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지 : 백두대간 38차(육십령~중고개재)
산 행 일 : 2015. 08. 22.(토)
산행코스 : 육십령 ~ 구시봉/깃대봉 ~ 민령 ~ 덕운봉 ~ 영취산 ~ 백운산 ~ 중고개재 + 삼거리
(거리 16.4km + 0.8km)
산행참가 : 17명.
<산행코스>
지난 산행 때 할미봉 직전에서 경남덕유교육원 방향으로 탈출하였기에, 버스를 타고 넘었던 육십령휴게소에 도착한 버스 안에서 거의 한시간 넘게 쪽잠을 청하다가, 사람들의 들락날락 하는 소리에 잠에서 께어 산행 준비를 한다.
04:57 육십령휴계소에 있는 '육십령루(六十嶺樓)' 낮에는 몇번 보았던 정각이지만, 안개 자욱한 밤에 보니 전혀 다른 느낌이다. <육십령(730m)>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을 잇는 고갯길이다. 26번 국도가 지나는 대간 상의 대표적인 고개들 중 하나였으나, 2001년 개통된 대진통영간고속도로 육십령터널이 깃대봉 아래로 뚫리며, 이제는 옛길 아닌 옛길이 되었다. 육십령이란 이름은 옛날 이곳에 도둑들이 많아 고개 아래 주막에 60명 이상 모여야 산을 넘을 수 있다고 해서 육십령이라 했다고 하며, 또 다른 설은 이곳에서 안의 감영까지의 거리가 육십리고, 장수감영까지의 거리도 육십리라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는 설도 있다. 또 안의에서 이 고개까지 오르려면 육십고개를 돌고 돌아오게 된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산적을 피해 내려와 이룬 마을이라 해서 피적래(避賊來)란 마을이 지금도 서상면에 있고, 도로를 넓히면서 사라진 '도둑놈굼티'라 불리는 꾀나 험한 낭떠러지도 있었던 것으로 보아 산적과 관련된 유래가 맞을 듯하다.
백두산우회 회원들이 너른 육십령휴게소 마당을 독차지하고 산행 준비로 몸을 풀고 있다.
새로 만들어진 육십령 생태통로 옆에는 육십령(六十嶺, 734m) 표지석이 세월을 비켜가며 아직도 육십령을 지키고 있다. 표지석 앞에서 인증을 남기려다가 안개로 인해 사진이 여의치 않을 듯하여 서둘러 산행을 시작한다.
육십령은 경남과 전북의 도계(道堺)이지만, 옛날에는 신라와 백제의 국경으로서 군사적 요충지였다. 지금의 육십령 마을은 1930년경 경남과 전북을 잇는 국도가 개통되면서 생겨난 마을이며, 그 이전에는 북쪽으로 두루봉 뒤 군장동(軍藏洞)이란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군장동은 북으로 할미봉, 남으로 두루봉 골짜기에 자리하여, 옛날 군사무기를 저장하였던 곳이라고 한다. 남쪽의 두루봉에는 지금도 성터가 남아 있으며, 적에게 위장하기 위하여 섬꺼치(거적데기)를 엮어서 산봉우리를 둘러 덮어 적에게 군량미 노적가리로 보이게 속였다고 한다.
05:00 육십령 휴게소에서 능선 위로 이어진 나무데크 계단을 오르며, 대간남진 산행을 시작한다.
05:02 육십령휴게소에서 나무계단을 따라 100m 정도 올라서니 이정표를 만난다.
예전에 육십령을 통과하려면 도로로 내려섰다가 다시 능선으로 올라서야 했지만, 지금은 백두대간이 생태통로로 연결되어 이런 이정표가 설치되었는데, 우리는 우측 무룡고개 방향의 백두대간 남진길로 향한다. 무룡고개는 영취산 우측 금남호남정맥에 있는 고개로 당일 대간산행을 하는 분들은 영취산에서 무룡고개로 하산하는 경우가 많다. 05:45 밤안개까지 자욱한 대간길을 조금은 느긋한 기분으로 걷는 사이에,
어느새 주위가 밝아지며 서늘한 새벽공기와 함께 야생화들이 백두들을 반기고 있다. '여기서부터 맨발 체험 등산로' 표지판이 세워져 있는데, 아마도 좌측 골짜기에 자리한 '산삼 자연휴양관'에서 설치해 놓은 듯하다. 이곳부터 본격적인 구시봉(깃대봉) 오름길이 시작되는지, 조금씩 경사가 급해지기 시작한다.
