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117년만에 폭설이 내린 날 세 친구기 관악산등산을 하는 것을 보고 내심 부러웠었다. 그러던 차에 마침 일요일 날(12월1일)
날씨가 풀려서 청산회회원들과 청계산을 올랐다.
삼계가 9시30분에 청계산역에서 만나자고 방을 내었다. 예정된 시간보다 조금 이르게 도착했더니 사람들이 많아서 북새통이었는데 삼게가 날 불렀다. 얼마 있다가 달마가 왔었다. 그런데 누군가 30분 늦게 오겠다고 통지해왔다. 역사 안이 수많은 사람들로 붐벼서 성가시게 느껴졌다. 그래서 밖으로 나와서 마냥 기다리다가 10시에사 만나서 넷이서 청계산으로 향했다.
산으로 가는 원터골 터널에는 주인들은 안보이고 푸정거리들이 널려있었다. 달마가 앞장서 가는데 등산용품상가쪽를 지나서 하천을 따라가는데 길가에는이번 폭설로 쓰러진 소나무가 잘려서 정리되어 있었다.방송에 들으니 '이번 폭설로 헌법재판소의 백송도 찢어지고 총리공관의 노송도 갈라졌다'고 전하자 누구는 '그건 정말로 큰 일이세...'했다.
이어서 진달래능선길로 가다말고 달마의 코스로 가는데 이참에는 무너진 소나무가 길을 막아서 잡목들을 헤치며 어렵사리 돌아서 갔다. 산등성이에 이를무렵 더 올라가면 눈이 녹아서 없어질 것 같아서 가던 길을 멈추고 기어이 도통한 흰눈을 배경으로 인증샷을 찍기도 했다. 드디어 산등성이로 난 등산로로 접어드니 사람들이 질척거리는 길을 줄지어서 지나갔다.
어려운 눈언덕을 헤치고 오는 통에 일행들이 흩어져서 중간 쉼터에서 기다리기로 했다. 마침 자리를 빼는 일행들이 있어서 벤치 두개를 차지했다. 그런데 한 개는 젖어있어서 하는 수 없이 땀받이 수건을 깔고 앉아서 잠깐 휴식을 취했다. 그 사이 용천한테서 전화가 오다가 끊기고 다시 오다가 끊겼다. 우리들은 '용천이 온다고 신고가 없었는데 어쩜 따라서 붙들려고 그러는가? 싶다'고했다.
일행들이 다시 합류해서 삼거리로 올라가는데 '오를 때는 계단으로 오르고 내려올 때는 돌아서오자'고 제안했더니 모두 좋다고 했다. 계단에는 사람들 발길이 닿는 곳은 얼음이 없었으나 그렇지 않는 곳은 엄청 두껍게 멀어붙었었다. 삼거리에 도착하여 벤치에 앉을 때 건너편 할배들끼리 하는 말이 '아군이여? 적군이여?'하는 말이 6.25를 겪은 세대들이 전쟁놀이를 하는것같았다. 다시 용천한테서 전화가 왔다가는 또 끊기는 일이 반복되었다.
잠깐 쉬었다가 옥녀봉쪽으로 발길을 돌려 몇 걸음 갔었을 때 왠일이야!..., 친구들 말이 '용천이 아닌가?' 아니 '용천은 아니고 아바타가 대신 욌느냐?고 조크했다. 용천의 이야기를 들으니 온다는 신고는 하지 않고는 10시경에 청계산입구역에서 '우리들이 먼저 출발한 것으로 여기고' 열심히 올라왔단다. 인자 일행이 다섯이나 되니 즐거움이 배가 되었다.
앞서거니 뒤따라가거니 질척거리는 산길을 사람들과 비껴가면서 옥녀봉으로 향했다. 누군가 옥녀에게 서둘러 가다가는 그만 넘어진 나무가지에 걸려서 넘어질뻔했다. 중간에는 텀불링베드처럼 생긴 소나무가 폭설에 그만 찢어지고 갈라져서 속살을 멀거니 드러내고 있었다. 그 주변을 돌아서 더 나아가지 이번에도 또 소나무가 갈라지고 넘어졌는데 친구들 말이 '용천, 지네가 올라붙어서 그런 거 아니냐?'고 느닻없는 탓을 했다.
계단을 두어차레 지나고 드디어 옥녀봉에 도착했다. 날씨가 따뜻해서인지 사람들이 부지기수로 많았다.몇 사람이 옥녀봉표지판 앞에서 사진을 찍기에 보았더니 웬지 휭하다 싶어서 자세히 보니 간판 앞을 가려주었던 소나무가 무너져 내려앉았다. 그래도 그들은 사진을 찍는데 열중했다. 관악산을 바라보기에 좋은 전망대 한쪽도 나무가 무너저 널부러져 있었다.
우리들은 우리들의 아지트인 야외식탁으로 이동해서 자리를 잡았는데 정곡이 깔판을 빌려주었다. 雪松下 간식거리를 먹었는데 곡차도 없었고 심도 없어서 너무 심심했다. 무사히 내려와서 제주도집에 들려서 돼지고기찌게에 막걸리를 먹었는데 가격은 싸고 맛은 있었다. 요새말로 가성비가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