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66권 기초공사(117)_복음에서 생명으로(3)_천상적 실존으로 지상적 삶을 사는 사람들입니다(창28:12-14,골3:1-11)) 여러분의 주소는 어딘가요? 하늘특별시 낙원과 그리스도 아닙니다. 복음에서 생명으로 세 번째 우리의 실존은 천상에 있는 삶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존재는 천상에 있다고요. 성경에 나오죠. 어디 나옵니까? 에베소스 2장6절 하늘에 함께 앉히고 자니라 그러죠. 하늘에 앉히운 자 맞습니까? 그렇게 살고 있어요. 이 땅을 내려다보면 어때요? 기분이 갑갑하죠? 세상 사람들이 우리를 보고 갑갑하다고 할 겁니다. 저것들 뭐하는 거야? 교회 모여서 진짜 그러지 않아요. 그럴 때 어떻게 합니까? 몰라. 우리는 천상의 실존인데 지상적인 삶을 살고 있죠. 어쩔 수 없는 겁니다. 여기 잠깐 갔다 오라고 해서 갔다가 다시 가야죠. 왔다가 다시 가야 되는데 사람에게는 그래서 차원이 두 개가 있어요. 생명이 아담한에서 나를 말합니다. 아담한에서 태어난 생명이 있다고 그랬죠. 그런가요? 자연인 우리가 난 이 땅에서 난 부모를 혈통을 통해서 이 땅에서 난 생명 그리고 하나는 하늘로부터 난 생명 거듭난 자라고 그러죠. 그렇죠? 그래서 위로부터 난 생명은 영원한 생명을 말하고 우리는 예수를 믿는 순간 물과 성령으로 거듭난 생명을 소유한 바로 천상의 실존을 소유한 자가 됐죠. 그래서 신인류 세 사람이라고 그런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죠? 그래서 영원한 생명은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이라고 기초할 때 계속 했던 내용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자신을 말하죠. 예수님도 요한복음 8장의 23절에 보면 너희는 아래에서 낳고 나는 위에서 낳다. 그래서 너희는 이 세상에 속하고 나는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었다. 여러분도 느그들은 이 세상에 속했지만, 나는 이 세상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그렇게 살고 계시죠? 아멘. 아들을 믿음으로써 영생을 얻게 되는데 그건 단순히 죽어서 천국 간다는 뜻이 아닙니다. 정확하게 잘못 배웠다고 그랬죠. 그리고 끝도 없이 그냥 산다 라는 그런 뜻도 아닙니다. 그건 이 땅에서도 이 땅에서도 보고 듣고 만지고 실제로 경험하는 삶이죠. 요한일서 1장 1절부터 나오는 내용이죠. 우리가 증가하는 것은 보고 듣고 만진 바 되고 그렇죠? 그게 일당삼절의 영생이 사김으로 나오게 되는데 실제로 이 땅에서 보고 듣고 만지고 다 실재하는 지금 이 땅의 삶입니다. 다음에 이건 실제예요. 그러니까 이 땅에서 지금까지 내가 살았던 것처럼 그렇게 살면 안 된다. 라는 거죠. 그래서 영생의 삶은 그 기초가 하나님과 사김을 통해서 온전히 실제로 이루어지죠. 지금. 우리는 하늘에 속한 실존인데 이 땅에서 살면서도 그 영생 하늘에 속한 삶의 실존을 그대로 현실에서 나타낼 수 있는 방법은 하나님과의 사김에 있죠. 그게 바로 요한일서 1장 3절입니다. 하나님과 요한일서 2장 24, 5절. 그렇죠? 우리가 그 안에 그가 우리 안에 있는 그것이 상호 내주고 거하는 게 영생의 실존이라고요. 잘 모르시는 것 같아요. 아무래도 요한일서 2장 24시 다시 확인할게요. 수없이 해야 될까 말까입니다. 그렇죠? 요한일서 2장 안일선 2장 24절 25절 너희는 처음부터 들은 것을 너희 안에 거하게 하라. 처음부터 들은 것은 너희가 것이 너희 안에 의하면 우리가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하리라 복음이라고 그랬습니다. 그가 우리에게 약속하신 약속이시니 곧 영원한 생명이라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하는 이것이 영생이라고 정확하게 써져 있습니다. 그런가요? 그래서 27절에 가면 성령의 기론부심 바로 성령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령이 오셔서 우리 안에 거하셔서 모든 것을 가르치시는 이유는 그 안에 거하는 것을 실제화, 현실화하기 위해서 우리에게 와 계십니다. 그러죠. 정확하게. 그래서 영생은 하나님과 하나님의 아들을 아는 것이고. 하나님과 그 아들을 아는 것은 여기에 요한일서에는 요한복음도 요한이 있었습니다. 요한일서도 요한이 있었고, 요한복음 17장 3절에는 아는 것이라고 표현이 되어 있고 우리가 아는 거하고 다르다고 그랬죠. 상호 내조하면서 부부관계처럼 밀접하게 결합해서 아는 상태를 말한다고 했고 요한 1세는 24절에 바로 아버지와 아들 안에 거하는 거라고 표현을 달리했어요. 그리고 요한복음 17장에 가면 21절에부터 예수님과 하나님의 상호 내조 관계처럼 너희도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해서 온전한 하나를 이루는 것을 예수님이 기도하셨고 그것이 바로 우리가 완전한 상태라고 그랬죠. 완성품이라고 그랬습니다. 너희가 내 안에 내가 너희 안에 각각 표현이 다르지만 똑같은 내용이에요. 그렇죠? 그런가요? 그래서 그것을 실제 하는 게 1장 3절로 가서 다시 보시죠. 1장 3절로 가서 1장 2절에 보면은 생명이 나타난 바 되었는데 이 영원한 생명을 우리가 보고 그렇죠? 위에 만진 바 되고 주목한 바 되고 나타나신 바 되고 그것을 너에게도 전하고 삼절에 이것은 사김이 있게 하려 함이니 우리의 사김은 아버지와 그 아들 에수 크리스도와 함께 함이라 요괴 야다 바로 안다라는 단어. 코이노니아 사김 함께하다. 그러니까 전부 상호 내주를 말합니다. 그래서 실제로 빛 가운데에 계신 것 같이 우리도 빛 가운데에 행하면 우리가 서로 사김이 있다. 빛은 에스크레이스도 자신을 말하게 되는 거고, 예스크리스트 안에서 우리가 행하게 될 때 서로 사귀는 바로 영생이 실제화되고 있는 상태를 말합니다. 그러면 이제 영생은 죽어서 가는 곳이 아니라 지금 이곳에서 우리가 하늘의 실존인데 지금 이곳에서 살고 있어야 되는 거죠. 어떻게 그 안에 거하는 것으로 그건 상호 내조하는 삶이 실제로 일어나는 것은 사김을 통해서 교제를 통해서다. 이해가시죠? 코이노니아 바로 그래서 우리가 교제하는 그 자체가 영생을 지금 이 땅에서 살고 있는 상태라는 거죠. 그래서 하늘의 삶을 우리가 살고 있으면 하늘에 속한 모든 것을 우리가 누리는 거죠. 그건 바로 천상의 실존이 누리는 권리입니다. 바로 하나님의 모든 신성의 모든 충만함을 누리게 되고 그 신성이 소유하고 있는 모든 복락을 누리게 되는데 그게 마카리우스 기쁨과 평가 그게 영생을 우리가 살고 있다라는 증거예요. 여러분 얼마든지 이제 증거를 보일 수 있죠. 