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에 일어나니 시끄러운 폭죽 소리가 귀가 멍멍 할 정도이다.
이 시끄러운 소리는가끔 들어 온 소리지만, 오늘처럼 가까이에서 들어 보기는 처음 있는 일이다.
연속적으로 들리다가는 잠시 조용해 졌다가는 다시 연속적으로 귀가 찍어 지는 듯한
폭죽 소리가 들린다.
꼬맹이하고 같이 골목으로 나가 보았다.
여기서 꼬맹이는 일전에 우리말을 가르처 주니, 나를 형이라고 부르던 놈이다.
올해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대입 수능을 치르고 사천성에서 여행을 온 놈이다.
할아버지 나이가 64세로 나와 동갑이라고 해도 계속 하는 짓은 비슷하다.
앞 골목 주점에 원형의 꽃 화환을 만들어 놓고 전통 복장을 한 몇 사람이 폭죽 소리에 귀를 막고 있다.
아마도 식당을 새롭게 오푼하면서 축하하기 위해 하는 것으로 알았다.
꼬맹이가 나에게 무어라고 설명하려고 하는데 도대체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남녀에 관계 되는 무엇을 하는 모양인데, 도통 짐작이 된는 것이 없다.
골목에서 폭죽을 터드리는 일은 불꽃처럼 장사가 잘되라고 하는 일종의 오픈행사로만 알았다.
오전에는 내일 상그리라로 가는 버스표를 예약하기위해 터미널로 가야 한다.
버스터미널 근처에 작은 식당도 객잔도 많이 있어 그 곳에서 점심을 먹고
표를 예약한 후에 올드시티를 구경할 생각이었다.
어제 저녁에 도착한 아이 중에 혼자 이곳에 온 유독 얼굴색이 흰 아이가 있다.
얼굴 만큼 큰 안경을 써서 안경만 보이는 아이다.
영어가 되는 유일한 아이다. 난징에서 왔다고 한다. 난징대학을 졸업하고 대학원에 입학한 상태라고 한다.
나이를 물어보니 21살이라고 한다.
대학을 졸업한 나이가 21살이라니, 무엇인가 맞지 않는다.
학제를 물어보니 초등학교 입학이 중국에는 일반적으로 6살이라고 한다.
그 나이에 읽고 쓰기를 대부분 한다고 한다. 6,3,3.4년을 정상적으로 이수하면 21살에 대학을 졸업한다.
언론계통을 전공하고 있으며, 올해 대학원 입학을 1등으로 했다고 한다.
영어를 쓰고 읽는 것은 잘한다고 한다. 회화는 교육과정에서 소흘히 하는 모양이다.
따리에 친구 2명이 있고 자신은 하루 일정으로 리짱에 왔다고 한다.
아버지는 사업을 하고 엄마는 의사라고 하는데 미국 유학은 돈이 많이 들어 어려워
홍콩에서 박사과정을 마치고 대학 교수가 되는 것이 희망이라고 한다.
영어로 이야기를 하려고 노력하다가 단어가 생각나지 않으면 중국어로 오물거리면서 말을 한다.
11시 30분 경에 숙소를 나섰다.
아직도 가끔 폭죽소리가 들려서 수지엄마와 같이 주점으로 가 보았다.
결혼식을 하고 있다고 한다. 중국어를 모르니 전혀 감을 못 잡고 있었다.
입구에 젊은 남녀 각각 2명씩 바구니에 사탕, 견과류 그리고 과일을 담아서
들어 오는 사람에게 가지고 가도록 한다.
입구에 전통 복장을 하고 있는 나이든 사람에게 들어가 보아도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들어가 보아도 좋다고 한다.
들어 가려고 하니 바구니를 들고 있는 아가씨가 나에게도 바구니를 건낸다.
무엇을 집을까 망서리다 땅콩을 하나 집어들고 안으로 들어 갔다.
안쪽 마당과 마당이 내려다보이는 이층에 둥근테이블 마다 많은 사람들이 식사를 하고 있다.
우리가 앉을 자리가 아니라 돌아서 나오면서 사진을 찍어도 가능하냐고 물어보니
친절하게도 입구 양쪽에 서 있던 남녀를 나란히 서게 한다.
오늘의 신랑과 신부라고 소개한다. 사진을 찍고 나니 다시 문앞에 있는 어른 두분도
신랑 신부 옆에 선다. 신랑의 부모라고 한다. 우리를 위해 화사하게 웃으면서 포즈를 취해 준다.
