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상계엄 선포의 사법심사 가능성
작성자 : 황 남 기
Ⅰ. 계엄선포의 사법심사여부
1. 통치행위의 의의
최근 계엄 선포가 통치행위에 해당하여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주장이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다. 원래 통치행위는 영국 국왕의 대권에서 유래된 개념으로서 고도의 정치행위로서 사법적 기준으로 심사하기 어려운 행위이다. 영국 국왕의 대권(Royal Prerogative)은 영국 헌법에서 군주에게 부여된 고유한 권한으로, 역사적으로 절대군주제에서 유래한 권한이다. "The King can do no wrong." 라는 표현은 영국 법에서 유래된 법언으로, 군주의 대권행사는 법적으로 면책됨을 의미한다. 법의 지배의 예외였던 절대군주는 시민혁명을 거치면서 법의 지배를 받는 입헌군주로 자리 매김함으로써 통치행위 또한 법의 예외에서 법의 영역으로 들어오게 된다. 21세기에 17세기의 해체된 통치행위론을 다시 내세우니 생경하기가 그지없다.
2. 학설
통치행위를 부정하는 견해에 따르면 고도의 정치행위라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 그러나 통치행위를 인정하는 권력분립설, 사법부자제설등에 따르면 통치행위에 해당하면 사법심사에서 제외될 여지가 있다.
3. 판례
계엄 선포가 통치행위에 해당하여 사법심사의 대상이 되지 않는다는 최근의 시대착오적 발언은 대법원 1981. 4. 28. 선고 81도874를 근거로 한다.
계엄선포 당부당 심사여부 (대판 1981. 4. 28. 선고 81도874)
계엄선포의 요건의 구비여부나 선포의 당, 부당을 법원이 심사할 수 있는지 여부 (소극) 계엄선포가 당연무효가 아닌 한, 사법기관인 법원이 계엄선포의 요건구비나 선포의 당, 부당을 심사하는 것은 사법권의 내재적인 본질적 한계를 넘어서는 것이 되어 적절하지 못하다.
12. 12 쿠데타를 일으키고 광주학살을 딛고 권력을 찬탈한 전두환은 대법원입장에서 1981년에 사실상 절대군주였다. 헌법 제101조 제1항이 부여한 법원의 사법권은 법률적 쟁송을 심사할 권한이므로 법원은 계엄선포의 위법여부를 심사할 권한은 있으나 계엄 선포의 당, 부당은 법원이 심사할 영역이 아니다. 계엄선포 요건의 위법여부를 심사할 수 없다고 한다면 사법권을 포기하는 꼴이 되니 차마 계엄선포 요건의 위법여부를 심사할 수 없다고 하지 아니하고 계엄선포의 당, 부당을 심사할 수 없다고 돌려 말을 하였다. 이 판례문을 작성한 대법관은 마치 마음에 숨겨 둔 표현은 드러내지 못하고 소심하게 자신의 본심을 판례문에 비밀리에 심어 두었다.
그리고 1995. 2. 25. 김영삼 대통령이 취임하고 더 이상 군사정권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던 대법원은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에서 본심을 드러내어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고 하였다.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 사법심사여부(대법원 1997. 4. 17. 선고 96도3376 전원합의체)
대통령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 행위는 고도의 정치적·군사적 성격을 지니고 있는 행위라 할 것이므로, 그것이 누구에게도 일견하여 헌법이나 법률에 위반되는 것으로서 명백하게 인정될 수 있는 등 특별한 사정이 있는 경우라면 몰라도, 그러하지 아니한 이상 그 계엄선포의 요건 구비 여부나 선포의 당·부당을 판단할 권한이 사법부에는 없다고 할 것이나, 비상계엄의 선포나 확대가 국헌문란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행하여진 경우에는 법원은 그 자체가 범죄행위에 해당하는지의 여부에 관하여 심사할 수 있다.
4. 소결 : 기본권의 통치행위에 대한 구속력
헌법상 국민의 기본권에 모든 국가권력은 구속된다. 이를 기본권의 대국가적 효력이라고 한다. 국민이 주권자로서 국가기관에게 국가권력을 부여했다고 하더라도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국가권력 행사까지 부여했다고 볼 수는 없다. 따라서 기본권의 구속력은 어떤 국가권력에 대해서도 미친다. 통치행위도 예외가 될 수 없다. 국가권력에 대한 기본권의 기속력은 국가권력에 대한 사법적 통제를 구체화된다. 따라서 통치행위로 기본권이 침해된 경우 사법심사를 할 수 없다면 기본권의 통치행위에 대한 구속력을 확보할 수 없게 된다. 기본권을 침해하는 통치행위가 사법심사에서 제외된다면, 국민이 부여한 국가권력에 의하여 국민의 기본권이 말살되어도 주권자인 국민이 법적 항변을 할 수 없게 되므로 국민주권에 정면으로 위배된다.
절대주의 시대에나 통용될 만한 시대착오적 이론을 내세워 통치행위이므로 사법심사가 되지 않는다는 주장은 몸뚱아리는 21세기에 있으나 17세기에 영혼을 두고 온 망령들의 헛소리에 지나지 않는다. 고도의 정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 자제의 필요성은 국가이익이나 사법부의 독립을 위해 일부 인정될 수 있으나 감히 기본권 앞에서는 목소리를 높일 수 없다.