어떤 환경에도 스데반처럼 돌에 맞으면서도 짜증내면서 돌을 왜 던지냐고 하면 나는 이 땅에 속한 사람이라는 걸 확실하게 증가하는 거고, 옆에서 콕 찔러도 이렇게 되는 거죠. 열이 안 나고 열이 나요. 열이 나면서 열 나서 열을 발산하는구나 이게 그게 나는 영생의 삶을 살고 있다라는 영생의 실존이다라는 온몸으로 증가하는 삶이죠. 그래서 열을 내거나 짜증을 내거나 미워하거나 이런 것들이 안 나옵니다. 사실은 그 교재 안에 있게 되면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그게 나올 수가 없죠. 그런데 우리는 외출을 자주 하기 때문에 그렇죠. 외출을 자주 하니까 외출해서 짜증내고 들어와서 또 이런 거죠. 지금은 어떤 상태입니까? 들락날락. 들락날락하나요? 예배하면서도 그러죠. 뭔가 마음에 안 드는 말이 오면 어때요? 벌써 나가 있죠. 성질나고 있죠. 그런 겁니다. 그게 영성이에요. 여러분 그냥 환상이 아니고 개념도 아닙니다. 우리는 죽어서 가는 걸로만 알고 있었기 때문에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완전히 잘못한 거예요. 완전히 그러면 이제 열 받죠. 그럼 아직 영생이 없다는 증거이기도 합니다만 열 안 받죠. 열을 낼 수도 없겠고 이제 인상도 못 쓰겠고 어떡하면 좋지. 그렇죠? 잘 모르기는 모르겠고 아는 것 같은데, 모르겠고 아주 짜증나 죽겠죠. 그러니까 밖에 있다라는 증거예요. 땅에 속해 있다라는 그런 증거죠. 그게 바로 하나님과의 사김을 통해서 이 땅에서 온전히 누리고 있는 상태가 돼야 되는 걸 영생이라고 그러고 얼마나 중요한지 그건 이제 다 아시죠? 그게 바로 천상의 실존으로서의 삶 자체를 말해요. 그래서 천상의 실존의 그 삶은 하나님 안에서 하나님의 모든 풍성함을 누려야 되는 거예요. 그렇죠? 고려세서 2장에 보면 신성의 모든 충만함이 그 안에 있고 우리는 그 안에서 충만하여 졌다. 2장 9절, 10절. 그렇죠? 놀라운 고백이죠. 그렇게 살고 있어야 하는데 그걸 못 사는 이유는 지금까지 배워온 복음이라고 하는 걸 잘못 알고 있는 거예요. 복음에 참여한 사람은 반드시 그걸 누리고 있어야죠. 부활의 영광 안으로. 그렇죠? 그래서 십자가가 빠져서 지금까지 지식으로만 율법을 알고 있어서 못 누리고 있었던 거예요. 수십 년 교회 다녀도 누릴 수 있는 게 아닙니다. 그래서 죽어서 가는 좋은 곳. 그래서 이 땅에는 핍박을 받고 욕을 먹더라도 꾹 참으면서 가는 곳. 그게 꾹 참는 게 십자가인 줄 착각했죠. 아닙니다. 잘못 알고 있었어요. 여러분. 그래서 그렇게 살아온 게 이제 열받아서 제가 진리를 말하면 아니길 바라죠. 아니길 바라죠. 뭔지 몰라요. 정확하게 알아야 합니다. 그냥 교회만 왔다 갔다 하면 수십 년 또 저처럼 헛방합니다. 부산촌놈이니까. 헛방이란 말 알죠? 천상의 실존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모든 풍성함을 다 누리는 걸 말해요. 그래서 신성의 모든 충만이 너의 안에 육체를 구하고 베드로는 또 말했죠. 신의 성품에 참여한 자.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너에게 충만하기를 원한다고 간절히 기도했죠. 저도 신의 성품, 하나님의 모든 충만함이 여러분께 충만하기를 매일 기도합니다. 제가 기도하는 건 그거밖에 없어요. 여러분 여러분 사업 잘 되게 해 주시고 기도 안 합니다. 그거 해봐야 사업 잘 되면 신성의 모든 충만은 고사하고 수고와 슬픔을 못 벗어나기 때문에 제가 그런 가짜 기도는 안 합니다. 해봐야 하나님이 안 들어줘요. 올라가다가 다른 향이 올라가서 신성의 모든 충만함을 고합니다. 제가 이렇게 갑니다. 그래서 헛수고는 안 합니다. 그걸 누르려면 어떻게 해야 돼요? 세스랑으로 찍어야 돼요. 십자가의 연합, 무덤의 연합, 부활의 연합, 현연의 연합, 그 사건에 실제로 참여해야 돼요. 그래야 부활의 연합에서 사는 영생의 삶이 현실화된다고 그랬죠. 그럴 때 전국의 삶이 내게 실제로 이루어진다고 그랬죠. 여러분은 전국의 삶을 죽어서 가는 곳이라고 또 잘못 알고 있었기 때문에 뭐가 지금까지 잘못된 거야? 그걸 받아들이기 무척 힘들 거예요. 무척 힘들죠. 저도 존재 자체가 그게 뿌리째 흔들리는 거기 때문에 처음부터 힘들었어요. 그런데 그게 아니다. 라는 걸 알고 나니까 아 잘못 살았구나. 통탄을 통탄하면서 많은 시간을 보냈는데 지금이라도 여러분 정확하게 똑바로 제발 알고 계셔야 합니다. 하나님 안에서 풍성한 모든 것을 누리는 것 천상의 실존으로서 풍성한 삶을 자원해서 우리가 이 땅에 와서 한시적으로 누리고 있는 겁니다. 이해 가시죠? 그래서 아들을 믿는 믿음으로 영생을 얻는다 라는 것은 죽음 이후의 삶을 말하는 게 절대 아니다. 라는 걸 여러분 철저하게 깨닫고 계셔야 하고 이걸 누군가 따지면 이 성경 말씀을 갖다 대서 실득할 수 있어야 돼요. 정확하게. 이해가시죠? 어떤 것부터 갖다 대야 돼요? 고령대전서 15장 복음 에베소스 2장 6절 우리는 하나에 속한 자라는 걸 갖다 대야죠. 이 땅에 속한 사람이 아니다. 요한복음 17장 요한일서 1장 3절 요한일서 2장 24절에서 27절까지 다 갖다 대고 너희는 땅에서 났고 나는 하늘에서 났다. 이 말씀도 갖다 대야 되고요. 그렇게 해서 나는 이 땅에 속한 자가 아닌 정확하게 맞죠. 성경에 다 나와 있잖아요. 그걸 모르고 자꾸 죽어서 좋은 데 간다는 그건 다른 잡종교하고 다를 바가 아무것도 없어요. 거기에는 무슨 노림수가 있는가 하면 죽어서 좋은 데 가기 위해서 지금 여기서 내 몸을 바쳐 충성봉사하라고 합니다. 모든 잡전교의 핵심입니다. 그게 그래서 여러분의 헌신을 끌어내는 거예요. 이해가요? 그거 제대로 안 하면 나중에 상급도 없고 전국에서 저 끝에 어디 시골에 가서 산다 이렇게 허름한 곳에서 그렇게 말합니다. 여러분. 진짜라니까요. 저 성 밖에서 일을 간다. 지옥을 말하는데 사실은 그래서 성 안으로 진입해서 큰 집에 살기 위해서 이 땅에서 공을 사야 되는데 이게 잡종교하고 똑같아요. 요즘 기독교에서 하는 놀음이. 그래서 만원이 공을 들였죠. 돈이 없는 사람은 몸으로 때우고 그렇죠? 그런데 어찌 여기까지 오셔가지고, 이래요. 험악한 데를. 그러니까 여러분 속았어요. 보기 좋게 속은 것만 아니라 인생을 도적질 당했다고 도적질 몇 년 도적질 얼마인데요? 30년 몇 년 도적질 여기는 뱃속에서부터 시작이니까. 벌써 40년이 넘었네. 거기도 뱃속에서부터 믿었어요. 아이고 불쌍해라. 어떡하면 좋아. 거기는 얼마 안 됐어요? 감사합니다. 감사해. 진짜 감사해. 이런 게 얼마 안 되잖아. 저도 한 20년 날렸습니다. 이걸 성경에서 어떻게 말하고 있나 한번 보죠. 구약은 언약 사상이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으로 흘러오면서 12지파로 흘러가죠. 야곱에서 그걸 볼 수가 있어요. 