나오면서 수지 엄마에게 땅콩 이야기를 하니 많이 집어 들어야 축복을 많이 하는 거라고 한다.
나는 딱 하나를 집었는데 신부가 많이 섭섭했겠다 생각되었다.
빗줄기가 점점 굵어 지기 시작한다. 묘한 날씨다. 우리가 머무는 동안 매일 조금씩 비가 오고 있다.
회족식당에서 국수로 점심을 시키고 보니 돈을 안 가지고 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수지엄마는 다시 숙소로 돌아 갔다 오는 동안 나는 식사를 마치고 기다리고 있었다.
테이블이 단 두개만 있는 식당에서 손님이 들어 올 때마다 미안한 생각이 들었지만
그들은 싫어 하는 내식을 하지 않고 있다.
오늘은 표를 구입하려고 하니 앞 선 사람들이 신분증을 제시하고 표를 구입한다.
우리는 여권을 가지고 오지 않았는데 난감하다.
그냥 아무말도 하지 않고 표를 사려고 하니 별 다른 말 없이 표를 준다.
표에 적혀져 있는 금액보다 조금 더 돈을 받는다. 다시 창구에 가서 돈이 맞지 않다고 하니
보험료가 부과 되 있다고 한다. 상그리라고 가는 길이 험해 처음부터 보험료를 같이 부과 하는 모양이다.
여기가 해발 2400미터이고 상그리라가 3400미터이니 계속 오르는 길을 가는 모양이다.
숙소에 들어오니 새로운 아이들이 도착해 있다.
따평이 우리를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중국사람이 아닌 손님이 거의 없어 무조건 새로 오는 아이에게
우리를 한국사람이라고 소개한다.
영어가 가능하다고 한다. 남자아이는 열심히 영어를 이야기 하는데 무슨 말인지 모르겠다.
그래도 열심히 영어로 이야기한다. 우리가 못 알아 들어니 앉아 있는 여자아이가 영어를 더 잘한다고
시선을 여자에게 돌린다. 여자아이는 발음이 정확한 영어를 구사한다.
두명은 중학교 동창이고 여자아이 여 동생과 3명이 동행했다고 한다.
동생은 요리학과 학생이라고 하면서 주방에서 점심을 요리하고 있다.
남자아이는 아리바바 인터넷 상거래 회사에 근무하고, 여자아이는 건설팅 계통의 일을 하고 있다고 한다.
동생잉 한 요리를 맛을 보라고 하면서 자꾸 시식해 보라고 한다.
중국 젊은이들 대부분 영어을 못하지만 , 짧은 영어라도 하고 싶어 열심히 말을 붙인다.
분명 고도에서 오는 문제인 모양이다. 조그만 걷고 오면 피곤한 정도가 심하다.
잠깐 눈을 부치고 컴푸터에 앉아 여행기를 쓰고 있다.
그 동안 핸드폰으로 여행기를 쓰다보니, 글이 이어지기 어렵고 손이 너무 수고스러웠다.
오늘은 모처럼 자판을 잡은 김에 길게 이곳을 설명할 생각이다.
우리가 처음 쿤밍 비행장에 도착했을 때만 해도 상상도 하지 못했던 많은 경험을 했다.
비행장에서 만난 50대 철없는 3명의 중국말을 못하는 아줌마를 도와 주느라 우리가 생각했던 숙소와는
전혀 다른, 그들이 원했던 숙소 근방에 버스를 내리고는 밤 늦도록 숙소를 정하지 못하고
거리를 해매고 있을 때 , 마지막으로 도움을 청한 것이 핸드폰 가게 점원이었다.
그녀는 너무도 친철하게 근처의 숙소를 인터넷으로 검색하여 소개해 준 곳이
라이안의 아파트였다.
이미 문을 닫아야 할 시간임에도 끝까지 남아 이곳저곳을 검색해서 가장 가까운 숙소를 찾아 주었다.
퇴근하면서 그녀는 우리가 라이안을 만나는 장소까지 우리를 안내해 주었다.
자신이 혼자서 살고 있으면 우리를 자신의 집으로 대리고 갔으면 하면서 미안해 하던 아가씨였다.
라이안은 아파트를 게스트하우스로 꾸며서 운영하는 29살의 아가씨다.