05:57 구시봉(깃대봉) 샘터를 지난다.
구시봉(깃대봉) 샘터의 물맛은 아무런 맛이 없다. 물맛은 맹물맛이 좋다고 했으니 좋은 샘물이 맞다!
백두대간을 종주하면서 등로에서 만나는 샘터는 그리 흔치 않다. 지리산을 제외하면 미시령 구간 상봉 아래의 샘터와, 능경봉 아래에 인풍비 단망비 샘터, 백봉령 남쪽 갈미봉의 샘터, 포암산의 하늘샘, 조령산 제3관문 약수터와, 조령산의 조령샘, 대덕산 오르기 전 북사면에서 만났던 얼음골 약수터, 앞으로 가야 할 지리산 아래 남원 운봉읍 노치리에 있는 노치샘, 그리고 이곳 구시봉(깃대봉)의 약수터 등이 있다.
06:01 구시봉 샘터에서 잠시 휴식을 가진 후, 깃대봉 정상이 가까우니 정상에서 쉬자며 서둘러 샘터를 뒤로한다.
06:04 구시봉(깃대봉) 좌측 어깨 너머로, 오늘 가야 할 백운산쯤인 듯한 봉우리가 살짝 모습을 드러낸다. 우측 운해 너머로는 황석산 거망산 능선도 조망된다.
구시봉(깃대봉) 주능선에 올라서자 억새밭 사이로 대간길이 이어져 있다.
억새 풀잎에 맺힌 이슬이 온몸을 서늘히 적셔주는 새벽 대간길은, 우리에게 이런 삶도 있음을 다시금 일깨운다. 06:07 풀밭 곳곳에 피어난 갖가지 야생화들을 감상하는 여유도 오롯이 백두들의 몫이다.
남덕유산에서 시작되는 '진양기맥' 능선이 장관이다.
돌아본 서봉(장수덕유산)과 남덕유산 방향.
06:10 서쪽 장수군 장계면 방향. 장수군은 '무진장'이란 말에 이름을 올릴 정도로 산간 오지다. 하지만 장수군의 장계면은 산수가 잘 어우러진 너른 분지로 된 곡창지대여서 살기좋은 고장으로도 알려져 있다.
육십령에서 쉼 없이 달려온 백두들의 얼굴에 온통 화색이 돋아나는 이유는?
06:12 구시봉(깃대봉) 도착. <구시봉(1,014.8m)> 경남 함양군 서상면과 전북 장수군 장계면의 경계에 있는 봉우리로 옛 이름은 깃대봉이었는데, 2006년도에 지명을 구시봉으로 바꾸었다고 한다. 옛날 임금이 신하나 백성들 중에 나라를 위해 공을 세운 사람들에게 땅을 하사했는데 이를 사패지(賜牌地)라 했고, 이 땅에는 누구의 사패지라고 하는 깃대를 꽂아 놓은 데서 깃대봉이라는 이름이 유래되었다고 한다. 깃대봉은 덕유산 남쪽을 조망할 수 있는 최고의 명소로 알려져 있으며, 특히 가을 억새가 장관인 곳이다. 이곳은 삼국시대 신라와 백제의 국경지역으로, 두 나라 영토에 주둔하던 병사들이 번갈아 기를 꽂았던 전략적 요충지이기도 하며, 깃대봉 동쪽 물은 추상천을 지나 낙동강으로, 서쪽 물은 장계천을 따라 금강으로 향한다. 지금도 일부 지도에는 깃대봉으로 표기가 되어 있다. 구시봉 정상석 뒷면에 새겨져 있는 유레에 따르면, '삼국시대 때 신라와 백제의 국경 지대로 그 아래 주둔하던 군사들이 기를 꽂은 곳이라 하여 깃대봉이라 불렀으나, 옛날 한 장수가 이 산에 올라보니 산 형태가 구시형이라 「구시봉」으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라고 적혀 있다. 구시형이란 말은 구시(1)‘구덩이’의 경상도 사투리, 구시(2) 소나 말 따위의 가축들에게 먹이를 담아 주는 그릇. 흔히 큰 나무토막이나 큰 돌을 길쭉하게 파내어 만든다.” 고 사전에 나와 있는데, 구시봉이란 여기서 구시(2)를 두고 한 말이다.
가야 할 백운산 방향. 좌측의 대봉산(괘관산)과 백운산 사이로 멀리 보이는 능선이 지리산이다. 서봉~남덕유산~남령~수리덤~월봉산 능선.
서쪽 장계면 방향 운해를 뚫고 백화산이 섬처럼 솟아나 있다.
