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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원여러분 안녕하세요 !대구날씨가 봄이 없는 여름으로 진입하는 느낌입니다. 무더위를 느끼는 6월이
되려나 봅니다, 더운 날씨 건강 잘 챙기셔서 유월 신록의계절 영월 청령포로 산행을 가고져합니다.
청령포는 영월의 서강 건너에 위치하고 있고. 서쪽은 육육봉이 험준한 층암절벽으로 솟아 있고 주위에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내륙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이 유형(流刑)의 땅은
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곳이다. 바로 1457년(세조 3)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청령포, 이런 지난 역사 산행를 하고자 하오니 회원 여러분의 많은 참석과 성원 바랍니다. 산행에서 뵙겠습니다.
♣ 산 행 일 : 2023년 6월 13일 둘째 화요일 (여섯번째)
♣ 산 행 지 : 청령포 강원도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
♣ 산 행 코 스 : 서강 나루- 단종어가- 관음송 - 망향탑 - 노산대(전망대)- 망향탑- 금표비- 서강나루
2:10 ~ 2:30 소요 예정 & 여유시 고씨동굴
♣ 출 발 장 소 : 지묘동 리 퍼 상점 앞 : 7: 20분
봉무동 이시아 폴리스 : 7 : 30분
불로동 새마을금고앞 : 7 : 35분
아 양 교 대동 정형 : 7 : 40분 정각출발
칠 성 시 장 : 8 : 00분 정각출발
♣ 경 유 지 ; 중앙고속~ 남안동~남제천~영월~ 청령포, & 고씨동굴
네 비 : 영월군 남면 광천리 산67-1 (청령포나루},청령포매표소.
♣ 회 비 : 30,000원 (아침, 하산주제공 ) + (입장료 : 성인 3,000원 경로 1,000원.) 신분증 필참
바람막이, 각자 기호품, 등산스틱, 필히 등산화착용, 비상금, 비상약 등.
☞ 23년 가보고 싶은섬 (여수추도,사도 진도관매도 강화석모도, 철원순담계곡) 1박2일 선택 해 오시기바랍니다.
☞ 회비 입금 선착순 ☞ 신청순 ☞
♣ 신 청 및 연 락 : 회 장 : 이 인 호 010 - 4264 - 3326.
산 행 대 장 : 여 수 연 010 - 4508 - 8894.
총 무 : 고 숙 자 010 - 4968 - 4023.
: 위 명 복 010 - 3811 - 9114.
♣ 산행의 원활한 지원과 식사 관계로 인원파악이 되여야 하니
위 연락처나 댓글로 꼭 신청 바랍니다.
신청이 안되신분은 탑승이 안될 수 도 있습니다, 꼭 신청바랍니다
산 행 시 주 의 사 항
1. 산행중 자신의 실수로 발생하는 사고시 본인의 책임입니다
본 송림산악회 운영자,산행 인솔자 책임도 아니며
송림산악회는 민.형사상의 법적책임을 지지 않습니다.
2. 시간을 꼭 지켜서 많은 회원님들이 하염없이 기다리게 하지 말아야 합니다. (정시출발)
3. 혼자만 앞서 가기 보다는 힘들어하는 회원를 도와주며 함께 하는 산행이 더 즐겁습니다.
4. 산행시 개인행동을 자제하고 등반대장/산행리더 앞에는 앞서 가지 말아야 합니다.
5. 안전한 산행을 위하여 산행 중 음주, 흡연은 자제 합니다.
6. 등반대장/산행리더의 지시/안내에 잘 따라야 합니다.
7. 차량 이동중에 음주,가무는 자제합니다.
8. 추후 자세한 일정(산행코스,시간등)은 날씨등 사정에 따라 변동될 수 있습니다
※ 산행코스는 상황에 따라 변경될 수 있으니 양해바랍니다.
영월 청령포
왕방연 시조비.
어소를 나와 소나무 숲을 산책한다.
담장 두른 어소의 뒷 배경.
소나무 숲 산책로.
단종은 이 적막한 곳에서 외부와 두절된 유배생활을 했으며, 호장 엄흥도가 남몰래 밤이면 이 곳을 찾아 문안을 드렸다고 한다
청령포 관음송 천연기념물 제349호.
