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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2. 박찬열
: 맴매맞자 박찬열 ver
박찬열 (24) * 000 (27)
내남자친구 완전 재수없다니까. 순전 다 지맘대로야. 어. 어. 진짜.
화가나 미칠지경이였다. 대체 이런식으로 약속을 파토낸게 몇번째인지. 오늘은 우리둘만의 데이트를 하자며, 요새 밤에 공원에 가서 순하리 한잔 마시면 그 기분이 정말 좋다며, 오늘밤은 너와 보낸다느니 나는 너밖에 없다는이 하다가 갑자기 온 문자. 자기야. 나 새벽에 라디오 스케줄 잡혔어. 진짜미안. 사랑해 내사랑♥ 내사랑은 지랄. 항상 이런식이다 너는. 정말 이런 너의 수법이 지긋지긋하다. 정말. 질린다. 박찬열
너가 그정도로 지랄하는거 보니까 그 남자애도 보통은 아닌가보다. 너 연애스타일 원래 프리스타일이잖아. 집착안하고 바람피던 말던 관심없는 무관심연애. 그게 니스타일인데 니가 이렇게까지 혀깨물고 말하는거보면 그남자애도 보통 쓰레기는 아닌가보다.
이년이 진짜 말이면 단줄알아. 보자보자하니까 니가 감히 찬열이한테 뭐? 쓰레기? 그것도 보통쓰레기는 아닌거같다고? 갑자기 확 상한 빈정에 화가나 나 일생겼어 바빠. 나중에전화할께. 하고 그냥 뚝 끊어버렸다.
씨. 짜증나.
결국 스트레스를 없애려고 한 수지와의 통화는 별다른 성과없이.. 아니 나에게 더 스트레스를 안겨주며 끝이 났다.
초등학생이. 아니 유치원생이 생각해도 짜증날 약속시간 30분전에 파토내기. 나만 바라봐준다고 했으면서. 나만 챙겨준다 했으면서. 나보다 방송국 일이 더 중요한가? 스케줄이 더 중요한가? 그런게 아니면 방송국에 다른 여자라도 심어놓고 있는건가? 아님 이제 내가 질린건가? 안좋은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점점 더해졌다.
하. 집안 꼴이 이게 뭐야.
결국 내가 생각한 나쁜 박찬열보다 더 짜증난 바쁜 박찬열에게 복수하는 방법은 찬열이가 가장 아끼는 옷에 물 부어놓기 였다.
음료수를 붓고싶었지만은 이중에 몇벌은 초고가를 자랑하는 옷이기도 하였고 내가 선물해준 옷도 있었고 소중한 팬분들한테 선물받은 옷도 있었기에 굽히기 자존심 상하지만 복수의 강도를 조금 낮췄다. 그렇게 물을 뿌리고 진탕 짜증이나 선물받은 양주를 벌컥벌컥 들이키고서는 잠이 들었나보다.
자다가 깬 비몽사몽한 정신으로 만난 찬열이는 여전히 잘생겼다. 여전히 멋지고. 여전히 프로패셔널한. 그런 찬열이였다. 웃음이 났다. 그냥 찬열이의 얼굴을 보는것만으로도 좋았다. 진심으로 내남자 잘생겼다. 잠결에 들려오는 은은한 낮은 중저음은 달콤한 잠을 더 북돋아주는 역할을 했다. 화난 감정은 어디갔나 그렇게 잠결에 찬열이 얼굴을 보고 난 다시 잠이 들었다. 찬열이가 와서 그런지 조금더 안심되고 포근하고 조금 더 깊게 잘수 있었다.
일어났어요?
언제 잠이든건지. 찬열이가 온줄도 모르고 정신이 없었나보다. 일어나자마자 술의 영향인지 은은하게 퍼져오는 알싸한 알코올향과 폭풍처럼 몰아치는 심한 두통. 정말 딱 머리가 깨지기 일보 직전이였다. 양주의 영향 못지않게 나의 두통을 자극하는건 내 앞에 멀뚱멀뚱 하게 서있는 찬열이
. ㅊ..찬열아.. 찬열아..
씼고 나와요. 그래야 밥먹죠. 얼른.
씼고나오라는 찬열이의 말에 곧장 화장실로 뛰어갔다. 우웩. 위액이 또나왔다. 안그래도 술마시면 몸상한다고 맨날 찬열이가 말했었는데..
비몽사몽한 정신이 세수를 하고 말끔히 되돌아왔다. 대체 내가 어제 무슨짓을 한거야. 찬열이 옷에다가 물이란 물은 다 부어놓고 화장품이며 뭐며 다 어질러놓고. 대체 무슨생각으로 그랬을까. 때늦은 후회아닌 후회를 하는 도중 또한번 찬열이의 목소리가 들렸다. 빨리나와요. 수건으로 얼굴을 두어번 토닥이며 밖으로 나갔다. 어제와는 다르게 깔끔히 정리되어있는 옷장하며 화장대 하며 테라스에는 찬열이의 옷이 잔뜩 걸려있는 건조대까지. 내가 진짜 못살아.
얼른 먹어요. 속도 안좋을텐데.
찬열아..
내가 또 두번씩 말해줘야되나?
ㄱ..그게. 못먹겠어..
못먹긴 뭘 못먹어. 누나는 숙취해서 일어나자 마자 바로 먹어야 속 풀리잖아요. 안그럼 하루종일 고생할꺼면서. 밥 안넘어가도 일단 한숟갈 들어요.
어느새 내 술버릇까지, 아니 숙취버릇까지도 다 알고있는 찬열이였다. 눈치를 보며 우물쭈물 콩나물 국을 입에 한숟갈 넣었다. 앗뜨거. 한숟갈 먹고 다시 어디로 움직여야할지 모르는 동공에 잔뜩 눈치를 보고 있었다. 그러자 들려오는 찬열이 목소리. 어짜피 이따 혼날꺼니까 지금은 편하게 밥먹죠? 응.. 그렇게 콩나물국을 한숟갈 더 떴다.