당겨본 남덕유산 방향으로, 오늘 출발했던 육십령을 구름 물줄기가 넘고 있다.
06:17 구시봉 정상 인증을 남기고 영취산을 향한다.
06:18 좌측 아래로 통영 바다를 향해 달리는 고속도로가 내려다 보인다.
06:23 억새풀 너머로 백운산(좌)와 장안산(우) 사이의 영취산을 향해 내달리는 대간 능선이 장관이다. 좌측 서상면 금당리 방향 조망.
포연이 자욱한 가야 할 대간길!
06:28 조그만 키의 조릿대밭 사이로 대간길은 이어지고,
06:31 황석산 거망산 능선(좌)과 가야 할 대간능선(우) 파노라마.
조금 당겨본 백두대간 능선.
오늘 저녁 창원에서 가족모임이 있음에도 참석하신 권법사님.
06:43 민령의 멋진 소나무 아래에 도착하여,
<민령(岷嶺)> 경남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와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를 잇는 고개로, 민령은 바로 논개의 생가와 무덤을 오가는 대간의 고갯길이다. 밋밋한 고개’라는 우리 이름인데, 소리에 따라 ‘岷’이라는 한자를 음차하여 부른 이름이다. 논개의 출생지는 고개 너머 장계면 대곡리 주촌마을이지만, 묘지는 서상면 금당리에 있다. 지금에 와서는 사람들의 왕래가 거의 없는 상태여서 쇠퇴한 고개가 되어 길의 흔적조차 희미한데, 이정목에 조그마한 글씨로 민령이라 붙여 놓아서 이곳이 민령임을 알아첼 정도다. 민령 소나무 아래에서 조금 이른 아침식사를 시작한다.
백두들의 식성도 많이 바뀌었다. 모이면 자녀들의 식성변화를 걱정하면서, 정작 본인들의 도시락은 이미 서구화의 전형을 보여준다. 이제 아무거나 먹어도 된다는 뜻인지!
07:14 편안한 아침식사를 마치고 따뜻한 커피도 한잔한 후~~, 민령 이정표를 뒤로한다. 07:16 돌아본 구시봉 방향.
07:20 갑자기 밝아진 햇살에 더욱 신이 난 억새들의 갈채를 받으며,
원조 사과?
그럼 너의 이름은 '유감'
07:34 호젓한 대간길을 구름에 달 가듯이 가는 백두들!
07:42 북바위 갈림길. 대간길은 좌측 능선으로 이어지고, 북바위는 우측 능선에 있다.
선두들은 벌써 북바위를 둘러보고 돌아나오고 있다.
북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는 백두들.
<북바위> 지금이야 전북과 경남의 경계이지만, 삼국시대에는 이곳이 백제와 신라의 영토분쟁이 치열했던 곳이었다. 신라와 백제가 전쟁을 할 때 자기들이 이기면 이곳에서 북을 쳤다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북바위에서 돌아본 남덕유산 방향으로, 육십령에서 걸어온 대간 능선이 오롯이 조망된다.
서쪽 백화산 방향. 저 아래 골짜기 어디쯤에서 논개가 태어났었을 텐데..!
다들 북바위에 올라서 독사진을 남긴다.
북바위에서 조망을 즐기는 백두들.
백두들이 보고 있는 서쪽 방향 파노라마.
남서쪽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 방향.
논개 생가지가 있는 전북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와 백화산 방향. 지난 구간에 지났던 남덕유산과 오늘 새벽부터 걸어온 대간능선이 조망된다.
백두들이 떠난 북바위 모습.
07:48 뒤늦게 도착한 손점장이 캔맥주를 2개 꺼내어 나눠 마신다.
백두들이 떠나버려 자랑도 못하고..!!
07:51 북바위 갈림길로 돌아나와 덕운봉 방향으로 대간길을 이어간다.
08:05 지도상 961봉쯤에는 시원한 그늘을 제공하는 나무와 공터가 있다.
08:10 바위들이 듬성듬성 자리한 977봉쯤에 도착한다.
가야 할 백운산과 영취산 방향으로 이어진 대간능선이 한눈에 들어오고,
백운산 우측으로는 대봉산(1,245m)쯤이 보인다.
남동쪽 함양군 서하면 방향,
08:12 977봉을 뒤로하는데, 한뿌리에서 나온 두 개의 가지가 사이좋게 자라는 나무의 모습이 이채롭다.
유유자적 세월을 낚는 손점장과 함께 대간길을 이어간다.
