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 리 글
2009-09
희 비 극(喜悲劇)
박병민 목사(새터공동체)
이즈음은 막바지의 여름을 보내며, 가을이 함께하는 낮과 밤의 기온이 완연한 차이를 보이는 환절기의 날씨에 짧은 옷을 집어넣고, 이제는 바람을 막아주는 기다란 옷을 꺼내 입을 때이다. 올해 2009년도도 채 넉 달을 남겨놓지 않고 있다. 말 중에 연륜(年輪)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것은 나무에서 한해가 가면서 그려가는 동그라미의 나이테를 의미한다. 며 칠 전에는 시내를 다녀오다가 시골로 들어오기 위하여 면소재지에서 버스를 기다리는데 정류장에서 할머니, 할아버지들께서 나누시는 말씀을 들었다. 같은 마을에 사시는 어른들이신 듯 보였다. 함께 사시는 할아버지는 83세이시고, 할머니는 70세 시라는 것을 이웃집 할아버지와 그 할머니가 말씀하시는 것을 엿들으면서 알 수 있었다. 그런데 그 할아버지께서 연세가 많으셔서 그런지 심장이 좋지 않다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이런 저런 말씀들을 하시면서, 나이 많아 너무 오래 살았다는 내용의 이야기 가운데에 할머니께서 “요새는 저승에서도 새마을운동을 하기 때문에 나이든 사람들은 안 데려가고, 일할 수 있는 젊은 사람들만 데려 간다”는 우스갯소리를 하는 것을 옆에서 들을 수 있었다. 항간에서는 40대와 50대의 연령의 사람들이 자기 몸에 주의를 기울여야 한다고들 말한다. 그러면서도 우리들은 혈기가 왕성한 이때에는 힘차게 박차(拍車)를 가하면서 살아야할 것이다. 영국의 총리였던 마가렛 대처는 철(鐵)의 여인(女人)으로, 중국에 자유주의 경제를 받아들이고 나서, 그러므로 공산주의와 맞닿으면서 봉착하게 되는 난관을 돌파해 나갔던 등소평(鄧小平)을 넘어짐 속에서도 끊임없이 일어서는 오뚝이를 말하는 한자어 부도옹(不倒翁)으로 묘사하고 있다. 어느 사람은 인생은 파도와 싸워 나아 가야만이 살아갈 수 있는 고해(苦海)의 길이라고 얘기했다.
한편, 가을이면 들의 코스모스와 하늘을 향해 곧게 서서 커가는 해바라기를 우리들은 떠올린다. 이만 때이면 파란 하늘, 초록에서 노란색으로 변하여가는 들판을 보면서 나는 방랑벽이 돋아나기도 한다. 방랑자 김병연(金炳淵), 곧 김삿갓은 그가 쓴 난고평생(蘭皐平生)이라는 책에서 그렇게 말을 하였단다. “짚신 신고 지팡이 끌고 천리 길을 떠돌며 물처럼 구름처럼 가는 곳이 내 집이다” 김삿갓은 멀고 먼 길에서의 걸음걸이를 죽장망혜(竹杖芒鞋), 곧 대지팡이와 짚신이 벗이 되었다고 말하였다. 사람이 살다 보면 고락(苦樂)이 서로 교차 한다. 삶의 후반부에서는 일천여명의 여인네들 틈바구니에서 희희락락거리며 풀어 헤쳐 진 삶을 살아갔던 솔로몬은 회안 섞여 살아온 날들을 마음속에서부터 털어놓는 피력(披瀝)의 과정 속에서도 다음의 이야기를 한다. 내가 깨달은 것은 바로 이것이다. 멋지게 잘 사는 것은 하늘 아래서 수고한 보람으로 먹고 마시며 즐기는 일이라는 것이다. 인생은 비록 짧아도 하나님께 허락받은 것이니, 그렇게 살 일이다. 이것이 인생이 누릴 몫이다(전도서 5:18-공동번역성서).우리는 치열함 가운데에서도 여유가 있어야한다. 그러면서 김병연(金炳淵)처럼 더 나아가서는 세태를 꿰뚫는 풍자적(諷刺的)인 직관(直觀)이 있어야 할 것이다. 모든 인생사가 마치 기쁨과 슬픔이 동시에 일어나는 희비극(喜悲劇)의 연장선상에 놓여있다. 성서는 희비의 쌍곡선 속에 같이 얽혀 들라고 말을 한다. 바로 즐거워하는 자들로 함께 즐거워하고 우는 자들로 함께 울라(로마서 12:15). 이것이 요즈음 나도 너도 말하는 그 공동체가 아니겠는가?