이따 혼난다는말은 거짓말이 아니였다. 아니 이렇게 제대로 혼나고 있을줄은 몰랐다. 기껏해야 벌이라고 해봤자 벽보고 서있기, 심하다 싶으면 무릎꿇고 앉아있기였는데 지금은 엎드려 뻗친 상태라니.
아잉..찬열아. 제발. 한번만 봐주면 안되?
나 두번째 말하는거에요. 엎드리라고.
치이.. 분명 내가 잘못한건대도 입이 대빨 나와 엎드려 뻗친 ㅏ세를 하는데 기울어지는 몸통이며 머리에 피가쏠리는 느낌하며 정말 아찔했다.
뭐가 잘못한건지는 알아요?
씨이. 알아. 안다고.
어어? 씨? 누나 오늘좀 많이 혼나야되겠네.
점점 더 싸해지는 분위기를 느꼈는지 한여름에 쪄죽는 거실이여도 냉기가 서늘했다. 끼잉끼잉 거리다가 엎드려 뻗친지 오분이 채 되지 않아 털썩. 쓰러져버렸다. 힝. 다시 자세를 바로 잡으려 손을 탈탈 털고는 다시 엎드리는데 들리는 소리. 일어나서 여기앉아봐요. 이런식으로 화풀이하면 나도 기분안좋고 또 혼나는 누나도 기분 안좋잖아요.
근데..근데... 약속시간 30분전에 파토내는게 어딨어...
내가 미안하다고 그렇게 말했는데. 내가 일부러 누나 보기 싫어서 그런것도 아니고 스케줄이 갑자기 잡혀서 그런거잖아요. 아예 집에 안들어오는것도 아니고 1시간 30분 더 늦게 들어온다고 말했죠. 근데 한시간반도 못기다려주는거에요? 그렇게 화나서 옷에다가 다 물 엎어놓고 화장품 다 깨고 한거에요? 어?
그..그게.. 근데 진짜 화나서 그랬어
화풀이를 이런식으로 하면 되요 안되요.
안..안되지.. 혼나야겠죠? .. 근데.. 왜요. 억울한거야 아직도?
자꾸 이렇게 혼나기 싫어서 피하려고만 하죠. 반성안하고. 응?
까칠한 어투로 톡 쏘듯이 말하는 말투하며 한껏 나를 노려보는 매서운 눈빛까지. 혼나기 싫어서 피한것은 맞지만 여기서 한번만 더 빠져나가려 하면 오늘은 정말 제대로 못걸을 만큼 혼날까 싶어 결국 시인을 하고 말았다. 아니..아니야.. 혼..혼날께. 그러니까 그렇게 무서운 표정 짓지마.
회초리 가져올테니까 바지랑 팬티벗고 쇼파잡고 기다리고 있어요.
하흐읍.. 하으..
짜아아아아악. 짜아아악. 짜아아아아악.
숫자안세죠.
끅..하읍...다섯.. 여섯. 흐으으..
제대로 하면 안끝나요. 목소리에서 물기 빼요.
정확하게 맞고 반성할수 있는 댓수를 부르라 했더니 고작 열대. 평소같았으면 이정도 잘못의 스케일이면 삼십대 이상을 불러도 시원찮을판에. 적은댓수를 부른게 괴씸해서 조금이라도 자세에 흐트러짐이 있거나 수를 바로 세지 않으면 다시하나부터 시작하였다. 그렇게 잔꾀만 부리다가 벌써 열다섯대가 넘어가고 있었고 누나는 울고있었다. 하지만 맨날 자신의 마음에 들지 않으면 때려부수고 엉망으로 만들어놓는 그 버릇 고칠때가 오긴 왔다.
짜아악.짜아아아아악.
끄흑..ㅇ.. 끅...
숫자 안세지. 흐읍..끅.. 딸꾹...
다시하나부터.
흐으으으.. 찬열아아.. 끅.. 잘모태써요.. 흐읍..하아..
씁. 다시 하나부터. 제대로 할때까지 안끝난다고 분명 말했어요. 발끝모으고 무릎펴요. 숫자 똑바로 세고.
결국 일곱, 여덟까지 갔던 카운트다운은 다시 하나부터 리플레이 되었다. 절망적인 한마디 '다시하나' 에 결국 무릎을 꿇고는 말았다.
눈물을 펑펑 쏟아부으면서 다시는 안그러겠다고 잘못했다고 싹싹 비는 누나에게 그때는 무슨 정신이였는지 더욱더 무섭게 대했다. 뒤에서 참을 수 없는 맴매의 연속이였는지 결국 꼼수를 쓰면서 아픔을 조금이라도 덜어보려는 누나의 심보가 보였다. 매를 한대 내려칠때마다 엉덩이를 같이 안으로 집어넣어 고통을 조금더 줄이려고 하는데 결국 그 모습을 보고 꼭지가 돌아버리고 말았다. 엉덩이의 홧홧함이 사라지지가 않는지 결국 엉덩이를 부여잡고 무릎꿇고 엉엉 울어재끼는 누나였다.
계속 제대로 안혼나고 꼼수쓴다 이거지?
일어나.
목소리부터 달라졌다. 우는 도중에도 선명하게 들려오는 찬열이의 화난 목소리. 무엇보다 항상 쓰던 존댓말이 아닌 반말이였다. 깜짝 놀라 눈물이 쏙 들어가고 딸꾹질만 나는데 왠지 모르게 찬열이의 말을 듣게되었다. 눈물닦아. 팔등으로 아이라인이 번지는것은 상관도 하지않고 벅벅 눈가를 문질렀다.
쇼파잡아.
열이오른 엉덩이를 달래주던 손을 쇼파로 그대로 갖다놓았다. 찬열이의 반말만 해도 충분히 화가났다는걸 직감할수 있었고 이게 정말 장난이 아니라는것을 너무 늦게 깨달아버렸다.
앞으로 다섯대. 쇼파에서 손 떨어지기만 해봐. 다섯대가 오십대 되는거 보여줄께.
무서운 말을 남긴채 다 식어서 차가워진 내 엉덩이에 매 끝으로 톡톡 친다. 엉덩이 더빼. 더. 원하는 만큼 자세가 나오지 않는건지 직접 내 허리를 들어 뒤로 빼버렸다. ㅊ..찬열아아. 아무말도 들리지 않는지 정색된 표정만이 나를 반겼다. 잔꾀부리지말고 똑바로혼나. 세게때릴꺼니까 참아.
