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莊子 內篇 2 齊物論(제물론) 12-3 是不是(시불시) 然不然(연불연)
既使我與若辯矣:
若勝我,我不若勝;若果是也,我果非也邪?
我勝若,若不吾勝;我果是邪,而果非也邪?
其或是也,其或非也邪?其俱是也,其俱非也邪?
我與若不能相知也。則人固受其黮闇。吾使誰正之?
使同乎若者正之;既與若同矣,惡能正之?
使同乎我者正之;既同乎我矣,惡能正之?
使同乎與若者正之;既同乎我與若矣,惡能正之?
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而待彼也邪?
何謂和之以天倪?若其不相待。
和之以天倪,因之以曼衍,所以窮年也。
謂和之以天倪? 曰:是不是,然不然。
是若果是也,則是之異乎不是也亦無辯。
然若果然也,則然之異乎不然也亦無辯。
化聲之相待,若真不相待。和之以天倪,因之以曼衍,所以窮年也。
忘年忘義,振於無竟,故寓諸無竟。」
旣使我與若辯矣(기사아여약변의)
- 가령 내가 그대와 논쟁을 했는데
若勝我(약승아) 我不若勝(아불약승) 若果是也(약과시야) 我果非也邪(아과비야야)
-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했다면 그대는 옳고 나는 옳지 않은가
我勝若(아승약) 若不吾勝(약불오승) 我果是也(아과시야) 而果非也邪(이과비야야)
-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내가 옳고 그대는 옳지 않은가
其或是也(기혹시야) 其或非也邪(기혹비야야)
- 아니면 어느 한쪽이 옳고 다른 한쪽이 옳지 않은가
其俱是也(기구시야) 其俱非也邪(기구비야야)
- 아니면 양쪽 모두 옳거나 양쪽 모두 옳지 않은가
我與若(아여약) 不能相知也(불능상지야) 則人固受其黮闇(즉인고수기탐암) 吾誰使正之(오수사정지)
- 나와 그대 모두 알 수 없다면 사람들이 미궁에 빠질 것이니 내가 누구에게 이런 걸 바로잡게 할 수 있는가
使同乎若者正之(사동호약자정지) 旣與若同矣(기여약동의) 惡能正之(오능정지)
-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이 어찌 바로잡을 수 있으며
使同乎我者正之(사동호아자정지) 旣同乎我矣(기동호아의) 惡能正之(오능정지)
-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이 어찌 바로잡을 수 있고
使異乎我與若者正之(사이호아여약자정지) 旣異乎我與若矣(기이호아여약의) 惡能正之(오능정지)
- 나, 그대와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그런 사람이 어찌 바로잡을 수 있으며
使同乎我與若者正之(사동호아여약자정지) 旣同乎我與若矣(기동호아여약의) 惡能正之(오능정지)
- 나,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그런 사람이 어찌 바로잡을 수 있는가
然則我與若與人(연즉아여약여인) 俱不能相知也(구불능상지야) 而待彼也邪(이대피야야)
- 그렇다면 나, 그대, 다른 사람도 모두 알 수 없을 것이니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하는가
化聲之相待(화성지상대) 若其不相待(약기불상대)
- 시비를 따지는 소리(化聲)에 서로 의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의지하지 않은 것과 같을지니
和之以天倪(화지이천예) 因之以曼衍(인지이만연) 所以窮年也(소이궁년야)
- 천예(天倪)로 조화를 이루고 만연(曼衍)으로 바탕을 삼는다면 주어진 명을 온전히 누리는 길이 될 것이다
(따지지 말고 있는 그대로를 받아들이면 제 명을 누릴 수 있을 것이다)
(천애 : 자연의 분수, 시비를 잊음, 있는 그대로를 받아 들임 등등)
(만연 : 거칠 것이 없음, 자유자재, 끝없는 변화 등등)
何謂和之以天倪(하위화지이천예)
- 천애로 조화를 이룬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曰 是不是(왈시불시) 然不然(연불연)
-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하고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하는 것이다
是若果是也(시약과시야) 則是之異乎不是也(즉시지이호불시야) 亦無辯(역무변)
- 그 옳음이 과연 정작 옳다면 곧 그 옳음은 옳지 않다고 함과 다른 것이니 이에 변론의 여지가 없으며
然若果然也(연약과연야) 則然之異乎不然也(즉연지이호불연야) 亦無辯(역무변)
