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애중인 남녀사이에서 외모는 대부분 중요한 이슈가 된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그 장벽을 뛰어넘기가 어려운 모양이다.
전신 3도 화상을 극복하고 한동대 교수가 된 이지선씨가 결혼을 안하는 것을 보면(못하는 건지, 안하는 건지...) 외모에서 충격을 받거나 트라우마를 느끼면 관계에 금이 가는 모양이다. 아니면 애시당초에 좋은 관계로 발전하기 어렵거나.
하나님은 외모를 보지 않으시고 마음의 중심을 보신다는데 그것은 이 세상에 적용되지 않는 참 이상적인 말씀이다.
외모만큼 중요한 것이 성격이다. 외모가 안따라주면 성격이라도 틔여 있어야 한다. 성격이 적극적이고 활발하면 외모의 부족함이 커버된다.
그런 생각을 하며 가진 것이 없는 초라한 내 모습을 본다. 외모도 볼품없고 성격도 내성적이라 이 사랑에 실패하고 저 사랑에 배신당하고...
이렇게 살게 된 것도 외모와 성격 때문인 것 같다.
죽기 전에 내 모습 그대로 받아줄,
주님을 그리워하는 좋은 사람을 만날 수 있을까.
외모와 성격이 열악한 사람도 사랑을 이룰 수 있기는 한 것일까. 내 경험으로 보아서는 부정적인 답이 나오지만 티비나 책에 보면 그보다 더한 사람도 결혼을 하고 산다.
어떤 할아버지가 쓴 회고록에 보니 자신은 맹인인데 맹인인 여자를 만나 자식을 여럿 낳고 살았다. 그 자녀들이 장성해서 부모님을 모시는데 얼마나 효자들인지 모른다.
그런 예뿐만 아니라 별일이 다 일어나는 요지경 세상이고 별별 커플이 다 있기도 하다. 그런데 나는 왜 아직 짝지를 못 만났는지 모르겠다. 이 세상에서 나와 닮은 반쪽을 아직 찾지 못했다는 것이 아쉽다.
오십대 중반 안에 짝지를 만났으면 좋겠다.
나는 외모와 성격때문에 사랑을 여러 번 이루지 못했다. 아마 생활 수준의 차이가 너무 많이 나는 사람들을 만나서인 듯 하다.
한 사람은 서울대 의대를 졸업한 내과 의사였는데 재산이 많은 사람이었다. 그 사람과는 집안 때문에라도 사랑이 이루어지지 않았겠지만 내 외모가 출중하고 성격이 좋았다면 집안문제를 극복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도 해 본다.
또 다른 사람은 외국인인데 정치인이었다. 그 사람과는 좀 더 진실한 사랑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그 사랑도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유는 모르겠지만 내 생각에는 내 외모나 성격과 상관이 있는 것 같다. 그 사람에게 사정이 있긴 했지만 우리가 연애도 해보지 못한 것은 분명 그런 원인 때문일 것이다.
앞으로는 이룰 수 있는 현실적인 사랑을 해야 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 나의 외모나 성격을 있는 그대로 이해해주는 사람, 함께 의지하며 인생의 황혼을 보낼 수 있는 사람이면 좋겠다. 그리고 내가 좋아해야 하는데, 좋아하는 데 이유가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서로 조금 좋아하고 친하면 된다고 생각한다.
짝지도 없고 자식도 없으니까 심심하고 공허하다. 왜 살아야하는지를 모를 지경이다.
게다가 나는 한때는 정말 사랑했던 사람들과의 결혼에 실패하면서 자신감이 없어졌다. 원래 소심했지만 더 소심해졌다. 사랑이 떠나기 전에는
다른 사람들 앞에서 소심한 척 했지만 지금은 진짜로 소심해졌다.
그런데 천만다행인 것은 내가 남자를 의지하긴 했지만 하나님을 믿고 의지했기에 천국백성이라는 자존감은 남아있다.
이 세상에서 내 정체성은 초라하지만 저 세상에서 내 정체성은 예수님의 신부이길 기도해본다. 달같이 뚜렷하고 해같이 빛나는, 군대같이 위엄있는 당당한 신부이고 싶다. 그에 합당하게 살고있지 못하지만 아버지께서 내 젊은 날을 어여삐 여기시기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