들었지만 어쩔 수 없는 노릇이었다. 아무리 산골이라지만 그는 주인이고 나는 예약하지 않은 손님이었다. 나는 별수 없이 그가 가리킨 탁자 위의 물을 마시고 다시 그 집을 나왔다. 그러다 그가 들어간 동굴을 유심히 봤는데 느낌이 별달랐다. 이런 산골에 왜 저런 굴을 파는지, 그것도 삽 하나 들고 혼자서 뭘 하려는 건지 몹시 궁금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