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제 1220편
*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祖師))
오도송(悟道頌) 및
선시(禪詩)
오도송(悟道頌)이란 무엇인가 ?
불교(佛敎)를
공부(功夫)하는
수행자(修行者)가
자신의 깨달음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가운데(中) 하나를
오도송(悟道頌)
이라고 한다.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게송(偈頌)의 하나로써
구체적으로
비교해서 설명하면
고승(高僧)이
자신만의 깨달음(覺)을
노래(歌, 句)한 것이
바로
오도송(悟道頌)이며
고승(高僧)이
자신의 임종(臨終) 전에
남겨놓고 가는 노래(歌, 句)를
열반송(涅槃訟)이라고
한다.
게송(偈頌)이란
불교의 가르침(敎義)을
함축(含縮 집약)하여
표현(表現)하는
운문체(韻文體)의
짧은 시구(詩句 문자)를
말하는데
곧 선시(禪詩) 내지
또는 선어(禪語 문장)를
이르는 말이다
본래(本來)
게(偈)와 송(頌)은
같은 의미로
《게(偈)》
라는 글자(字)는
산스크리트어(梵語)
《가타(gatha)》의
음을 빌려와(音借) 따서 만든
말이고
《송(頌)》
이라는 글자(字)는
《가타(gatha)》를
한문(漢文)으로 번역한
것이다.
이렇듯
자신의 깨달음(正等覺)을 읊은
선승(禪僧)의 게송(偈頌)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게송(偈頌)
즉,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오랫동안
수련과정(修練過程)을
통해 함축된 의미로
세속(사바세계)의
사람(大衆)들에게
무엇인가를 전(傳)하고
말(說法 이야기)하고저
하는 것이며
후세(후학)들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역사적(歷史的)
문헌 기록상(文獻記錄上)
오도송(悟道頌)을
가장 먼저 남긴 이(僧侶)는
조동종을 일으킨
동산 양개(洞山良价,
807∼869) 선사(禪師)
이다.
생사일여(生死一如)의
구분이 부질없는 일임에야
사람들은
태어남을 기뻐하고
헤어짐은 슬퍼한다.
오랜 세월
훌륭한 선승(禪僧)이나
선사(禪師) 스님들의
깨달음의 길(佛道行)이
매우 힘들고 어려우며
지난(至難)하듯이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남겨진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은
일반인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이
많은 것이 사실이다.
이렇듯
깨달음의 노래는
다시 한번
자신(수행자)의 삶(人生)을
돌이켜보게 하고
느슨해졌던 마음을
추스리게 한다.
여기
역대(歷代)
조사(佛祖師 선사)
스님(高僧)들의
오도송(悟道頌)과
열반송(涅槃訟)을
올려놓으니
행간(行間)의
곳곳(處處)에 숨겨져 있는
깊고 깊은 심오(深奧)한 뜻을
함께 발견(發見)하고
공부(功夫)하며
오늘을 사는
지혜(반야 보리 광명 智慧)를
찾아보시기 바램해 본다.
본론(本論)
불교(佛敎)
역대 선사(歷代 禪師, 祖師)
선시(禪詩)와
임종게(臨終偈) 및
오도송(悟道頌) 설해(說解)
"
바람이 서리 묻은 잎을
(霜葉風飛)
경허 성우(鏡虛惺牛) 선사
풍표상엽락 風飄霜葉落
낙지편성비 落地便成飛
인차심난정 因此心難定
유인구말귀 遊人久末歸
회오리 바람이 나부끼니
서리 맞은 잎(낙엽)은 지고
떨어진 곳 그대로 편안히
그 쪽에서 바람에 날으니
어쩌나 ! 내 마음 맡기고
머무를 데 없어 심란하니
노니는 사람(遊人) 오래 남아
끝까지 되돌아가지 못하는구나
"
"
용정강 지나며
(龍汀江上野叟之)
경허 성우(鏡虛惺牛) 선사
용정강상야수지
龍汀江上野叟之
회수위문로분기
回首喟問路分岐
야수무언산우만
野叟無語山又晚
하처창랑운처지
何處滄浪韻凄遲
용정강 위를 시골 늙은이
배를 타고 건너 가는데
갈림길에서 뱃사공에게
뱃머리 돌리며 한숨 쉬고 물으니
시골 늙은이 대답 없고
산 또한 날이 저무는데
어디에선가 푸른 물결 소리
쓸쓸하고 낭랑하게 들려오네
"
* 야수(野叟)
= 야노(野老)
시골에 사는 늙은이
경허(鏡虛) 선사 자신을 지칭
* 위문(喟問)
한숨을 쉬며 묻다.
* 운처지(韻凄遲)
낭랑하다. 물결치는 소리가
멀리서 들려오다.
* 갈 지(之)
가다. 이러르다.
도달하다(到達). 이르다
(어떤 장소나 시간에 닿다)
* 회수(回首)
= 회두(回頭)
머리를 돌린다는 뜻으로,
뱃머리를 돌려 진로를 바꿈을
이르는 말
~ 뒤에
" 한숨 쉰다 "는 말이
따라오는 것으로 보아
묻는 사람이
머리를 돌렸다는 것은
부자연스럽고
유람하는 사람 보다
노젖는 사람이 힘이 드니
한숨을 쉼한 사람은
노젖는 사람일 것이다.