08:14 육십령과 영취산의 중간지점을 알리는 이정표가 안부에 세워져 있다.
08:17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앞서가던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다.
쉬아야 한다는 의사의 권고에도 산행에 함께하신 회장님.
작은 열매를 달고 있는 나뭇가지에는 표지기들도 주렁주렁 걸려있다.
쉼을 하는 백두들. 그런데 앉은자리가 좀 이상하다!
불개미집 위에 앉았다가 혼이 난 웅빈형이 깜짝 놀라 자리에서 일어난다.
08:23 봉우리에서의 여유로운 쉼을 뒤로하고는 영취산을 향한다.
08:28 대간길은 사람키를 훌쩍 넘는 산죽 사이로 이어지더니,
08:41 육십령이 훌쩍 멀어졌다는 이정목을 지난다.
이정목 옆에는 한여름에도 한기가 돌듯한 쉼터가 있다.
08:45 978봉 오름길에 돌아본 대간능선 방향 좌측 멀리로 남덕유산도 보인다.
08:47 동쪽 거망산과 황석산 방향.
08:48 978봉 정상에 도착하니, '전망대 바위'라는 표지기가 걸려 있다.
가야 할 영취산 방향.
서쪽 장수군 방향.
서북쪽 백화산 방향.
논개 생가지인 주촌과 오동저수지 그리고 장계면 일대가 내려다 보이고,
북쪽으로는 멀리 남덕유산 방향으로 대간이 웅장하게 뻗어 있다.
거창군 서상면 방지마을 뒤쪽 멀리로 거망산과 황석산이 가늠된다.
동남쪽 대봉산(1,245m) 방향.
주~욱 둘러본 중에 북쪽의 남덕유산 방향 조망이 압권이고,
장수군의 백화산 방향 조망도 운해에 둘러진 모습이 신비롭게 다가온다.
08:53 후미들도 우회길을 두고 978봉으로 도착하고 있다.
무거운 책임감이라는 짐을 지고 978봉에 도착하는 회장님과 총무님.
정상에서 쉼을 하며 손점장의 재밌는 썰(說)이 이어지고,
산행 때문이 아닌, 썰(說) 때문에 발생한 갈증을 적시기도 한다.
주변 풍광을 담고 있는 용현兄.
지금 뭘 보고 계시는지..?
09:04 아쉬움 없는 쉼을 했던 978봉을 뒤로하고, 영취산을 향하는 정여사님!
978봉 암릉을 내려서자, 우회길과 만나 함께 대간길을 이어간다.
09:09 편안한 능선길이 이어지다가, 더 편안해 보이는 쉼터도 지나고,
09:16 경사가 가팔라지며 돌계단길을 올라서면, 동쪽 서상면 방향의 지능선에 있는 덕운봉 방향 갈림 봉우리에 오르게 된다.
좌측으로 서상면과 황석산 방향이 조망되고,
좌측 지능선의 덕운봉(956m)도 지척으로 보인다,
<덕운봉(956m)> 덕운봉 사면에는 물 맑기로 유명한 함양군의 보물인 부전계곡이 있는데, 함양군에서는 이 계곡만은 개발하지 않고 자연 그대로 보존하기 위해 진입로 포장도 하지 않는다고 알려져 있다.
돌아본 남덕유산 방향의 지나온 대간능선.
가야 할 영취산과 영취산에서 분기되는 금남호남정맥의 첫 봉우리인 장안산도 조망된다.
09:23 덕운봉 갈림길 봉우리(988m) 이정표에서 홀로 인증을 남기는 정여사님.
가야 할 백운산(우측)과 대봉산(좌중앙) 방향 조망.
덕운봉 갈림길 봉우리에서의 쉼을 뒤로하고 영취산을 향한다.
