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교회의 지도자론
이제 서론을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으로 시작된다. 여호수아가 죽은 후에 이스라엘 자손이 여호와께 묻자와 가로되 가나안과 전쟁을 함에 있어서 누가 우리를 위하여 맨 먼저 올라 가리이까?(삿 1:1, 강의자가 구약 히브리어를 사역한 것임) 그럴 때 하나님께서 유다가 올라갈 것이라고 2절에 말씀하고 있다.
여호수아 사후 분명한 후계자를 남겨놓지 않아서 지도자 공백기가 오게 되었는데 이 때에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물었다는 것은 여러가지 의미가 있다.
긍정적으로는 결국 이스라엘을 다스리는 참 통치자는 하나님이심을 스스로 인정한 것이다. 즉 하나님께 모든 것을 묻고 행하는 그러한 긍정적인 뜻이 있다.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참된 왕으로 생각하고 그의 뜻을 묻는 긍정적인 뜻이 있기 때문에 사사시대 초에 이상적 교회 모습을 말하는 사람은 특별히 이 부분에 많은 관심을 갖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여호수아 1장과 비교 해보면 대조가 드러나지만(수 1:1-2 참조, 이 말씀을 통해 알 수 있는 바) 여기서도 물론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세움을 받았지만 자기 스스로 그러한 일을 자진하고 나선 것이 아니다. 엄밀히 말하면 모세가 세운 것도 아니다. 모세는 그저 하나님께 물었을 따름이다. 민 27장에 보면, 모세는 “이 교회 즉, 이 회중을 목자없이 놔 두실 수 있겠습니까?”라고 물었고, 이에 하나님께서 직접 명하여 “눈의 아들 여호수아는 신에 감동된 자니 그를 교회 지도자로 세우라”고 했으니 하나님께서 직접 세우신 것이다.
따라서 실제에 있어서 인간 지도자를 세워서 하나님께서 통치 하시는 것과 이처럼 이스라엘 백성이 직접 하나님께 물어서 통치하시는 것 사이에는 어떤 질적인 차이가 있는 것이 아니다. 양쪽 경우가 모두 다 하나님의 직접 통치다. 그래서 이 경우를 긍정적으로 생각하는 것은 그리 큰 의미가 없다고 생각된다.
문제는 그것이 하나님의 실질적인 통치냐 아니냐 그것이 문제이지 그것이 지도자를 통한 것이냐 그렇지 않은 것이냐는 문제가 되지 않는다. 또한 문제가 되는 것은 그 지도자가 하나님의 통치를 행하지 않고 엉뚱하게 행할 때가 문제가 되는 것이지 그가 참으로 하나님의 뜻을 대행하는 자라고 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통치이니 큰 문제가 될 것이 없다.
(2) 교회의 성결(1장의 흐름)
사사기 1:1에서 주의해야 할 구절은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께 나아가서 이러한 질문을 했다는 것이다. 직역을 하면 “누가 우리를 위해서 가나안인에게로 올라 가리이까?” 그런데 올라가는 목적이 무엇인가 하면 그들과 전쟁을 하기 위한 것이라고 되어 있다. 이 말에 의해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여호수아가 죽고 난 이후의 시대도(여호수아를 통한 정복사역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온 땅에 안식을 주셨다고 되어 있다. 그러나 그 안식은 가나안 땅의 모든 대적이 전부 멸절된, 축출된 그런 완전한 안식이 아니고 아직도 전쟁을 해야 할 필요가 있는 그런 의미의 원칙적인 안식이었다고 하는 것을 사사기가 밝혀 주고 있다.) 아직 전쟁은 끝나지 않았고 전쟁을 계속해야 한다는 것이다. 다시 말해서 정복시대의 연속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그런데 이 교회의 전쟁에서 왜 하나님께서는 가나안 족속만 그렇게 무참하게 애들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 버리라고 했는가, 소나 양도 남기지 말고 다 죽여버리라고 했는가, 그런가 하면 가나안 밖 먼 곳의 민족하고는 될 수 있는대로 화평하라고 하셨다. 먼저 화평을 선언하고 그래도 전쟁을 하고자 하면 그때는 싸우라고 말씀하고 있다.
