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수행이야기]〈22〉수행을 통해 정각을 이룸은 누구에게나 평등하다
여인도 출가해 해탈할 수 있다. 그런데 왜?
케마는 왕비 출신으로 아라한과 성취
남녀 모두 깨달을 수 있어 승가 이뤄
케마(Khema)는 마가다국의 왕비 출신으로 아라한과를 성취한 비구니 스님이다. 스님은 부처님을 친견하기 위해 허공을 날아 부처님이 계신 곳으로 갔다. 마침 부처님께서 지상으로 내려온 삭까 천왕과 그 권속들에게 설법을 하고 있었다. 케마는 부처님께서 설법하는 모습을 보고, 공손히 인사만 하고 그 자리를 떠났다. 이를 본 삭까 천왕이 부처님께 여쭈었다.
“저 비구니는 누군데, 허공중에서 부처님께 인사만 하고 떠납니까?” “삭까여, 저 비구니는 나의 딸 케마로서 지혜가 매우 깊고 뛰어나다. 나는 케마를 비구니 가운데 ‘지혜제일’이라고 부른다.”
부처님의 뛰어난 비구 십대제자가 있었던 것처럼, 비구니 가운데서도 뛰어난 십대제자가 있었다. 사리불 존자가 지혜제일이듯이 케마는 비구니 가운데 지혜제일이었다.
목련 존자처럼 신통제일이라고 칭한 웃빨라완나, 우바리 존자처럼 계율제일인 빠따짜라, 부루나 존자처럼 설법제일인 담마딘나, 가섭 존자처럼 평생 낡은 가사를 걸치고 수행한 조의제일(組衣第一)인 끼사고따미가 있었다. 또한 정진제일의 소나, 선정에 뛰어난 난다, 첩혜제일(捷慧第一)의 밧다 꾼달라께사, 숙명통에 뛰어난 밧다 까삘라니 비구니가 있었다. 또 와지라 비구니는 5온가아(五蘊假我)로 무아를 깨달은 분이다. <잡아함경>에 수록된 와지라의 게송은 무아와 공을 설명하는데 가장 적합하다.
이렇게 초기불교 경전에 정각을 이룬 비구니가 자주 등장하는데, 모두 비구들과 똑같은 경지인 아라한과를 얻은 경우이다. 그 단적인 예가 장로와 장로니의 깨달음을 읊은 게송집이다. 빨리 삼장 중 소부(小部) 경전에서 <장로니게> <장로게>에는 비구(264인)의 1279개의 게송이 수록되어 있으며, <장로니게>에는 비구니의(92인) 522개의 게송이 수록됐다.
부처님께서 바라문사회에 대한 제사의식이나 카스트 제도에 반발해 출가함으로부터 시작된 불교인지라 이 교단에 여성 출가가 용인된 것이 당연하다고 본다. 당시에 인도 사회 여건상 여성이 출가해 밥을 빌어먹는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기 때문에 부처님께서 잠시 망설이던 차였다. 그런데 아난 존자의 “법 앞에 남녀 구별이 없고, 진리 앞에 누구나 평등하다고 하면서 왜 여인 출가는 반대하십니까?”라는 도발적인 질문에 부처님도 여성 출가를 허락했다.
고대로부터 2500년이 흐른 지금까지 왜 승려는 출가해 수행하는 걸까? 그것은 무언가를 굳게 믿기 때문이다. 바로 내가 부처될 성품을 가진 존재임을 믿기 때문에 세속을 떠나 출가자의 삶을 선택하는 것이다. 이 점은 비구나 비구니 모두 마찬가지라고 본다. 이 또한 간화선의 3대요소인 대신근(大信根)이기도 하다. 그런데 이렇게 출가한 이 교단에서 비구니는 단지 여성이라는 점, 그 하나만으로 왜 ‘승려’라는 동등한 권한을 부여 받지 못하는 걸까?
여인도 출가해 해탈할 수 있다는 것, 누구나 청정한 불성(자성)을 가진 존재로서 깨달을 수 있다는 신념이 있기에 비구니는 승가의 한 무리가 되었고,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열반경>에는 ‘모든 중생이 다 불성을 가지고 있다’고 하였고, 더 나아가 ‘초목국토인 무정물도 다 성불한다’고 하였다. 이렇게 중생 평등이라는 뛰어난 진리(理)를 가진 불교이건만, 현실적으로 승려들의 삶(事)에는 왜 차별이 있는 걸까? 참다운 이사원융(理事圓融)이 되지 못한다면, 자성과 쇄신 결사는 한낱 장식품에 불과할 것이다.
시대가 변하고 있다. 변하는 시대에 적응하지 못하는 종교와 학문은 도태되기 마련이다. 이 변한다는 자체가 부처님께서 말씀하신 무상(無常)의 진리이건만, 훌륭한 스승의 가르침을 왜 제자들은 역행하는지 알 수가 없다.
정운스님… 서울 성심사에서 명우스님을 은사로 출가, 운문사승가대학 졸업, 동국대 선학과서 박사학위 취득. 저서 <동아시아 선의 르네상스를 찾아서> <경전숲길> 등 10여권. 현 조계종 교수아사리ㆍ동국대 선학과 강사.
[출처 : 불교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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