09:35 논개 생가 갈림길을 지난다. 이곳에서 우측으로 내려서면 장수군 장계면 대곡리 주촌 마을로 논개 생가지이다. <주논개> 충절의 여신 주논개는 1574년 영취산 북쪽의 대곡리 주촌마을에서 태어났으며, 왜장을 껴안은 채로 죽은 논개의 묘는 백두대간 육십령 동남쪽으로 십리쯤 떨어진 함양군 서상면 금당리 방지마을 뒷산에 있다. 대간에서 나고 대간에 묻힌 것이다. 논개에 대해 알려진 것은, 경상우도 병마절도사인 최경회(崔慶會)의 후처로, 임진왜란 때 최경회가 전사하자 촉석루에서 벌어지고 있는 왜군의 잔치에 참석하여 일본 장수인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 끌어안고 남강에 투신한 정도까지 이다. 성은 주씨(朱氏)이고, 본관은 신안(新安:중국)이며, 전북 장수(長水)에서 태어났다. 원래 양반가의 딸이었으나, 아버지가 사망하고 집안에 어려움이 겹쳐 가산을 탕진하자, 경상우도 병마절도사 최경회(崔慶會)의 후처가 되었다고 전한다. 그 밖의 자세한 성장과정은 알 수가 없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5월 4일에 이미 서울을 빼앗기고 진주성만이 남았을 때, 왜병을 맞아 싸우던 수많은 군관민이 전사 또는 자결하고, 마침내 성이 함락되어 최경회는 일본군에 의해 전사한다(제2차 진주성 싸움). 일본군 왜장들은 승리를 자축하기 위해 촉석루(矗石樓)에서 주연을 벌이는데, 논개는 최경회의 원수를 갚기 위해 기생으로 위장하여 참석하게 된다. 이 자리에 있던 그녀는 계획대로 열손가락 마디마디에 반지를 끼고, 술에 취한 왜장 게야무라 로구스케(毛谷村六助)를 꾀어 벽류(碧流) 속에 있는 바위에 올라 껴안고 남강(南江)에 떨어져 적장과 함께 죽었다. 훗날 이 바위를 의암(義岩)이라 불렀으며, 사당(祠堂)을 세워 나라에서 제사를 지냈다. 1846년(헌종 12) 당시의 현감 정주석(鄭胄錫)이, 장수군 장수면(長水面) 장수리가 논개가 자라난 고장임을 기념하기 위하여 논개생향비(論介生鄕碑)를 건립하였다. 그가 비문을 짓고 그의 아들이 글씨를 썼다. 1956년 '논개사당(論介祠堂)'을 건립할 때, 땅 속에 파묻혀 있던 것을 현 위치에 옮겨 놓았다. 비문에는 "矗石義妓論介生長鄕竪名碑(촉석의기논개생장향수명비)"라고 쓰여 있다.
논개 생가 갈림길에서 잠시 논개에 대한 이야기를 나눈 뒤,
09:48 영취산을 향한 대간길을 이어간다.
09:49 영취산 가는 길에 한 무리의 산악회와 교행 하는데, 다들 차림새가 깔끔하고 표정들이 밝은 게 여간 부럽지가 않다.
09:54 자그마한 봉우리 우회길에서 쓸데없이 좌측 봉우리 오름길로 들어서는데,
다른 분들은 모두 우회길로 서둘러 영취산을 보러 간다.
09:55 봉우리 정상에 올랐지만 기대했던 조망도 없고 내림길도 뚜렷하지 않다. 후회!
그래도 가야 할 영취산이 나뭇가지 사이로 살짝 보인다.
09:56 다시 갈림길로 돌아나와 영취산을 향한다.
10:00 영취산 오름길은 무성한 조릿대밭 사이로 이어지더니,
10:12 시원한 나무 그늘 쉼터를 지난다.
10:16 영취산 정상으로 통하는 돌계단을 오르면,
10:17 영취산 정상에 도착하게 된다.
<영취산(靈鷲山, 1,075.6m)> 전북 장수군 계남면과 경남 함양군 서상면의 경계에 있는 산이다. 영취산(靈鷲山)은 원래 고대 인도 '마가다'국(國)의 수도 라자그리하 근처에 있는 산으로, 부처님께서 보리수나무 아래서 깨달음 얻은 뒤 설법을 하시던 곳이 영취산(영축산이라고도 함)이다. 양산 통도사 뒷산이 인도의 영취산과 마주보고 있다고 해서 영취산이라고 하며, 통도사 대웅전(금강계단)에는 부처님의 진신사리가 모셔져 있어 불상이 없다. 영취산 하면 철쭉으로 유명한 여수의 영취산이나 양산 통도사를 외호하고 있는 영취산을 떠올리며, 대간 상의 영취산은 산꾼들 사이에 그다지 회자되지 않는다. 그러나 오늘 오른 영취산 또한 예사롭게 여길 수 없다. 특히 백두대간의 기능이나 역할을 논할 때 매우 중요한 의미를 가진다. 백두대간은 산자수분수령(山自分水領)의 원칙에 따라 이어진다. 그리고 대간은 정맥과 함께 10대강을 나눈다. 10대 강 가운데 3개의 강 유역을 나누는 곳은, 한남금북정맥이 갈라지는 속리산 천왕봉과 금남호남정맥을 낳는 이곳 영취산 단 두 곳뿐이다. 속리산 비로봉은 낙동강, 금강, 그리고 한강(남한강)의 유역을 가르며, 영취산은 낙동강, 섬진강, 금강의 유역을 나눈다. 그래서 이 두 곳을 삼파수(三派水)라고 부르기도 한다. 영취산 정상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본디 이곳 영취산에서 일부는 서쪽 금남호남정맥 방향의 무룡고개로 탈출을 예정했었다.