왜 이렇게 차별 대우를 하시는가? 우리는 의아심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왜 이렇게 가나안 족속을 죽여야 하는가에 대해서는 이미 창세기 15장에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셨다. 창 15장에서는 죄악이 관영한 때가 아직 아니다라고 말한다. 그런데 사사기시대에는 죄악이 관영했다는 얘기다. 다시 말해서 그들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서 소돔과 고모라를 멸하듯이 심판하시는 의미가 있는 것이다. 이것을 확인하는 말씀이 삿 1:7의 아도니 베섹의 말 가운데서도 확인 할 수 있다. 아도니 베섹이 잡혀 죽으면서 하는 말이 옛날에 내가 잡은 왕들 모두의 손 발가락을 끊고 했는데 이제 내가 그 꼴이 되었다는 말을 통해 알 수 있는 것은 결국 이 정복 전쟁이 악한 백성과 악한 왕을 심판하는 의미도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가나안 밖 지경에도 마음대로 나가서 거기도 정복해 버리지 무엇 때문에 그곳 사람들과는 화평을 하면서 이 지경 속에 있는 사람만 왜 그렇게 무지막지하게, 잔인하게 죽여버리라고 말씀하셨는가? 그것은 창 12장에 보면 이런 말씀이 있다. 하나님께서 아브람에게 떠나라고 하시면서 내가 네게 지시할 땅에서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게 하시겠다고 말씀하신다. 말하자면 이 땅이라고 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살게 하시는 곳, 즉 그의 백성의 영역 곧 오늘의 교회의 영역이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가나안 땅에서 그처럼 잔인하다 싶을 정도로 모든 악의 근원을 쓸어 버리라고 하신 것은 교회 내에서는 이처럼 악에 대해서 철저하게 끊어내는 일이 있어야 되는 것을 간접적으로 우리에게 지시하신다고 할 수 있다.
이것이 신약에도 그대로 적용이 된다. 로마서에 보면 외인에 대해서는 가능하면 화평하라고 했다. 그들이야 본래 복음을 받기 전에는 교회에 속하지 않아서 죽게 되어 있는 사람들이다. 여하튼 이렇게 하나님께서 지정하신 영역, 하나님께서 그의 나라를 세우시는 영역에 있어서는 철저히 죄악을 제거하라는 명령이 주어졌던 시대가 바로 사사시대였다.
(3) 누가 교회의 지도자가 될 것인가?
여호수아 때도 그랬지만 이러한 교회의 전쟁을 수행하는데 있어서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하리까? 이 말의 뜻은 결국 교회의 이와 같은 시대적 사명 즉, 교회 내에 존재하는 모든 악과 싸워야 하는 시대적 사명을 받은 일에 있어서 누가 지도적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인가라는 물음인 것이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유다가 먼저 올라갈 것이다. 유다가 지도적인 역할을 감당해야 할 것이라고 말씀하신 것이다. 그런데 그것이 무슨 큰 의미가 있는가라고 얘기 할 수 있을른지 모르겠으나 사사기 맨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레위족 첩을 강간하고 죽인 사건으로 인해서 온 이스라엘이 분노해서 하나님 교회 내에서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온 이스라엘이 분개해서 일어나 베냐민 지파를 거의 멸절시키다시피 죽여 없애버렸다. 다 없애 놓고서는 나중에 이스라엘 내에 한 지파가 궐이 났다고 통곡을 하는, 그 정도로 무참하게 악을 쓸어 버린 일이 있었다. 이 때에도 백성이 묻는다. 이 전쟁에서 누가 먼저 올라가야 하리이까? 물으니 또 유다가 먼저 올라가야 할지니라고 하셨다. 이렇게 사사기에 보면 처음과 마지막에 중요한 암시가 있다.
결국 이 시대를 통해서 누가 이스라엘의 지도자로 전면에 나서게 될것인가 하는 것을 처음부터 암시하고 있고 이것은 비단 이 시대에서만 시작된 것이 아니고 창세기 49장에서 하나님께서 예언하신대로 유다 지파가 이스라엘의 지도자의 역할을 감당할 것이라고 예언하신 대로 지금 역사적으로 실행되고 있는 것에 지나지 않는다. 이후에 정복사역이 쭉 진행이 된다. 그런데 12절이하에 보면, 갈렙이 기럇세벨을 칠 때 그것을 취하는 자는 내 딸 악사를 주리라는 약속이 나오고 그럴 때 조카 옷니엘이 그것을 취해서 악사를 아내로 맞이한 일이 있다. 그런데 이것은 이미 여호수아에 이미 기록된 사건이다. 그렇다면 이 사건이 양쪽에 다 나오고 이 시기는 여호수아 사후라고 되어 있는데 어떻게 양쪽에 다 기록 될 수 있는가라는 의문이 생길 수 있겠지만 그러나 성경기자들이 역사를 기록하는 나름대로의 틀을 알면 이런 문제가 심각하지 않다. 괜히 그런 것을 모르고 엉뚱하게 이중보도라고 이야기들을 많이 하지만 1장 내용이라고 하는 것은 결국 이스라엘의 정복사역을 한 눈에 알 수 있도록 개관하고 있는 것이다. 여호수아 사후에 사사시대라는 특별한 시대가 시작되었지만 그러나 그 시대적 사명이 전 시대의 사명을 그대로 이어 받는 시대인 만큼 그 정복사역을 이야기 하면서 옛날에 했던 것을 전체적으로 통틀어서 개괄적으로 서술하는 것이 불가능한 것이 아니다. 얼마든지 가능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