4일간 머무는 동안 우리를 부모처럼 알뜰하게 챙겨주고 마지막으로 따리의 게스트하우스를
검색해서 소개해주었다. 숙박비까지 저렴하게 깍아주기까지 했다.
따리의 게스트 하우스는 우리에게 너무나 편한 숙소였고, 따리고성은 떠나기 싫을 정도로 좋은 곳이었다.
그곳에서 만난 많은 젊은 이들은 우리를 극진해 대접주었다.
바우바우는 수지엄마를 엄마라고 부르며 따라 다녔다.
일주일 머물 생각이었던 따리에서 결국 10일간을 보낸 후에 그곳을 떠날 때,
대학을 졸업하고 이곳에서 잠시 아르바이트를 하는 라이는 리짱의 이곳을 찾아 준 아이다.
주점도 아니고 더욱이 객잔도 아닌 부락을 소개해 주면서 걱정을 해 준아이다.
가격을 정해 놓고 숙소를 찾는 일이 쉬운 일이 아니였다.
주점은 호텔, 객잔은 일반적으로 게스트 하우스를 의미하지만 부락은 잘 쓰는 용어가 아니라고 한다.
혹시 머무르기 불편한 곳이 아닐까 걱정을 하면서, 이곳 숙소 주인의 얼굴을 보내 달라고 주문하고
숙소 내부사진으로 찍어 보내 주도록 해서 우리를 안심시켜주 까지 하던 아이다.
와서 보니 상당히 잘 꾸며진 숙소였다. 단지 숙박비가 저렴한 이유는 리장고성에 조금 떨어진
곳에 위치해 있어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곳이 였다.
우리에게는 별로 불편한 점이 아니여서 다행이였다.
따평, 룰루, 아난 세아이들이 이 부락의 주인이다. 모두 흑룡강 성에서 왔다고 한다.
자신의 고향에서 러시아는 걸어서 갈 수 있는 거리라고 한다.
우리보다 더 멀리서 온 아이들이다. 따평과 룰루는 26살 동갑내기로 2년 후에 결혼을 할 예정이란다.
아난은 이들 보다 한 살 연상이다.
따평은 허리 둘레가 40인치는 충부히 넘을 정도로 배가 많이 나왔다. 출령거리는 배를 자랑스럽게 흔들고 다닌다.
낮에도 팬티만 입고 골목을 어슬렁 거리는 전형적인 중국 청년이다.
배가 너무 많이 나와 팬티도 빼곱 아래 걸처있다. 벗거질까 보고 있는 내가 불안한 생각이 들 정도인데 본인은 전혀 의식
하지 않고 잘도 돌아 다닌다.
어쩌다 영어를 한 마디씩하면서 좋아 죽겠다고 웃는 철없어 보이는 젊은이다.
따평은 18살에 군대에 입대한 후에 사천성 호텔에서 룰루와 같이 근무하다 이곳에 온지 2년 되었다고 한다.
관리는 대부분이 여자인 룰루가 하고 남자 아이들 둘은 하루 종일 빈둥대는 일이 전부이다.
일년 임대료가 10만원이라고 한다. 우리 돈으로 1800만원이다.
객실은 10인실 1개, 8인실 2개와 2인실 3개로 3층으로 된 신축 건물에 가까운 새 건물이다.
매일 새로운 아이들이 오고 가지만 대부분이 젊은 아이들이다.
오늘 묵고 있는 아이들은 중국의 최북서에 있는 우루무치에서 온 20살의 친구와 그 동생 .
사천성에서 온 고등학교를 막 졸업한 남자1명과 여자아이 2명, 소설을 쓰고 있다는 장기 투숙객 1명,
북경에서 가이드를 하고 있다는 여자아이 1명, 난징에서 온 얼굴이 흰 여자아이.
그리고 북건성에서 온 중학교 동창과 요기 전공하는 동생, 철없이 좌충우돌하면서 돌아 다니는 여자아이 1명,
그리고 우리까지 총 15명이다.
내일이면 이곳 리짱을 떠나야 한다.
물가는 비싸고 사람들이 불친절하고 볼 것도 없는 리짱에 가지말고 따리에서 더 있는 편이
낫다고 우리를 설득하려고 하던 따리 투수객들의 말과는 달리 이곳도 정이 들었다.
거리가 눈에 익고 사람들도 정이 많이 들어 이제는 떠나야 할 시간이 되었다.
I don't know how to say goodbye. i also miss you after leaving 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