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5장 다시 38선을 향해 1. 한강에 불어오는 봄기운 = 162 2. 고락을 같이했던 1사단을 떠나다 = 169 3. ‘결전’이냐 ‘후퇴’냐 = 176 4. 3군단 붕괴의 여파, 대관령전투 = 183 5. 전선 교착중에 실시된 국군 집중 훈련 = 193 제6장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1. 아무도 바라지 않는 휴전회담의 한국대표로 = 202 2. 휴전회담 주춤, 다시 전선으로 = 210 3. 白야전 전투사령부의 공비토벌 = 217 4. 지리산이 평정되고 중장 진급하다 = 224 5. 신생 국군의 상징부대 2군단 창설 = 232 제7장 참모총장과 4성장군의 길 1. 중압감 속에 취임한 육군 참모총장 = 242 2. 국군 급식에서부터 산적한 문제를 풀다 = 250 3. 한국 국군 처음으로 4성장군에 = 256 4. 스탈린 사망 이후 전쟁은 새로운 국면에 = 265 5. 세계를 놀라게 한 반공포로 석방 = 273 6. 유리한 고지를 위한 최후 대공세 = 280
제8장 마침내 전쟁은 끝나다 1. 통일은 더욱 멀어졌는가 = 290 2. 전후 복구사업에 박차를 가하다 = 298 3. 비로소 갖추어진 국군의 모습 = 304 제9장 군과 나와 인생 1. 건군이래 최대의 군기파동 = 314 2. “군인으로 일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 321 3. 한국전쟁에 있어서 미군은 무엇인가 = 329 4. 해방후 군 좌우대결에 대한 회고 = 338 5. 제1공화국의 몰락, 역사가 주는 교훈 = 348 말미(末尾)에 부치는 글 / 金點坤 = 355 인명찾아보기 = 360 부록
백선엽이 다부동전투에서 인민군 3개 사단을 괴멸 했다는 것과 평양 탈환의 내용은 대표적 조작된 글이다, 정확한 내용은 한국전쟁 직후 국방부에서 편찬한 한국전쟁사에 있다. 3개 사단 괴멸은 미공군 B-29 융단 폭격에 기인하며 3개 사단 병력 또한 1만명을 넘지 못한다. 평양은 인민민군이 빠져 나간 빈 집에 들어갔다. 그 외 낙동강 방어선에서 공격을 하며 "내가 후퇴하면 쏴라!" 한 사실도 백선엽이 만들어냈다. 후퇴 잘하기로 유명한 백선엽이 '젼잰영웅"이니 기가막인 조작이다. 한국전쟁 원본 軍史는 어디까지나 국방부에서 최초 편찬한 한국전쟁사다. 백선엽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자청해서 부임해 그가 주도해 편찬한 문제의 백선엽 영웅화 책이 6.25전쟁사이다. 육군은 이 책으로 교육하고 있다.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6.25참전 장군들은 단 한 사람 백선엽을 전쟁영웅이라 하지 않는다.
나는 1965년 진해 육군대학에서 군단 방어를 강의했다. 한국군 최초로 내가 육군대학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심층 연구를 시작 했으며 논문 3편을 썼다. 당시 연구 결과 백선엽은 미군 고문관을 상전 대접하며 언제나 찝차 상석에 모시고 다녔다. 또한 후생사업으로 재산을 축적해 그 돈으로 동생 백인엽과 함께 인천의 선인학원을 만들어 또 재산을 늘렸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기에 망정이지 자칫 백선엽이 제2의 이순신이 될 뻔 했다.
첫댓글 군과 나 회고록이 경향신문 88년 6월 24일 ~ 89년 5월 11일까지 연재본 이전에 원본이 따로 존재 하는 건가요? 장군님.
요즈음 나온 백선엽 회고록은 민감한 부분을 모두 걸러내고 스스로 영웅처럼 개작한 것입니다.
즉 가짜지요. 원본에는 분명히 동족 토벌의 당위성 이라던가 간도특설대 근무의 보람이 깔려 있습니다.
89년 경향신문 연재기사 끝나고 1989년 6월 대륙연구소 라는 출판사에서 초판 출간된 책이군요.