청령포 관음송 안내문.
단종이 유배생활 중 갈라진 나무가지 사이에 앉아서 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져 온다.
또한 단종의 유배 당시 모습을 보았으며,때로는 오열하는 소리를 들었다는 뜻에서 관음송이라 불리어 왔다고 한다.
망향탑 가는 길.
망향탑 노산대 갈림길.
단애 밑으로 유유히 흐르는 서강.
방절리 마을.
자신의 앞날에 대한 불안감과, 왕비 송씨를 생각하며 주위 막돌을 주어 쌓은 망향탑.
노산대 가는 테크는 노후되어 출입금지.
노산군으로 강봉되어 청령포로 유배된 후, 해질녘 한양을 바라보며 시름에 잠겼던 곳이라 노산대로 부르고 있다.
노산대 안내문.
노산대 위치.
수십 년에서 수백 년생의 거송들이 들어 찬 수림지.
금표비
탐방을 마치고 다시 나루터 근처 도착.
자갈돌을 하나씩 올리고.
강변의 자갈을 쌓아 만든 돌탑.
서강의 물빛.
강변의 자갈과 청령포 뒷산인 육육봉.
저 물도 내 안 같아서 울어 밤길 예 놋다...
배를 타고 단종애사를 생각하며 청령포를 떠난다.
오고가는 관광객들이 많아 유람선은 하루에도 수십차례 왕복.
청령포 1교.
영월관광센터.
의금부도사 왕방연 시조비 가는 길.
낮즈마한 언덕 송림사이 시비가 보인다.
지방 목민관 송덕비 뒷편에 시조비.
왕방연 시조비.
시조비의 내력 안내문.
청령포가 바라보이는 영월읍 방절리의 서강 언덕 솔모정에 1984년 11월에 왕방연시조비 건립.
왕방연은 세조의 명을 받고 단종에게 사약을 가져온 금부도사였다.
왕방연이 단종께 사약을 진어하고 단종 승하 후 한양으로 돌아가는 길에
슬픔을 이기지 못하여 단종이 계시던 청령포를 바라보며 지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고운 님 여의옵고
내 마음 둘 데 없어 냇가에 앉았으니
저 물도 내 안 같아야 울어 밤길 예놋다.
운탄고도 1330 이정표의 영월관광센터로 발걸음을 옮긴다.
원통한 새 한 마리가 궁중을 나오니
외로운 몸 그림자마저 짝 잃고 푸른 산을 헤매누나
밤은 오는데 잠은 이룰 수 없고
해가 바뀌어도 한은 끝없어라
새벽 산에 울음소리 끊어지고 여명의 달이 흰 빛을 잃어가면
피 흐르는 봄 골짜기에 떨어진 꽃만 붉겠구나
하늘은 귀먹어 하소연을 듣지 못하는데
서러운 이 몸의 귀만 어찌 이리 밝아지는가
- 단종, 〈자규시(子規詩)〉
어린 단종의 한과 슬픔이 가득 묻어나는 피맺힌 절규다. 단종은 어린 시절 자기를 업어주던 할아버지 세종의 인자한 모습과 집현전 학사들에게 세자를 부탁한다는 말을 남기고 요절한 아버지 문종의 얼굴을 떠올렸다. 자신을 낳고 3일 만에 돌아가신 어머니, 왕위 회복을 위해 충정을 다한 사육신의 죽음, 그리고 생이별한 아내 정순왕후의 비통한 모습이 흘러내리는 눈물 속에 어른거렸다. 어린 나이에 육지 속의 고도 청령포로 유배된 단종은 한없는 슬픔에 잠겼다.
청령포는 영월의 서강 건너에 위치하고 있다. 서쪽은 육육봉이 험준한 층암절벽으로 솟아 있고 주위에 삼면이 강으로 둘러싸여 마치 섬과 같은 형태를 이루고 있다. 내륙의 깊은 산속에 위치한 이 유형(流刑)의 땅은 배를 타고 서강을 건너지 않으면 밖으로 나올 수 없는 감옥과도 같은 곳이다. 바로 1457년(세조 3) 조선의 6대 임금 단종이 세조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유배되었던 청령포다.
