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마가복음 1:1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 이러하다’에서 보면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고 그리스도이심을 말하고 있다. 그러나 그런 복음에 대해서는 빈무덤이라는 열린 결말로 16장 8절에서 끝을 맺는다. 이제까지 여러번 읽으면서도 한번도 의심해 보지 않았던 결말이었다. (친구와 얘기하면서 영화 “패션”의 결말도 빈무덤으로 끝났다는 걸 새삼 알았다.) 4복음서와 통합되어 이해되어야 한다는 생각에서였는지도, 그저 그냥 읽기에만 골몰했는지도 모르겠다. 바울은 죽음에 대한 부활의 승리를 얘기했는데 마가는 달랐다. 목사님은 예수의 부활을 말하지 않고도, 예수의 숭고한 사랑과 십자가의 죽음(세상의 잣대로는 실패처럼 보이겠지만)만으로도 그의 승리를 각인시킬 수 있다고 말씀하셨다. 오히려 그래서 마가복음을 통해 예수를 믿는 사람이기 이전에 예수를 살아가는 사람이어야 한다는 것에서 먹고 일하고 관계하고 살아가는 신앙의 자세를 성찰할 수 있겠구나 생각한다. 그렇지만 이번 강의를 들으면서 마음에 다가오는게 마치 자연적인 기적도 모두 은유라고 한다면 예수가 지극히 인간으로 느껴진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전에 교회에서는 100%인간이시며 100%신이라고 들었다.(근데 지금은 예수가 사신 33년은 인간이시고 신이신 거 맞나?하는 우문을 던져 본다.) 그래서 인간이지만 신이시기에 성육신하신 것에 은혜가 되고 그 사랑의 깊이가 느껴졌으며, 우리의 고통을 모르시지 않으셨지만 신이시기에 십자가에 달리실 수 있지 않았을까? 부활을 알고 계셨을 테니까…라는 생각도 했었다. (그래서 사실 십자가에서 하나님, 어디계시냐고 찾는 예수가 좀 이상했다. 이후 요한 복음17장의 예수 기도문을 보면서 십자가로 향하는 예수의 기쁨 감사가 보여서 다행이라는 생각을 했지만….그렇다면 이런 생각들이 바로 내가 결론을 내고 그 증거를 성경에서 찾는, 즉 성경이 성경대로 말하지 못하게 하는 태도인가? 궁금하다)
마가는 왜1장1절에서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하면서도 인간 예수로 결말을 냈을까? (특히 목사님이 한 여인이 예수께 향유를 부음으로 해서 예수가 마음을 확정하게 되었다고 말씀하셨는데 그것이 더 이상하게 들렸다. 예수님이 돼 마음에 확정을 해야 하지? 이미 하신 거 아니었나?) 아니면 내가 그렇게 느끼는 걸까? 나는 ‘빈 무덤’이라고 할 때 인간 예수가 떠오른다. 그리고 그렇다면 ‘부활’이 없이는 기독교가 성립할 수 없다는 말은 빈 말일까?
또 한가지는 마가가 강조하고자 한 것이 ‘예수를 그저 믿는 사람’이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살아내는 것에 방점을 찍은 것이라는 생각에 마가복음이 쉽지 않은 책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난 이제까지 앞 뒤 자르고 예수의 공생기간 얘기만 있어서 다른 책보다 깊이가 없다고 생각하고 빨리 읽어치우는 경향이 있었다.
2. 나도 ‘악령의 반응’과 같은 말을 수도 없이 한다.
“왜 우리를 간섭하려고 하십니까?”
그냥 그대로 살고 싶은데 현재의 상태와 지금까지 살던 방식이 좋은데, 익숙하고, 편한데
왜 예수님은 그러지 말라고 하십니까? 하지만 그 익숙함 가운데 우리가 혐오하는 악한 체제와 그 체제를 지배하는 악한 정신도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악령이 왜 우리를 간섭하냐고 하는 반응은 어쩌면 당연할지도 모르는데 악령에 잡혀있는 내가 그런 말을 하는 건 정말 우스운 일이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랬을 때 편함과 익숙함에서 벗어날 수 있는 건 내 혼자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님을 되짚어보게 된다.
3. 세례 요한의 ‘하나님 나라가 가까이 왔다.’라는 묵시적 종말론은 세례 요한의 죽음으로 인해 실패했고, (세례 요한의 운동에 동참했던?) 예수님이 새롭게 ‘하나님 나라는 이미 시작되었다.’는 새로운 답을 내놓았다고 하셨는데 좀 의심이 갔다. 세례요한은 자신이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자라고 스스로의 정체성을 규정함으로써 이렇게 말한다. “나보다 더 능력이 있는 이가 내 뒤에 오십니다. ~나는 물로 세례를 주었지만 그는 성령으로 세례를 주실 것입니다.” 나는 주님의 길을 예비하는 세례 요한과 그 뒤에 오시는 예수님은 하나님의 계획 안에 있었다고 믿었는데 그게 아니라는 건가? 혹시 그렇다면 이미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다는 예수님의 선포가 지금의 기독교에는 당연하게 알려져 있지 않고 왜 묵시적 종말론이 계속 지배하고 있는지 모르겠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시작되었으면 예수님의 재림으로 새 하늘과 새 땅이 임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인가? 답이 없고 계속 의심만 일었다. (묵시적 종말론과 하나님 나라의 현재성은 공존할 수 없나? 사실 어려운 시기(일제치하, 로마시대의 초대 기독교 사회)에 묵시적 종말론은 힘이 되고 소망이지 않았나? )
첫댓글 아주 좋은 질문들입니다. 성서는 질문하는 자에게 대답합니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질문이 처음에는 혼란스럽겠지만, 하나하나 답을 찾으며 차차 정리되어 나갈 것입니다. 답은 수업 시간에 하도록 할께요. ^^
수많은 질문에서 기독교의 예수에서 예수의 기독교를 찾는 길이 보이네요. 질문임에도 불구하고 덧칠한 뭔가가 지워지고 실체적 예수가 보이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