찬열이는 절때 거짓말 하는 법이 없었다. 쩌렁쩌렁하게 울리는 찰진 맴매소리에 어떻게던 찬열이가 화나지 않게. 잔꾀부리지 않고 정석으로 혼나려 하니까 두려움이 더 배가되었다. 다섯대라도 예쁘게 맞자 라는 심보고 이악물고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고 참았다. 세개때릴꺼야. 라는 말. 얼마나 무서운 말이였던지. 여자친구를 그렇게 패는 남자친구가 있나 싶을정도로, 내가 이제까지 맞았던것은 그냥 어린아이 장난이였구나. 싶을정도로 강한 맴매였다. 살갖이 찢어지는 아픔에 다섯대가 끝나자 마자 긴장도 풀리고 다리에 힘도 풀려서 그상태로 털썩 주저앉아 엉엉 울고 말았다.
이리와 앉아. 내눈봐.
엉덩이가 많이 아픈지 엉엉울어 정말 탈수직전까지 울어재끼는 우리 누나. 아니 내 여자친구. 여자애 엉덩이가 그게 뭔지 시뻘게 져서 피멍이 살짝살짝씩 잡혔다. 씨이. 미워. 나를 퍽퍽 때리는 누나에 더욱더 장난치고 괴롭히고 싶은 마음이 더해져 나도모르게 말이 튀어나왔다. 누가 혼나는데 그딴식으로 앉아. 무릎꿇고 앉아. 아직도 내가 화가 안풀렸다고 생각하는 누나는 안도감이 두려움으로 바뀌면서 다시금 눈물이 쏟아졌다.
이런식으로 화풀이 하면 안되잖아. 나는 최대한 너랑 같이있으려고 라디오 스케줄 삼십분 일찍 나왔단 말이야. 그럼 기껏해야 한시간 더 늦게 들어오는건데. 들어와보니까 너는 술먹고 뻗어있고 옷장은 물로 젖어있고 화장품들은 다 깨져있고. 그러니까 내가 화가 나 안나.
나...나요오.. 끅..
앞으로 안그럴꺼지?
다시금 엄해있던 목소리에서 다정한.. 원래 박찬열 목소리로 돌아오니 그게 왜이리도 슬픈일인지. 정말 목이 쉬어라 꺼이꺼이 울어대었다. 서러웠어. 무서웠어. 넓은 찬열이 품에 쏙 안겼는데 박찬열냄새. 내 울음을 진정시킬수 있는 딱 한가지. 박찬열 냄새가 난다. 으이구. 그러니까 누가 이렇게 잔꾀부리래? 혼나는데 잔꾀부리는거 내가 젤 싫어하는 짓인거 알면서 그래. 말은 밉게 해도 내 동그란 머리통을 쓱쓱 쓸어주는 찬열이가 난 너무좋다. 단. 맴매맞을때 빼고.
:[박찬열] 시스터콤플렉스
박찬열 (24 ) * 000 (18)
" 야 헐대박. 진심개쩔어. 너 봤냐? 봤어? "
" 당연하지. 존나잘생겼더라 "
" 와씨발 코피터지는줄. 존나잘생겼어. 내첫사랑임. 아니 내 남친임 "
" 미친년 지랄하네 "
오늘은 또 언제잠든건지. 분명 세포호흡 뭐시긴가까지 들은거같긴한데.
이번년도는 정말 공부 열심히 해야지. 라는 생각으로 기적적으로 새학기가 시작된지 일주일이나 수업을 한번도 자지않고 나름. 열심히. 들었던 00이였다. 고2가 되고 '입시' 와 '취업' 에 대한 문제가 직면으로 다가오면서 걱정거리와 함께 기특한 생각이 든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작심 일주일이였다. 고1때도 00을 꽤나 괴롭혔던 과학선생님이 이번에 또 한번 과목담임을 맡게 되면서 악몽같았던 일년이 생각났고 결국은 지루하디 못해 지루한 형편없는 과학수업에 스르륵. 또 잠이 들고 말았다.
비몽사몽한 상태로 수지가 옆에서 하도 팔뚝을 때려 이러다가 정말 멍들겠다 싶어서 무거운 몸을 일으켰는데 뭐? 누가 잘생겼다고? 하긴. 잘생긴 사람만 보면 사죽을 못쓰는 수지였다. 오늘도 역시 어느정도 하다가 그려려니, 하고서는 개운한 기분으로 점심식사를 위해 줄을 서고 있었는데 이번건 쇼크가 꽤나 컸는지 수정이와 둘이서 줄을 설때도, 밥을 먹을때도, 양치를 할때도, 그 남자에 대해 피터지게 말했다. 엑소니 아이콘이니, 요즘 대세남자아이돌은 다 제꺼라며 이리저리 날뛰는 금사빠중 하나인 친구였는데 니가 이정도면. 나도 궁금하다.
그래서. 누군데 그사람이?
" 미친년. 못봤냐? 이번에 새로온 교생. 근데 우리반 담임한데. "
" 교생이 왜 담임을해? "
" 우리 담임 이번에 출산때문에 두달인가? 쉰다는데? 미친년아 그러니까 수업시간에 잠좀 쳐자지마. "
" 헐. 존나대박이네 "
" 이름이 박찬열인가? 존나잘생겼는데 키도크고 나이도 엄청 어리고. 사슴같이 생긴게.. "
순간. 헙. 숨을 들이켰다.
낯설지 않은 네이밍. 박찬열. 설마 아니겠지, 설마 제발, 부디 아니길 정말 하늘에 빌어본다는 심정으로 두손을 깍지껴 꼭 모은후 눈을 꼭 감았다. '이년 똘아이 아니야?ㅋㅋㅋ 야 왜그래' 라는 수지의 말을 뒤로한채. 제발. 제발 아니길. 내가 아는 그 사람이 제발 아니길. 빌었다.
사실 그 많고많은 교생중에, 그 많고많은 과학선생님중에, 그많고많은 학교에, 그 많고많은 반에.