야곱은 12지파의 조상이면서 하나님의 언약을 받은 자죠. 28장에 창세기 28장으로 가보면 28장 15절 14절 내 자손이 땅의 티끌같이 되어서 동서남북 벽만할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내 자손으로 인하여 복을 얻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너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고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네가 너에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하신지라 이게 야곱에게 주는 언약입니다. 물론 아브라함에게 주는 언약이 계승되어서 내려오는 것과 똑같은 내용입니다. 열두 지파의 조상으로서 언약을 담고 있는 야곱인데 야곱이 야구업이 여러분 다시 보세요. 천상의 실전으로서 이 땅에 지상적인 삶을 살아간 아주 전형적인 예예요. 그걸 왜 아는가 하면은 여기 위에 보면 12절에 10절에 야곱이 버릴 서버였을 떠나 이제 도망가죠. 하란으로 향하여 가더니, 한 곳에 이르러서 해가 진지라 거기서 유숙하려고 한 곳에 돌을 취하여 베개하고 거기 누워 자더니, 꿈에 본 적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섰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 적 하나님의 사자가 그 위에 오르락내리락 카코 사다리가 꼭대기 닿아 있는 꿈을 꾸게 되는데 사다리에 뭔 일이 있나요?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죠? 오르락내리락 하고 이 야곱을 쳐다보고 있을 거 아니에요.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하고 있다는 거요. 또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하는 사람이 또 있나요? 어디에 있어요? 나다나엘 예수님이 그렇게 말했죠. 어디 나오죠? 요한보험 1장에 보면 안 피셔도 돼요. 요한보험 1장 57에서 51절 제가 읽어드릴게요. 예수께서 나다나엘에게 이 큰 일을 보게 될 것이라 약속하는데 예수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내가 너를 무화과나무 아래에 보았다. 하므로 믿느냐 이보다 더 큰 일을 보리라. 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에게 이르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하는 것을 보리라. 똑같죠 이 야곱의 삶은 지금 아주 팍팍하죠. 형한테 맞아 죽을까? 봐. 화란으로 도망가고 있는 중에 길거리에서 돌베개 베고 잠을 청해 자는데 이게 야곱의 지상적인 삶의 현주소예요. 여러분의 지상적인 삶의 현주소와 한번 비교해 보시죠. 여러분은 뭘 베고 있나요? 돌베개라는 게 아마 돌 위에 자지 않았나 싶어요. 짐승 오면 못 올라오게. 그런 게 아닌가 싶은데. 그런데 그 사이에 꿈을 꾸는데 사다리 위에서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 합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런데 야곱을 통해서 모든 민족이 복을 받으리라고 또 그 꿈에 다음에 약속을 하십니다. 이 꿈의 내용을 랍비들이 어떻게 해석하는가? 하면 랍비들이 해석하는 구약 아라무 주석이 있어요. 창책이. 거기에 보면 이렇게 되어 있대요. 야곱이 하나님의 언약을 가진 자로서 하나님의 백성을 대표한다. 이렇게 제법이죠. 그런데 야곱이 잠들자 천사들이 야곱에 잠든 얼굴을 훔쳐보고 하늘을 열고 올라. 가고 그리고 하나님의 보좌의 옆에서 시중 들던 다른 천사들에게 그 의자에 앉아 있는 야곱의 얼굴을 보려면은 땅으로 내려가서 잠들어 있는 야곱이 얼굴을 보면 된다. 이렇게 말합니다. 이해가요? 그래서 줄줄이 사다리 타고 내려와서 보고 올라가는 거예요. 야곱이 어떻게 해서 천상에 있는 건 눈이 너무 빛이 나서 보좌. 옆에 앉아 있으면 그렇죠? 우리도 에베소스 2장 6절에 하늘에 안 치워져 있어서 너무 밝아서 못 보니까 야곱이 도대체 어떻게 생겼을까? 궁금해하던 차에 어떤 천사가 그걸 보고 올라가서 야곱이 이렇게 생겼다. 내려가서 보고 오자. 그래서 줄줄이 내려와서 보고 올라가는 거예요. 줄줄이 내려와서 폭 올라가 그 땅의 야곱의 얼굴을 보고 하늘의 보좌의 옆에 이렇게 보좌의 의좌 거기에 앉아있는 실체가 아 이렇구나라고 자기들 나름대로 인제 해석을 하는 거죠. 그 앉아있는 실체의 야곱이 그 얼굴을 보면서 그 천사들은 찌질이 야곱을 보는 게 아니라 보좌에 앉아 있는 그 야곱이 이렇구나 라고 생각을 한다는 거죠. 야곱의 얼굴만 보는 거죠. 헤아리는 거죠. 이해가요? 그래서 이게 지금 천상의 실전이 땅에 내려와서 아주 꼬라지가 말이 아니죠. 그렇죠? 그런데 천사들은 그걸 보고 부러워 죽는 거예요. 천사들은 보자 옆에 시중 드는 거예요. 이렇게 부채질하면 부채질 하면서 알죠 전하 하명하옵소서 이거 시중 들고 있는 거요. 그러니까 하나님의 아들 우리도 하나님의 아들이죠. 천사와 비교도 안 되는 거예요. 그건 피조물이고 우리는 낳은 자고요. 아세요? 얼마나 엄청난 존재인지. 실감이 와요. 한번 꼬집어봐요. 여기 콕 꼬집으면 위에 앉아 있는 그 진 자가 아이고 아파라 자석아 그만 꼬집어라 이렇게 한다고요. 뭔 말인지 아시겠어요? 욕하면 저놈이 욕하고 있네. 위에서 이해가 가시나 모르겠어요. 천상적인 실존의 실존인 야곱이 하늘에 땅에 비록 꼬라지가 그렇지만 천사들이 부러워하는 열두 지파 만인의 아버지의 언약을 받은 사람을 그걸 보고 있다고요. 얘가 도대체 땅에서 어떤 모습이야? 이렇게 내려와서 보고 그런데 이 야곱의 삶은 지상적인 삶은 영 아니죠. 그렇다라는 거죠. 그래서 좀 전에 말씀을 드린 대로 하나님의 아들도 위에서부터 내려왔죠. 내려왔으니까 인자죠. 사람을 통해서 낙인했지. 그렇죠? 그런데 그 인자는 보니까 하나님의 영광이 가득하고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죠. 내려왔을 때 보니까 요한일서에 요한복음 1장에 나와. 1장 14절에 인자와 은혜와 진리가 충만한 하나님의 영광이 충만하죠. 그렇죠? 예수 그리스도는 야곱보다는 큰 자죠. 진실로 큰 자입니다요. 4장 12절에 나와 있어요. 예수님을 통해서 야곱에게 주신 만민이 복을 받는다라는 약속이 예수님을 통해서 이루어졌어요. 그런가요? 그래서 그를 믿는 자마다 아들이 되는 복이 주어졌죠. 그래서 야곱은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이루어질 하느님의 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이라고 제가 누누이 말씀을 드렸습니다. 그렇죠? 예수님은 어쨌든 하나님의 보좌의 안전자로서 이 땅에 내려왔죠. 지상의 삶을 사는 아들들을 위해서 그런가요? 이 땅에 내려왔죠? 그런가요? 