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합으로 본 구원 1
(수 2:1-7)
1.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2.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3.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4.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5.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6.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7.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오늘의 말씀의 제목은 "라합으로 본 구원"입니다. 본문은 영원히 멸망 받을 여리고성의 죄인 라합이 믿음으로 이스라엘에게 구원을 받는 내용입니다. 우리는 본문에서 구원의 원리를 발견합니다. 즉 죄인이 어떻게 구원을 받는가? 이 문제는 늘 듣는 말씀이지만 오늘도 본문을 통해서 다시 한 번 확신하는 시간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구원 받는 원리는 무엇입니까?
1.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임을 깨닫는 것입니다.
1절에 “라합이라 하는 기생”이라 했습니다. 라합은 여리고의 기생이었습니다. 여리고에서 몸을 파는 여자입니다. “라합”이라는 이름의 '라하브'는 '넓은, 광활한, 풍부한' 이라는 의미입니다. 그 이름을 볼 때 지나치게 돤대한 즉 ‘무슨 소원이든지 다 들어드립니다.’ 그런 뉘앙스가 풍기는 기생으로서 인간의 가장 밑바닥에 있는 타락한 인간의 모습입니다.
그래서 라합은 죄인의 예표입니다. 그가 살던 여리고성 역시 심판의 대상인 타락한 도성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죄를 보시고 멸망의 예표로 삼으신 때가 여러 번 있었습니다. 노아 시대, 소돔과 고모라 시대, 그리고 예루살렘의 멸망, 그리고 가나안의 멸망입니다. 그 가운데 살던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우리 인간의 영적 상태입니다. 그래서 성경은 우리 인간을 "허물과 죄로 죽은 자"(엡2:1), "본질상 진노의 자녀"(엡2:3), "사형에 해당 된 자"(롬1:32), "죄 아래 있다고 이미 선언된 자"(롬3:9),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는 자"(롬3:19) 출생 시에 이미 죄가 있고(시51:5, 욥11:12, 시58:3), 아담의 원죄를 물려받았고(롬5:15-19), 잡혀 죽기 위해 태어나 이성 없는 짐승 같은 자(벧후2:12), 현재도 자범죄를 범하는(엡2:3, 요일2:16) 영원히 멸망 받을 죄인(요3:16)이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처럼 비참한 죄인임을 깨달아야 예수를 믿게 됩니다. 그래서 딤전1:15에 "미쁘다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이 말이여 그리스도 예수께서 죄인을 구원하시려고 세상에 임하셨다 하였도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 했습니다. 인간적으로는 큰 죄인이 아닐지라도 하나님 보시기에는 라합과 같은 큰 죄인인 것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2. 구원 얻기에 무능한 존재임을 깨달아야 합니다.
1절 “눈의 아들 여호수아가 싯딤에서 두 사람을 정탐꾼으로 보내며 이르되 가서 그 땅과 여리고를 엿보라 하매 그들이 가서 라합이라 하는 기생의 집에 들어가 거기서 유숙하더니”
여호수아가 정탐꾼을 보낸 장소가 싯딤인데 “싯딤”이란 ‘아카시아 나무들’이라는 의미입니다. 싯딤에는 아카시아 나무가 많아 이 나무로 성막에 쓰이는 많은 성물들을 만들었는데 생명력이 강하고 모질게 크기 때문에 2m 정도밖에는 크지 않고 옹이가 많고 구부러져 목재로 쓰기에는 부적합한 나무입니다. 이 나무가 귀한 성막의 재료로 쓰인 것은 풍채도 흠모할 만한 것도 없는 그리스도의 인성을 상징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싯딤나무는 그 생명력이 얼마나 강한지 수원(水原)을 찾아 짧게는 수십 미터, 깊게는 5~600미터까지 뿌리를 뻗는다고 합니다. 기네스북에 오른 싯딤나무의 뿌리가 2㎞나 되는 것도 있습니다. 우리 인간의 타락한 인성이 그렇습니다. 처리해도 다시 살아나고 살아나는 모진 우리 인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날마다 죽이시기 바랍니다.
특히 싯딤은 좋지 않은 추억의 장소입니다. 창 14장을 보면 그돌라오멜과 그와 동맹한 연합군들이 소돔 왕 등 5개국이 조공을 바치지 않는다고 격파하였던 장소로 도망하다가 역청구덩이가 많아 빠지기도 했고, 그 때 소돔 살던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잡혀가기도 했으며, 또 이곳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에 들어가기 전에 마지막 머물렀던 장소였는데 백성들이 모압의 우상 바알브올에게 미혹되어 하나님께 무서운 징계를 받던 곳이기도 합니다.