몇천분의 일의 확률을 뚫고 설마 우리오빠겠어? 하는 생각은 불안감을 더했다.
지금 와서 돌이켜 보니 아침에 오빠는 수상한 점이 많았다.
" 00아. 나 오늘 첫출근인데 어때? 네이비색 수트 괜찮나? "
" 응 "
무미건조하게 나에게 첫출근 옷차림에 대해 물어볼때도,
" 00아. 애들 처음 만나면 어떻하지? 애들이 나 싫어하면 어떻게.. 난 진짜 애들한테 잘하고 또 잘하고. 진짜 착한선생님 될꺼야 "
" 오빠. 애들은 원래 다 교생 좋아해 "
희망에 부풀어 착한 선생님이 될꺼라며 큰눈이 반짝반짝 거릴때도,
" 너 오늘 학교가면 오빠가 서프라이즈 해줄께. 진짜 깜짝 놀랄껄? "
" 생일도 아닌데 무슨 서프라이즈? "
'서프라이즈' 라는 의미심장한 단어에 한치의 의심없이 퉁명스럽게 대답했을때도,
여러가지 생각이 겹치며 꼭 모은 손을 더 꽉모았다. 제발. 제발. 손등에 손자국이 진하게 남을정도로 꽉모으는데 온 정신을 집중할때쯤, 복도에서 요란한 소리가 들려왔다. 여학생들의 비명아닌 비명. 같은. 시끄러운 소리. 꼭 감은 눈을 살짝 떠보니 그 소리의 원인은 우리반이였다. 창문에 다닥다닥 붙어있는 여학생들, 그리고 '존나잘생겼어' 같은 비속어를 포함하며 제 두눈을 못믿어 꿈뻑거리는 우리반 아이들과 논란의 중심에는 출산을 앞두고 있는 우리반 담임선생님, 그리고 휴가를 앞두고 그녀가 소개해줄 우리반 새로운 임시 담임선생님. 박찬열이 앞에 서있었다.
좇됬네.
" 아니 오빠 왜말안했어? 어? "
" 학교에선 오빠 아니고 선생님 "
" 선새..하.. 선생ㄴ...하.. 씨. 왜말안했냐고. "
" 공과사 똑바로 구분해. 앞으로 호칭은 '선생님' ,존댓말 쓰고. 어? "
" 아니.. 오빠가 생각해도 너무하지 않아? 하필이면 왜 우리반인데. 왜 우리학굔데.. "
" 그야. 나도 이학교 나왔고. 너 학교에서 하는 꼬라지도 좀 보고. 잘됬지뭐. 얼른 들어가. 다음수업 3분도 안남았을텐데? 응? "
짤막한 소개와 함께 수십명의 여학생들은 이미 '박찬열교' 를 만들고도 남았다. 중저음 보이스와 주먹만한 얼굴에 오밀조밀한 눈코입, 큰 기럭지와 넓은 어깨. 거기다가 자상함과 약간의 위트는 플러스로 여심을 저격했다.
소개가 끝나자 마자 비문학 수업이 시작되었고, 결국 수업에 하나도 집중을 못하고 내내 찬열 생각만한 00이다.
수업이 끝나자 마자 교무실로 뛰쳐왔다. 다행이 선생님들이 아직 교무실로 안돌아오셨는지 교무실엔 찬열밖에 없었다. 따박따박 따지자 찬열은 벌써부터 공과사를 구분하라며 존댓말 쓰라고 말했고 거기에 비뚤어진 마음만 생기는, 아니 같잖다는 생각만 가득한 00이였다.
" 짜증나 박찬열 "
결국 교무실에서의 큰 성과는 보지 못했다. 씩씩 거리며 다음 시간을 위해 다시 4층으로 올라가는 도중 종이 울림과 동시에 전력질주를 했다. 삼분도 안남았다며. 삼분은 무슨 일분도 안남았다 박찬열 바보야.
그렇게 시작된 영어수업, 서술어니 뭐니, 하나도 눈에 들어오지 않았고 여전히 찬열 생각밖에 없었다. 사람이 생각이 많아지면 생각을 비우는 법을 스스로 터득한다고 어느누가 한 말씀을 들었다. 이생각 저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잡생각이 많아지자 결국 두팔을 쭉 뻗고 책상에 시체처럼 늘어져 자는 방법을 선택했다. 머리는 안아플테니 1은 성공한것이였다.
" 좋겠다 수지야. 너네담임 박찬열이라며. "
" 응. 진짜 잘생겼지. 내스타일이야 진짜 "
" 와.. 진심 개부러워. 우리반담임은.. 하... 말을 말자 말을 말아 "
수지는 박찬열이 담임인게 꽤나 마음에 들었던 모양이다. 옆반 친구와 시덥지 않은 농담으로 박찬열 애기를 죽죽 늘어놓고 있었으니. 그렇게 수업이 끝나고 종례시간 전 왁자지껄한 시간이 또 다시 시작되었다. 반 전체가 시끌시끌 해질 무렵, 복도 끝에서 다이어리 두어권과 출석부, 그 위로는 깔끔한 만년필 하나와 한쪽손에는 무려 '사랑의매' 라고 적혀있는 보기만해도 따끔한 회초리까지. 나름 선생님룩 을 완성한 박찬열이 성큼성큼 걸어와 그 어떤 반보다 빠르게 종례시간이 시작되었다.
" 앞으로 잘부탁해. 아마 나랑 3개월 정도 같이 있을꺼야. "
세상 볼수없었던 찌질이의 미소란. 혼자 온갖 멋진척 다하는 병은 학교에서도 마찬가지였다.