그 위에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한다고 좀 전에 나다나엘에게 그렇게 말하죠. 그런가요? 잘 들으세요? 우리도 똑같죠. 에베소스 1장에 보면 이미 그 아들이죠. 그리고 죽은 자를 에베소스 2장에 살리셔서 하늘에 안치웠다 라고 되어 있고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안에 감춰져 있다고 그랬죠. 콜레세스 3장 1절에 그래서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그와 살리심을 받은 성도이고 그 성도들은 하늘에 안 치운 자고 에베스 시장 6절 잘 따라오고 계시죠? 동시에 이 땅에서도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지상적인 삶을 살고 있죠. 정확하게 맞죠. 예수님도 이렇게 지상에 와서 그 고난의 삶을 살다가 올라가셨고 우리도 하늘에서 온 자고 이 땅에서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들이죠. 나를 따라 호레오는 자기를 부인하고 매일의 십자가를 지고 따라가는 삶이잖아요. 그런가요? 사도가 우리 매일 죽노라 한 것처럼. 그렇죠? 천상의 실존이 맞습니다. 우리는 정확하게 내 존재를 정확하게 인식해야죠. 그런데 이 땅에 내려와 있으며 몸을 잊고 누구? 집 자식인 것처럼 내려와 있죠. 그렇죠? 그런데 이제 그 안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 천상의 실존의 생명이 내 안에 있죠. 그런가요? 그러면 우리는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지상적인 삶을 살아가고 예수님의 지상적인 삶의 모습이 있는 자의 모습 그대로죠. 모형이죠. 모형 그런가요? 그런데 그 실체는 잘 들으세요. 땅에서 비록 그렇게 살고 있긴 하지만 하늘에서는 그렇게 아니죠. 그런데 실체가 이 땅에 지금 내려와. 있지만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고 있죠. 지금 예수님께 그러했듯이 우리도 그러하지 않겠어요? 그런 거예요. 우리도 하늘에 안치운 자 동시에 예수님처럼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자로 지상적인 삶을 살아가죠. 지금 뭐하는지 아시죠? 이거 이야기하는 거예요. 복음에서 생명으로 들어간 우리 실존이 어떤가를 이야기하는 거예요. 다 놓치고 멍하니 계시면 안 됩니다. 예수님의 지상적인 삶은 하늘의 삶의 모형이죠. 그림자. 그렇죠? 하늘에도 삶의 방식이 그렇다 라는 거죠. 우리도 하늘에서 온 사람들이니까. 하늘의 삶에 사는 그 방식대로 지금 지상에서 살고 있겠죠. 그렇게 살 때 천사들이 오르락내리락하겠죠. 왜? 오르락내리락 천사들이 부러워서 얘 하늘에 속한 자인데 내려와서 보고 싶은 거야. 얘가 어떻게 생겼나? 도대체 뭐 하고 있나? 하늘에 속한 자가 맨날 싸우고 난리네. 집에 가면 성질 부리고 난리네. 그거 보고 천사들이 감동하겠죠. 천사들은 겉모습을 안 봅니다. 여러분 내용적인 존재를 보지 이해 가시나요? 그래서 우리는 천사, 천사도 모아는 아름다운 그 모습 전국에서 해같이 빛나고 있는 사람들이거든요. 이 땅의 삶은 녹록지 않죠. 그렇지만 거기에 대해서 너무 실망하실 필요가 없어요. 이 땅에서도 예수님처럼 천상의 삶을 살 수 있다. 스님이 그렇게 했기 때문에 가능하다. 야곱도 가능한데 삶이 좀 험악했을 뿐이에요. 그런데 마지막에 결국 배달을 올라가죠. 하나는 안으로 들어가잖아요. 빨리 들어가면 되지. 간단한 거 아닌가요? 뭐 수십 년 헤매지 말고 얼른 들어가 버립니다. 얼른 더 들어가 버립니다. 천사가 수송절잖아요. 그럼 그런데 이 천상의 삶을 지상에 사는 삶으로 옮겨서 우리가 살고 싶긴 한데 방해하는 게 좀 있어요. 방해하는 게 있어요. 그게 바로 콜로세스 3장입니다. 콜로세스 3장에 정확하게 나와 있죠. 베드로가 바울이 그렇게 역설을 하죠. 콜로세스 3장에 그러므로, 너희가 그리스도와 함께 다시 살리심을 받았으면 위의 것을 찾아라. 위의 삶을 살라는 거예요. 이게. 그러니까 예수님도 위에 계시죠. 예수님이 살고 있는 그 삶을 살라. 거기는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시느니라. 위의 것을 생각하고 땅의 것을 생각지 말라 이는 너희가 땅에 있는 건 죽었기 때문에 너희 생명이 그리스도와 함께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다. 우리의 생명이신 그리스도께서 나타내실 그때 너희도 그와 함께 영광 중에 나타내리라. 물론 이거는 나중에 재림 때 이야기이긴 합니다. 그래서 이제 이 4절까지가 뭔가 하면 너희는 천상의 존재다 이 말이죠. 이 땅에 이 지상에 사는 그거 너희는 죽었다. 그러니까 너희는 천상의 존재다. 하늘에 있고 그것도 하나님 안에 감추어져 있는 생명이다. 상상이 잘 안 되죠. 이게 상호내주 그러죠. 그러니까 이제 5절에 그러므로, 어떻게 하라는 거예요? 땅에 있는 지체를 죽이라는 거예요. 이게 전상의 삶을 살지 못하게 하는 땅에 있는 지체예요. 그래서 이 글이 이렇게 써져 있는 거예요. 지난번에 고려스의 시기장 대충 말씀을 드렸죠. 헬라 철학이 어떻게 해서 노력을 통해서 천상의 알지도 못하는 미지의 그런 걸 살아야 한다고 이 땅에서 열심히 금욕적으로 살아야 해탈한다고 그게 아니다. 그게 아니라 우리는 이미 그 안에 들어가 천상에 있는 존재이기 때문에 천상에 있는 걸 찾으라는 거예요. 그런데 그거를 못 살게 하는 게 땅에 있는 주체라는 거죠. 땅에 있는 지체를 그래서 위의 것을 찾아라 위의 것을 찾아 구해서 소유하라 그 말이죠. 그러니까 거기는 우리는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하나님이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다. 그리스도께서 우편에 앉아 계시는 그곳에 우리가 있다. 위의 것을 찾는 삶은 하나님과 그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의 사김에 참여할 때 우리는 위의 것을 참여하는 삶을 살 수 있죠. 좀 전에 드렸던 영생의 사김. 그걸 해야 된다고 우리가 위에 걸 찾는 삶이 그거라고요. 그걸 할 때 우리는 위에 속한 삶을 그 안에서 교제하면서 사는 거죠. 그래서 예수님도 이 지상에 있을 때 아무도 없을 때 새벽 몇 명이 일어나서 교제하러 나가신 거예요. 계속. 이해가시죠? 왜? 육체를 잊고 있기 때문에 그 천생의 삶을 실제로 이 땅에서 살아낼 수 있어야 하려면 지속적인 교제가 필요했던 거죠. 이 땅에 와 있었기 때문에 우리도 이 땅에 와 있기 때문에 천상의 삶을 실제로 살기 위해서 위의 것을 찾아야 돼. 위의 것은 그 안에 함께 있는 거잖아요. 함께 함께는 아까 요한일서에 나온 것처럼 사귀는 거잖아요. 서로 교제하는 거잖아요. 코인노니아. 