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미예수님
좋은 아침을 저희에게 주신 창조주이신 하느님께 찬미와 영광을 드립니다. 대부분의 종교가 내세사상 즉 죽음 뒤에 맞이할 세상에 대한 희망을 제시해주고 있다. 아울러 지옥에 대한 두려움도 함께 가지게 한다. 어릴 적에 불교포교원의 건물벽화에 그려진 그림은 어린 나에게 지옥에 대한 두려움을 갖도록 하였다. “ 죄인인 사람들은 벌어 벗은 소(小)인들로 펄펄 끊는 물에 들어가기 위해 순서대로 줄을 서서 기다리는 모습이다. 그리고 악마는 외눈박이 거인으로 한쪽 손에 긴 삼지창을 들고 사람을 한명씩 끊는 물속에 집어넣고 있는 모습과 한쪽에선 몸이 말라버린 사람들이 노동을 하고 있다.” 내가 생각하는 지옥은 그렇게 내 머리에 그려졌다.
이번주간의 복음의 내용은 하늘나라의 비유이야기입니다. 순서대로 살펴보면 씨 뿌리는 사람의 비유, 밀과 가라지, 겨자씨와 누룩, 그리고 오늘복음에 나오는 밭에 숨겨진 보물,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 바다에 던지는 그물의 비유 얘기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예수님은 구체적으로 말씀하시지 않으시고 머리 아프게 비유를 들고 계십니다. 하늘나라의 이미지는 환희, 기쁨 웃음, 밝음, 등 한마디로 행복이란 이미지가 떠오릅니다. 이처럼 하늘나라는 장소의 개념이 아니라 어떠한 상태적 개념이므로 쉽게 이해될 수 있도록 비유를 들어 말씀하십니다.
오늘복음에서는 하늘나라는 숨겨진 보물과 같습니다. 밭의 주인이 아닌 이상 밭에 숨겨진 보물을 발견한다는 것은 그 밭에 일하는 일용직 노동자임을 추측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하루 품을 팔아 살아가는 일용직 노동자가 알뜰살뜰 모은 전 재산을 다 팔아 밭을 사는 것을 보면 밭에 묻힌 보물이 얼마나 많겠습니까?
옛날에는 전쟁이 많아 보물을 안전하게 밭에 파묻어 숨겨두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 그랬든 것이 시간이 많이 흘러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혀 지게 됩니다. 로마법에 따르면 밭의 주인이 보물이 묻힌 것을 모르고 팔았다면 그 밭을 산 사람이 보물의 주인이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여 횡재하는 경우가 옛날에는 종종 있었다고 합니다.
또한 하늘나라를 좋은 진주를 찾는 상인에 비유합니다. 좋은 진주를 찾은 상인도 가진 것을 다 팔아 그 진주를 사게 됩니다. 상인의 눈에 띄는 진주는 아마도 지금까지 본적이 없는 최고의 가치가 있는 진주라는 것을 유추할 수가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하늘나라를 그물에 비유하고 있습니다. 그물은 교회를 상징하며 선한사람이나 악한 사람이나 다 같이 공존하며 살아가는 곳으로 해석 되어왔습니다. 밀과 가리지의 비유와는 달리 여기에서는 좋은 고기를 그릇에 담고 나쁜 고기는 버린다고만 언급할 뿐 구체적으로 어떻게 처리할지 방법이 나오질 않는다. 당시의 나쁜 고기의 기준은 두 가지 기준입니다. 먹을 수 있느냐?, 레위기 11장 10절의 율법에 허용된 깨끗한 고기냐? 입니다. 이처럼 물고기는 나면서부터 운명이 정해지지만 사람들은 하느님의 말씀에 따를 것인지 말 것인지 선택할 수 있습니다.
곧 자신의 운명을 자기가 선택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종말에 가라지가 단으로 묶어 불구덩이 속에 던져지는 것처럼 그물에 걸려온 고기들은 어부의 손에서 좋은 고기와 나쁜 고기로 추려내게 됩니다. 아마도 여기서 주목할 것이 어부의 손에 좋은 고기들이 선택받는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이제 하늘나라가 어떤 곳인지 느낌이 오십니까? 강론을 준비하는 저도 헷갈리네요. 오늘복음을 준비하면서 한 가지 공통점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바로 하늘나라는 드러나지 않고 감춰져 있다는 사실입니다. 물론 감춰진 하늘나라는 찾는 사람의 차지가 되는 것이구요! 보물이나 진주나 좋은 고기들은 각각 일용직 노동자, 상인, 어부의 눈에 띄어야 합니다. 얼마나 기쁘겠습니까? 밭에서 보물을 찾고, 값진 진주를 찾고 좋은 고기를 추리 내는 기쁨이…….
한 주간 하늘나라에 대해 묵상해 보면 “하늘나라는 파랑새이다.” 라고 표현하고 싶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파랑새라는 동화입니다. 파랑새를 찾아나서는 두 아이는 진정한 행복의 의미를 깨닫게 됩니다. 행복은 결코 찾을 수 없으며 조건이나 환경에 의해 생겨나는 것이 아닙니다. 행복은 이미 내가 태어날때부터 가지고 태어났기 때문입니다.
혹시 죽어야 가는 하늘나라가 지금 여기에 이미 와 있지만 보지 못하는 것은 아닐까요? 그래서 하느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가운데 와 있지만, 아직 완성되지는 않았다는 표현을 사용하게 됩니다. 행복이 가득한 하늘나라에 가기위한 선택은 우리자신에게 주어져 있습니다. 하늘나라가 이미 지금 여기에서 실현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저는 감히 여러분에게 말하고 싶습니다.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라 이미 태어나면서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행복입니다.”
첫댓글 산부님!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라 이미 태어나면서 우리들 마음 안에 있는 행복입니다,,라는
말씀 마음 깊이 새기며 살고 싶습니다 신부님의 긍정적인 사고방식도 본 받으며 살아야 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신부님 힘 내세요 *^^*
"하늘나라는 우리들 마음안에 있는 행복입니다."
마음안에 있는 행복을 잠자지 못하게 자주 흔들어 깨워야 함을 잊지 않게 하소서...
늘~~건강하세요 감사합니다.
네 감사합니다. 파랑새 동화를 생각하며 내안의 행복을 찾으려 해도 가끔은 또 헤매이게 될때가 있어요.
내 십자가가 무거워 내려 놓고 좀 더 가벼운 십자가를 찾아 헤매이다 결국 가볍다고 찾은 것이 처음에 무겁다고
내려 놓은 제 십자가였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는데, 이 대목을 기억하며 지금의 십자가를 기꺼이 지고 가렵니다.
하늘나라는 마음의 행복 입니다
샬롬!...
"하늘나라는 죽어서 가는 장소가 아니라 이미 태어나면서 우리들 마음안에 있는 행복입니다."
신부님! 아멘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