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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태일 목사
오늘 본문 이사야 58장은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 있는 유대인들의 신앙이 형식화된 데 대한 책망으로 쓰여진 장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신들이 율례를 따라 열심히 금식하면 하나님께 좀더 가까이 나갈 수 있다고 생각을 했습니다. 또 열심히 금식하면 하나님께서 자기들의 문제를 해결하시고 자신들을 축복하실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열심히 하나님을 섬겼으나 문제는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는데 있습니다. 3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금식하되 주께서 보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며 우리가 마음을 괴롭게 하되 주께서 알아주지 아니하심은 어찜이니이까?"라고 하나님을 향하여 반문하고 있음을 보게 됩니다.
죽어라 하고 금식하고 별의별 행동을 다해도 하나님이 보시지도 않고 알아 주시지도 않고 은총을 안 베풀어 주시니 도대체 어찌된 일인가? 하는 항변의 말입니다.
3절 하반절을 보면 왜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지 그 이유가 나옵니다. "보라 너희가 금식하는 날에 오락을 찾아 얻으며 온갖 일을 시키는도다". 금식을 하면서도 마음은 오락을 찾았으며 온갖 일을 시켰다는 말은 일년에 한번 금식하는 대속일에도 아랫사람들에게 호된 일을 시켰다는 말입니다. 신앙과 삶이 완전히 이분화 된 위선적인 행동을 지적합니다.
4절을 보면 "금식하면서도 다투며 싸우며 악한 주먹으로 치는도다". 흉악한 강도처럼 싸움질을 한다는 이야기가 아니라, 겉으로는 금식하지만 마음에는 용서할 줄 모르고 사람을 헐뜯으며 용서와 사랑을 베풀 줄 모르는 위선적인 외식을 폭로하는 말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섬김에 있어서 외식적이고 형식적인 종교생활에 치중하고 있었습니다. 바로 형식주의의 문제였습니다.
형식주의에 빠져 예배의 생명력을 상실한 채 순서만을 되풀이하는 자들에게 하나님은 참다운 금식이 무엇인지 6-7절에 말씀합니다.
"나의 기뻐하는 금식은 흉박의 결박을 풀어주며 멍에의 줄을 끌러주며 압제 당하는 자를 자유케 하며 모든 멍에를 꺾는 것이 아니겠느냐? 또 꾸린 자에게 네 식물을 나눠주며 유리하는 빈민을 네 집에 들이며 벗은 자를 보면 입히며 또 스스로 네 골육을 피하여 스스로 숨지 아니하겠느냐?"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이 말씀 속에서 중요한 진리를 발견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금식은 성도들의 삶이 바로 될 때 성립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씀드리면 하나님이 기뻐하는 금식은 억울하고 불쌍한 자들에게 자비를 베풀고 그들을 도와주는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7절에서는 베고픈 자들에게 먹을 것과 입을 것을, 불쌍한 자들에게 사랑과 동정을 베푸는 것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 말씀의 뜻은 형식적으로 금식하고 기도하고 예배드리는 것보다 참으로 예배하는 삶이 더 중요하다는 것입니다. 삶이 없는 예배를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
흔히 우리가 생각하는 것은 예배란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기에 현실의 상황이나 사회적 책임에는 전혀 상관없이 그냥 예배가 성립된다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받으시는 진정한 예배는 삶이 있는 예배입니다.
롬12:1에 "그러므로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제사로 드려라. 이는 너희의 드릴 영적 예배니라"고 했습니다.
오늘 본문 8절은 "그리하면"으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리하면"이라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참다운 금식, 기도, 즉 예배하는 삶을 살면"이라는 의미입니다. 본문은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축복입니다.
1. 첫째로 회복의 약속입니다.
8절에 "그리하면/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참다운 예배의 삶을 살 때,
1) 네 빛이 아침같이 비칠 것이라
이 말씀은 어둡고 괴로웠던 절망의 밤이 지나고, 하나님의 은혜와 아침 태양이 비취게 될 것이라는 말입니다. 오랫동안 절망 가운데 살았던 이스라엘에게 모든 것이 회복되리라는 것입니다.
2) 네 치료가 급속할 것이라
이 말씀은 영적으로,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고통받고 고난받았던 모든 상처와 아픔들이 싸맴을 받으며 깨끗하게 치유되리라는 말씀입니다.