교제하며 찬양하며 예배하며 그런 삶이죠. 그걸 찾으라고 그걸 그걸 찾아서 현실로 살 수 있는 방법이 바로 사김 코인원이야. 다음에 사랑방 교제, 골방 교제 그런 것들을 말하고 있어요. 이건 이렇게 할 때 천상에서 함께 지금 실존에 누리고 있는 걸 지금 이 땅에서도 이 땅에 실존적으로 누릴 수 있는 거라는 거예요. 보통 아니죠. 이건 그래서 우리는 이 땅에서 얼마든지 하늘에 있는 삶의 모습대로 살 수 있다고요. 예수님도 그렇게 살았잖아요. 예수님이 잘나서 살았나요? 그 안에 성령과 기론보험이 충만했기 때문에 가능했잖아요. 우리도 충만하잖아요. 지금 안 충만해요? 충만하잖아요. 안에 그래서 교제하면서 기뻐하잖아요. 그게 바로 이 천상의 삶에 지금 참여하고 있는 중이에요. 위의 것을 찾아라. 찾았죠? 찾아서 누리고 있는 중이죠. 못 찾았어요. 찾았어요. 예 많이 찾은 것 같아요. 그런데 오젤을 거기다가 오젤리아를 바울이 왜 끼워놨느냐 이걸 못하고 있더라고요. 글로세 교인들이 멍청해가지고 헬라 철학자들하고 세상 초등학문 이런 데 넘어가서 뭐 하고 있는지 아세요? 금욕적인 생활을 하고 할례를 한답시오. 하고 환상을 본다고 신비주의를 쫓아가고 이 짓을 하고 있더라 이거죠. 그래서 열심을 다해서 하면 뿅 올라간다 이런 걸 하고 있더라는 거죠. 그래서 여러분들이 열심히 다해서 하죠. 안 올라가지죠. 올라가는 게 아니고 지금 그걸 찾아서 누리는 거예요. 그게 영생의 실존이에요. 실제 지금 교재 안에서 거기 올라가면 교제하고 있잖아요. 맞나요? 그 옆에 이렇게 앉아서 찬양하면서 하나님 오늘 괜찮아요? 이거 하고 있잖아요. 맞아요? 상상이 안 되죠? 안 되나요? 그럼 외우세요. 그 위에서 계시록 5장에 보면은 24 장로와 천사들과 둘러싸여서 그거하고 우리도 거기 어딘가 있을 거예요. 그렇죠? 왜? 지금 이미 우리는 그 안에 있다고 그랬잖아요. 그럼 거기서 뭐하겠어요? 찬양하고 기뻐하고 즐거워하고 던지면서 할렐루야 하면서 이렇게 서로서로 이렇게 옆에 이 집사도 있고 박 집사도 있고 홍 집사는 못 왔네 이렇게 이러고 있는 거 아닌가요? 우리 동네 홍 집사 없죠? 다행이야. 큰일 날 뻔했어. 그걸 이 땅에 탁 옮겨놨어 지금 그래서 예수님은 항상 그 안에서 교제했기 때문에 하나님이 원하는 대로 했고 하나님이 말하는 대로 말했고 하나님이 그 안에 친히 그 안에서 하나님이 일을 하는 대로 온몸이 따라서 행했고 그게 요한복음 517, 828, 1249, 1410, 42, 434, 431, 434 그거 하고 있는 거예요. 우리도 거기서 내려왔잖아요. 혼자 안 내려왔어요. 삼위일체 하나님이 내 안에 함께 내려왔어요. 맞나요? 그럼 어떻게 해요? 지금 그 삶을 살고 있어야지 매일 매 순간 그런데 그게 왜 안 된다고 그래요? 땅에 있는 가 뭐예요? 음란과 부정과 사욕과 악한 정욕과 탐심이라 이게 많으면 많을수록 우리는 이 땅의 찌질이로 삼는 여러분 이게 없죠? 전혀 없죠? 전혀 많아요. 끄떡끄떡하면 안 되지 이게 바로 천상의 삶을 방해하는 핵심이 바로 땅에 있는 지체 거기에 부정성이라는 게 같이 들어가 있어요. 그러니까 그게 이제 2가지 요인으로 요약을 하는데 하나는 땅에 있는 지체 하나는 옛 사람에게 속해 있는 부정성이에요. 이게 문제예요. 그래서 천상의 실존의 풍성함을 땅에 있는 지체를 그 풍성한 그 천상의 하나님의 존재의 능력 신의 성품 우리 안에 와 계시잖아요. 그것으로 땅에 있는 지체의 부정성을 죽일 때 우리는 지속적으로 그 천상의 삶을 지금 누리게 되는 거죠. 간단하죠? 그걸 못 누르게 하는 거 제거만 하면 되잖아요. 어려워요? 쉽잖아요. 제거만 하면 되잖아요. 아메 제거만 하면 돼요. 팔아버리세요. 그냥 거기에 보면 음란과 부정과 사사로운 욕심과 악한 욕심과 탐심이 있대요. 여러분 사사로운 욕심이 없잖아요. 그렇죠? 아 그게 하나님보다 하나님과 사귄보다 더 기쁘다. 이게 사사로운 욕심이에요. 그게 그렇게 했을 때 내게 기쁨을 하나님보다 더 많이 준다. 할 때 그게 음란이라고 하는 거고요. 그렇게 사는 것을 우상숭배라 하는 거고요. 아멘 그렇게 사는 존재를 부정하다라고 하는 겁니다. 그 두 개 제거하면 되겠죠. 그래서 여러분 내 삶이 계속 힘들게만 느껴지고 나는 왜 이러지? 하면 그런 것만 느껴지고 이건 쉽죠. 안 죽여서 그래요. 안 죽여서 안 죽이고 그거 사려고 하죠. 안 죽이고 그걸 사려고 막 애쓰죠. 내 몸에 힘을 가지고 그걸 한번 끌어당겨보려고 하죠. 그래서 이것도 저것도 아무것도 안 되는 거예요. 인생이 개고생인 거예요. 그래서 그러면서 신앙생활한다고 열심히 해왔죠. 저도 그렇게 했어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제가 한탄을 했습니다. 그래서 헛방이야. 헛방 어찌 됐구나. 어찌 됐어? 누구에게 속아서 거짓 선지자에게 속아 가지고 이때까지 내 인생을 완전히 도난당해버렸어요. 근데도 여러분은 태연하대요. 아무렇지도 않나 봐요. 30년 도적당했어요. 괜찮아요? 별 탈 없어요. 30년 넘죠? 40년 짧은 시간에 많이 도난당했네. 그래도 괜찮아요. 안 괜찮으니까 와서 그렇게 울었구나. 두 달을 울었어요. 세 달을 울었어요. 그 아무도 안 울어. 여기 다른 사람들은 감각이 없어. 감각이 없어요. 감각이 없어요. 안 울어. 우는 이유는 일이 안 풀려서 그래요. 사욕을 성취를 못해서 울고 불고 하는 거지. 도적질 당한 40년 때문에 우는 사람은 여기밖에 없어요. 저도 애통하면서 울었어요. 진짜로 저는 3주밖에 좀 짧잖아. 40년이 되니까. 그 정도 4개월은 울어야지. 3개월 울고 말아서는 아직 부족해요. 거기는 얼마나 울어요? 나면서부터 큰일 났네. 아직 30이 안 돼서 다행히. 그렇죠? 넘었어요. 그래요. 그럼 3개월만 울면 되겠어요? 거기는 50년 어떡하면 좋아? 50년을 울어야 되는데 이게 그냥 농담처럼 들려요. 여러분 아무도 심각하게 안 받아들이는 것 같아요. 내가 그 40년 잃어버린 잃어버린 30년 세월 꺾어야 돼 이렇게 그거를 천상의 삶을 영생을 살고 있어야 될 걸 못 살고 날려버렸잖아요. 그런데도 억울하지 않아요. 내 꿈을 펼쳐라. 그게 안 돼서 억울해서 울고 불고 난리가 나는데 그걸 위해서는 하루라도 한 끼도 안 굶어. 내 꿈을 성취하기 위해서는 40일도 굶어버리는데 그러니까 여러분 잘못 배운 거예요. 진리가 뭔지 모르고 교회만 다녔다고요. 저도 그랬고 여러분도 그랬고요. 갑갑하게 그러죠. 이런 것들 때문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보세요. 이것들로 인하여 하나님의 진노가 임한대요. 그래서 여러분 저도 진노를 당해서 케어됐고요. 여러분도 진노를 당해서 여기 왔고요. 아직도 진노를 당하면서 정신 못 차리고 있기도 하고요. 그래요. 망각을 잘 아는 짐승이라요. 그래요. 갑갑하지 않으세요? 천상의 삶의 실존적인 풍성함을 다 놓쳐버린 거예요. 이 땅에서 삽질하느라고 막에게 속아서 그게 그냥 쉽게 생각할 일인가요? 거긴 얼마 안 속아서 다행이에요. 5년 아우 껌이지 뭐 50년도 있는데, 아무것도 아니지 땅에 있는 지체는 죄의 몸을 말해요. 6에 속한 것. 