공 동 체 이 야 기
어느 방송국 프로듀서와 시각장애인
선천적 시각장애를 겪고 있지만 그는 매사 긍정적이고 적극적이다. 안마시술사로 도시에서 생활하다 부모님의 권유로 몇 년 전 진안으로 내려와 부모님과 함께 사는 서른다섯 살 꿈 많은 청년이라고 소개하는 것이 맞겠다. 목소리는 20대 후반처럼 맑고 씩씩한데 30대 중반이라는 말에 나도 깜짝 놀랐다. 아직도 개선되지 않은 사회의 부정적인 시각에 대해서는 ‘안타깝다’는 표현을 사용했고 “장애인들이 사회로부터 기대하는 게 많은데 장애인이 먼저 손을 내밀어야죠”라는 말은 신선했다. “라디오는 제 전부예요”라는 말에서는 큰 책임감을 느꼈다. 승렬씨 인터뷰가 진행되는 동안 ‘천성이 밝은 분 같아요’ ‘목소리가 씩씩해서 듣기 좋네요’ ‘용기를 잃지 말고 사세요’ ‘승렬씨 말에 제가 더 힘이 나네요’ 같은 문자가 쇄도했다. 남에게 희망을 주는 사람임에 틀림없다. 방송 후 승렬씨로 부터 전화가 걸려왔다. 방송국을 방문하고 싶다는 것이었다. “제가요~ 돌아다니는 것을 좋아하거든요. 뭐든지 경험하고, 체험하고 싶어요.”
진안에서 익산은 직선거리로 1시간30여분 남짓 걸리지만 자가용이 있을 리 만무한 승렬씨가 어떻게 익산까지 올지 걱정이 되었다. 장애인복지관의 차량이 승렬씨 집에서 진안 터미널에 데려다주면 진안에서 전주까지 버스로 50분, 전주 터미널에서 익산 가는 버스로 환승, 다시 50분, 익산 터미널에서 방송국까지 택시로 10분. 차량이 바로 연결되어도 어림잡아 2시간30여분은 족히 소요되는 여정인데 장애인으로서는 더 어렵지 않을까… 걱정이 앞서는데 역시 경쾌한 답변. “괜찮아요. 좋은 분들이 많아서 잘 안내해주세요.” 사흘 뒤로 날짜를 정하고 달력에 표시를 해두었다. 이튿날 다시 걸려온 승렬씨의 전화. “제가 방송국에 가기로 한 날 비 소식이 있네요. 아무래도 비가 오면 장애인이 다니기에 위험하거든요. PD님 괜찮으시면 그 다음날로 잡죠.” 맞다. 비 소식이 있었다. 그것도 많은 비가 올 거라는 예보. 시각장애인은 비오는 날 거동이 더 불편하겠구나. 약속을 조정해서 그 다음날 오후 세 시로 시간을 정했다.
승렬씨가 오기로 한 날, 외부에서 점심을 하고 사무실에 돌아오니 승렬씨가 일찍 와 있었다. 목소리만 듣다가 처음 만나는 자리인데도 매우 오랫동안 친분을 나눈 사이처럼 친근했다. 내가 밀린 업무를 처리하는 동안 기획운영팀장인 김도현 교무님이 원불교 중앙총부를 안내하기로 했다. 3층을 어렵게 올라온 승렬씨가 다시 3층을 내려가야 하는 상황이 미안하다. (방송국으로 사용하는 건물은 매우 오래 전에 지어진 3층짜리 건물이라서 엘리베이터가 설치돼있지 않다.) 교무님이 어찌해야 할지 몰라 망설이는데 승렬씨가 말한다. “시각장애인을 안내할 때는요, 장애인의 손이나 팔을 잡으면 안되구요, 그냥 가만히 계시면 제가 팔꿈치를 잡아요.” 나도 옆에서 배웠다.
두 시간 여 원불교 익산 성지를 돌아본 승렬씨는 조금 피곤하지만 목소리에 생기가 묻어났다. “아 정말 좋았어요. 공기도 맑고 경치도 수려하네요.” 어떻게 아느냐고 묻자 슬며시 미소를 짓는 승렬씨. “설명을 하면요, 상상을 하면서 다 볼 수 있어요.” 방송국 구경(?)을 하고 내 차로 전주 터미널까지 가는 도중 승렬씨와 이야기를 나누면서 시각장애인에 대해 몇 가지 더 알게 되었다.