- 그렇다고 한 것이 정작 그렇다면 곧 그 그러함은 그렇지 않다 하는 것과는 다른 것이니 이에 변론의 여지가 없을 것이다
忘年忘義(망년망의) 振於無竟(진어무경) 故寓諸無竟(고우제무경)
- 그러니 (그런 말도 안되는 건 잊어버리고) 세월도 잊고 자아도 잊고 무한의 경지(無竟)에 침잠할지니, 고로 무한의 경지(無竟)에 의탁할 것이다
既이미 기 1. 이미, 벌써, 이전에 2. 원래, 처음부터 3. 그러는 동안에, 이윽고 4. 다하다, 다 없어 지다, 다 없애다 5. 끝나다, 끝내다
使하여금 사,부릴 사,보낼 시 1. 하여금 2. 가령(假令), 만일(萬一), 설사(設使) 3. 심부름꾼, 하인(下人) 4. 벼슬의 이름 5. 사신(使臣) 6. 부리다 7. 시키다 8. 따르다, 순종하다(順從--) 9. 방종하다(放縱--), 제멋대로 하다
俱함께 구,갖출 구 1. 함께 2. 모두 3. 다(남거나 빠진 것이 없이 모두) 4. 전부(全部) 5. 갖추다 6. 구비하다(具備--) 7. 동반하다(同伴--)
黮검을 담,오디 심,어두울 탐 1. 검다 2. 새까맣다 3. 검누른빛 4. 사사로움 a. 오디 (심) b. (사리에)어둡다 (탐) c. 밝지 못한 모양 (탐)
闇숨을 암,큰물 질 음 1. 숨다 2. 어둡다, 희미하다(稀微--) 3. 어둡게 하다 4. 어렴풋하다 5. 닫힌 문 6. 밤 7. 여막 8. 많은 모양 9. 어두움 10. 일식, 월식 11. 해질 무렵 a. 큰물(비가 많이 와서 강이나 개천에 갑자기 크게...
化될 화,잘못 와 1. 되다, 화하다(化--) 2. 교화하다(敎化--), 감화시키다(感化---) 3. 가르치다 4. 따르다, 본받다 5. 변천하다(變遷--), 달라지다 6. 죽다, 망하다(亡--) 7. 없애다, 제거하다(除去--) 8. 교역하다(交易--),...
倪어린이 예,다시 난 이 예 1. 어린이 2. 우리들 3. 끝, 가, 가장자리 4. 다시 난 이(=鯢) 5. 성가퀴(城--: 성 위에 낮게 쌓은 담) 6. 가냘프다 7. 연약하다(軟弱--) 8. 흘겨보다 9. 오만하다(傲慢--) 10. 나누다
因인할 인 1. 인하다(因--: 어떤 사실로 말미암다) 2. 말미암다, 원인이나 계기(契機)로 되다 3. 의지하다(依支--) 4. 의거하다(依據--) 5. 겹치다 6. 잇닿다(서로 이어져 맞닿다), 연달다 7. 이어받다 8. 따르다
曼길게 끌 만 1. 길게 끌다 2. 길다, 멀다 3. (말이)아름답다 4. (살결이)곱다 5. 가볍다 6. 없다 7. 만연하다(蔓延ㆍ蔓衍--), 퍼져 자라다 8. 무늬 없는 비단(緋緞) 9. 흐릿한 모양
衍넓을 연 1. 넓다 2. 넓히다, 확충하다(擴充--) 3. 넘치다, 흐르다 4. 남다 5. 넉넉하다, 풍부하다(豐富--) 6. 지나다 7. 펴다, 산개하다(散開--), 배치하다(配置--) 8. 이끌다, 초빙하다(招聘--) 9. (널리)퍼지다
因인할 인 1. 인하다(因--: 어떤 사실로 말미암다) 2. 말미암다, 원인이나 계기(契機)로 되다 3. 의지하다(依支--) 4. 의거하다(依據--) 5. 겹치다 6. 잇닿다(서로 이어져 맞닿다), 연달다 7. 이어받다 8. 따르다
辯말씀 변,두루 미칠 편 1. 말씀 2. 이리저리 둘러대는 말 3. 문체(文體)의 이름 4. 말을 잘하다 5. (말에)조리(條理)가 있다 6. 교묘(巧妙)하게 말하다 7. 말다툼하다, 논쟁하다(論爭--) 8. 다투다, 변론하다(辯論--) 9. 말하다
振떨칠 진 1. 떨치다 2. 떨다 3. 진동하다(振動--) 4. 구원하다(救援--) 5. 거두다 6. 건지다, 구휼하다(救恤--) 7. 떨쳐 일어나다, 속력(速力)을 내다, 무리를 지어 날다 8. 들다, 들어 올리다 9. 열다, 열어서
寓부칠 우 1. 부치다, 보내다 2. 맡기다, 위탁하다(委託--) 3. 기탁하다(寄託--) 4. 붙어 살다, 임시로 살다, 남에게 의지(依支)하여 살다 5. 머무르다, 객지(客地)에서 묵다 6. 핑계 삼다, 구실 삼다 7. 우거(寓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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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자 도덕경 58장을 생각케 하는 대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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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변하는 이론은 무의미한 것이다.