이미 십자를 못 박혔죠. 육체 못 박혔죠. 죄의 몸 못 박혔죠. 그렇죠. 육신의 자유의지 못 박혔죠. 없어졌죠. 남아있는 것은 몸이 남았죠. 자연인의 몸. 그 몸에 뭐가 역사한다고요? 와서 6장 12절 죄 세력이 죽을 몸의 역사에서 몸의 사욕을 쫓게 한다고 그것이 천상의 삶을 못 살게 하는 거죠. 아시겠어요? 내 사욕을 쫓는 만큼 여러분은 천상의 삶을 놓치는 거예요. 그 천상의 삶은 뭐예요? 평감과 기쁨이라 그런가요? 성령 안에서 의와 평감과 희락이라 의는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회복이죠.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회복은 이거예요. 평강과 희락. 아무리 사육을 쫓아 채워도 평강과 희락을 못 누립니다. 죽어도 안 되는 거예요. 그건 천상의 삶의 실존이에요. 그래서 많은 걸 쌓아놓고도 안절부절 염려 헌심, 마음의 심이 없고 평안이 없고, 조마조마 염려 헌심 두려움 떠날 날이 없는 거예요. 저는 쌓아놓은 게 아무것도 없거든요. 편감과 기쁨을 잘 안 이뤄요 왠만해도 여러분 아무리 여기서 난리를 쳐도 여기 훅 쪼개서 내려앉아도 상관없어요. 같이 죽으면 되지. 싫은가요? 스테반이 누렸던 그거 말이에요. 돌에 맞으면서도 누릴 수 있었던 그걸 말해요. 그 순간에 하늘이 열려서 그걸 쫙 봤잖아요. 하늘이 열려야 보였는데 안 열리면 그게 없는 거죠. 열려서 보였는데 안 열리면 안 보일 뿐이지 있는 거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믿음으로 그걸 볼 수 있거든요. 지금도 내가 거기에 있는 실존이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어떤 일이 와도 그게 나와 항상 함께 있는 거죠. 맞나요? 그걸 누리고 계셔요. 조금만 일이 일어나면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오르락내리락 난리죠 안 그런가요? 그건 여러분 땅에 있는 지체가 시퍼렇게 살아서 그 땅에 있는 지체가 원하는 대로 내 모든 것을 거기에다가 던져버렸기 때문에 그래요. 그래서 천상을 누리지도 못할뿐더러, 바로 육절이 일어나는 거예요. 하나님의 진노가 임하는 거죠. 왜 진노가 임할까요? 너는 천상의 존재로 이 땅에서 예수님처럼 천상의 존재가 이 땅에서 사는 사람의 표본이잖아요. 그렇게 살도록 여기 와 있는데, 이 땅의 사람처럼 사니까 주소를 잃어버린 거죠. 본질을 까먹은 거죠. 그래서 진노가 임하는 거예요. 왜요? 정신 차리라고 너는 땅개미가 아니다. 정신 차려. 이렇게 해서 진노가 임하는 거예요. 그래서 진노를 받아 메뚜기가 저처럼 되기 전에 빨리 피하는 게 낫겠죠. 그 속으로 홀딱 들어가는 게 안 낫겠어요. 굳이 기다려야 되겠어요. 그럼 우리는 제 몸이 육체의 수욕을 쫓는 것들이 십자가 이미 정과 욕심이 십자가 못 박혀 죽은 사람들인데 아직 이 몸에 남아 몸이 남아 있지만 제 세력이 이 몸의 역사에서 자꾸 사욕을 좋게 만들어서 그렇게 딸려가는데 그래서 몸의 사욕대로 살면 안 되고 피 흘리기까지 싸워야 한다고요. 그게 히브리스 12장 4절 피 흘리기까지 싸우라고 그런 거예요. 예수님도. 그래서 피 흘리기까지 싸우고 승리하셨잖아요. 그 십자가를 말해요. 사르도바흐로 매일 죽노라 하고 그래서 매일 천상의 삶을 누렸던 사람이에요. 놀랍죠. 우리도 그렇게 가야 하는 거죠. 진누가 임하기 전에 스스로 자발적으로 갈 수 있어야죠. 그래서 우리가 애통해야 할 진정한 건 죄에 대한 애통이에요. 몸의 원한 욕구를 채우지 못해서 우리는 막 울고불고 애통하고 난리죠. 여러분 왜 교회 와요? 교회 와서 막 굶으면서 밤새 왜 기도해요? 왜 울고 불면서 밥을 굶으면서 기도해요? 금식 해보신 분만이 왜 그렇게 기도해요? 내 원함이 안 이루어져서 막 그거 문제 해결해 달라고 막 울고 불고 피기도 하잖아요. 그렇죠? 내가 천상의 존재인데 이 땅에 개미처럼 살아서 심판을 받아 진노를 당해서 이 꼬라지를 당하고 있구나. 그래서 내가 죄인이구나. 이게 안타까워서 밥 굶으면서 울고불고 해보신 분 계신가요? 밥 안 굶고 울고불고 하긴 하더만. 그렇죠? 대단한 거예요. 저도 이걸 알고 진짜 많이 울었어요. 정말 애통하더라고. 그게 진짜 애통이에요. 그 죄를 깨달을 때마다 그래서 애통하는 거예요. 왜? 그만큼 내가 천상의 삶을 못 살았잖아. 빼앗겼잖아요. 죄의 세력 마귀에게 속아서 도둑질 당했잖아요. 집안에 있는 싹 다 도둑질 당했는데도 아무렇지도 않죠 여러분. 무덤덤합니까? 어때요 그걸 도적질 당했다고 제가 말씀을 드렸는데 아무렇지도 않네요. 전부 다 말동말동하십니까? 애통해야 되는 거예요. 아무도 애통 안 해요. 내가 당하는 권한 때문에 죽게 했다고. 애통하고 통곡하고 밤낮 곡을 하고 난리죠. 내가 내 죄로 인해서 육체를 쫓는 이 땅에 쫓는 그 지체 그것으로 인해서 속아서 내 삶에 송두리째 날렸다. 이것 때문에 애통하는 분은 하나도 없어요. 그래서 여러분 그 애통은 헛것이 돼버린 거예요. 여러분. 아무 가치가 없어져 버린 거라고요. 이해 가시나요? 똑바로 알고 우리가 예술을 믿어야 돼요. 실제로 너희도 그 전에 그 가운데 살 때 그 가운데 전에는 그 가운데서 행하였으나 이제는 너희가 모든 것을 벗어버리라. 부흥과 아기와 해방과 너희 배 부끄러운 말이라 이런 것들이 땅에 속한 지체에서 나온 거잖아요. 다 벗어버리라는 거예요. 이게 이것 때문에 내가 천상을 못 누린다는 거죠. 내가 열받아서 막 하고 있는 동안에는 하늘의 놀라운 삶을 내가 염려 근심하면서 머리 싸매고 있을 동안에 내가 우울해서 죽을까? 내가 살아야 하나 하고 있을 동안에는 그거 다 잃어버리는 거예요. 비 오는 날 담배 한 대 피우면서 커피 한잔 마시고 소주 한잔 하면서 내 인생이 왜 이렇지 않은 동안에 다 잃어버리고 있는 술로 달래집니까? 택도 없습니다. 술이라면 제가 둘째가라면 서러운 놈인데 몸만 버려요. 절대로 안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말씀 앞에서 성령의 조명 앞에서 이 죄 때문에 심각해서 애통해야 되는 거예요. 그래서 애통하는 자는 복이 있나니 천국이 저희 것이 그게 바로 그 말이에요. 그것 때문에 애통하는 거예요. 그것 때문에 지금부터 울고불고 하시는 분 그것 때문에 애통하는 줄 알겠습니다. 암에 일이 안 풀려서 애통하는 분은 없는 줄 알겠습니다. 여기 안에 들어가 있으면 일이 왜 안 풀립니까? 술술 술 마시듯 풀립니다. 모르나요? 그 맛이 어떤지 우리는 제 몸이 이미 십자각에 못 박혀서 죽었죠. 불구가 됐다고 그랬잖아요. 아직도 남아있는 육체 몸, 살아있는 이 몸. 여기에 마귀가 역사에서 계속 세 가지 과목을 쫓게 하는 거예요. 그래서 성령 충만하면 그것부터 시험하는 거예요. 그걸 없애야 천상을 누릴 수 있기 때문에 그게 가득한 상태에서는 천상의 교재가 안 이루어지는 거예요. 안 되는 거예요. 그게 꽉 차 있는데, 천상에서 누리는 교재가 되겠어요. 