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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원하는 예물
36: 2-7
2. 모세가 브살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모든 자를 부르매
3. 그들이 이스라엘 자손의 성소의 모든 것을 만들기 위하여 가져 온 예물을 모세에게서 받으니라 그러나 백성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하여 가져 오는 고로
4. 성소의 모든 일을 하는 지혜로운 자들이 각기 하는 일을 정지하고 와서
5. 모세에게 고하여 가로되 백성이 너무 많이 가져 오므로 여호와의 명하신 일에 쓰기에 남음이 있나이다
6. 모세가 명을 내리매 그들이 진중에 공포하여 가로되 무론 남녀하고 성소에 드릴 예물을 다시 만들지 말라 하매 백성이 가져오기를 정지하니
7. 있는 재료가 모든 일을 하기에 넉넉하여 남음이 있었더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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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께서는 태초에 천지만물을 창조하시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만드셨습 니다.
특별히 인간을 하나님의 형상대로 만드셨습니다. 그 이유는 인간과 교제하기 위해서입니다. 마치 친구처럼 형제처럼 친밀하게 교제하고 싶어하셨을 것입니다. 또 인간에게 자유의지를 주셔서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존재로 만드셨습니다. 이처럼 다른 피조물과 다르게 창조하신 것을 보면, 우리 인간은 다른 피조물보다 존귀한 존재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모든 것을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특권을 가진 만큼 책임 또한 클 수 밖에 없습니다. 사실 자유라고 하는 것은 책임질 수 있을 때에만 축복이 됩니다. 그러므로 책임질 힘이 없는 사람에게 있어서 자유는 곧 방종이 되고 맙니다. 우리 하나님께서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에게 스스로 선택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는데 그것은 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에 관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그것을 먹지 말라고 명하셨습니다. 그리고 그것을 먹는 날에는 정녕 죽으리라고 경고하셨습니다.
사람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먹을 수도 있고, 먹지 않을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에 따르지 않고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었습니다. 그로 인하여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지게 되었고 결국은 멸망할 수밖에 없는 죄인이 되고 말았습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인간들과 영원히 좋은 관계를 가지고 교제하기를 원하셨지만 도리어 인간은 자유의지를 가지고 스스로 멸망하는 길을 선택했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과의 교제가 끊어졌고 인간의 불행이 시작되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이 많으시고 자비하신 하나님은 인간들과의 교제가 회복되기를 간절히 원하셨습니다. 그리하여 하나님께서는 오래 전부터 인간을 죄로부터 구원하기 위한 [구원의 길]을 구체적으로 준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시어 십자가를 지게 하심으로 인간의 모든 죄를 대속케 하실 계획을 세우셨습니다.
이를 위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택하시고 그의 자손인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다윗을 택하시고 다윗의 자손가운데서 하나님의 아들인 예수 그리스도가 육신을 입고 이 세상에 오도록 계획하셨습니다. 인간은 누구나 구원을 받으려고 하면 죄사함을 받아야 하며 그러기 위해서는 이스라엘 백성이라면 누구나 [희생의 제사]를 드려야 한다고 하나님께서 가르쳐 주셨습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대속함을 받으며 구원을 얻습니다. 인류의 조상인 아담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실과]를 따먹고 부끄러워 나뭇잎을 엮어 치마를 해 입었습니다.
그러나 이 나뭇잎으로 된 치마는 곧 마르게 되어 있습니다. 오래가지 못합니다. 이처럼 인간의 방법은 임시방편 밖에 되지 않습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해 짐승을 잡아 가죽옷을 지어 입히셨습니다. 이때부터 범죄한 사람을 위해 짐승을 희생시켜야 하는 [피의 제사]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13장 12절을 보면, 짐승의 첫 새끼와 사람의 장자는 모두 하나님의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나귀가 첫 새끼를 낳으면 하나님의 것이 됩니다. 그렇다고 해서 하나님께 나귀새끼를 드릴 수는 없습니다. 나귀새끼 대신 어린양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사람들도 첫 아들을 낳으면 그 아이는 하나님의 것입니다. 그러나 첫 아들 대신 양을 드리라고 하셨습니다. 아담의 두 아들도 하나님께 제사를 드렸습니다.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제사를 드렸고, 그의 아우 아벨은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제사를 드렸습니다. 아브라함도 하나님께 3년 된 암소와 3년 된 암염소와 3년 된 숫양과 산비둘기와 집비둘기 새끼를 가지고 제사를 드렸습니다(창 15:9).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든지 하나님을 위하여 단을 쌓고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마찬가지로 아브라함의 자손인 이스라엘 백성들도 하나님 앞에 제사를 지냈습니다. 그들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 머무를 때에는 회막 안에서 제사를 지냈습니다. 출애굽기 25장 8~9절을 보면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를 그들을 시켜 나를 위하여 짓되 무릇 내가 네게 보이는 대로 장막의 식양과 그 기구의 식양을 따라 지을지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이 거하실 성소를 하나님이 보여주신 대로 만들라고 하셨는데 히브리서 8장 1~5절을 보면, 하나님께서 자신의 보좌와 그 성전의 모형을 모세에게 보여주신 것임을 알 수 있습니다. 우리도 언젠가 천국에 들어가게 되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하늘나라의 성전을 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성전을 짓기 위해 이스라엘 자손들이 예물을 드렸습니다.