" 그리고 우리반은 특별하게. 내일 두발, 복장, 출석 검사 다 다시할꺼야 "
" 헐.. 헐 왜요 쌤? "
" 두발 규정알지? 염색 펌 절대 안되고, 복장도 치마 줄인거 단 다 풀고 통줄인것도 다 풀고. 출석 불량인 사람은 오늘 자진신고해. 내일 밝혀지면 진짜 크게 혼낼꺼야 "
아이들의 원성이 들렸다. 학교에서도 꽤나 문제아가 많았던 00이네 반에는 두발과 복장, 출석 불량이 한둘이 아니였다. 열댓명 되는 애들이 거의다 불량한 모습이였고 거기에 00이도 포함 되었다. 찬열이 선생님, 이 아닌 오빠였을때도 깐깐함은 하늘을 찔렀다. 치마가 조금이라도 줄여져 있다 하면 단을 찢기 일수였고 염색을 했다가 가위로 머리를 잘린적도 있었다. 무단으로 학교를 조퇴했을때는 다리에 푸르딩딩한 멍울이 잡힐정도로 혼난적도 있었다. 그런 제 오빠를 누구보다 잘 알기에 절로 한숨이 나왔다.
' 아씨. 내일 머리 고데기로 다 피고와야겠다 '
' 어떻게 한 파마머린데 이걸 풀으라고? 말도안되지. 원래 남자선생님들은 잘 몰라 '
나한테만 들리게 소근소근 말하는 수지의 얼굴은 죽상이 되었다.
" 혹시 뭐 허튼 수작부리거나 거짓말 하거나 했다. 그러면 진짜 크게 혼날줄알아. 나도 여동생 있어서 왠만한 수법 다 아니까 속일생각하지말고. 그럼 이상. "
" 우우우우우 "
" 그리고 00이는 끝나고 바로 상담실로 "
" 일로와. "
" 아씨. 왜 "
" 아씨? 너 원래 선생님한테 이따위로 말하냐? 말투 안고쳐? "
갑자기 무서운 선생님 모드로 돌변한 찬열이 익숙치 않았다. 상담실 의자에 앉아 위아래로 나를 훑으며 빤히 스캔하는데 그 시선이 좋지 않았다. 흑발에 짧은 똑단발이라 두발 규정에는 딱히 걸리지 않겠지만 복장에서는 말이 달라졌다. H라인으로 골반에 딱 맞게 줄인 치마는 팬티가 보일랑 말랑 정말 아슬아슬한 길이였다.
" 너 원래 수업시간에 이렇게 자? 어? "
" ..어? "
" 내가 오늘 교무실에서 니얘기를 네번들었어. 생물, 비문학, 수학, 영어. 다쳐잤다면서. 어? 잠잘라고 학교다녀? "
" 아니.. 그게 아니라 "
" 말투 똑바로 안해? "
" 아니..요.. 오.. 아니.. 선생ㄴ..니임.. "
교무실에서 2학년 4반에 대해 들은 얘기라고는 00이의 잠, 밖에 없었다.
어찌나 그렇게 쳐잤는지 모든 과목 선생님이 와서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첫번째는 피곤했나 보다, 싶어 오늘 뭐 좋은거라도 먹여야 하나, 생각했던 찬열은 두번째 얘기를 들었을때까지만 해도 정말 피곤했나보네. 요새 뭔일 있어 잠을 못잤나? 라며 좋게좋게 생각하기로 마음 먹었다.
하지만 똑같은 얘기가 점심시간이 지나고 두번이 더 나왔을때는 오늘 잠자는 버릇 확실히 고쳐야 겠다. 라는 생각밖에 들지 않았다.
" 너가 생각할때는 선생님들이 다 병신같아? 어? 어디서 학생이 수업시간에 잠을자. 너 내수업때도 그러겠다? "
" 아니.. 잘못했어..요.. "
" 잘못한거 알기는해? 진짜 실망이다너. 내가 안본다고 학교에서 이러고 다녔던거야 여지까지? "
" ... "
그래도.. 그래도 일주일은 잠 한번도 안잤는데.. 억울하지는 않지만 억울함 뒤에 약간의 서러운 감정이 스물스물 올라오는 00이였다. 나도.. 일주일은 열심히 했단말이야. 물론 속으로만 삼킨 말이였지만 그런 속감정까지 일일이 알아주며 혼낼 찬열이 절때 아니라는걸 00이도 잘 알았다.
" 책상잡아. "
" ...하.. "
" 왜 엎드릴래? "
" ㅇ..아니요오.. "
" 한대씩 맞을때마다 잘못했습니다 하는거야. 알겠어? "
무심결에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이다가 매서운 회초리가 엉덩이에 감겼다. 짜악. ' 고갯짓 하지마. ' 혼나는 시간의 서막을 알렸다.
짜아아아아악
" 잘못했습니다. "
짜아악. 짜아아아아아악
" 아흐읍.. 흐으.. 잘못했습.. 끅.. 니다 "
" 똑바로 혼나. 엉덩이 더들고 팔 더펴. 반성안하지? "
실로 아팠다. 찬열의 매는 예나 지금이나 쉬이 맞을 매가 못되었다. 옆 국어선생님꼐 빌린 대나무 회초리는 안에가 텅 비어 굉음을 표출했고 그 덕에 겁을 먹을대로 먹은 00이였다.
눈을 꼭 감고서는 앞으로 떨어질 매가 무서운건지 온몸을 바들바들 떨었는데 찬열의 눈에는 그저 애기처럼 보였다. 애 취금하지 말라고 바락바락 맨날 대들면서, 저가 봤을땐 영락없는 애기였다. 애기도 완전 애기. 아가.
짜아아아아아아악 짜아아아아악
" 잘못.. 끅... 흐으.. 잘못..흐읍.. "
" 똑바로 말해. "
" 잘못했습니다.. 흐으엉 "
결국 눈물을 보였다. 죄질과는 상반대로 생각보다 빨리 끝난 처벌에 살짝 놀란 경향도 있었다. 멍때리고 있을때쯤 찬열은 00이의 손을 붙잡았다.
" 입집어넣고. 뭘잘했다고 "
" 흐으으읍.. 아파아아. 나빠진짜.. "
" 그만울어라. 오빠 머리울린다. 얼마 혼나지도 않았으면서 엄살은 "
" 끅.. 끅.. 오빠가 맞아봐야 .. 흐읍.. "
" 쓰읍, 오빠는 아직 할일 많이 남았으니까 얼른 집가서 치마부터 해결해라. 내일 또 혼나기 싫으면. 응? "
" 끝까지.. 끅.. 못됬어 "
" 이걸로 가면서 초코우유 사먹고. 들어가 얼른 "
수트 주머니에 꼬깃꼬깃 접어 넣어놨던 만원짜리를 00이의 손에 꼭 쥐어주고서는 짐을챙겨 먼저 상담실을 떠난 찬열이다.