서쪽 무룡고개 방향으로 정자가 보인다.
육십령에서 출발한 오늘 산행이 그리 어렵지 않았고 아직은 이른 시간이라, 이곳에서 탈출을 하지 않고 백운산을 향하기로 한다.
백운산으로 대간을 이어가기로 결정을 하고,
영취산 정상 인증을 남긴다.
10:26 탈출을 않고 백운산으로 방향을 잡자, 다소간 근심어린 표정으로 영취산을 뒤로한다.
10:33 무령고개 방향 영취산 우회 갈림길이 있는 선바위고개를 지난다.
선바위는 이곳에서 우측 100m 지점에 있는 바위인데, 그 바위 이름을 따와서 붙인 고개 지명이라고 한다. <무룡고개/무령고개(930m)> 대부분의 지도에 '무령고개'로 표기되어 있는 무룡고개는 전북 장수군 번암면과 장계면 경계에 위치해 있다. 해발 930m의 높이로서 장안산(1075.6m)과 영취산(1236.7m)이 만나는 안부의 고개다. 백두대간의 영취산에서 갈라져 나온 산줄기는 '금남호남정맥'이란 이름으로 이 고개를 거쳐서 장안산으로 이어간다. 무룡(舞龍)은 '용이 춤을 춘다'는 뜻으로, 무룡궁(舞龍宮)이라 부르는 큰 명당에서 연유한 것으로 본다. 산세가 마치 용이 꿈틀꿈틀 살아서 무룡고개에서 장안산으로 올라가는 형상이라 한다. 또한 선인들은 호남인의 재질과 예기가 이상의 무룡궁의 산경에서 부터 보았다는 것이다. 무룡궁의 산세가 힘차게 치솟아 장안산에 좌정한다. 그러므로 장안산은 호남과 호서의 조산이며 진산이다. 무룡궁에서 발원한 물줄기는 서북으로 금강의 최상류지대이며, 서남은 섬진강의 최상류이고, 동남은 낙동강의 상류지대가 된다. 장안산과 영취산을 이어주는 무룡고개는 풍수지리학상으로 입수(入首)라 표현하는데, 이는 머리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다. 이곳 무룡고개에는 연산군 때 역적으로 몰린 유자광이 참수된 후에 금부에서 그의 뒤를 추적한 결과 조상의 묘가 이곳에 있었다고 한다. 조상의 묘소 덕분으로 왕후장상이 끊이지 않았다며 나졸을 보내 묘소를 파헤쳤다는 설이 있다. 장수군은 '무진장'이라 불리는 전북 3대 오지 중 한 곳이다. 게다가 무룡고개는 장수에서도 오지 취급을 받았으므로 그야말로 오지 중 오지인 것이다. 그러니 이곳을 찾기가 얼마나 어렵고 외졌던 곳인가를 이정도의 설명만으로도 충분히 실감하고도 남을 것이다.
무룡고개 갈림길이 있는 선바위고개를 지나는 백두들.
10:41 벤치가 있는 1066봉에 도착한다.
<1066봉> 정상에는 넓은 공터가 있고 간이의자 2개가 설치되어 있으며, 주위에는 싸리나무가 군락을 이룬다. 좌측으로 함양군 서상면 부전계곡으로 내려가는 길이 있다. 1066봉 정상에 도착하는 백두들. 마타리?
10:54 1066봉을 뒤로하고 잠시 내려서니, '전망 좋은 곳'이란 안내판이 있다.
대간길은 좌측 아래로 이어지고 전망바위는 우측의 직진 능선에 있다.
10:55 소나무가 있는 전망바위에 오르니, 가야 할 백운산 방향의 조망이 시원스레 펼쳐진다.
전망바위 소나무 아래에서 쉼을 하는 백두들.
11:03 전망바위를 뒤로하고 내려서니, 전망바위 우회길과 다시 만난다.
11:08 작은 봉우리에 오르니,
백운산과 영취산의 중간지점이라는 이정표가 있다.(거리 표시 참조)
11:22 멀리서 보기에는 그저 평범한 능선처럼 보였는데, 우거진 숲속에 작은 암릉과 봉우리를 숨겨 놓았다.