노젖는 배는
노젖는 사람이 배뒷쪽에서
노를 젖는다.
수행자(修行者)는
칠통(漆通)의 모습(諸相無相)을
빠르게 깨뜨리고 부숴내어
타파(打破)하여
부처님(佛道)의
뒤를 이어 후손(後孫)을 이루고
후손(후계)를 이룬 곳에서
곧 금까마귀(自性) 날아 올라
이로 인하여
마음의 근심(번뇌 망상 잡념)을
잘 다스리고 평정(平靜)해야만
하는 것이다.
또한 오랫동안
공부해오던 사람(修行人)은
오직 이러한
염원(念願 축원 발원 바램)으로
자신의 수행정진(修行精進)
일생(一生)을
끝 마쳤야 하는 것이다.
위(上記)의
시(詩, 게송, 禪詩)는
경허 성우(鏡虛惺牛) (1849~1912) 선사 스님의
시(禪詩, 게송)이다.
불교(佛敎)
선종(禪宗)을 중흥시킨
대선사(大禪師)로서
속성은 송씨(宋氏)
속명은 동욱(東旭)
법호(法名)는
경허(鏡虛)이다.
전주출신으로
아버지는 두옥(斗玉)이며
태어난 해에
아버지가 사망하여
9세 때
과천의 청계사(淸溪寺)로
출가(出家)하였다.
계허(桂虛)의
밑(門下)에서 물긷고
나무하는 일로
5년을 보냈다.
그 뒤
계룡산 동학사의
만화강백(萬化講伯) 밑에서
불교경론을 배웠으며
9년 동안
그는 불교(佛敎)의
일대시교(一代時敎)뿐
아니라
유교(儒敎 성리학)의
가장 근본 필독서였던
사서삼경(四書三經,
성리학 주요 논서 7권의 책을
한데 묶어서 일컫는 말)
사서(四書)
『논어(論語)』
『맹자(孟子)』
『중용(中庸)』
『대학大學』
삼경(三經)
『시경(詩經)』
『서경(書經)』
『역경(易經(주역周易)』
등(etc)
유서(儒書 유학,
성리학 서적, 책, 문서)와
노장(老莊思想)
등(等)
제자(諸子 여러 학자)
백가(百家 수많은 학파)를
두루 널리
모두 탐독(探讀)하여
섭렵하였다.
경허(鏡虛 惺牛)
스님은 생애를 통하여
선(禪)의
생활화, 일상화를
모색하였다.
산 속(山中)에서 은거하는
독각선(獨覺禪)이 아니라
대중 속에서
선(禪)의 이념(理念)을
실현하려고 했다는 점에서
불교 선(參禪 瞑想)의
혁명가로 평가받고 있다.
법상(法床)에서
행한 설법뿐만 아니라
대화나
문답을 통해서도
언제나 선(禪, Zen)을
선양하였고
문자의 표현이나
특이한
행동까지도
선(禪)으로 겨냥된 방편이요
작용이었다.
이와같은 노력으로
불교의 선풍(佛敎禪風)은
새롭게 일어났고
문하에도
많은 선사들이 배출되어
새로운 선원들이
생겨났다.
오늘날
불교계의 선승(禪僧)들 중
대부분은 그의 문풍(門風)을
계승하는 문손(門孫)이거나
직, 간접적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다.
경허는
근대불교사에서 큰 공헌을 남긴
중흥조이다.
승려들이
선을 사기(私記)의 형식으로
기술하거나
구두로만 전하던 시대에
선을 생활화하고
실천화한 선의 혁명가였으며
불조(佛祖)의
경지를 현실에서 보여준
선의 대성자(大聖者)였으며
근대 선의 물결이
그를 통하여 다시 일어나고
진작되었다는 점에서
경허(鏡虛)는
한국의 마조(馬祖) 대사로
평가된다.
만년에 천장암에서
최후의 법문을 한 뒤
사찰을 떠나
갑산(甲山). 강계(江界)
등지에서 머리를 기르고
유관(儒冠)을
쓴 모습으로 살았으며
박난주(朴蘭州)라고
개명하고 서당의 훈장이 되어
아이들을 가르치다가
1912년
4월 25일 새벽에
임종게(臨終偈)를 남긴 뒤
입적하였다
나이 64세
법랍 56세이다.
저서(著書)에는
《경허집》이 있다.
ㅡㅡㅡㅡㅡ
※
원문을
해석함에 있어
지극히 개인적 견해(見解)와
해석(解釋)으로
오역(誤譯)
오판(誤判)한 부분도
분명 있을 것이다.
언제든지
글 내용 가운데
잘못 된 부분은 옳고 바르게
지적(指摘)해 주시고
새로운 가르침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램해 본다.
- 마음그릇 心椀 드림 -
ㅡㅡㅡㅡㅡ
마음그릇 心椀과
함께 배우는 불교
《= 다음편에 계속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