既使我與若辯矣(기사아여약변의),若勝我(약승아), 我不若勝(아불약승),若果是也(약과시야)?我果非也邪(약과비야야)? 我勝若(아승약),若不吾勝(약불오승),我果是也(아과시야)? 而果非也邪(이과비야야)? 其或是也(기혹시야),其或非也邪(기혹비야야)? 其俱是也(기구시야),其俱非也邪(기구비야야)? |
가령 내가 그대와 논쟁했는데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했다면 그대는 참으로 옳고 나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나는 참으로 옳고 그대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아니면 어느 한쪽이 옳고 또 다른 한쪽이 그르단 말인가?
아니면 양쪽이 모두 옳거나 양쪽이 모두 그르단 말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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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旣使我與若辯矣(기사아여약변의) : 가령 내가 그대와 논쟁했다면. 사(使)는 가령의 뜻.
○ 若勝我(약승아) 我不若勝(아불약승) :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함. 약(若)은 2인칭.
○ 若果是也(약과시야) 我果非也邪(아과비야야) : 그대는 참으로 옳고 나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과(果)는 참으로, 정말.
○ 而果非也邪(이과비야야) : 그대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而는 2인칭.
○ 其或是也(기혹시야) 其或非也邪(비혹비야야) : 어느 한쪽이 옳고 또 다른 한쪽이 그르단 말인가. 곧 두 사람이 논쟁할 때 한 사람이 옳으면 또 다른 사람은 반드시 그르다는 양자택일의 논리가 정당한 것인지를 의심하는 내용이다.
○ 其俱是也(기구시야) 其俱非也邪(기구비야야) : 양쪽이 모두 옳거나 양쪽이 모두 그르단 말인가. 두 사람이 논쟁할 때 누가 옳고 누가 그른지 확정할 수 없다면 논쟁의 결과와 상관없이 두 사람 모두 옳거나 두 사람 모두 그르다고 해야 하는 것인지 의심함으로써 시비의 판단이 상대적인 것임을 밝힌 내용. 俱(구)는 함께.
我與若不能相知也(아여약불능상지야),則人固受其黮闇(즉인고수기탐암)。 吾誰使正之(오수사정지)? 使同乎若者正之(사동호약자정지),既與若同矣(기여약동의),惡能正之(오능정지)! 使同乎我者正之(사동호아자정지),既同乎我矣(기동호아의),惡能正之(오능정지)! 使異乎我與若者正之(사이호아여약자정지),既異乎我與若矣(기이호아여약의), 惡能正之(오능정지)! 使同乎我與若者正之(사동호아여약자정지),既同乎我與若矣(기동호아여약의), 惡能正之(오능정지)! 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연즉아여약여인구불능상지야), 而待彼也邪(이대피야야)? |
나와 그대가 서로 알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이 참으로 어둠 속에 빠지고 말 것이니
내가 누구로 하여금 바로잡게 할 수 있겠는가?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그 사람은 그대와 같은 사람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같은 사람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그대 모두와 다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같으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와 그대, 그리고 다른 사람까지도 모두 알 수 없을 것이니,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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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我與若(아여약) 不能相知也(불능상지야) : 나와 그대가 서로 알 수 없음. 논쟁의 당사자가 시비를 판단하지 못한다는 뜻.
