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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문은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창26:1a)라고 시작됩니다. “흉년”은 대흉년을 가리킵니다. 팔레스타인 지역은 척박했습니다. 기근은 흔한 일이었습니다. 대흉년은 그렇지 않았습니다. 비와 이슬에 의지해서 농사를 짓고 있었던 팔레스타인 사람들의 생계에 막대한 손해를 끼쳤습니다. 창세기에서만 모두 세 번 발생합니다. 성민 이스라엘의 3대 족장이었던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때입니다. 하나님을 떠난 것도 모자라 맞서 대적하는 어두운 세상에서 믿음의 계보를 잇고 있었던, 외롭게 믿음의 싸움을 싸우고 있었던 특별한 사람들이 활동하던 때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한 비상한 섭리 곧 목적이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성경 전체를 볼 때,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기 위해서입니다. 모든 일은 저와 여러분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친히 이루신다는 사실을 가르쳐 주시기 위해서입니다. 본문은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창26:1b)라고 이어집니다. “그랄גְּרָר(게라르)”은 “톱으로 켜다, 치다, 잡다, 소멸하다, 새김질하다, 거칠게 이끌다, 회오리치다” 등의 뜻을 가진 단어גָּרַר(가라르)로부터 파생되었습니다. 하나님께 제물로 바칠 짐승을 잡는 행동들과 관련되어 있습니다.
구별된 짐승은 죽임을 당합니다. 물과 피를 다 흘립니다. 조각조각 해체됩니다. 내장은 따로 구별됩니다. 불에 태워집니다. 마침내 흔적도 없이 사라집니다. 인간의 허물과 죄를 없애기 위해 자신을 희생합니다. 짐승의 입장에서는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고통스럽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역시 당신을 철저히 부인하셨습니다. 지우셨습니다. 견디기 힘든 고통과 핍박과 조롱과 멸시를 받으셨습니다. 심지어 죽임까지 당하셨습니다. 허물과 죄로 죽은 인류 구원을 완성하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아버지 하나님 한분만 드러내셨습니다. 이삭에게 그랄은 그런 곳이 되어야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가 자신을 철저히 지우도록 만들기 위해서 예비하신 풀무였습니다. 그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땅에 감당할 수 없는 대흉년이 몰아치자 갈팡질팡했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과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머물라고 명령하신 땅을 떠났습니다. 어쩔 수 없는 존재라는 사실을 여실히 드러내고 말았습니다. 사람들은 하나님 명령에 온전히 순종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최소한 먹고, 입고, 마실 것 정도는 걱정하지 않도록 해결해 주셔야 되는 것 아니냐고 생각합니다. 현실은 생각과는 많이 다릅니다. 당장 끼니조차도 해결할 수 없을 만큼 심각한 흉년이 엄습합니다.
견디기 어렵습니다. 나아질 여지조차 보이지 않습니다. 물론 처음에야 어떻게든 견뎌보려고 몸부림칠지 모르겠지만, 어려운 상황이 계속 이어지면 당황합니다. 제풀에 지칩니다. 하나님 뜻이고, 뭐고 돌아볼 여력도 없습니다. 끼니를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찾습니다. 그러다가 찾지 못하면 더 이상 약속의 땅이고 뭐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미련 없이 떠납니다. 이삭이 그랬습니다. 이방인들이 거주하는 땅으로 들어섰습니다. 하나님에 대해서 무지한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땅이었습니다. 하나님을 외면하는 땅이었습니다. 지극히 인간적인 방법을 선택했습니다.
양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 때문이었습니다. 헛된 욕심을 채우기 위해서라기보다는 흉년을 견디기 위해서였습니다. 살아보려고 몸부림치는데 딱히 뭐라고 할 수도 없어 보입니다. 충분히 설득력이 있어 보입니다. 분명 “그래도!”라고 말하는 분도 있겠지만 자신에게 일어난 일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남의 일이기 때문입니다. 막상 혹독한 인생의 흉년을 만나면 말처럼 쉽지 않습니다. 견디기 어렵습니다. 아주 넘어져서 아니 내동댕이쳐지듯 고꾸라져서 일어나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자신은 얼마든지 참고 견디며 마침내 이길 수도 있다고 장담하지 말아야합니다.