" 저거저거 박선생님 초장부터 애들 너무 잡는거 아닌가요.. "
" 박선생님이 워낙 어리고 해서 애들이 아마 엄청 얕보겠거니 했는데 오히려 잘된일이죠 "
" 그래도.. 생각했던거랑 너무 다른데요 박선생? 저렇게 무서운 선생님일줄이야. 허허 "
2학년 4반 교실을 지나가던 학생 주임 선생님과 2학년 부장 선생님이 지나가면서 극과극인 시선으로 잠깐 머물다가 다시 갈길을 갔다. 어제까지만 해도 '박찬열내남친' 을 외치던 수지도, '와, 찬열쌤 제발 우리반 담임이였으면좋겠다' 를 외쳤던 옆반의 슬기도 , 젊은 선생님과 같이 축구라도 한판 하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했던 우리반 남학생들도, 이런 황당하고도 두려운 조회시간에 서로가 서로의 눈치를 보며 벌벌 떨었다.
" 책상 다 밀고 여자애들 앞으로, 남자애들 뒤로 다나가 "
아침 8시 30분. 다른 반보다 조회를 10분이나 일찍 시작한 박찬열 선생님은 어제 신신 당부하듯이 말했던 두발과 복장검사, 그리고 출석체크 현황에 대해 맘먹고 조사하려온듯했다. 젊은 선생, 열정넘치는 선생님은 패기가득하여 대낮아침부터 학생들을 일렬로 세워놓고서는 안경을 한번 고쳐쓰고선 매의눈으로 머리부터 발끝까지 스캔했다. 어찌나 깐깐하게 체크하는지, 왠만한 꼼수는 통하지도 않았다. 고데기로 펴온것은 어떻게 알았는지 물묻은 브러쉬로 빗어보기도 하였으며 치마단은 다 풀른건지 아닌지에 대해서도 꼼꼼하게 조사했다.
" 머리색 안바꿔왔네 수지야? "
꿀꺽. 침삼키는 소리가 여기까지 들렸다. 이름과 정확히 기억하는 머리색, 튀지 않는 모습에도 불구하고 박찬열은 어떻게 하루만에 모든 아이들을 파악한것인지 그의 능력에 대해 박수라도 쳐주고 싶은 판이였다. 그를 똑닮은 갈색 민무늬 다이어리에 꼼꼼하게 아이들의 결점에 대해 써가던 펜은 쉴줄을 몰랐다. 아예 싸그리 싹을 뽑아버리겠다는 매의 눈으로 교실 구석구석을 훑었다.
" 고데기로 피는 꼼수쓰는짓 하지 말라고 했을텐데. 응? "
수정의 머리카락을 몇번 날리더니 옆에있던 분무기로 머리칼에 물을 분사하는 찬열이였다. 아니 대체 저런건 어떻게 아는건지. 사실 말해 고데기로 핀것과 매직을 한것은 별반 다르지 않았다. 근데 저걸 어떻게 안것인가에 대해 반전체 아이들은 궁금증을 가졌으며 그와 동시에 제 거짓말이 들킨 수정은 얼굴이 빨개지고 있었다. 그렇게 여학생들을 검사가 거의 끝나갈 무렵, 아이들의 잘잘못을 적고 있던 만년필이 멈췄고 찬열의 시선이 보기와 다르게 날카로워졌다.
" 너는 내말이 말같지 않은거지? "
방금전까지 들어볼수 없었던 낮게 깔린 음성하며
" 치마 고쳐오라고 분명 말했을텐데? "
성난인상은 덤으로 찬열은 00을 예의주시하였다. 사실 제 동생이라 더 무섭게 대한것은 인정해야할 부분이였다. 남에게 책잡힐 일을 절대적으로 싫어하는 찬열은 그 성격을 동생도 좀 물려받았음 하는 생각을 예전부터 가지고 있었다. 반면 찬열과는 정반대로 될대로 되라지, 주의의 00은 어제 찬열이 신신당부했었던 치마를끝끝내 고쳐오지 않았다. 물론 사정은 있었다. 학교 끝나자마자 바로 학원을 갔고 그 사의에 시간이 없었던것은 아니지만 그리 넉넉하지도 않았었다. 학원이 끝나니 11시가 넘는 시간이였고 그 시각 수선집이 열리 난무했다. 또한 찬열이 그리 무섭지 않았었다. 물론 '교복치마' 로 다툰적이 한두번이 아니였지만 몇대 맞긴 했어도 크게 혼난 기억이 아직까지 없어 생각보다 만만하게 본것도 사실이였다.
" 넌 조회 끝나고 바로 교무실로와 "
아이들은 웅성웅성 거렸다. 물론 00의 치마가 짧고 타이트하게 줄여져있었던것은 맞지만 그녀보다 더한 친구들도 많았다. 살벌했던 20분간의 두발, 복장검사는 아이들에게 무시무시한 벌을 안겨주며 끝이났다. 두발 규정에 걸린 친구들은 모두 각각 벌점 3점씩 부여하였으며 부모님께 따로 전화를 드렸고 반성문과 명심보감을 써오라는 숙제도 내어주었다. 또한 찬열은 그리 무자비한 선생이 아니였음에 이번주까지 머리를 바꿔오라는 약속확인도 받았다. 복장규정에 걸린 친구들도 마찬가지였다. 각 벌점 3점씩에 반성문과 부모님 전화, 그리고 이번주까지 복장을 완벽하게 바꿔오라는 등등의 훈화말.
역시나. 따로 상담실로 부른 케이스는 00밖에 없었다. 00은 나름대로 억울했다. 왜나만.. 이라는 생각을 갖자 그 생각에 끝이 없었다. 억울하기도 했다. 자꾸만 남과 비교하면 안된다는 마음 속에서도 ' 수지는 염색도 하고 파마도 하고 치마도 줄였는데.. ' 라는 억울함 속의 서러움까지 없애주진 못했다.