○ 人固受其黮闇(인고수기탐암) : 다른 사람들이 참으로 어둠 속에 빠짐. 논쟁의 결과를 기다리는 제3자는 더더욱 시비를 알 수 없게 된다는 뜻. 人은 他人을 지칭한다. 郭象과 林希逸은 모두 人을 논쟁의 당사자인 나와 그대라고 풀이했지만 적절치 않다(方勇‧陸永品). 王先謙은 “곁에 있는 사람도 그 때문에 분명히 알지 못하게 된다[旁人亦因之不明].”고 풀이했다. 黮闇(탐암)은 분명하지 못한 모양(李頤).
○ 吾誰使正之(오수사정지) : 내가 누구로 하여금 바로잡게 할 수 있겠는가? 어떤 사람에게 시비를 판정하게 할 수 있겠느냐는 뜻. 결국 시비를 판정할 수 있는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成玄英은 “저와 나 두 사람이 각각 편견을 가지고 모두 자기가 옳다고 여기기 때문에 서로 알지 못한다[彼我二人 各執偏見 咸謂自是 故不能相知].”고 풀이했다.
○ 使同乎若者正之(사동호약자정지) :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바로잡게 한다면. 동호약자(同乎若者)는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
○ 旣與若同矣(기여약동의) 惡能正之(오능정지) : 이미 그 사람은 그대와 같은 사람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상대와 같은 주관적 편견을 지니고 있기 때문에 공정하게 판정할 수 없다는 뜻이다. 郭象은 “상대와 의견이 같기 때문에 상대의 의견이 옳다한 것일 뿐이므로 믿을 수 없다[同故是之 未足信也].”고 풀이했다.
○ 異乎我與若者(이호아여약자) :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 곧 나와도 의견이 다르고 그대와도 의견이 다른 사람.
○ 異乎我與若矣(이호아여약의) 惡能正之(오능정지) :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그대 모두와 다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곧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그르다고 할 것이므로 그 또한 참으로 그르다는 근거로 삼기에는 부족하다는 뜻이다(郭象). 成玄英은 “의견이 다르기 때문에 또 다른 시비의 분란을 일으킬 뿐이다[旣異我汝 故別起是非].”라고 풀이했다.
○ 我與若與人(아여약여인) 俱不能相知也(구불능상지야) : 나와 그대, 그리고 다른 사람이 모두 서로 알 수 없음. 결국 다른 사람에게 정확한 판정을 부탁하더라도 옳은 판정을 내릴 수 없다는 뜻.
○ 待彼也邪(대피야야) :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郭象은 “각자가 옳다고 여길 뿐이므로 다른 사람을 기다려도 이 논쟁을 판정할 수 없다[各自正耳 待彼不足以正此].”는 뜻으로 풀이했다. 成玄英은 “또 다른 사람을 기다린다 하더라도 같은 결과가 일어날 뿐이기 때문에 기다릴 필요가 없음을 말한 것이다[若別待一人 亦與前何異 待彼也耶 言其不待之也].”라고 풀이했다. 彼를 다음 문장의 ‘天倪’로 보고 ‘天倪를 기다려야 할 것’, 곧 자연의 道에 맡겨야 할 것으로 풀이한 주석도 있지만 취하지 않았다.
何化聲之相待(하화성지상대),若其不相待(약기불상대)。 和之以天倪(화지이천예),因之以曼衍(인지이만연), 所以窮年也(소이궁년야)。 謂和之以天倪(위화지이천예)? 曰(왈):是不是(시불시),然不然(연불연)。 是若果是也(시약과시야),則是之異乎不是也亦無辯(즉시지이호불시야역무변); 然若果然也(연약과연야),則然之異乎不然也亦無辯(즉연지이호불연야역무변)。 忘年忘義(망년망의),振於無竟(진어무경),故寓諸無竟(고우제무경)。」 |
시비를 따지는 소리에 의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의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을 자연의 道(天倪)로 조화하며, 끝없는 변화에 자신을 그대로 맡기는 것,
이것이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을 다하는 방법이다.
“道(天倪)로 조화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세속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세속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절대적인〉 옳음이 과연 정말 옳다면 이 절대적인 옳음이 세속 세계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것임은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분명하다.