3) 네 의가 네 앞에 행하고 여호와의 영광의 영광이 네 뒤에 호위하리니
이 말씀은 그 동안의 고난과 어려움에 지쳐 낙오하는 사람들을 전진시키며, 뒤에서 공격하는 적들을 안전하게 지켜 주시겠다는 뜻입니다.
오늘 우리가 형식적인 예배가 아니라 삶이 있는 참예배를 드리면 하나님은 우리의 삶의 환경을 회복시켜 주셔서 어두움과 절망의 자리를 빛과 희망의 자리로, 아픔과 고통과 상처가 있는 삶의 자리를 기쁨과 싸맴과 평안의 자리로 바꿔 주시며 우리의 삶을 지켜주십니다.
2. 둘째는 기도응답의 약속입니다.
9절을 보면 "네가 부를 때에는 나 여호와가 응답하겠고 네가 부르짖을 때에는 말하기를 내가 여기 있다 하리라"하였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를 때, 부르짖을 때"라는 말은 기도를 의미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부를 때 응답하시는 하나님이시며 부르짖을 때에는 "내가 여기 있다"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리고 그 뜻을 헤아려 하나님 보시기에 의를 행하면, 기도할 때마다 응답해 주심니다.
특별히 "내가 여기 있다"는 말씀은 기도하는 사람들이 우리의 기도에 응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확신을 가지고 기도하라는 말씀입니다.
갈멜산 위에서 바알을 섬기는 사람들 450명이 아침부터 저녁까지 자신들이 섬기는 신 바알의 이름을 부르며 응답해 주실 것을 기도한 적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끝내 바알은 "내가 여기 있다" 말도 하지 못했고 그 모습을 나타내지도 못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야 선지가 하나님을 향하여 "아브라함과 이삭과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여 주께서 이스라엘 꿈에서 하나님 되심과 내가 주의 종이 됨과 내가 주의 말씀대로 이 모든 일을 행하는 것을 알게 하옵소서" 라고 기도합니다.
"불로서 응답하소서" 간절히 기도할 때 하나님께서는 불로써 응답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살아 계신 분이시며, 우리가 부를 때에 응답하시는 실존자이시며 우리가 어려울 때 하나님을 부름으로 우리를 즉각 도와주시는 분이시라는 뜻을 내포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지금도 역사속에 살아 계시면서 우리를 향하여 "내가 여기 있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 내게 와서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내가 여기 있으니 내게 와서 부르짖으라는 것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삶의 어려움이 있을 때마다 삶의 문제가 있을 때마다 내가 여기 있다고 하시는 하나님 앞에서 기도함으로 어려움이 해결되며 삶의 문제들이 해결되었습니다. 오늘 우리도 내가 여기 있다고 하시는 전능하신 하나님께 기도하고 응답받는 모든 성도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기도에 응답받고 살아가기를 바람니다.
3. 셋째는 인도하심의 약속입니다.
11절 상반절에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여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며 네 뼈를 견고케 하리니"하였습니다.
1) 나 여호와가 너를 항상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의 자녀들의 삶을 인도해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와 가나안에 가기까지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밤에는 불기둥으로 저들을 인도해 주셨습니다. 블레셋이나 아낙 자손들의 앞길을 막을 때는 하나님이 저들을 앞서 인도하셨습니다.
특별히 오늘 말씀을 보면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데 "항상 너를 인도하신다"고 했습니다. 그저 어느 순간만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시는 것이 아니고, 때에 따라 인도되는 것이 아니라, 언제 어느 때 어느 순간에도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해 주십니다.
여호와는 나의 목자이십니다.
여호와를 목자 삼아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부족함이 없습니다. 또한 오늘 본문에 보면 하나님은 항상 우리를 인도하셔서 어려운 환경에서도 우리의 영혼을 만족케 하며 우리 육체도 견고케 하십니다.(찬송가/ 선한 목자되신 우리 주여 항상 인도합소서...)
하나님의 인도함을 받는 자들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요 축복입니다. 오늘 우리의 삶에도 하나님이 우리의 삶을 항상 인도해 주심으로 영혼의 만족과 내 뼈를 견고케 하는 육체의 강건함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2) 마른 곳에서도 네 영혼을 만족케 하신다.
일반적으로 마른 곳은, 태양의 강렬한 햇살에 노출되거나 가뭄 때문에 습기가 완전히 말라 버린 곳을 가리키는 것입니다. 생명이 더 이상 살아갈 수 없는 그런 곳입니다.