Ⅱ. 고도의 정치행위에 대한 사법심사가능성
1. 대법원 판례
유신헌법의 긴급조치에 대해서는 수 없이 많은 판례에서 대법원은 기본권을 침해하는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를 외면해왔다(대법원 1977. 3. 22. 선고 74도3510 전원합의체 판결, 대법원 1977. 5. 13.자 77모19 전원합의체 결정 등 참조). 그러나 대법원도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에서 고도의 정치행위라도 사법심사의 대상이 될 수 있다고 하여 판례를 변경하기에 이르렀고 대법원은 더 나아가 과거 군사정권의 폭압에 침묵하고 인권침해의 소리에 귀를 닫았던 과오를 반성하고 긴급조치로 유죄판결을 받은 사건에 대해 형사재심을 통해 무죄 판결을 해왔다.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의 가부(대법원 2010. 12. 16. 선고 2010도5986 전원합의체)
입헌적 법치주의국가의 기본원칙은 어떠한 국가행위나 국가작용도 헌법과 법률에 근거하여 그 테두리 안에서 합헌적·합법적으로 행하여질 것을 요구하고, 이러한 합헌성과 합법성의 판단은 본질적으로 사법의 권능에 속하는 것이다. 다만 고도의 정치성을 띤 국가행위에 대하여는 이른바 통치행위라 하여 법원 스스로 사법심사권의 행사를 억제하여 그 심사대상에서 제외하는 영역이 있을 수 있다.
그리고 끝까지 부정해왔던 긴급조치로 인한 손해에 대한 국가배상마저 인정하는 방향으로 판례를 변경하고 있다.
긴급조치로 인한 국가배상인정(대법원 2022. 8. 30. 선고 2018다212610 전원합의체)
국가안전과 공공질서의 수호를 위한 대통령긴급조치는 위헌·무효임이 명백하고 긴급조치 제9호 발령으로 인한 국민의 기본권 침해는 그에 따른 강제수사와 공소제기, 유죄판결의 선고를 통하여 현실화되었다. 이러한 경우 긴급조치 제9호의 발령부터 적용·집행에 이르는 일련의 국가작용은, 전체적으로 보아 공무원이 직무를 집행하면서 객관적 주의의무를 소홀히 하여 그 직무행위가 객관적 정당성을 상실한 것으로서 위법하다고 평가되고, 긴급조치 제9호의 적용·집행으로 강제수사를 받거나 유죄판결을 선고받고 복역함으로써 개별 국민이 입은 손해에 대해서는 국가배상책임이 인정될 수 있다.
또한 대법원은 일체의 정치적 행위를 금지하는 계엄 포고령에 대해서 사법심사를 통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한다고 판시하고 있다.
계엄 포고령의 사법심사여부(대판 2018. 11. 29. 2016도14781)
계엄법 제15조에서 정하고 있는 ‘제13조의 규정에 의하여 취한 계엄사령관의 조치’는 유신헌법 제54조 제3항, 구 계엄법 제13조에서 계엄사령관에게 국민의 기본권 제한과 관련한 특별한 조치를 할 수 있는 권한을 부여한 데 따른 것으로서 구 계엄법 제13조, 제15조의 내용을 보충하는 기능을 하고 그와 결합하여 대외적으로 구속력이 있는 법규명령으로서 효력을 가진다. 그러므로 법원은 현행 헌법 제107조 제2항에 따라서 위와 같은 특별한 조치로서 이루어진 계엄포고 제1호에 대한 위헌·위법 여부를 심사할 권한을 가진다.
2. 헌법재판소
헌법재판소는 일찍이 1996. 2. 29. 선고 93헌마186에서 통치행위일지라도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고 선언해왔다. 헌법재판소 2013. 3. 21. 선고 2010헌바70 사건 이래 다수의 판례에서 긴급조치에 대한 사법심사를 인정하고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한다고 하여 위헌결정을 해 왔다.
통치행위 사법심사가능성(헌법재판소 1996. 2. 29. 선고 93헌마186)
이른바 통치행위를 포함하여 모든 국가작용은 국민의 기본권적 가치를 실현하기 위한 수단이라는 한계를 반드시 지켜야 하는 것이고, 헌법재판소는 헌법의 수호와 국민의 기본권 보장을 사명으로 하는 국가기관이므로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작용이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 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당연히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는 것일 뿐만 아니라, 긴급재정경제명령은 법률의 효력을 갖는 것이므로 마땅히 헌법에 기속되어야 할 것이다.
긴급조치사법심사여부(헌법재판소 2013. 3. 21. 선고 2010헌바70)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은 ‘긴급조치는 사법적 심사의 대상이 되지 아니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었다. 그러나 비록 고도의 정치적 결단에 의하여 행해지는 국가긴급권의 행사라고 할지라도 그것이 국민의 기본권침해와 직접 관련되는 경우에는 헌법재판소의 심판대상이 될 수 있다는 점(헌재 1996. 2. 29. 93헌마186)에 비추어 보면, 이 사건에서 유신헌법 제53조 제4항 규정의 적용은 배제되고, 모든 국민은 현행헌법에 따라 이 사건 긴급조치들의 위헌성을 다툴 수 있다고 보아야 한다.
Ⅲ. 결론
고도의 정치행위로서 대통령의 행위를 사법심사에서 제외할 필요성은 여전히 인정된다. 예를들면 남북정상회담을 한 대통령을 국가보안법으로 형사처벌할 수 없다. 그러나 국민의 기본권을 침해하는 고도의 정치행위라면 사법심사에서 제외할 이유가 없다. 2024.12.3. 계엄령 선포와 포고령은 일체의 정치행위를 금지하고 있는데 이는 국민의 표현의 자유를 침해하므로 사법심사의 대상이 된다. 진보와 보수를 논하지 말고 역사와 헌법 앞에서 현실을 직시하는 사람이 먼저 도리 필요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