하나님 사람이 어떻게 그 정도도 이겨내지 못하는 것이냐고 판단하거나 정죄하지도 말아야합니다. 본문은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창26:2)라고 이어집니다. “여호와”는 당신의 사랑하는 백성들에게 복된 언약을 베푸시는 하나님입니다. 베푸신 언약은 상황이 아무리 나쁘게 돌아가도 반드시 이루어 주시는 하나님입니다. 신실한 하나님입니다. 또 “나타나ראה(라아)”는 “감찰하다, 택하다, 주목하다, 드러내다” 등의 뜻입니다. 이삭은 그랄에 도착해서도 여전히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습니다.
과연 어떻게 하는 것이 옳은 일인지 고민에 고민을 거듭했습니다. 그렇다고 뾰족한 수가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고민만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졌습니다. 여호와께서 그런 그를 주목하셨습니다. 지켜보셨습니다. 그가 그랄에 도착하자마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그랄로 이끄시기 위해 대흉년을 허락하셨다는 느낌을 지울 수 없습니다. 반드시 이루셔야할 일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를 철저히 지우셔야 했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살펴보겠지만, 이어지는 내용에 따르면 그는 자신의 안전과 평안을 위해서 아내를 누이라고 속입니다.
아내를 잃을 상황에 직면합니다. 하나님께서 건져주십니다. 농사를 짓습니다. 하나님께서 100배나 되는 열매를 주십니다. 완벽한 축복입니다. 블레셋 사람들이 그런 그를 시기합니다. 우물을 메워버립니다. 장소를 옮겨 새로운 우물을 팔 때마다 득달같이 달려와서는 시비를 겁니다. 짐승을 치는 입장에서는 보통 곤란한 일이 아니었습니다. 천신만고 끝에 겨우 물을 얻었지만, 블레셋 사람들의 압력은 그때까지도 끝나지 않았습니다. 더 이상 그랄에 머물 수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브엘세바로 올라갔습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이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던 장소였습니다.
그날 밤, 여호와께서 그를 찾아오셨습니다. “나는 네 아버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다. 너는 두려워하지 마라. 내가 내 종 아브라함을 위해서 너와 함께 있겠고, 너에게 복을 주며 많은 자손을 줄 것이다.”(창26:24)라고 약속하셨습니다. 천군만마를 얻은 느낌이었습니다. 그곳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여호와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장막을 치고, 다시 우물을 팠습니다. 동시에, 그랄 왕이 군대장관들과 함께 찾아왔습니다. 그동안 여호와께서 이삭과 함께 하시는 증거들을 쭉 지켜보고 있었다고 고백했습니다. 서로 공격하지 않는 불가침 조약을 맺자고 제안했습니다.
미리 안전장치를 마련해 두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랄 왕이 그를 두려워하고 있었다는 증거입니다. “그대야말로 정녕 여호와께 복을 받은 사람이요.”(창26:29b)라는 덕담까지 덧붙였습니다. 사실이었습니다. 불가침 조약을 거절할 이유가 없었습니다. 이튿날 아침 일찍 서로 조약을 맺었습니다. 미처 환송을 끝내기도 전에, 파고 있던 우물에서 물이 나왔다는 소식이 들려왔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은혜였습니다. 더할 나위 없는 축복이었습니다. 이삭은 비로소 죽으나 사나 머물러 있어야할 자리가 어디인지 깨달았습니다. 오직 여호와 하나님 한분께 집중하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여호와께서 의도하셨던 성숙한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났습니다. 여호와께서 그가 그랄로 내려가는 것을 막지 않으셨던 이유입니다. 아무튼 여호와께서는 그에게 이집트로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더 이상은 내려가지 말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랄이 비록 담금질하는 풀무처럼 견디기 힘든 장소라 할지라도 거기 머물러 있으라고 명령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문을 열어주지 않으실 때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습니다. 금하실 때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모를 뿐입니다. 당연히 선합니다. 마땅히 순종해야합니다. 아무리 힘들어도 열어주실 때까지 믿음으로 기다릴 수 있어야합니다. 겸손히 자신을 돌아볼 수 있어야합니다.