그러나 예물을 드리되 [무릇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자에게서 내게 드리는 것을 너희는 받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출 25:2).
여기서 즐거운 마음이란 의미는 히브리원어로 보면 마음에 감동을 받아 바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겼다는 뜻입니다. 다시 말해서 각자 하나님께서 마음에 감동을 주셔서 하나님께 바치고 싶어하는 마음이 생긴 사람은 가져오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가져오지 말라는 뜻입니다. 우리가 큰 일을 하려고 하면 마음에 감동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마음의 감동에는 두 가지가 있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감동이 있고, 사단으로부터 오는 감동이 있습니다.
사도행전 2장 36~41절을 보면, “너희가 십자가에 못 박은 예수를 살리시고 주와 그리스도가 되게 하셨느니라” 라고 외치는 베드로의 설교를 듣고 그곳에 모인 사람들이 마음에 찔려 베드로와 다른 사도들에게 “형제들아 우리가 어찌할꼬?” 물었다고 했습니다.
이에 베드로가 “너희가 각각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세례를 받고 죄사함을 얻으라 그리하면 성령을 선물로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그날 회개하고 성령 받은 성도가 3천명이나 되었습니다.
또 사도행전 7장 54~57절을 보면, 스데반 집사가 유대인을 향하여 설교할 때 그들도 역시 감동을 받았습니다. 그러나 앞서 말한 베드로의 설교 때와 달리 [저희가 이 말을 듣고 마음에 찔려 저를 향하여 이를 갈거늘.... 저희가 큰 소리를 지르며 귀를 막고 일심으로 그에게 달려들어 성밖에 내치고 돌로 칠세]라고 했습니다. 이는 그들이 악령의 감동을 받아 마음이 강퍅해졌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35장 5절을 보면 [너희의 소유 중에서 너희는 여호와께 드릴 것을 취하되 무릇 마음에 원하는 자는 그것을 가져다가 여호와께 드릴지니]라고 했습니다. 성막을 짓기 위해 하나님 앞에 바치는 예물은 하나님의 감동을 받은 사람들이 즐거운 마음으로 내는 것이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결과 [이스라엘 자손의 온 회중이 모세 앞에서 물러갔더니 무릇 마음이 감동된 자와 무릇 자원하는 자가 와서 성막을 짓기 위하여 그 속에서 쓸 모든 것을 위하여, 거룩한 옷을 위하여 예물을 가져 여호와께 드렸으니 곧 마음에 원하는 남녀가 와서 가슴 핀과 귀고리와 가락지와 목거리와 여러 가지 금품을 가져 왔으되 사람마다 여호와께 금을 드렸으며]라고 했습니다(출 35:20~22).
여기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예물을 드릴 때 한가지 원칙이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것은 다름이 아니라 [오직 마음에 원하는 자만 예물을 바치라]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무슨 압력을 받거나 또는 누군가의 강요에 의해서 억지로 드린다든가 그저 체면상 마지못해 드리는 정도라면 하나님께서도 그러한 예물을 열납하지 아니하신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마음에도 없는 예물을 드리는 경우 본인에게도 득이 되지 못하고 하나님께도 영광이 되지 못하는 어리석은 일로 비극이라 아니할 수 없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 7절을 보면, 사도바울은 고린도교회 교인들에게 하나님께 바치는 예물에 대하여 이렇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각각 그 마음에 정한대로 할 것이요 인색함으로나 억지로 하지 말지니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시느니라] 특히 5절에서 [내가 이 형제들로 먼저 너희에게 가서 너희의 전에 약속한 연보를 미리 준비케 하도록 권면하는 것이 필요한 줄 생각하노니 이렇게 준비하여야 참 연보답고 억지가 아니니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성전을 짓기로 한 것이 벌써 7년 이상 되었습니다. 제법 세월이 지났습니다. 그런데 그때부터 성전을 짓기 위해 마음에 감동을 받았거나 자원하는 마음을 가진 사람들은 즉시 헌금을 하기도 했습니다. 우리 교회가 건축의 시기에 관하여 구체적으로 결정한 바도 없고 강요하지 않았음에도 불구하고 스스로 적금을 들어 준비해온 분들도 제법 있습니다. 이런 분들은 IMF가 오기 전부터 준비해왔기 때문에 큰 어려움 없이 드리게 되었습니다.또 어떤 분들은 일천 번제를 드리며 준비해 왔기 때문에 쉽게 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 하나님이 얼마나 기뻐하셨겠습니까! 마음에 소원을 가지고 결정하고 감동을 받아 하나님께 드린 사람들은 하나님의 축복을 거듭해서 체험하는 사람들입니다. 이런 분들에게 큰 기쁨이 있고 많은 간증이 있습니다. 참으로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복은 아무나 받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마음에 합한 사람들이 받는 복입니다.