이처럼 싯딤과 싯딤나무와 같은 자신들임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마19:23-26에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부자는 천국에 들어가기가 어려우니라” 하셨습니다. 그것은 교만 때문입니다. 그러나 여러 환난을 통하여 그 교만을 내려놓게 될 때 그도 예수를 영접할 수 있습니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이 2020년도 첫 연설을 했는데 연설하기 전에 많은 목사들이 강단에 올라 트럼프를 붙들고 기도하는 것부터 시작해서 얼마나 은혜로운지 대통령인지 목사인지 구분이 되지 않았습니다. 그동안 잘못된 정책으로 박해를 받던 기독교를 정상으로 돌려놓고 공립학교에서 기도와 성경읽기를 해도 좋다는 법안을 제정하고 파사의 고레스와 같이 전 세계 기독교인들이 신앙을 이유로 박해 받지 않게 하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자신의 전용기까지 있는 그렇게 부유한 트럼프도 하나님께서 믿음 주시니 하나님의 사람으로 일하는 걸 보고 있습니다.(http://cafe.daum.net/agaser/JaNb/221)
내 스스로로서는 구원 얻을 수 없음을 속히 깨달수록 좋습니다. 교만이라면 그것이 가장 큰 교만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주신지 1500년이 지나도록 깨닫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롬10:1-3에 “형제들아 내 마음에 원하는 바와 하나님께 구하는 바는 이스라엘을 위함이니 곧 그들로 구원을 받게 함이라 내가 증언하노니 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했습니다.
오직 믿음의 방법임을 깨달으시기 바랍니다. “믿기만 해도 되는 건가요? 그런 법이 어딧어요. 영양가 없고 너무 허전하고 허접한 건 아닌가요?” 할지 모르지만 믿는 방법 말고는 없습니다. 그래서 고전1:22에 “유대인은 표적을 구하고 헬라인은 지혜를 찾으나 우리는 십자가에 못 박힌 그리스도를 전” 한다 했습니다.
3. 구원의 복음을 끝까지 붙드시기 바랍니다.
2-3절에 “어떤 사람이 여리고 왕에게 말하여 이르되 보소서 이 밤에 이스라엘 자손 중의 몇 사람이 이 땅을 정탐하러 이리로 들어왔나이다 여리고 왕이 라합에게 사람을 보내어 이르되 네게로 와서 네 집에 들어간 그 사람들을 끌어내라 그들은 이 온 땅을 정탐하러 왔느니라”
이스라엘의 두 정탐꾼들이 여리고에 침투한 것이 발각되었습니다. 라합의 집에 유숙한 것까지 알려졌습니다. 여리고의 방첩 시스템이 대단히 훌륭합니다. 어떻게 그것을 알았는지 라합에게 찾아와 그 사람들을 내놓으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라합은 내놓지 않았습니다.
4-7절에 “그 여인이 그 두 사람을 이미 숨긴지라 이르되 과연 그 사람들이 내게 왔었으나 그들이 어디에서 왔는지 나는 알지 못하였고 그 사람들이 어두워 성문을 닫을 때쯤 되어 나갔으니 어디로 갔는지 내가 알지 못하나 급히 따라가라 그리하면 그들을 따라잡으리라 하였으나 그가 이미 그들을 이끌고 지붕에 올라가서 그 지붕에 벌여 놓은 삼대에 숨겼더라 그 사람들은 요단 나루터까지 그들을 쫓아갔고 그들을 뒤쫓는 자들이 나가자 곧 성문을 닫았더라”
라합이 여리고 군인들을 따돌리며 이스라엘 정탐꾼들을 숨겨주었습니다. 두 정탐꾼입니다. 둘은 증인의 수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는데 라합과 같이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마음에 꼭 간직해야 합니다. 이처럼 구원을 받으려면 성경이 전해주신 구원의 복음을 굳게 붙잡고 흔들리지 않아야 합니다.
여리고와 같은 세상이 무엇이라고 말해도 하나님이 나의 아버지시고 예수가 나의 구주이심을 변함없이 믿어야 합니다. 그리고 다원주의가 아무리 유행할지라도 오직 예수 말고는 구원 얻을 길이 없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가 넘어지고 쓰러져도 실망하지 말고 내 죄가 예수님의 보혈로 용서 받고 내 죄의 옛사람 역시 십자가에 정과 욕심이 못 박혔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예수와 함께 하늘에 앉혀진 승리자라고 믿으시기 바랍니다. 어떤 이론과 어떤 느낌이 있을지라도 복음을 마음에 꼭꼭 숨겨두고 지키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고전15:1-2에 “형제들아 내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을 너희에게 알게 하노니 이는 너희가 받은 것이요 또 그 가운데 선 것이라 너희가 만일 내가 전한 그 말을 굳게 지키고 헛되이 믿지 아니하였으면 그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으리라” 했습니다.
혹시 입술로라도 옛사람의 관점에서 말하지 마세요. 예수 안에서 새사람이 된 축복에 서지 못하고 늘 실망하고 나는 부족하고 쓸모도 없고 아무 것도 아니고 어서 사라져야 할 존재 등등 실망조의 말은 겸손이 아니라 예수 공로를 부정하고 믿음 없이 하나님을 욕되게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지나친 자기비하에 빠지지 말고 온전한 믿음에 서서 기쁨과 감사와 행복과 담대함으로 살아가시기 바랍니다. 그것이 입으로 시인하여 누리는 구원입니다. 그 믿음이 우리를 하늘의 사람으로 만들어줍니다. 여리고의 성문을 닫듯이 다른 생각은 받아들이지 마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리고의 기생 라합과 같은 우리들을 불러주시고 구원해 주셨음을 감사하시기 바랍니다. 우리 모두 라합이 믿음으로 정탐군들을 숨겨주어 구원을 받은 것과 같이 복음의 말씀을 마음으로 받고 어떤 상황에서도 그 진리에 서서 흔들리지 말고 굳게 붙잡고 믿음으로 하나님이 예비하신 온전한 구원을 풍성히 누리시는 하나님의 참 백성들이 되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