천상에서 누리는 교재는 이미 벗고 올라간 사람들이 누리는 건데 이 땅의 것을 잔뜩 내 육체의 소욕을 잔뜩 품고 그걸 누리려고 하니까 안 되는 거예요. 그걸 가지고 교제를 하는 이유는 그걸 이루기 위해서 교제를 하려고 하니까 교제도 안 되고 고통만 그래서 안 된다. 이렇게 말하는 거예요. 그건 안 되는 거예요. 저도 막 잡념을 잔뜩 가지고 하려면 안 돼요. 전날 뭔가 기분 나쁜 일이 있어서 이렇게 하고 나서 아침에 이렇게 하면 잘 안 돼요. 확실하게 안 돼요. 유행가만 듣고 지나가도 그 소리가 막 올라오죠. 그렇죠? 그런 정도로 섬세한 거예요. 그래서 가장 핵심 제로부터 우리를 지켜야 돼요. 몸의 사욕. 여기에 보면 그게 정욕이고 그게 바로 우상숭배라는 거예요. 그래서 하나님과 우상을 겸하여 못 섬기거든요. 우상을 섬기면서 천상을 누릴 수가 없는 거예요. 그래서 힘든 거예요. 여러분. 그런데 종교활동은 열심히 해야죠. 안 되는 거예요. 그래서 그래서 왜 이렇게 안 되냐라고 푸념을 하는 거예요. 저도. 그래서 열심히 했는데 안 됐고 진노를 통해 심판을 받아서 여기까지 오게 된 거죠. 여러분도 다 그러실 거예요. 그래서 여러분 진정 애통하고 있어야 돼요. 죄의 심각성이 얼마나 엄청난 건지 알아야 되는데 그것 때문에 유린당한다니까 도적질 당한다니까 천상의 삶을 지금 도적질 당하고 있는 중이라니까요. 기쁨과 희락. 편광과 감사 이런 것들이 충만한 삶을 살고 있어야 되는데 그걸 도적질당해서 못 살고 있는 거예요. 여러분 아시겠어요? 억울하지 않아요? 내가 원해서 한 거거든요. 전부 다 내가 잘못 알아서 그렇게 간 거고요. 그래서 땅에 있는 지체를 지속적으로 죽이는 십자가가 우리에게 반드시 있는 거예요. 그럴 때 우리는 계속해서 그 사건의 연합함으로 천상의 존재로 살게 된다라는 거예요. 그게 지금 우리가 지금까지 해왔던 그 복음이고 그 복음에서 생명 안으로 들어왔을 때 그걸 이제 우리가 누려야 되는데 그걸 막는 게 바로 그거라고요. 땅에 있는 지체라고요. 그렇게 십자가에 못 박을 때 천상의 실존으로서 지금 이 땅에서 천상의 풍성한 걸 살 수 바로 이거예요. 임재 안에 있는 삶, 교제하는 삶이에요. 그게 완성품 마지막 목표 지점이라고 그랬습니다. 다 그렇게 살 수 있어야 돼요. 죄를 물리칠 방안은 이미 다 알죠? 다 했어요. 앞에서 기초공사 94번 보세요. 다 했어요. 십자가에 죽을 때 뭐가 죽었다고 그랬죠? 스님의 십자가에 못 박힘으로 피의 은혜가 임했잖아요. 그런가요? 맨 처음에 피. 그래서 이 사람의 행위를 버리고 주님 앞에 담대히 나아갈 수 있는 권리를 얻었죠. 그 피로 인해서 그 다음에 옛사람이 못 깎이므로 죄의 욕구가 살아 불구가 되어서 죄에서 벗어나서 이제 하나님을 그리스도로 옷 입고 하나님을 숨길 수 있고 육신이 자기 주장 의지가 십자국에 못 박힘으로 해서 성령에 의해서 법을 지킴으로 하나님 안으로 연합하여 들어갈 수 있고 그게 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다 말했어요. 그렇죠? 그래서 죄가 있는 순간순간 바로바로 고백하셔야 돼요. 그게 천상을 누리는 방법이에요. 교재를 회복하고 회복했을 때 그 안에서 지금 이 땅에서 그 안에 있는 풍성함을 지금 누릴 수 있는 방법이에요. 그 안에는 모든 것이 그 발 아래 정렬돼 있죠. 이거예요. 바로 에베스 1장 10절 고려대전 3장 21절에서 13장 이걸 누리고 그걸 지금 우리를 우리가 그걸 다 누리도록 내 안에 와 계시죠? 그래서 내 안에 와 계신 그분과 교제함으로 그 천상의 삶을 지금 살고 있어야 되는 거예요. 그게 요한일수 1장 3절이고요. 그렇게 살 때 우리가 어떠한 환경이 와도 능히 이기고 남는 그런 스테반처럼 그 일이 우리에게 일어난다는 거죠. 그런데 조금만 일이 일어나면 여러분 금방 그걸 잃어버리죠. 그 정도로 우리가 약하다는 거예요. 조그만 일 하나 일어나도 꿈쩍도 안 해야 될 사람들이에요. 우리는 스네반처럼 꿈쩍도 안 해야 될 사람들이라니까요. 하늘이 갈라져도 그렇게 살고 계시죠? 이제 아멘 노래만 합니까? 해방되었네? 해방되었네. 찬양하는 동안은 진짜 해방된 것 같더라고. 와 끝나는 순간 바로 원래대로 돌아 가버리는 건 왠일입니까? 할렐루야 해야 되나 말아야 되나 모르겠어요. 천상의 실존입니다. 우리는 그리고 이 땅에서 그 안에서 교제를 내 안에 와 계신 그분과의 밀접한 관계 유지 교제를 통해서 지금 계속 누리고 있어야 돼요. 그래서 어떠한 환경이 몰아쳐도 교제함으로 이 환경을 다 극복하면서 이길 수 있어요. 이해하시죠? 바로 그거예요. 스네반이 돌에 맞는 순간 천상의 그 모습을 본 것처럼 그건 지금 우리 안에 이루어지고 있거든요. 그래서 내게 그런 어떤 돌팔매, 돌팔매 돌이 날아오는 게 꼭 그런 환경만 있나요? 별의별 환경이 많죠. 그런 게 일어날 때 내 안에 계신 그분의 얼굴을 찾아보라고요. 그러면 그걸 다 이길 수 있는 그 능력이 우리에게 이미 완성되어져 있어요. 그거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돌멩이가 너무 아파서 아우 아파 죽겠다고 거기에 모든 게 다 뺏겨버렸어. 그게 육신의 모습이죠. 맞나요? 그래서 못 누린 거예요. 여러분 이젠 누려야죠. 아니까 더 이상 속지 말아야죠. 애통해야 압니다. 여러분. 진짜 애통해야 돼요. 내가 속은 거에 대해서 애통해야지. 내가 이루지 못한 거에 대해서 애통. 아니요. 그 안으로 들어가면 다 있다고요. 주님을 가지면 모든 걸 이거 안 까먹었죠. 두 가지 시작. 내 임재 안에 있을 때 모든 것을 가진 것이고. 나를 찾을 때 모든 것은 제자리에 그것을 알기 원하노라. 항복하고 임재 안에서 교제할 때 우리는 적을 소유하는 거예요. 이 찬양 다시 한번 해볼까요?
1. 천상의 실존 1-1. 천상의 실존 이해 - 우리는 천상의 삶을 살고 있음 - 하늘에 앉히는 자로 불리며, 천상의 삶을 사는 것이 우리의 존재임 - 천상의 삶은 이 땅에서 살면서도 그 영생을 현실로 나타내는 것임 - 요한일서 1장 1절부터 나오는 내용이 영생을 이해하는 기초임 - (중요) 천상의 삶은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이루어짐 1-2. 영생의 삶과 사귐 - 영생은 하나님과 그 아들을 아는 것임 - 요한일서에서는 '아들 안과 아버지 안에 거한다'고 표현함 - 요한복음에서는 '상호 내주'라는 단어를 사용함 - 성령은 하나님과 아들을 아는 것을 현실화하기 위해 오심 - 영생은 천상의 실존이 누리는 권리이자 하나님의 신성과 충만함을 누리는 것임 1-3. 영생의 삶의 증거 - 우리가 이 땅에서 열을 내거나 짜증을 내는 것은 영생이 없는 증거임 - 천상의 삶을 사는 것은 우리가 천국에 속해있음을 의미함 - 이 땅에서 우리가 겪는 어려움은 우리가 이곳에 속해있다는 증거임 - 영생의 삶은 천상의 실존의 삶을 사는 것임 - 하나님과의 사귐을 통해 이 땅에서도 온전한 영생을 누릴 수 있음 2. 천상의 실전, 복음의 진리 2-1. 