사도행전 13장 22절, 7장 46절을 보면 [내가 이새의 아들 다윗을 만나니 내 마음에 합한 사람이라 내 뜻을 다 이루게 하리라], [다윗이 하나님 앞에서 은혜를 받아 야곱의 집을 위하여 하나님의 처소를 준비케 하여 달라 하더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의 기도를 들으시고 성전을 건축하고도 남을 정도로 넘치게 축복하셨습니다. 그리하여 그의 아들 솔로몬이 다윗을 대신하여 성전을 건축했습니다.
그러나 이렇게 위대한 하나님의 사람인 다윗도 타락했을 때에는 자원하는 마음이 없어졌습니다. 그 때 다윗은 뼈를 깎는 회개를 통해 [구원의 즐거움을 회복시켜주시고 자원하는 마음을 주사 나를 붙드소서]라고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성도 여러분!
마음에 감동도 없고 성전 짓기 위한 준비도 전혀 하지 않고 있는 사람은 부끄러움을 당할지 모릅니다. 그런데 우리가 사람 앞에서 부끄러움을 당하는 것은 문제가 되지 않습니다. 더 큰 문제는 하나님 앞에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우상을 숭배하고 타락했을 때 기근의 수치와 욕을 당하게 하셨습니다(겔 36:30).
오늘날 북한 동포들이 이런 수치를 당하고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장을 보면, 연보에 대하여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능히 모든 은혜를 너희에게 넘치게 하시나니 이는 너희로 모든 일에 항상 모든 것이 넉넉하여 모든 착한 일을 넘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앞에 즐거운 마음으로 헌금을 하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요 은사입니다. 축복을 심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심을 것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심을 수 있습니다.
헌금은 물질로 하는 봉사이며 하나님께 영광이 되는 것입니다. 물질의 복을 많이 받아 물질로 봉사하는 것도 일종의 은사 중에 하나입니다. 그리고 우리 하나님은 즐겨내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이 아침마다 자원하는 예물을 연이어 가져왔다고 했습니다. 나중에는 너무 많아서 중단시킬 정도였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운 모습입니까? 사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은 잘 살고 평안할 때가 아니었습니다.
그들은 메마른 광야에서 많은 고생을 하고 있었던 때였습니다. 그러나 자신들이 가지고 있던 귀한 것들을 회막을 짓기 위해 아낌없이 드렸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중에는 예물을 드리는 대신에 몸으로 봉사한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출애굽기 35장 25~26절, 36장 2절을 보면 [마음이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손수 실을 낳고 그 낳은 청색 자색 홍색실과 가는 베실을 가져왔으며 마음에 감동을 받아 슬기로운 모든 여인은 염소 털로 실을 낳았으며], [모세가 브사렐과 오홀리압과 및 마음이 지혜로운 사람 곧 그 마음에 여호와께로 지혜를 얻고 와서 그 일을 하려고 마음에 원하는 자를 부르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은 이와 같이 은혜 받은 성도들에 의해서 지어져야 합니다. 성령의 감동을 받아서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예물을 드리거나 봉사하는 성도들에 의해서 지어져야 할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하나님이 기뻐하는 성전을 지으려고 하면 은혜를 받아야 합니다.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우리 교회가 24시간 릴레이 기도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출애굽기 40장 34절을 보면, 하나님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고 했습니다. 이 광경을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백성들이 자원하는 마음으로, 즐거운 마음으로 예물을 가져오고 성령의 감동을 받은 지혜로운 사람들의 봉사로 지어졌습니다. 이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기뻐하며 받으셨습니다. 얼마나 감동적인 일입니까? 이스라엘 백성들은 항상 하나님의 임재를 보면서 살았습니다.
36~38절을 보면 [구름이 성막 위에서 떠오를 때에는 이스라엘 자손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 앞으로 발행하였고 구름이 떠오르지 않을 때에는 떠오르는 날까지 발행하지 아니하였으며 낮에는 여호와의 구름이 성막 위에 있고 밤에는 불이 그 구름 가운데 있음을 이스라엘의 온 족속이 그 모든 행하는 길에서 친히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우리 교회의 새 성전도 마음에 감동을 받은 사람들과 즐거운 마음으로 자원하여 드리는 예물로 지어질 것입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이 기뻐하시고 영광을 받으시는 새 성전이 지어질 줄로 확신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주님을 섬기며 복을 받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