암봉에 올라서 돌아본 육십령 방향의 지나온 대간능선. 대간에서 동쪽으로 뻗은 지능선의 덕운봉과 제산봉도 조망된다.
거망산과 황석산은 옅은 구름에 가려 희미하게 가늠된다.
영취산 방향의 지나온 대간능선 조망.
서북쪽 금남호남정맥의 장안산 방향 조망.
11:24 암봉 옆 쉼터에는 백두들이 쉼을 하고 있다.
가야 할 백운산 방향 조망.
서상면과 황석산 방향.
구름에 가려있는 남덕유산 방향.
11:28 대간 산행을 하면서 웬만해선 보기 드문 장면이다.
좋은 자리가 있으면 이렇게 쉬면서 세상이야기도 나눠가며 산행을 했으면 좋겠다.
11:33 백운산으로 향하는 대간길은 산죽 사이로 이어져 있고,
우전방 아래로는 장수군 번암면 지지계곡이 내려다 보인다. 오늘 산행의 종착지가 저 아래 어디쯤이다!
11:44 백운산 오름길에 돌아본 영취산 방향.
11:47 앞쪽 백운산 오름길에 생태복원 중이므로 돌아서 가라는 표지판이 있다.
11:55 오늘 산행의 최고봉이 백운산 정상에 도착한다.
<백운산(白雲山, 1278.6m)> 백운산은 전북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와 경남 함양군 서상면, 백전면의 경계에 있다. 백운산의 이름은 '흰 백(白)', '구름 운(雲)'을 써서 산이 높아서 산봉우리에 항상 흰 구름을 감싸 안고 있는 산이라는 뜻이다. 백운산의 물줄기는 서쪽은 백운천을 통하여 섬진강으로 흘러들고, 동쪽은 옥산천을 통하여 낙동강으로 흘러든다.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보면 서쪽으로는 장안산과 괘관산, 북쪽에는 깃대봉(구시봉)과 남덕유산, 남쪽으로는 월경산과 봉화산 등이 조망되는 곳이다. 백운산은 만산홍엽의 가을 단풍과 금상첨화로 산허리마다 흐드러진 갈대와 싸리나무, 그리고 산죽이 한데 어우러져 비경의 극치를 이루는 산으로 유명하다.
동쪽 대봉산 방향 조망.
백운산 정상에서 바라본 중봉과 끝봉의 모습. 바로 앞이 중봉과 끝봉이고, 그 너머로 거창의 괘관산과 또다시 그 너머 지리산이건만, 오늘을 박무로 지리산 주능의 모습은 담기지 않는다.
백운산 정상 인증을 남기는 백두들의 모습에 비장감이 묻어 있다.
11:59 최근에 설치한 백운산 정상석 앞에서 다시한번 인증을 하고는, 백운산을 뒤로하고 중고개재를 향하다가,
12:13 백운산 정상 아래 그늘에서 한참을 더 쉰 다음에,
12:15 백운산을 뒤로하니, 좌측으로 중봉과 끝봉으로 이이지는 갈림길을 지나게 되고,
좌측으로 묵계암 방향 하산길 표시가 있는 갈림길을 지난다.
12:17 중재로 이어지는 능선 내림길을 따라 내려서면,
12:19 철계단도 내려서게 되고,
12:25 가파른 내림길을 내려오다가 전망이 트인 바위에서 돌아보면, 지나온 백운산이 평퍼짐해 보인다.
12:33 중재까지 1.7km 남았다는 이정표를 지나면,
12:36 앞쪽으로 전망이 트인 전망바위가 나온다.
전망바위에서 본 중재 방향.
서북쪽으로는 장안산이 듬직이 서서 지켜보고 있다.
12:51 글씨가 지워진 이정표를 지나서 다시 가파르게 고도를 낮추면,
13:05 중고개재에 도착하는데, 이곳에서 중재까지는 1.7km 정도 되지만,
무더운 날씨에 많이들 지쳐있어서 우측 지지계곡 방향으로 하산키로 한다. <중고개재(755m)> 동쪽은 함양군 백전면 백운리 중기마을로 이어지고, 서쪽은 장수군 번암면 지지리로 이어지는 고개로, 다음 구간 가야 할 중재와 이름이 비슷해서 산행하는 사람들이나 지방 주민들도 자주 혼돈하는 곳이다. 고개 동쪽 백운산 자락은 신라시대 영은조사(靈隱祖師)가 창건한 영은사지를 비롯해 많은 암자가 있는데, 특히 선농일치(禪農一致)에 의한 선농불교를 제창한 용성스님이, 평소 선사의 지론인 선농일치를 몸소 실천하기 위해 스스로 호미를 들고 세운 농장인 화과원(華果院)이 이곳에 있으며, 화과원 동쪽 백운산을 넘는 고개를 절고개라 하였는데, 이 절고개가 중(스님)들이 많이 넘나드는 고개라 하여 중(衆)고개라 불렀다고 한다.