〈만물제동에 입각하여〉 그렇다고 한 것이 과연 정말 그런 것이라면 그렇다고 한 것이 세속 세계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것임은 또한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이를 잊어버리고 마음속의 편견을 잊어버려서 경계 없는 경지에서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움직인다. 그 때문에 경계 없는 세계에 맡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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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化聲之相待(화성지상대) 若其不相待(약기불상대) : 시비를 따지는 소리에 의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의지하지 않는 것과 같음. 化聲(화성)은 시비를 따지는 것, 곧 논쟁을 의미한다. 변화하기 쉬운 시비(是非)의 소리라는 뜻도 된다. 郭象은 “시비를 따지는 것이 화성(化聲)이다[是非之辯 爲化聲].”라고 했다.
○ 和之以天倪(화지이천예) : 천예(天倪:자연의 道)로 조화함. 천예(天倪)는 자연의 道를 뜻하며 道에 의한 구분, 곧 절대적 규정을 의미한다. 郭象은 “천예(天倪)란 自然의 分이다[天倪者 自然之分也].”라고 했다. 비슷한 구절이 〈寓言〉편에도 ‘和以天倪 因以曼衍 所以窮年……是謂天均 天均者天倪也’라고 나오는데 이에 의하면 천예(天倪)는 앞에 나왔던 천균(天鈞)과 같은 뜻이다.
○ 因之以曼衍(인지이만연) : 변화에 자기 자신을 맡김. 만연(曼衍)은 변화(變化)와 같고 인(因)은 맡긴다는 뜻이다(成玄英). 司馬彪는 만연(曼衍)을 무극(無極)으로 풀이했다.
○ 所以窮年也(소이궁년야) :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을 다하는 방법임. 궁(窮)은 다한다[盡]는 뜻(成玄英). 年은 天年, 곧 天壽와 같은 뜻.
○ 是不是(시불시) 然不然(연불연) : 是와 不是, 然과 不然으로 끊어서 보는 견해도 있고, 是가 곧 不是이고 然이 곧 不然이라고 보는 讀法도 있지만, 여기서는 〈天地〉편과 〈秋水〉편의 ‘可不可 然不然’에 근거하여 是不是에서 앞의 是와, 然不然에서 앞의 然을 술어(동사)로 보고 ‘세속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세속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여기는 것’으로 해석하였다.
○ 是若果是也(시약과시야) : 옳음이 과연 정말 옳다면. 세속에서 옳지 않다고 여기는 것을 옳다고 여기는 것이 정말 옳은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상대적인 시비를 넘어선 절대적인 是를 가정하는 표현.
○ 是之異乎不是也(시지이호불시야) 亦無辯(역무변) : 이 절대적인 옳음이 세속 세계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것임은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분명함. 무변(無辯)은 따질 필요도 없이 분명하다는 뜻.
○ 忘年忘義(망년망의) : 나이를 잊어버리고 마음속의 편견을 잊어버림. 사생(死生)과 시비(是非)를 넘어서는 경지를 표현한 것이다. 곽상은 “是非와 死生을 통틀어 한가지로 여긴다[是非死生蕩而爲一].”고 풀이했다. 義는 시비를 가리는 편견(成玄英).
○ 振於無竟(진어무경) : 경계 없는 경지에서 자유자재로 움직임. 진(振)은 소요(逍遙)와 같은 뜻(林希逸). 崔譔본에는 竟이 境으로 되어 있다《釋文》.
○ 寓諸無竟(우제무경) : 경계 없는 세계에 자신을 맡김. 바로 이것이 천예(天倪)로서 조화(調和)를 이루는 것이다. 朴世堂은 “무경은 바로 이른바 용이다[無竟 卽所謂庸也].”고 풀이하여, 앞의 爲是不用而寓諸庸의 寓諸庸과 여기의 寓諸無竟을 같은 뜻으로 보고 있다.
본 자료의 번역은 전통문화연구회의 동양고전종합DB(http://db.juntong.or.kr)에서
인용된 내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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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문출처> 中國哲學書電子化計劃
道家 -> 莊子 -> 內篇 -> 齊物論
25.변하는 이론은 무의미한 것이다.
서양 철학의 궁극은 변하지 않는 이데아, 즉 진리를 찾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그러나 동양의 철학은 변하지 않는 것은 없으니 진리를 찾는 것이 아니라 진리를 찾아가는 길, 방법을 찾는 것에서 출발했습니다.