" 넌내말이 우습지. 내가 너보고 분명 치마 늘려오라고 말하지 않았냐? "
" .. ㄴ..네.. "
" 근데. 분명이 혼낼꺼라고 얘기도 한것같은데? 시간이 없었어? 뭐 이유가 있어? "
" 아니요.. "
분명 사실대로 학원에 바로가느냐. 라는 되도 안먹히는 이유를 말했다가는 더 혼날것을 누구보다 더 잘알았던 00이였다. 시간이 없으면 쪼개 쓰라는 이야기를 초등학생때부터 귀에 딱지가 박힐정도로 들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했을시 제 다리가 상담실에서 걸어 못나올것같다는 생각이 미쳐서 감히 말하지 못했다.
" 학교 놀러왔어? 니맘대로 할꺼면 학교왜다녀. 다니지마 그럼. "
" ..죄소..죄송합니다..흐으.. "
" 뭘잘했다고 울어. 내가 뭐 너 때렸어? 어? 눈물 안그쳐? "
집에서만 봤던 오빠가 학교에서까지 있으니 나름 갑갑한 마음이 들었다. 집에서도 유명한 시스터 콤플렉스때문에 이것저것 잔소리며 지켜야할것이며 나름의 규약이 많았었던 00이였는데 그나마 좀 편하게 숨쉴수 있었던 학교에서까지 찬열의 간섭이 시작되자 점점 짜증도 나면서 서럽기도 했다. 나한테만 뭐라고 그러고. 나만 혼내고.
" 내가 너 혼내는데 불만있어 없어 "
" ... "
" 왜. 다른 애들은 그냥 넘어갔는데 너만 이렇게 혼나니까 억울해?
" 아니..요오.. 끅. "
" 너도 그냥 모르는척해줘? 비뚤어나가던 날라리처럼 다니던 그냥 모른척해줄까? 어? "
혼을 내는 찬열의 목소리 톤이 높아졌다. 반성하는것 같으면서도 쭈뼛거림 속에 억울한 기색이 숨겨지지가 않는 00을 보며 답답하기도 하였다. 다 저 잘되라고 이러는건데 그걸 모르고 억울한 기색만 펼치는 00을 보고 있자니 어린티도 나면서 내앞에만 서면 어떻게든 세보이려 바락바락 대들던 모습도 보였고 또 언제 이렇게 커서 얌전히 제 잘못을 인정할줄도 알고. 눈물을 쏟지 않으려 두 입술을 앙 다물고 큰눈을 더 동그랗게 뜨고서는 참는 모습이 어른스럽게 느껴지기도 했다. 하지만 공은 공이고 사는사. 잘못한 일을 없던걸로 쳐줄순 없는 일이다.
" 책상잡아 "
결국 또륵, 하고 흘러내린 눈물을 손등으로 쓱쓱 닦더니 굳은 의지가 보이는 표정으로 눈을 꼭 감고 책상을 잡는다. 어제도 수업시간에 잤다는 벌목하에 엉덩이를 맞는 아이에게 또 엉덩이를 혼내도 되나, 싶었다. 하지만 여기가 집도 아니고 허벅지를 때리자니 자국이 너무 선명하게 보일터고, 종아리는 뭐 두말할것도 없고. 가져온 기다란 매를 제 종아리에 몇번 툭툭 쳐봤다. 적당한 강도를 파악해야 이정도면 됬다, 라는걸 알수 있기 때문이였다. 나 나름대로 흥분하지 않고 훈육하려 스스로 정한 룰이기도 했다. '몇대' 라는 짧은 물음에 말이 없었다. 저도 확실히 몇대. 라고 정의를 못내릴터이지.
사실 한대, 라고 말하면 정말 한대만 때려줄 심산이였다. 물론 잊을 수 없는 한대를 때렸겠지만 찬열은 그만큼 흥분하고 막 혼내고 때리는 그런 사람은 아니였다. 그로 인해 한번도 00이를 혼낼때도 10대 이상 넘어간 적이 없었다. 댓수에 따라 강도가 달라지는 것은 사실이지만 저 스스로도 10대가 넘어가면 훈육이 아닌 폭력으로 될 가능성이 있다 생각한것도 없지않아 있었다. 결국 끝끝내 고심하다가 ' 7대' 라는 00의 말에 다시금 제 종아리에 툭툭 매를 대던 찬열은 이내 맘먹었는지 어깨를 크게 들어 올렸다. '수세' 라는 말도 놓치지 않았다.
짜아아아아아아악 짜아아아아악
" 흐으으.. 하나.. 두울.. "
" 다시. 하나. 똑바로 안세면 안끝나. "
짜아아아아악
" 끅.. 하나 "
" 무릎펴. 엉덩이 더 빼. 자세지적까지 해줘야되? "
짜아아아아아악. 짜아아아아아악
" 끄흐읍.. 세엣.. "
" 잡소리 빼라. 눈물 안그쳐? "
명백한 댓수로는 '7대' 밖에 안됬지만 실상은 아니였다. 댓수가 적은대신 한대한대 반성하면서 혼나라는게 찬열의 생각이였다. 다시말하면 자세는 완벽해야하며 숫자 세는것은 더 완벽해야된다는 말이였다. 유독 적은 강도에 비례해 항상 아프게 매를 대던 찬열의 매는 어제보다 더 강해지면 강해졌지 결코 약하진 않았다. 아무리 어제 5대 밖에 혼나지 않았더래도 잔상은 남아 있을터, 그 위에 매를 덧대니 아픔이 배로 느껴지는 00이였다.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아아악
" 흐읍.. 다서..끅.. 흐으 "
" 다시 하나. "
" 흐읍.. 자롯.. 끅.. 잘못했어요.. "
" 눈물 그치라고 두번말했다. 발 구르지마. 똑바로 못서? "
억울한 마음이 서러움으로 변했다. 왜 저만 이렇게 크게 혼나야 하는건지. 고작 그것도 '교복치마' 같은 갖지 않은 문제로. 사실 00은 찬열을 좋아하고 장난도 많이 치고 해서 편한 감정도 있었지만 그 뒤에는 무서워하는 마음이 없지않아 있었다. 아주 드문 케이스였지만 문제를 일으켜 찬열에게 혼이날때만큼은 눈물 콧물 쏙 빼놓게 무서운 오빠라는걸 모르고 있지 않았다. 다섯대가 아닌 다섯대에서 다시 하나, 를 외치는 찬열이 미웠다. 저가 맞아보라그래. 안울수 있나.