점심시간 식당에 갔다가 문전박대 당한 이야기, (일부 업소 주인들은 장사에 방해가 된다며 장애인을 거부한다고 한다. 이 얘기를 하면서 승렬씨는 이런 상황이 ‘안타깝다’고 말하면서도 식당 주인들의 입장을 ‘충분히 이해한다’고 했다.) 식당에서 사용하는 용기도 장애인에게는 위협이 된다. 펄펄 끓는 뚝배기에 손이나 입이 덴 적도 많기 때문에 넓은 용기에 주면 좋겠고 반찬의 위치를 알려주면 큰 도움이 된단다. 안내견의 경우 사람들이 지나치게 반응을 보이면 스트레스를 받기도 하고 주인과의 유대감에 문제가 생길 수도 있으므로 쓰다듬거나 먹는 것을 줘도 안 된다. (장애인이 경제적 요인 등 안내견을 돌볼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지 않으면 안내견도 유지할 수 없다고 했다.)
승렬씨는 영화를 보고 싶다고 했다. “하하~ 다 볼 수 있어요. 옆에서 설명해주면 상상하면서 볼 수 있어요. 그런데 다른 사람들에게 방해가 되니까 영화관에 못가죠. 명화, 오래된 명화나 명작을 좋아해요. 장애인들도 문화생활을 했으면 좋겠어요.” 나에겐 일상의 일들이 승렬씨에겐 매우 ‘고급스런’ 문화적 혜택이었다니…. 헤어질 때까지 “그래도 세상엔 좋은 사람이 더 많다”고 확인시켜준 승렬씨, 그가 진안행 버스에 몸을 싣고 터미널 광장을 빠져나갈 때까지 손을 흔들었다. 승렬씨는 모르겠지만. 승렬씨와 만남 이후 장애인을 위한 일이 뭐가 있을까 고민이 깊어졌다. 우선 전주 풍물시동인 조미애 회장과 상의를 거쳐 시각 장애인들을 위한 시낭송 CD를 제작하기로 했다. 7~8월중 풍물시 동인 회원들의 시를 방송국에서 녹음할 계획이다. 그가 제안한 대로 방송에서 ‘장애인 소식’을 담은 코너도 필요하다. 라디오는 승렬씨 같은 장애인에게 친구이자 전부니까.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감상은 어떨까. 상영실을 빌려 중간 중간 설명을 담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영화 관람도 승렬씨에게 기쁨이 될 듯하다.
며칠 전 서울에 갔다가 ‘김치말이밥’을 먹었다. 얼음이 둥둥 띄워진 시원한 김치국밥은 별미였다. 승렬씨 같은 시각장애인에게는 화상의 위험이 없어서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식사 후 시립박물관에서 ‘르느와르전’을 관람했다. 아름다운 빛과 색의 조화, 그 오묘한 예술의 세계에 흠뻑 젖어 행복해 하다가 승렬씨가 생각났다. 어떻게 이 그림을 설명할 수 있을까. 승렬씨는 말 할 것이다. “괜찮아요. 옆에서 설명만 해주면 상상으로 다 볼 수 있어요.” 그리고 그는 덧붙인다. “제가 라디오를 좋아하는 건요, 상상할 수 있잖아요. 그래서 좋아요.”
시각장애인 승렬씨와 보낸 반나절은 지금도 내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공 동 체 소 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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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새터 공동체 가족
지명수 권희숙 채경일 주송례
진영택 김정화 박소웅 박정임
라홍채 최성재 최영애 정무래
박종만 박병민 진선미 박한솔
박진솔
* 여러 가지의 육신과 정신적 아픔 중에 있는 새터공동체 식구들의 건강한 몸이 되기를 위하여 기도하여 주세요.
* 2009년 8월 14일에 마을에 사시는 신평교회 최태훈 집사님께서 밭갈이 로터리를 쳐주셨고, 23일에 최영득 장로님께서(충만농장) 가을배추 육묘를 주셔서 살림교회 교우들이(박상용 목사님) 밭에 심어주셨습니다.
☻ 기도하며 함께 하신 분들
동산교회.충전교회.금성교회.대전평안교회(이성국외11인).김기홍.정무래.최영애.라홍채.박종만.진영택.최성재.튼튼영어대전동구(연월순외13인).김정화.양오석.동춘교회6여전도회.대한적십자금산군추부봉사회(4인).채윤기(박현실).진주문교회여전도회.추부제일교회.새희망교회(차길선외34인).대전성남교회.공주원로원.대성교회여전도회(5인).대전충남지방통계청.진명구.세광교회.수영교회.최선희.금산읍교회(김철우.윤이례).이원교회.대덕교회.동춘교회4남선교회.주식회사EG(이광형).살림교회(박상용외8인).남부중앙교회중고등부(16인).대전성남교회중고등부(김영균외21인).금산주부클럽(4인).진주문교회여전도회(9인).대전노회
(호칭은 생략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