서양의 식사는 대화를 섞지 않으면 교양 없는 신사가 되지만 우리나라의 식사는 조용히 먹어야 양반다운 식사법이라고 했습니다. 대부분의 나라에서는 식탁이 정갈해야 하지만 어떤 나라에서는 식탁에 많은 음식을 떨어뜨리고 먹어야 잘 먹었다고 하다더군요. 既使我與若辯矣,若勝我,我不若勝,若果是也?我果非也邪?我勝若,若不吾勝,我果是也?而果非也邪?其或是也,其或非也邪?其俱是也,其俱非也邪?我與若不能相知也,則人固受其黮闇。吾誰使正之?使同乎若者正之,既與若同矣,惡能正之!使同乎我者正之,既同乎我矣,惡能正之!使異乎我與若者正之,既異乎我與若矣,惡能正之!使同乎我與若者正之,既同乎我與若矣,惡能正之!然則我與若與人俱不能相知也,而待彼也邪?何化聲之相待,若其不相待。和之以天倪,因之以曼衍,所以窮年也。謂和之以天倪? 曰:是不是,然不然。是若果是也,則是之異乎不是也亦無辯;然若果然也,則然之異乎不然也亦無辯。
忘年忘義,振於無竟,故寓諸無竟。」
“가령 내가 그대와 논쟁했는데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내가 그대를 이기지 못했다면 그대는 참으로 옳고 나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가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나는 참으로 옳고 그대는 참으로 그르단 말인가? 아니면 어느 한쪽이 옳고 또 다른 한쪽이 그르단 말인가? 아니면 양쪽이 모두 옳거나 양쪽이 모두 그르단 말인가?
나와 그대가 서로 알 수 없다면 다른 사람들이 참으로 어둠 속에 빠지고 말 것이니 내가 누구로 하여금 바로잡게 할 수 있겠는가?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그 사람은 그대와 같은 사람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같은 사람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다른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그대 모두와 다르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같은 사람으로 하여금 바로잡게 한다면 이미 나와 그대 모두와 의견이 같으니 어찌 바로잡을 수 있겠는가! 그렇다면 나와 그대, 그리고 다른 사람까지도 모두 알 수 없을 것이니, 또 다른 사람을 기다려야 할 것인가?
“시비를 따지는 소리에 의지하는 것은 처음부터 아예 의지하지 않는 것과 같다. 이것을 자연의 道(天倪)로 조화하며, 끝없는 변화에 자신을 그대로 맡기는 것, 이것이 하늘로부터 받은 수명을 다하는 방법이다.”
“道(天倪)로 조화한다는 것은 무슨 말입니까?”
“〈세속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을 옳다고 여기고 세속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을 그렇다고 여기는 것이다. 〈이 절대적인〉 옳음이 과연 정말 옳다면 이 절대적인 옳음이 세속 세계에서 옳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것임은 또한 말할 것도 없이 분명하다. 〈만물제동에 입각하여〉 그렇다고 한 것이 과연 정말 그런 것이라면 그렇다고 한 것이 세속 세계에서 그렇지 않다고 하는 것과 다른 것임은 또한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이를 잊어버리고 마음속의 편견을 잊어버려서 경계 없는 경지에서 자유자재(自由自在)로 움직인다. 그 때문에 경계 없는 세계에 맡긴다.”
[출처] [장자(내편)] 第2篇 齊物論(제물론) : 25.변하는 이론은 무의미한 것이다.작성자 swings81
어느 것이 옳을까요?
어떤 이들은 식물인간이라도 오래만 살아 있어달라고 수많은 돈을 들여 인공으로 생명을 연장하고 있는가 하면, 어떤 이들은 존엄사라는 이름으로 생명을 끊는 것을 아름답게 여기는 사람도 있습니다. 어느 것이 옳을까요?
장자는 이것도 진리이고 저것도 진리라고 말합니다. 장자의 말이 어려운 것은 변하는 것이 진리이니 그 진리를 이리 보고 다시 저리 보는 데서 느끼는 것입니다. 또 다시 말씀드리지만 장자로 인하여 정답을 찾거나 진리를 알 수 있다는 기대를 접는 것이 좋을 것 같습니다. 장자로 인하여 우리가 여러 가지 생각을 할 수 있기만 하면 족하니 어려워할 것 없습니다.
<본문 읽기>
나와 그대가 논쟁을 벌였다고 하자.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나는 그대에게 졌다면,
과연 그대가 옳고 나는 그른 것인가.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가 나에게 졌다면,
진실로 나는 옳고 그대는 그른 것인가.
혹은 한쪽이 옳으면 다른 한쪽은 그른 것인가.