짜악, 짜악, 덧대지는 맷소리에 찬열의 톤이 점점 올라갔다. 모든면에서 꼼꼼함과 깐깐함이 공존하는 찬열은 혼나는 자세에 대해 불량하다고 말하는 중이였다. 제대로 반성하면서 혼나라고 적은 댓수에 한대한대 모질게 세게 때리고 있는건데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계속 울기만 하고 똑바로 하지 않은 00이 더 답답했다.
짜아아아아악
" 흐끄흡... 네엣.. 흐으.. "
" 눈물 그치라고 세번째 말하는거야. 이제 말로 안해. 마지막 세대 반성하면서 똑바로 혼나. "
" 흐읍.. 흐으ㅡ. "
" 대답안하지. 어? "
" 네.. 끅.. 흡.. "
책상 모서리를 잡고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하지 못해 벅벅 문질러 군데군데 기초메이크업이 지워진 얼굴하며, 부들부들 간신히 잡은 작은 손 하며 울음으로 인해 약간씩 떨리는 어깨 하며, 뭣하나 예쁘지 않은 저랑 똑닮은. 동생이였다. 그런 동생을 감히 누가 혼내고 싶어 하나, 찬열 또한 혼내키기 싫었다. 다른 아이들처럼 벌도 주기 싫었으며 그냥 제 동생에게만큼은 좋은말로 ' 늘려와 ' 라고 해주고 싶었다. 하지만 현실은 그렇지 못했다.
짜아아아악 짜아아아아악
" 끄끄흐으으.. 여서.. 끄흡.. "
" 수 똑바로세 "
교무실에서 자꾸 00에 대한 애기가 나오며 고1때와 다르게 고2가 되고 점점더 불량해 지는것같다는 선배 선생님들의 이야기를 들어서 핀트가 나간것도 사실이였다. 혹여 제가봐도 많이 달라지긴 했다. 더 짧아진 치마 하며, 위에 입고다니는 사복만 봐도 충분히 겉멋이 들었다는걸 느낄수 있었다. 거기에 제가 학교에 와서 지켜보니 수업시간에는 매시간 잠만 자고 더 떨어진 성적에 찬열은 선생님들이 잘못생각했다고 생각했지만 이런 상황들로 충분히 오해할 만한 상황이라고 생각했다.
짜아아아아악
" 끕.. 끕.. 일.. 끅.. "
" 크게말해 "
" 일곱.. 흐으으엉.. 잘못했어요.. 끅.. "
그래서 더 모질게 굴었던 것도 있었다. 우리 00이는 절대 그런 아이가 아니라고. 이걸 다른 선생님들도 알아줬음 해서 작은 '교복치마' 부터 시작한 것이였다. 수업을 잘듣고 잠을 줄이고, 물론 다른 할수 있는 노력들도 많았지만 단기간에 선생님들에게서의 00이의 이미지를 바꾸놓는것은 역시 복장과 두발 , 출석 밖에 없었다. 또한 00뿐만 아니라 저와 3개월정도 있게될 반 아이들의 이미지를 조금이라도 바꿔주고 싶어 오늘 아이들을 그렇게 잡으면서도 두발검사와 복장검사를 다시한 이유도 있었다. 물론 00이 어떻게 깊은 찬열의 마음을 알려나마는.
" 뭘그렇게 잘못했는데. 들어나보자 "
" 흐읍.. 끅.. 치마.. 끅.. 치마 늘리라고했는데 안늘리고.. 흐읍.. "
" 또 "
" 끅.. 고갯짓... 하고.. 흐읍.. "
" 으휴, 애기야. 그만좀울어라. 응? "
게속해서 눈물을 흘리는 00이를 두고 상담실을 나가 교무실에서 휴지와 물 한컵을 떠갔다. ' 으휴 병신아. 너 또 00이 팼냐? 미친새끼 ' 종인이의 목소리도 들렸다. 저와함께 중고등학교 동창에서부터 같은 교대를 가서 이번에 같이 교생 실습나온 불알친구중에서도 불알친구였다. 물론 00이도 잘 알고 있는 친하게 지내는 오빠이기도 하고, 휴지와 물컵만 봐도 사이즈 나오는지 그새를 못참고 제 뒷통수를 휘갈기며 잔소리를 퍼붓는 종인이였다. '이따말해' , 종인이를 떼어놓고서는 다시 상담실에 들어왔다.
떨리는 어깨하며 헐떡거리는 호흡, 달라진건 없었다.
" 물좀 마셔. 눈물 닦고. "
" 하으.. "
" 오빠가 너 미워서 이런거 아닌거 알지? 너만 혼내서 억울해? "
" 그럼.. 씨이.. 억울하지. 다른애들이 더 잘못했는데.. 흐으. 오빠는 나한테만 뭐라그러고 진짜미워 "
" 으휴, 애기야. 널 더 아끼니까 너한테만 뭐라고 하는거야. "
" 됐어.. 끅.. "
" 어제 약 발랐어 안발랐어 "
" 흐으윽.. 끅.. "
" 안발랐지? 으휴 , 잘한다. 오늘은 야자하지마. 오빠랑 밥먹으러가자. 응? 화풀고 "
내가 화가 풀린걸 아는지 또다시 슬금 슬금 기어오르려고 하는 00이에게 한번더 엄하게 대하려 했지만 서러운지 계속 눈물을 쏟는 00이때문에 결국 계획은 무산됬다. 풀어헤친 머리를 두어번 쓸어주고선 일으켜 엉덩이를 톡톡 두드려 주고는 교실로 돌려보냈다. 절뚝절뚝 거리는 다리하며 뭔가 엉성한 걸음걸이가 눈에 밟히기도 했지만 제 갈길을 갔다
마른세수를 한번하고 텅빈 교무실 의자에 털썩 앉았다. 내가 지금 잘 하고 있는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