표제/저자사항軍과 나 / 白善燁 지음
백선엽
발행사항서울: 大陸硏究所, 1989
형태사항367p.: 삽도,도판; 23cm
주기사항색인수록
권말부록으로 "대한민국 전도", "1953년 7월 27일 확정된 휴전선", "1953년 7월 27일 군 배치도" 수록
관제: 6·25 한국전쟁 회고록
이책에 부쳐 / 鄭飛石 = 16
저자서문 / 白善燁 = 19
제1장 길고 긴 여름날, 50년 6월
1. 아침 7시에 날아온 ‘개성함락’급보(急報) = 28
2. 문산 방어선이 무너지다 = 34
3. 뗏목을 타고 진행된 한강 도하(渡河) 작전 = 41
제2장 낙동강까지 3백km의 후퇴길
1. 적 지연작전 한달 = 50
2. 더이상 물러설 곳이 없다 = 54
3. 낙동강 피의 공방, 최후의 1인까지 = 60
4. 적 선봉을 꺾은 다부동전투 = 64
5. 적 3개사단 섬멸, 전세 역전 = 73
제3장 선봉에 서서 북진, 북진
1. 후퇴 코스 거슬러 진격 = 84
2. ‘패튼전법’으로 우리는 전진한다 = 91
3. 평양입성, 생애 최고의 날 = 98
4. 평양 수복을 알리는 힘찬 종소리 = 105
5. 중공군의 덫에 걸리다 = 113
6. 피 말리는 가을밤, 운산 최후의 날 = 120
제4장 물거품이 된 북진통일, 또 다시 후퇴
1. 입석부근에서의 휴식 = 130
2. 크리스마스 공세, 재난으로의 눈먼 행진 = 136
3. 참담한 1·4후퇴 = 144
4. 중부전선에서의 공방전 = 152
제5장 다시 38선을 향해
1. 한강에 불어오는 봄기운 = 162
2. 고락을 같이했던 1사단을 떠나다 = 169
3. ‘결전’이냐 ‘후퇴’냐 = 176
4. 3군단 붕괴의 여파, 대관령전투 = 183
5. 전선 교착중에 실시된 국군 집중 훈련 = 193
제6장 무엇을 잃고 무엇을 얻을 것인가
1. 아무도 바라지 않는 휴전회담의 한국대표로 = 202
2. 휴전회담 주춤, 다시 전선으로 = 210
3. 白야전 전투사령부의 공비토벌 = 217
4. 지리산이 평정되고 중장 진급하다 = 224
5. 신생 국군의 상징부대 2군단 창설 = 232
제7장 참모총장과 4성장군의 길
1. 중압감 속에 취임한 육군 참모총장 = 242
2. 국군 급식에서부터 산적한 문제를 풀다 = 250
3. 한국 국군 처음으로 4성장군에 = 256
4. 스탈린 사망 이후 전쟁은 새로운 국면에 = 265
5. 세계를 놀라게 한 반공포로 석방 = 273
6. 유리한 고지를 위한 최후 대공세 = 280
제8장 마침내 전쟁은 끝나다
1. 통일은 더욱 멀어졌는가 = 290
2. 전후 복구사업에 박차를 가하다 = 298
3. 비로소 갖추어진 국군의 모습 = 304
제9장 군과 나와 인생
1. 건군이래 최대의 군기파동 = 314
2. “군인으로 일생을 마치고 싶습니다” = 321
3. 한국전쟁에 있어서 미군은 무엇인가 = 329
4. 해방후 군 좌우대결에 대한 회고 = 338
5. 제1공화국의 몰락, 역사가 주는 교훈 = 348
말미(末尾)에 부치는 글 / 金點坤 = 355
인명찾아보기 = 360
부록
백선엽의 출긴물은 단 한 페이지 스스로 쓴 것이 없음.
모두 고용 필자에 의해 작성 됐음.
본인에게도 간절히 집필을 요청했지만 거절했음.
역시 문장이 술술 읽힌다 했는데.. 고스트 라이터가 있었군요..
백선엽이 다부동전투에서 인민군 3개 사단을 괴멸 했다는 것과 평양 탈환의 내용은 대표적 조작된 글이다,
정확한 내용은 한국전쟁 직후 국방부에서 편찬한 한국전쟁사에 있다.
3개 사단 괴멸은 미공군 B-29 융단 폭격에 기인하며 3개 사단 병력 또한 1만명을 넘지 못한다.
평양은 인민민군이 빠져 나간 빈 집에 들어갔다.
그 외 낙동강 방어선에서 공격을 하며 "내가 후퇴하면 쏴라!" 한 사실도 백선엽이 만들어냈다.
후퇴 잘하기로 유명한 백선엽이 '젼잰영웅"이니 기가막인 조작이다.
한국전쟁 원본 軍史는 어디까지나 국방부에서 최초 편찬한 한국전쟁사다.
백선엽이 국방부 군사편찬연구소 자문위원장으로 자청해서 부임해 그가 주도해 편찬한 문제의 백선엽 영웅화 책이 6.25전쟁사이다. 육군은 이 책으로 교육하고 있다. 땅을 치고 통곡할 일이다.
6.25참전 장군들은 단 한 사람 백선엽을 전쟁영웅이라 하지 않는다.
나는 1965년 진해 육군대학에서 군단 방어를 강의했다.
한국군 최초로 내가 육군대학에서 한국전쟁에 대해 심층 연구를 시작 했으며 논문 3편을 썼다.
당시 연구 결과 백선엽은 미군 고문관을 상전 대접하며 언제나 찝차 상석에 모시고 다녔다.
또한 후생사업으로 재산을 축적해 그 돈으로 동생 백인엽과 함께 인천의 선인학원을 만들어 또 재산을 늘렸다.
내가 죽지 않고 살아 있기에 망정이지 자칫 백선엽이 제2의 이순신이 될 뻔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