복음에 대한 오해와 그 고침 - 복음에 참여한 사람은 반드시 복음의 영광 안으로 누리고 있어야 함 - (중요) 지식으로만 율법을 알고 있었다가, 실제 복음을 누리지 못한 것에 대한 고백 - 핍박과 욕을 받더라도 꾹 참으면서 가는 곳이 십자가라는 오해에서 벗어나야 함 - 헛방이란 말은 천상의 실존은 하나님 안에서 누리는 모든 풍성함을 다 누리는 것을 말함 2-2. 천상의 실전에서의 성품 참여 - 바울은 하나님의 모든 충만으로 충만하기를 원한다고 간절히 기도함 - 자신의 가짜 기도는 다른 향이 올라가서 신성의 모든 충만을 고함 - (중요) 십자가의 연합, 무덤의 연합, 부활의 연합, 현연의 연합을 참여해야 복음의 실체를 이해할 수 있음 - 신성의 모든 충만은 고사하고 수고와 슬픔을 못 벗어나기 때문에 가짜 기도는 피해야 함 2-3. 지상적인 삶의 현주소와 천상의 실전 비교 - 돌베개는 사람이 지상적인 삶을 살아가는 현주소로 볼 수 있음 - 야곱은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는 꿈을 꾸었으며, 그것이 천상의 실전의 예시임 - 야곱이 부재하는 천사들의 이동은 천상의 실전의 일부이며, 이것이 사람의 삶에도 적용됨 - 복음의 진리에 대한 깊은 이해는 천상의 실전에서의 성품 참여에 기초해야 함 3. 천상의 실전과 지상적 삶의 모형 3-1. 천상의 실전과 땅에 내려온 하나님의 아들들 - 천상의 실전이 땅에 내려와서 세부적으로 꼬라지지만, 천사들은 부러워함 - 천사들은 천상의 실체인 야곱을 보고 의좌에 앉아 있는 그 모습을 인식함 - (중요) 천사들은 야곱의 얼굴을 보며 신의 아들임을 인지함 - 천사들이 부러워하는 열두 지파 만인의 아버지의 언약을 받은 사람을 보고 있음 - 천사들과 비교하면 안되는 존재가 땅에서 내려와 존재의 실체를 보고함 3-2. 천상의 실전에서 지상적 삶의 모형 - 천사들은 천상의 실체를 보고 그 모습에 감동받음 - (중요) 천사들은 지상에서 살면서도 천상에서 고민하고 천상의 생명을 볼 수 있음 -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 이루어질 하느님의 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인물 -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좌의 안전자로서 이 땅에 내려옴 - 우리는 천사들과 비교도 안되는 존재이며, 우리의 삶은 지상적인 삶이지만 천상의 생명을 가지고 있음 3-3. 지상적 삶의 방향성과 천사들의 부러움 - 천사들은 지상에서 삶을 살면서도 천상의 삶을 계속 유지함 - 천사들이 오르락 내리락하며 부러워하는 야곱의 실체를 보게 됨 - 천사들이 부러워하는 야곱의 삶은 천상의 실체를 가진 야곱의 삶과 모형을 보여줌 - 천사들은 그들의 실체를 천상의 삶에서 벗어나 지상적으로 살 수 있도록 유도함 - (중요) 천사들은 천상의 삶을 살기 위해 땅의 삶을 포기하도록 유도함 4. 천상의 삶을 이해하고 누리는 방법 4-1. 천상의 삶이란? - 천상의 삶은 하나님의 존재와 그분의 우편에 있다는 것에 주목함 - 이 땅에서 교제하며 살아가는 것이 천상의 삶에 참여하는 방법 - 예수님은 천상의 삶을 살기 위해 지속적인 교제가 필요했음 - 예수님은 새벽에 일어나서 교제하러 나갔음 - 육체를 잊고 천상의 삶을 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교제가 필요함 4-2. 천상의 삶을 실천하는 방법 - 천상의 삶은 이 땅에서 이루어지는 삶을 현실로 만드는 것 - 이 땅에서 이 땅에 실존적으로 누릴 수 있는 방법을 찾음 - 천상에서 삶의 모습을 본받아 현실로 살 수 있음 - 예수님은 천상의 삶을 사는 방식을 본받아 이 땅에서도 삶을 누림 - (중요) 천상의 삶을 실천하려면 땅에 있는 지체를 죽여야 함 4-3. 천상의 삶에 방해되는 요인들 - 땅에 있는 지체와 옛 사람에게 속해 있는 부정성이 천상의 삶을 방해하는 주요 요인 - (중요) 음란과 부정, 사사로운 욕심과 악한 욕심, 탐심이 천상의 삶을 방해 - 이런 요인들을 제거하면 천상의 삶을 누릴 수 있음 - 이러한 방해 요인들을 안 죽이고 그곳에서 벗어나서야 천상의 삶을 누릴 수 있음 - 이 과정에서 믿음과 기도가 필요하며, 이는 천상의 삶을 이어가는 데 필수적임 5. 천상의 삶과 죄의 향락 5-1. 천상의 삶의 실존적 가치 이해 - 천상의 삶은 땅에서의 삶보다 풍부하며, 죄의 몸에서 벗어나면 평강과 희락을 누릴 수 있음 - 사욕을 쫓으면 천상의 삶을 누릴 수 없으며, 이는 자신의 정신을 차리라는 하나님의 진노를 받는 것 - (중요) 육체의 자유의지가 사라져 자연인의 몸에 그만 남아 있음 - 이 몸의 역사에는 죄의 세력이 살아남는 것이, 그로 인해 천상의 삶을 누릴 수 없게 됨 5-2. 육체의 욕구와 죄의 향락 - (중요) 천상의 삶을 누리기 위해서는 자신의 육체의 욕구를 쫓아야 함 - 자신의 사욕을 쫓아 생기는 이로 인해 진노를 받게 되며, 이를 극복하려면 스스로 진노를 피해야 함 - 천상의 존재로서 사는 사람들이 이 땅에서 잘못된 길을 가면서 생기는 죄의 결과에 대한 애통 - 자신의 죄로 인해 생긴 손실에 대해 통곡하고, 이를 극복하려면 자신의 죄를 인정해야 함 5-3. 진노의 결과와 그 해결 방법 - 천상의 삶을 누리려면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해야 함 - 자신의 육체의 욕구를 채우지 못하면 천상의 삶을 누릴 수 없으며, 이로 인해 육체의 쫓기는 것이 생김 - (중요) 자신의 죄를 인정하고 이를 극복하려면 천상을 누리는 방법을 배워야 함 - 자신이 죄의 몸에서 벗어나기 위해선 스스로 자기의 삶을 재평가하고 이를 개선해야 함 6. 천상을 누리라 6-1. 신앙의 힘과 심판 - 신앙을 통해 천상을 누릴 수 있지만, 힘든 과정이 필요함 - 종교 활동을 열심히 해야 하지만, 도적질 당하는 삶을 살고 있음 - 죄의 심각성을 알고, 애통하며 신앙의 힘을 누려야 함 - (중요) 지속적으로 죽이는 십자가를 통해 천상을 누릴 수 있음 - 천상의 실존으로서 풍성한 삶을 살 수 있음 6-2. 죄를 해결하는 방법 - 기초공사 94번을 통해 죄를 해결하는 방법을 알 수 있음 - 십자가에 죽음으로써 피의 은혜를 얻고, 죄의 욕구에서 벗어날 수 있음 - 하나님께 연합하여 들어갈 수 있고, 성령에 의해 법을 지키게 됨 - 죄를 고백하는 순간을 통해 천상을 누리는 방법을 알 수 있음 - 죄를 해결함으로써 천상을 누리고, 풍성한 삶을 누릴 수 있음 6-3. 교제와 환경의 극복 - 교제를 통해 내 안에 와 계신 하나님과 교제해야 함 - 환경에 휩싸여도 교제를 통해 극복하고, 스테반처럼 승리할 수 있음 - 돌에 맞아 천상을 본 것처럼, 내 안에 계신 하나님을 찾을 때 모든 것이 이룸 - 교제함으로써 환경을 극복하고, 어려움을 이겨낼 수 있음 - 육신의 모습을 버리고, 진정한 자유와 해방을 누릴 수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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