더 나아가 여기 마른 곳은 문자적으로 이해하는 단순한 마른 땅이 아닙니다. 여기 마른 곳이란,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붙들려가서 사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의 상태를 말합니다.
이처럼 바로 물이 공급되지 못하여 메마른 동산과 같은 이스라엘에게 하나님은 네 영혼을 만족케 하시겠다고 약속하고 있습니다. 마음의 평안을 누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주시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므로 나의 영혼을 만족케 해 주시겠다는 이 약속이야말로 진정 행복한 일이며 이 세상에서는 더 이상 바랄 것이 없는 기쁨의 생활입니다.
시107:9 "저가 사모하는 영혼을 만족케 하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우리 모두가 다 그렇게 되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진정한 예배의 삶을 통하여 우리 영혼이 만족케 되는 그런 은혜를 누리시기 바람니다.
고후3:5절을 보면 "우리가 무슨 일이든지 우리에게서 난 것같이 생각하여 스스로 만족할 것이 아니니 우리의 만족은 오직 하나님께로서 났느니라"
참된 만족을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심니다.
♬ 사람을 보며 세상을 볼 땐
참된 만족함이 없네...
나의 하나님 한 분만으로
나는 만족하겠네.
할렐루야 아멘. ♬
요한복음 15장 포도나무 비유에서 말씀하시기를 너희가 나를 떠나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요15:5)고 하셨는데 주님 밖에서는 우리가 영원한 즐거움과 만족함을 누리지 못하는 것입니다.
반면 주님 안에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만족함을 주신다면 그때는 얼마든지 만족함을 누릴 수 있습니다.
바울은 빌4:13절에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
우리도 능력 주시는 자되시는 주님안에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만족(자족)함을 받아 누리는 귀한 신앙의 삶이 되시기를 바람니다.
세계적으로 부강한 나라 미국의 대통령을 지냈던 몇 사람의 이야기를 한 번 들어볼까요?미국의 1,2대 대통령이었던 워싱턴 (Washington,George, 1732.02.22~1799. 12.14)
대통령이 되기보다는 차라리 무덤으로 들어가겠다.
3대 대통령이었던 제퍼슨[Jefferson, Thomas, 1743.04.13~1826.07.04.]
대통령의 자리는 끊임없이 원망 듣고 날마다 친구를 잃어버리는 것 밖에는 없다.
제 35대 대통령 케네디 [Kennedy, John Fitzgerald, 1917.05.29~1963.11.22]
대통령의 자리는 높고 쓸쓸한 자리다.
요즘 부시 대통령 같으면 너무 힘들고 어려운 자리가 바로 대통령이다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의 것은 얻으면 얻을수록 누리면 누릴수록 더욱 목이 타고 갈증이 오며 만족함이 없다는 것을 여러분들도 잘 아실 것입니다.
사람은 욕망으로 쌓여진 덩어리이기 때문입니다. 가정의 필수품이나 생활의 편리를 위한 생활의 도구를 구입해 보면 어디 만족함이 오던가요? 옷이나 집이나 자동차나 악세사리 등. 구입하는 그 순간 만족함이 잠깐 지나고 나면 이내 새롭고 좀 더 큰 것에 대한 욕망이 강하게 내 속에서 싹트기 시작하는 겁니다. 그래서 사람을 간사하다고 하는 것이지요. 그 욕망은 끝없다고 말합니다. 우리 모두 하나님을 기뻐하는 삶을 사는 자들에게 주시는 영혼의 만족을 누리며 사시기 바람니다.
4. 마지막 넷째로 물댄 동산의 축복입니다.
11절 하반절에 "너는 물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했습니다.
1) 물 댄 동산/
요즘 우리가 보다시피 근동지역은 거의 사막지대입니다. 식물이 살 수도 없고 그저 바람불면 모래가 휘날리는 그런 불모지입니다. 이 근동지역에서 가장 아름다운 곳을 나타내려 할 때 흔히 사용되는 표현이 물댄 동산입니다. 이 물댄 동산을 천국으로 번역하기도 하는데 사실 지금까지 이스라엘 역사 속에서 실제로 천국을 이뤄본 적은 한 번도 없지 않았습니까? 지금도 전쟁과 테러가 끊이지 않는 곳입니다.
따라서 우리는 이 표현을 종말론적 측면에서 이해해 볼 수 있는데 주님께서 재림하시면 하나님의 택함받은 자들 구원을 받을 자들이 완성된 천국에서 살게 될 것입니다.
