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숭로에서는 마로니에라는 혼성중창팀이 부른 노래이다.
마로니에는 나무의 이름이며 대학로에 가면 경성제국대학 때 일본인 교수가 심었다는 나무가 있었고 이 나무의 이름을 따 훗날 마로니에 공원이 만들어 진다.
우리나라에 일본인들이 건너와 다닌 고등교육기관이다 보니 식민지 백성들의 비중보다 일본인들이 많았고 조선의 것을 연구하는 사람들 또한 일본인이며 이들에 의해 만들어진 것들이 지금도 영향을 주는데 물질에 의한 지배도 무섭지만 문화적인 것 또한 무시할 수 없다.
세월이 더 흘러 대학로(동숭로)에 서울대학교가 다시 만들어지고 이 거리는 신생 대한민국을 다시 일어서게 하기도 했지만 동란시기 인근의 서울대 병원에서는 북한군에 의해 대규모 학살이 이루워지며 피난을 가지 못하고 대학에 남아 있던 교수와 학생들은 어느 한쪽을 선택해야 했고 서울 수복후에 큰 고통을 겪는다.
50~70년대가 지나면서 이곳엔 서울대만 있던 것이 아니고 성균관대 , 가톨릭대 가 있었고 가까운 거리에 동국대, 고려대, 외대 그리고 신촌과도 연계가 되어 문화적 공간이기도 했지만 시위와 집회의 장소였다.
물론 지금도 그 영향이 있고 집회와 시위가 형식이 달라졌을 뿐 이루워진다.
서울대의 본부와 문리대가 관악으로 이사를 가고 이 자리엔 공원과 한국방송통신대학이 생기고 대학로는 상업과 공연장으로 사람들이 모였고 차없는 거리로 80년대 중후반 유명해진다.
86아시안 게임 그리고 6월 항쟁...88올림픽이 치뤄지면서 우리사회는 외적으로 크게 변화하고 정권의 대응도 다양해지는데 이때쯤 가요계도 다양해지고 규제와 심의는 있었지만 노래를 부르는 사람들의 모습과 공연방식도 바뀐다.
마로니에는 기존의 노래모임과 연주팀이 한번 해체되면 사라지고 활동을 중단하는 예를 따르지 않고 계속 다양한 가수들이 모임을 이어 음반을 발표했었다.
첫번째 음반이 바로 '비를 기다리는 사람들' 이며 이것을 주도한 이는 '오선과 한음 ' 출신의 김선민이며 이 음반의 주제곡인 '동숭로에서'는 마로니에라는 모임 이름으로 김선민, 신윤미, 권인하가 함께 노래를 불러 힛트를 하지만 TV방송에는 잘 나오지 않았다.
그후 마로니에 2집이 김선민이 주축이 되어 나오고 3집은 '칵테일 사랑' 이란 노래를 중심으로 신윤미와 최선원등의 가수들이 녹음을 하지만 묻혀있다가 유명해져 대힛트를 치지만 신윤미는 미국을 가고 따로 활동하던 최선원은 방송출연을 할 수 없어 다른 가수들이 립싱크를 하게 되고 논란이 된다.
지금도 이름은 이어져 있으나 시작할 때의 성격과는 다른 노래모임이 된 것으로 안다.
당시 마로니에는 '동숭로에서' 라는 노래에서 80년대의 시대 변화 그리고 그에 따른 서울 대학로(동숭로)의 문화와 분위기를 표현하며 미래를 꿈꾸지 않았을까? 생각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