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위와 품위
권자이
권위의 그림자는 품위여야 한다. 권위가 품위의 그림자를 지우면 어항 속 참새가 된다. 얼마 전 강남 모 초등학교 학생이 교사를 구타해서 젊은 여교사가 학교에서 목숨을 끊는 사건이 있었다. 순간 삼십 여 년 전 일이 떠올랐다.
학원을 할 때다. 학원은 강사에 의해서 성공과 실패가 좌우된다. 학교는 선생님이 좀 마음에 안 들어도 일 년을 버티지만, 학원은 일 년쯤 다녀야지 생각 했어도 강사가 마음에 들지 않으면 한 달을 채우지 않고 그만둔다. 그러니 한 학생을 오래 인연해야한다. 그러자면 공부는 물론이고 인간적 유대관계도 좋아야한다. 이렇게 되면 따로 광고지를 돌릴 필요가 없다. 나는 처음 개원 할 때 집에서 개인 지도하던 이십 여명의 아이들로 시작했다. 이후 19년간 단 한 번도 광고지를 돌려 본적이 없었다. 그때만 해도 면단위이지만 초등학교가 두 개였다. 면 소재지에 있는 초등학교는 전교생이 천이삼백 명이었다. 중, 고등학교도 있고 인근 면에 있는 초등학생들도 버스를 타고 왔었다. 그러다 보니 과목별 학원이 여러 개가 되었다. 한 아이가 두세 개의 과목을 수강하다보니 자연스럽게 학원이 겹치게 된다. 원장들도 좁은 바닥이라 과목에 상관없이 학원 연합을 만들어 석 달에 한 번씩 모임을 가졌다. 이러니 아이의 성향이든지 학부모의 성향까지도 공유하게 된다. 그때만 해도 학교급식을 하지 않았던 때다. 수요일은 전교생이 오전 수업을 하니 소재지에 있는 아이는 집에 가서 점심을 먹고 온다. 반면 멀리 있는 아이는 바로 학원으로 오면 학원에서 자장면이나 우유, 빵으로 점심을 먹어야하는 경우가 많다. 이러다보니 오전11시 유치부부터 초등 저학년 수업을 하는 미술 강사는 이런 뒤치다꺼리까지 해야 한다.
아동미술을 전공한 23살 강사는 일 년 정도 겪어보니 그동안 그쳐간 여느 강사들에 비해 성실하고 열정적이었다. 믿고 맡길 수 있었다. 그런 선생님이라서 그날도 수업이 끝날 때쯤 출근을 했다. 이 수업은 수업 중에도 재잘재잘 거려서 한 순간도 조용하지가 않은데, 문안에 인기척이 없어 수업이 끝난 줄 알았다. 들어서는 순간 직감적으로 안 좋은 일이 생겼다는 것을 느꼈다. 강사는 눈이 퉁퉁 부어있고 아이들은 고개를 숙이고 서로 눈치를 살폈다.
자초지종을 들어보니, 초등1학년 문성이 엄마가 전화를 해서 문성이 왔는지 물었다. 강사가 아이가 오기는 했는데, 가방은 두고 안 보인다고 했다. 찾아보라고 해서 전화를 끊지 않고 화장실 갔나 싶어 가 봐도 없으니 어디 갔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 엄마는 바로 “야”로 시작했다. 선생이 애가 있는지 없는지도 모르게 무관심 한 학원이 어디 있느냐, 원장 바꿔라. 고함을 치며 자격 미달의 강사*이......? 여기까지만 들어도 소름이 돋았다. 아이의 엄마는 서른 후반이고 시의원이었다. 집에는 주유소를 두 개 경영하고 건축자재상을 하며 소재지에 건물도 몇 개 가지고 있는 집이다. 시의원 위에는 더 이상 없다고 생각 한 것 같다. 좁은 바닥에서 두 번째 가라면 서러운 부도 가졌다는 것이다.
이런 경우 어항 안에 참새가 아닐까?
문성이가 내 학원에 오기 전에 누나가 자기 집 건물에서 하는 수학학원을 다녔다. 원장이 다른 아이를 괴롭힌다고 머리를 한 대 쥐어박은 일로 여러 수강생들이 보는 앞에서 아이 할머니로부터 멱살을 잡히고 뺨을 맞았다. 그 원장은 대학을 졸업하고 학원을 한지 일 년 쯤 지났을 때였다. 이 일이 있은 후 학원을 접었다. 나는 그런 일을 알고 있는 터라 그 아이 하나쯤 과감히 내 칠 생각으로 전화를 했다. 여기서 내치지 않으면 그 엄마의 끝없는 요구에 휘감겨야 할 것이니까.
개인 교습도 아니고 그룹지도라서 문성이만 신경 쓸 수 없다. 이번 달 수강료를 돌려줄 테니 다른 학원을 보내라고 했다. 전화를 끊고 몇 분 안 지나서 아이가 왔다. 사물함에 있던 물건과 가방을 챙겨 주면서 가방 두고 어디 갔다 왔는지 물었다. 아이의 대답에 나와 강사는 아연실색 할 뻔했다. 배가 고파서 집에 가서 빵이랑 요구르트를 먹고 있는데, 엄마가 선생님께 전화를 했단다. 너무 기가 막혀서 도저히 가만있을 수가 없었다. 다시 전화를 했다.
철없는 아이는 학원에서 왕복 일차선 도로만 건너면 집이니 배고파서 간 것을 나무랄 수 없다. 하지만 엄마는 아이가 어떤 생각을 할지 한번 생각해 보고 아이를 앞에 두고 그런 전화 하셨냐. 강사에게 욕을 해야 하나 아이가 수업 중에 선생님 허락 없이 나왔다고 아이를 혼내야하나, 대답이 듣고 싶다고 했다. 묵묵부답이었다. 다음날 아이는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학원에 왔다. 어이가 없었다. 다른 학원을 거쳐 왔으니 더 이상 보낼 곳이 없었던 것이다. 아이가 무슨 죈가 싶어 덮고 지나갔다
그 이후 아이 엄마는 어떤 요구도 없었으며, 아이는 육학년 올라가서 도회지 학교로 전학 가기 전 까지 내 학원에 다녔다. 다시 먹지 않겠다고 침 뱉고 돌아선 우물물을 목마르니 다시 찾는 격이다.
어항 안에는 물고기만 살 수 있고, 참새는 나뭇가지에서 지저귀는 것이 자연의 이치다. 자신이 선 자리를 알아야 한다. 권위가 있다고 맘대로 휘두르면 언젠가는 그 날劍이 부메랑 되어 자신이 찔린다. 품위는 그저 주어지는 것이 아니다. 겸허라는 덕이 쌓여 지혜의 빛이 드러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