나라가 망하고 백성들이 포로로 붙들려가며 사방에 흩어졌던 이스라엘은 마치 물이 마른 동산과 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메마른 동산에 물을 대시듯 새로운 은혜를 부어 주심으로 이스라엘 풍요한 삶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 동안 이스라엘의 범죄로 하나님의 은혜의 샘물이 다 말라버렸고 하나님 주시는 축복의 물줄기가 다 말라 버렸습니다.
그러나 이제는 하나님의 은혜로 은혜의 샘이 터지고 축복의 물줄기가 솟아올라서 동산 구석구석으로 물이 흘러서 동산에 물이 넘친다는 것입니다.
(찬송가 233장,
마른 땅에 샘물 터지고 사막에 물 흐를 때
기쁨으로 찬송부르며 거룩한 길 다니리"
이것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넘치는 은혜와 축복을 설명하는 찬양입니다.
오늘 말씀같이 끊어지지 않고 솟아나는 은혜의 샘물이 축복의 물줄기가 우리의 심령에, 우리의 가정에, 우리 교회에 넘치기를 바랍니다. 또한 메마르고 삭막한 우리 사회라는 동산에 은혜의 물을 댐으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축복이 함께 하시기 바랍니다.
요7:37-38을 보면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리라"고 했습니다.
시들고 메말라 가는 내 심령속에 생명의 물이 흘러 넘칠 때, 반목과 갈등과 미움 전쟁이 도사리고 있는 이 땅들, 증오와 투쟁이 떠나지 않는 이 역사 속에 생명수이신 예수그리스도가 임재하실 때 물댄 동산의 기적이 일어날 것입니다.
2) 11절 하반절에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여기 끊어지지(끊어지다)로 번역된 이 말은 원래 "속이다, 거짓말하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곳을 찾은 대상(隊商)들 혹은 짐승들이 샘의 근원이 말라 있으므로 허탕을 치게 되는 사실을 가리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예비하시는 샘은 결코 물이 마르지 아니한다고 하였으니 이러한 샘은 물질적인 샘이 아니라 영원한 생수가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말입니다.
요4:13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이 물을 먹는 자마다 다시 목마르려니와 14 내가 주는 물을 먹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나의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
고전10:04 "다 같은 신령한 음료를 마셨으니 이는 저희를 따르는 신령한 반석으로부터 마셨으매 그 반석은 곧 그리스도시라".
성도 여러분!
다시 11절 말씀을 읽어봅시다.
11.... 너는 물 댄 동산 같겠고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이라.
여기 "너는"이라는 이 말이 중요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시간 이 자리에 계신 바로 나에게 이러한 축복을 허락하신다는 말 아니겠습니까?
그렇다면 가장 아름다운 축복을 나타내는 표현이 바로 물 댄 동산이요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이라는 말인데 이 축복을 우리 모두가 함께 나눌 수 있기를 축원합니다.
이왕이면 우리는 11절의 두 가지의 축복의 말씀을 곁에 있는 분들과 나누시기 바람니다. 단순한 입술((lip)의 고백이 아닌, 진정한 마음에서 우러러 나오는 사랑으로 나눕시다. 집사님은... 권사님은... 성도님은... 1) 물 댄 동산 같겠고 2) 물이 끊어지지 아니하는 샘 같을 것입니다.
말씀을 맺습니다/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 참된 예배하는 삶을, 참된 구제와 봉사선교적인 삶을 늘 사시기 바람니다. 그렇게 될 때, 우리 가운데 회복되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메마르고 길도 없는 그런 사막같은 세상에서도 늘 인도함을 받는 역사가 일어날 것입니다. 모든 기도 간구 소원이 응답되는 역사가 반드시 일어날 것입니다.
메마른 삶의 자리들이 물댄 여호와의 동산 같을 것입니다. 은혜의 생수가 끊이지 않는 샘이 될 것입니다. 메마르고 삭막한 사람들의 동산에 은혜의 물을 댐으로 새로운 생명이 움트는 축복이 함께 하실 줄 믿습니다. 참으로 영향력 있는 인생, 다른 사람에게 생수를 대 줄 수 있는 복된 인생을 살 것입니다.
이런 끊어지지 않고 솟아나는 은혜의 샘물 축복의 물줄기가 성도들의 모든 심령과 가정 그리고 교회에 넘치기를 소원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