본문은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창26:3a)라고 이어집니다. “거류하면”을 직역하면 “거처하라”입니다. 대흉년으로 어렵겠지만 이집트까지는 내려가지 말라는 명령입니다. 명령에 순종하면 ① 친히 임재 하여 그와 함께 동행 하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임마누엘입니다. 은혜입니다. 베드로를 정신 차릴 수 없을 정도로 황홀하게 만들었습니다. 자신이 무슨 말 하는지조차 모르게 만들었습니다. 돌에 맞아 피투성이가 된 채 죽어가는 스데반 얼굴을 천사처럼 빛나게 만들었습니다. 이후, 하나님께서는 그의 후손 이스라엘 가운데 임재 하여 함께 동행 하셨습니다.
모세 때는 친히 성막에 임재 하여 함께 동행 하셨습니다. 솔로몬 때는 친히 성전에 임재 하여 함께 동행 하셨습니다. 이는 장차 이루어질 일에 대한 그림자에 불과했습니다.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이르자,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늘의 보좌를 버리셨습니다. 낮고 천한 인간의 몸을 입으셨습니다. 허물과 죄에 찌들어 있어서 다시는 돌이킬 수 없는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마땅한 패역한 세상에 당신을 나타내셨습니다. 친히 임재 하셨습니다. 함께 동행 하셨습니다. 인류 구원을 완성하기 위해 죽으셨습니다. 창세 때부터 계시된 아버지 하나님의 약속을 완벽하게 성취하셨습니다.
“그 날이 오면...내가 아버지 안에 있다는 것과 너희가 내 안에 있고 내가 너희 안에 있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이다.”(요14:20)라는 약속대로, 오늘 저와 여러분 가운데는 다른another 보혜사이신 성령으로 친히 임재 하여 계십니다. 동행하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 허물과 죄로 찌들어 죽었던 저와 여러분을 선택하셨습니다. 살려내셨습니다. 거룩한 성전으로 구별하셨습니다. 친히 임재 하여 계십니다. 모든 순간, 모든 환경과 상황 속에 동행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저와 여러분 안에, 저와 여러분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 거하는 놀라운 은혜입니다.
저와 여러분은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놀라운 은혜를 이미 받았고 또 누리고 있습니다. ② 당신 명령에 순종하면, 복을 부어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본문은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창26:3b-4)라고 이어집니다. 복이 무엇인지 구체적으로 계시되고 있습니다. 먼저, 번성입니다. 그의 후손이 수를 헤아릴 수 없는 하늘의 별같이 많아진다는 의미입니다. 장차 나타나게 될 그리스도인들을 가리킵니다.
저와 여러분도 포함되어 있습니다. 또, 땅입니다. 지경이 크게 확대된다는 의미입니다. 복음의 영역과 영향력을 가리킵니다. 제한이 없습니다. 걷잡을 수 없이 커집니다. 어떤 환경, 상황, 조건, 체제도 막을 수 없습니다. 누구도 막을 수 없습니다. 사탄이 아무리 미쳐 날뛰어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와 여러분이 비록 어렵고 죽을 만큼 힘들어도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땅에 머물러 있으라는 명령에 온전히 순종할 때 부어지는 축복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마치 들불처럼 온 세상을 뒤덮습니다. 또 장차 나타날 이삭의 후손들을 통해서 천하 만민이 받게 될 복입니다.
“복을 받으리라”를 직역하면 “자신들을 스스로 축복하게 될 것이다”입니다. 재귀 형입니다. 천하 만민 스스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씨 곧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부어지게 될 축복을 사모하게 된다는 의미입니다. 이 복은 먹고, 마시며, 입을 것 정도가 아닙니다. 지극히 영적입니다. 궁극적입니다. 영원한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입니다. 누구든지 다 받아야합니다. 저와 여러분이 주어진 자리에서 죽도록 충성할 때 부어집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호령과 천사장의 소리와 하나님의 나팔 소리와 함께 친히 하늘로부터 세상에 강림하실 때 완벽하게 이루어집니다.