청령포는 서강이 굽이쳐 흐르면서 만들어진 요새와 같은 곳이다. 말굽처럼 휘돌아 나가는 서강의 물줄기는 오랜 세월 동안 산을 깎아 동쪽, 남쪽, 북쪽이 모두 강물로 감싸인 아주 특이한 지형을 만들었다. 슬픈 역사를 지닌 서강의 청령포는 처연하리만큼 아름다운 모습을 지니고 있다. 청령포로 들어가는 나루에서 바라보면 푸른 강물로 둘러싸인 절경이 한눈에 들어온다. 강물 건너로는 깨끗한 자갈과 흰 모래밭이 강굽이를 따라 펼쳐지고 위로는 울창한 소나무 숲이 가로로 길게 조성되어 푸르른 빛을 발하고 있다. 솔숲 뒤로는 험준한 지세의 육육봉이 기암괴석으로 배경을 이루고 있어 마치 한 폭의 그림과도 같은 비경을 보여준다.
청령포 전경
서강이 험준한 육육봉을 휘돌아가는 곳에 자리한 청령포는 자연이 만들어낸 천연의 유배지다. 영월군 제공.
청령포는 특히 소나무 숲이 매우 아름답다. 장송으로 이루어진 소나무 숲은 밖에서 보는 모습도 빼어나지만 하늘을 빼곡히
뒤덮고 있는 숲 안의 풍광도 매우 청량하다. 이곳에는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된 관음송이 있다. 아주 오랜 풍상을 겪은
모습으로 하늘을 찌를 듯이 높게 자라 육중한 몸을 굳게 버티고 서 있는데 단종의 애처로운 모습을 보고(觀), 슬픔과 울분으로
가득 찬 그의 오열(音)을 들었다고 해서 관음송(觀音松)이라는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관음송은 높이가 30m에 달하는
노거수로 중간에서 두 갈래로 갈라져 동서로 비스듬히 자란 형태다. 수령은 약 600년으로 보고 있는데, 이는 단종이
유배되었을 때의 수령을 80년으로 추정하여 계산한 것이라 한다.
관음송
유배된 단종의 모습을 보고 그의 애끓는 오열을 들었다는 관음송은 천연기념물 제349호로 지정되어 있다.
청령포에는 단종어가, 단묘유지비, 노산대, 망향탑, 금표비 등 단종과 관련된 여러 시설이 위치하고 있다.
단종어가는 소나무 숲과 연접하여 건립되어 있다. 2004년 《승정원일기(承政院日記)》의 기록을 토대로 하여 당시 모습을
재현한 것으로 내부에는 인형으로 단종이 만들어져 있어 역사적 장소성을 잘 보여준다. 마당에는 1763년(영조 39) 영조의
친필을 각자하여 세운 단묘유지비가 서 있다. 높이 162cm의 크기로 화강암 비좌 위에 오석으로 된 비신을 세웠다.
비석의 전면에는 ‘단묘재본부시유지(端廟在本府時遺址)’라는 글이 새겨져 있어 단종이 청령포에 살았음을 증명하고 있다.
단종어가 내부
단종어가의 방 안에는 슬픈 모습으로 앉아 있는 단종이 재현되어 있다.
청령포 서측의 능선에는 노산대와 망향탑이 위치하고 있다. 단종은 층암절벽 위에 자리한 노산대에서 한양에 두고 온
왕비를 간절히 생각하며 흩어져 있는 돌을 쌓아 망향탑을 만들었다고 한다. 또한 소나무 숲의 가장자리에 금표비가 서
있는데 영조 2년(1726)에 세워진 것으로 청령포의 동서 방향으로 300척, 남북으로는 490척 안에서 소나무의 벌목을
금하고 퇴적된 흙을 파가지 못하도록 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망향탑
왕후 송씨를 생각하면서 눈물로 쌓은 탑으로 단종이 남긴 유일한 흔적이다.