13:06 중고개재에서 우측 지지계곡 방향으로 하산을 시작하는 백두들.
13:10 희미한 등로는 작은 지계곡을 따라 이어지다가,
13:24 이내 지지계곡 날머리에 도착한다.
<지지계곡(知止溪谷)> 이 계곡은 번암면 지지리와 장계면 대곡리 상단이 서로 면계를 이루며, 영취산에서 한 맥은 경남 함양군 백전면을 거쳐 지리산으로 가고, 정맥은 장안산으로 이어진 협곡에서 시작하여, 지지리, 동화리, 남원, 구례, 곡성을 지나 삼백리 하동포구에 이르는 섬진강의 최상류다. 장안산과 백운산 사이에 위치한 10km의 계곡으로 울창한 수림과 청류수가 조화를 이뤄 사시사철 아름답지만 특히 만추의 계곡은 온통 붉어져 탄성이 저절로 나오는 곳이다. 울창한 수림을 이루고 있는 나무 중의 하나인 고로쇠나무에서 2~3월에는 고로쇠물을 채취해 농가의 소득을 높이고 있으며, 두릅, 더덕, 도라지, 취나물, 고사리, 표고버섯, 한봉 등이 채취되고 있다고 한다. 지지계곡을 건너는데, 계곡에는 피서 온 사람들이 맑은 물가에 그득하다.
13:28 오늘의 산행 종점인 삼거리에 도착한다.
이곳 지명인 '삼거리'는 세 갈래 길을 말하는 게 아니라, 전북 무주군 무풍면 삼거리의 지명을 말한다.
삼거리 마을 아래에 애마가 기다리고 있다.
14:18 지지계곡 인적이 뜸한 곳에서 간단히 땀을 닦고,
무룡고개를 넘어 장수군 장계면 논개 생가가 있는 주촌마을의 민들레식당으로 이동하여,
여름철 보양을 위해 토종닭백숙으로 뒤풀이를 한다.
백숙도 괜찮았지만 나중에 나온 '참치머리구이'가 맛났다.
15:55 식당 안주인의 배웅을 받으며 서울로 귀경한다.
산행기를 쓰면서 내 지식의 부끄러운 단면을 본다. 어릴 적 듣고 읽은 바에 따르면, 논개는 진주 관아의 관기로만 알고 있었는데 실상은 현령의 어엿한 후실 부인이었고, 왜장과 함께 순절한 것도 단순한 복수가 아닌 우국충정에서 나온 것임을 알았다.
물론 이것 또한 오류가 있을지 모르겠지만, 역사학자들이 검증하고 옭게 밝혀야 할 몫이지 않을까 싶다. 여하튼 여름철 힘든 능선산행이었음에도 불구하고, 준비된 탈출도 마다하고 끝까지 산행을 마쳤다. 무리한 산행은 지양해야겠지만, 최선을 다해 도전하는 삶이 좀 더 재밌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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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영취산은 예전 금남호남정맥할때 밤에 올라왔는데 낮에 제대로 감상했어요. 암튼 이구간은 기억에 백운산 근처에서 한무리의 시끄러운 산악회와 같이 갔던가?백숙집 젊은 처자 주인장 음식솜씨와 씀씀이가 남달랐던? 아직 영업하나요?
요즘 부쩍 몇년전 사진을 보면 그때는 그래도 젊어 보일때가 많네요..
대장님 노고에 지난추억 감상 잘 합니다~. 참 손지점장은 혼자만 캔맥주를^^
더도 말도 덜도 말고 딱 3년전 산행인데 별로 기억나는 게 없으니 . . . 제가 생각해도 한심하리 만치 정신이 흐려졌네요. 답답합니다 제 모습은 보이는데 기억나는건 없고 . . . 어쨋거나 오랫만에 옛 산행기 보며 잠시 즐거운 시간 보냈습니다. 감사합니다. 이대장님 수고 많으셨습니다. 요즘 김사장님 온라인상에 자주봐서 반갑슴다. ㅎ 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