본문은 “이는 아브라함이 내 말을 순종하고 내 명령과 내 계명과 내 율례와 내 법도를 지켰음이라 하시니라”(창26:5)라고 마무리됩니다. “명령, 계명, 율례, 법도”는 하나씩 따로 떼어 설명할 수 있지만, 엄밀한 의미에서는 하나입니다. 하나님 말씀입니다. 참된 그리스도인들은 계시된 하나님 말씀을 읽습니다. 은혜 안에서 깨닫습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전심을 다해서 순종합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언약하신 복을 받습니다. 누립니다. 그것으로 끝이 아닙니다. 영혼이라는 천하보다 귀한 열매까지 맺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삭을 그랄이라는 풀무 속에 집어넣으신 목적입니다. 연단하신 목적입니다. 사실 인생의 대흉년을 만나게 되는 이유는 여러 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십니다. 사탄도 줍니다. 죄 때문에 주어질 수도 있습니다. 하나 같이 하나님께서 허락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들 곧 하나님의 뜻대로 부르심 받은 사람들에게는, 모든 일들이 서로 협력해서 선을 이룬다는 것을 우리는 압니다.”(롬8:28)라는 증거대로, 목적은 하나님만 알고 계시는 선을 완성하기 위해서입니다. 어떤 이유에서 인생의 흉년을 만나게 되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인생의 흉년도, 사탄이 준 인생의 흉년도 마침내 하나님의 선으로 귀결됩니다. 죄 때문에 만나게 된 인생의 흉년도 마찬가지입니다. 마침내 선이 됩니다. 저와 여러분이 상상도 하지 못했던 유익이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인생의 흉년을 만나게 된 원인을 스스로 분석하고 해결방법을 찾으려고 하기보다는, 그것을 선과 유익으로 바꾸시는 하나님께 초점을 맞춰야합니다. 한편, 동-광석銅鑛石 곧 구리가 들어 있는 광석을 1000도 이상의 용광로에 제련하면 먼저 동이 나옵니다. 두 번째 제련하면 은이 나옵니다. 세 번째 제련해야 비로소 금이 나옵니다.
이때까지 약 40일 정도가 걸립니다. 이후 다시는 광석으로 돌아가지 않습니다. 제련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온도를 적당하게 유지하는 일입니다. 조금이라도 높아서도 안 되고, 낮아서도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제련사의 사전에 “적당히”라는 말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불순물이 거의 완전히 제거되면, 금의 표면은 장력張力을 일으킵니다. 평평하게 펴지기 시작합니다. 동시에 구슬땀을 흘리고 있던 제련사의 얼굴이 희미하게 나타나기 시작합니다. 이때 제련을 멈추지 말아야합니다. 나타난 제련사의 얼굴이 선명해 질 때까지 쉬지 않고 계속 제련해야 합니다.
이렇게 탄생한 금은 순도에 따라서 “Four Nine99.99, Five Nine99.999, Six Nine99.9999, Seven Nine99.99999” 네 가지로 분류됩니다. 당연히 최고의 금은 Seven Nine99.99999입니다. 저와 여러분을 향한 하나님의 꿈은 순도가 가장 높은 Seven Nine99.99999입니다. 적당히 제련하지 않으십니다. 지극히 육신적이고, 이기적이고, 자기중심적인 저와 여러분이 흔적도 없이 완전히 지워질 때까지 혹독하게 제련하십니다. 당신 한 분만 믿고 의지할 때까지 제련하십니다. 비록 죽을 만큼이나 어렵고 힘겨울지라도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자리에 머물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혹독하게 제련하는 하나님 손길에 자신을 온전히 맡길 수 있는 은혜를 구하십시오. 그것을 통해서 Seven Nine99.99999같은 믿음의 사람으로 거듭날 수 있을 뿐 아니라 성령께서 임마누엘 하셔서 함께 동행 하시는 복된 삶, 무수히 많은 영혼들을 예수 그리스도께로 인도하는 복된 삶, 복음이 온 세상을 들불처럼 완전히 뒤덮는 놀라운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삶, 영혼들로 하여금 구원과 생명과 하나님 나라를 사모하게 만드는 선한 도구로 쓰임 받는 복된 삶, 무엇보다 고해와 같은 인생을 사는 동안 만나는 모든 일들이 합력하여 선이 되게 하시는 하나님 역사를 경험하는 복된 삶을 사는 저와 여러분 되시기를 주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