1457년 여름에 홍수로 서강이 범람하여 청령포가 잠기고 말았다. 그래서 단종은 두어 달 만에 영월부사의 객사인 관풍헌으로
처소를 옮겼는데 10월에 이곳에서 사약을 받고 죽음을 맞았다. 청령포 강 건너 나루 옆에는 단종의 유배길과 사형길에 금부도사 로 왔던 왕방연의 시비가 서 있다. 그는 왕명을 수행하는 관리였기 때문에 단종에게 내려진 형을 집행할 수밖에 없었지만 마음
한없는 슬픔으로 가득했다. 왕방연의 심정을 담은 그의 시 〈회단종이작시조(懷端宗而作時調)〉는 비석에 이렇게 남아 있다.
천만리 머나먼 길에 千里遠遠道
고운님 여의옵고 美人別離秋
내 마음 둘 데 없어 此心未所着
냇가에 앉았으니 下馬臨川流
저 물도 내 안과 같아서 川流亦如我
울면서 밤길을 가더라 鳴咽去不休
영월은 단종과 관련된 역사의 땅이다. 단종의 능인 장릉이 소재하고 있는 곳이기도 하다. 본래 왕릉은 한양에서 100리 이내에
두는 것이 관례다. 그러나 조선의 왕릉 중에서 단종의 능만이 유독 한양에서 먼 곳에 위치하고 있다. 단종은 죽임을 당한 후 동강 에 버려졌는데 영월의 호장이었던 엄홍도가 시신을 몰래 수습하여 산자락에 암장했다고 한다. 그래서 오랫동안 묘의 위치조차
알 수 없었는데 100여 년이 지난 중종조에 당시 영월군수 박충원이 묘를 찾아 묘역을 정비하였고, 250여 년이 지난 숙종조에
서야 비로소 단종으로 복위되어 무덤도 장릉이란 능호를 갖게 된 것이다.
단종의 슬픈 역사로 점철된 청령포는 학술적으로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청령포에는 ‘구하도’라는 것이 있다. 감입곡류 하천이 큰 모양으로 형성되어 흐르다가 중간 부분이 터져 물돌이가 짧게 휘돌게 되었는데 이것이 오늘날 청령포 하천의 모습이다. 옛날에 물길이었던 곳은 그 후로 더 이상 물이 흐르지 않고 하천 지형만 남게 되는데 이를 구하도라 한다. 청령포 앞의 구하도는 중요한 지리학적 의미를 갖는 지형이다.
청령포는 물돌이, 소나무 숲, 관음송, 육육봉의 기암절벽 등 자연 경관의 아름다움은 물론 단종과 관련된 역사적 의미가 매우
깊은 장소다. 이러한 장소적 가치를 높게 평가하여 2008년 문화재청에서는 청령포를 명승 제50호로 지정했다. 청령포가 명승지로 지정된 후 많은 관광객이 이곳을 찾고 있다.
영월군에는 청령포 외에도 선돌, 한반도 지형 등이 명승지로 지정되어 있다. 이러한 명승지들은 볼거리로 연결되어 활용의 상승효과를 높여주고 있다. 따라서 영월을 찾는 탐방객은 매년 증가하고 있는 상황이다. 숨어 있는 명소를 발굴하여 명승지로 지정하는 것은 우리 국토의 아름다움을 밝히는 것이자 국민이 향유할 수 있는 소중한 자연유산을 확보하는 길이라 할 수 있다.
한반도의 역사를 간직한 '태화산 명품숲'
강원도 영월군과 충청북도 단양군 경계에 위치하고 있는 태화산(1027m)은 정상에서 서쪽을 제외한 삼면이 남한강으로
에워 쌓여 있다.
주능선에서 조망되는 풍광이 빼어나게 아름다운 곳으로 옛 고구려 산성터의 유적과 고씨동굴을 품고 있는 역사적인 가치로
인해 산림청에서 2022년 2월에 산림청 100대명산으로 2021년에는 9월의 명품숲으로 각각 선정한 곳이다.