아니면 양쪽이 다 옳거나, 다 그른 것인가.
이런 문제를 나와 그대가 판정할 수 없는 것이라면,
제 삼자도 또한 판정을 내릴 수 없으리라.
그렇다면 과연 누가 바른 판단을 할 수 있겠는가.
만약 그대와 뜻을 같이하는 이에게 판정을 의뢰한다면,
그는 이미 그대에게 동조하기 때문에 바르게 판단할 수가 없다.
반대로 나와 뜻이 맞지 않는 이에게 판정을 의뢰한다면,
그는 이미 나와는 동조하지 않기 때문에 바르게 판정할 수가 없다.
그러면 나와 그대의 뜻이 맞지 않는 제삼자에게 판정을 의뢰한다면,
그는 이미 나와 그대에게 동조하지 않기 때문에 바르게 판정할 수가 없다.
나와 그대와도 뜻이 맞는 이에게 판정을 의뢰한다면,
그는 이미 나와 그대에게 동조하기 때문에 바르게 판정할 수가 없다.
그러니 나나 그대나 제삼자가 다 옳고 그름을 판정할 수가 없는 것이다.그러면 누구에게 판정을 기대하겠는가.
변하기 쉬운 말에 기대하는 것은 애초에 부질없는 짓이다.
대답이 없는 천예로써 모든 것을 화합케 하고,
만연으로써 모든 것의 바탕을 삼는다면,
주어진 삶을 온전히 누리는 길이 된다.
천예로써 모든 것을 화합케 한다 함은 무슨 말인가.
옳음과 그름이 있고, 그런 것과 그렇지 못한 것이 있다.
만약 옳음이 진실로 옳은 것이라면,
옳으니 그르니 말할 필요조차 없다.
만약 그런 것이 진실로 그런 것이라면,
옳은 것과 그른 것을 따지고 말할 필요도 없다.
나이를 잊고 시비를 잊고 무한한 경지에서 노니는
거칠 것이 없는 세상에 맡겨야 한다.
[출처] 장자 제물론(齊物論) 25 - 변하는 것은 무의미하다작성자 사봉 조진형
♣ 장자(내편) 제물론 22 - 누가 옳고 누가 그른가
나와 그대가 논쟁을 했다고 하자. 그대가 나를 이기고 나는 그대를 이기지 못했다면, 과연 그대가 옳고 나는 그른 것일까? 내가 그대를 이기고 그대는 나를 이기지 못했다면, 과연 내가 옳고 그대는 그른 것일까? 그 어느 쪽은 옳고 어느 쪽은 그른 것일까? 우리 모두가 옳거나 우리 모두가 그른 것일까? 나나 그대나 모두가 알 수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도 본시부터 멍청해질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렇다면 누구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해야 할 것인가?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그대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올바로 판정을 해줄 수 있겠는가? 나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와 의견이 같은데 어떻게 올바로 판정을 해줄 수가 있겠는가? 나나 그대와 의견이 다른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한다면, 이미 나나 그대와는 의견이 다른데 어찌 올바로 판단을 해줄 수 있겠는가? 나나 그대와 의견이 같은 사람에게 올바로 판정을 해달라고 부탁을 한다면, 이미 나나 그대와 의견이 같은데 어찌 올바로 판정을 해줄 수 있겠는가?
그러니 나나 그대나 다른 사람들이나 모두 알 수가 없는 것이다. 그런데도 이런 논리를 믿겠는가?
♣ 장자(내편) 제물론 23 - 변하는 이론은 무의미한 것이다
변하는 이론을 믿는 것은 믿는 것이 없는 것과 같다. 자연의 분수로서 모든 것을 조화시키고 무궁함으로써 모든 것의 바탕을 삼는 것이 주어진 삶을 제대로 사는 방법이 되는 것이다.
무엇을 자연의 분수로써 모든 것을 조화시킨다고 하는 것인가?
그것은 옳은 것과 옳지 않은 것, 그런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은 상대적인 것이라는 것이다. 옳은 것이 만약 정말 옳은 것이라면, 옳은 것이 옳지 않은 것과 다르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것이 만약 진실로 그런 것이라면, 그런 것이 그렇지 않은 것과 다르다는 것은 말할 것도 없게 되는 것이다.
나이도 잊고 의리도 잊고 무한으로 발전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한한 경지에 마음을 두어야 한다.
[출처] 미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