성종때 간행된 신증동국여지승람에는 대화산(大華山)이라는 기록이 있다. 영월 사람들은 화산이라고도 부르는데 백두대간의
안쪽 줄기에 속한 전체적인 산세는 능선이 북동에서 남서 방향으로 길게 뻗어 있으며, 산림이 울창한 전형적인 육산(陸山)의
형태를 나타내고 있어 이름의 유래를 외관적인 모습에서 유추해 볼 수 있다.
또한, 태화산 서쪽에는 국지산(626m), 동북쪽에 응봉산(1,013m), 동남쪽에 마대산(1,052m)과 함께 첩첩산중을 이룬다.
마대산 북쪽 골짜기에는 방랑시인 김삿갓의 집터와 무덤이 남아있고, 소백산 북쪽줄기의 형제봉에서 흘러내린 능선 끝에 자리한 온달산성은 남한강을 사이에 두고 태화산을 마주보고 있다. 소백산 그늘에 가려 널리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강원도 특유의 울창한 산림으로 누구나 쉽게 이용할 수 있는 산행지로써 지역주민 및 등산객에게 사랑받고 있는 숲이다.
영월군의 대부분이 석회암층이 발달하고 있어 카르스트지형, 돌리네 등의 지형적 특징을 찾아 볼 수 있다. 대표적으로 태화산의 동쪽, 남한강변의 각동리 길론골 절벽에 위치하고 있는 천연기념물 제219호인 고씨동굴(高氏洞窟)이 있다.
고씨동굴은 임진왜란 당시 고씨 성을 가진 가족이 피난했던 곳이라고 해서 ‘고씨동굴’이라는 이름으로 불리기 시작했다. 석회암동굴인 고씨동굴에서 알 수 있듯이 태화산 일대는 석회암지대로 각동리와 오사리 등지에는 석회암이 녹아내려 지반이 움푹 패인 돌리네와 종유석 등 4억 년의 신비로움을 간직한 여러 형태의 동굴생성물이 있어 볼거리가 다양하고 지질연구 및 생태학습의 큰 도움이 되고 있다. 또한, 신갈나무 숲으로 이루어진 정상에서 동북쪽으로 이어지는 해발 900m 봉우리에 둘레 약 1,200m의 능선으로 둘러쌓여 있어 포곡형 구조의 형태인 태화산성이 위치하고 있다. 성벽은 거의 허물어져 신갈나무가 무성하게 자라 큰 돌담의 형태처럼 느껴지기도 하지만 망을 보는 망대의 흔적이 남아 있다.
태화산성은 삼국시대에 축조된 것으로 남한강 상류 가장 높은데 위치하고 있어 적들을 감시하고 그 상황을 우군에게 전하는 사령탑의 역할을 했다고 전해진다. 산성 안에 우물터는 아직도 남아 있는데 잠시 전장에서 쉬던 그 옛날 삼국시대인의 정황을 생각해보게 된다.
태화산에서 산행을 시작하여 북벽으로 이어지는 약 13km의 코스는 강원도 영월군과 충청북도 단양군을 연결해주는 소통과 화합의 옛길로써 선조들의 삶과 정서, 애환이 녹아 있는 정취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동부지방산림청에서는 이러한 우수한 역사성을 보유한 태화산을 현 세대와 미래 후손들에게 고스란히 전달해주기 위하여 어린이들의 오감을 활용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2016년 1억3천만원을 들여 1ha규모의 유아숲체험원을 조성하여 2017년에 개원하였다.
유아숲체험원은 매년 4,000명 이상이 방문하고 있어 지역내 어린이들에게 아주 인기가 높은 곳으로 자리매김 하고 있다.
아울러 태화산 등산로의 정비 및 사방사업을 지속적으로 추진하고 있어 지역 명산이 간직한 훌륭한 숲의 가치를 보존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이러한 역사적 배경과 산림의 우수함을 간직한 태화산 명품숲은 1,000m이상의 고지대로 뛰어난 경관을 바탕으로 하여 볼거리, 즐길거리 등 다양한 체험거리를 충족해준다. 이번 여름에는 단순한 여행길이 아니라 삶을 되돌아보게 하는 행복으로의 여로로써 태화산을 찾아보길 추천한다.
- 무 빙 맵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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