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방의 모든 백성이 만든 신은 헛된 우상이지만,
주님은 하늘을 지으신 분이시다.
[시편 96:5]
'만들어진 신'은 '죽은 신'이며, 우상이다.
'우상'은 눈에 보이는 것이다.
오로지 인간만이 신을 만들고, 만들어진 신인 '우상'을 섬긴다.
하늘은 즐거워하고,
땅은 기뻐 외치며,
바다와 거기에 가득 찬 것들(11),
들과 거기에 있는 모든 것, 숲 속의 나무들(12)이 모두 즐거이 노래할 수 있는 이유는 무엇일까?
거기에 스스로 존재할 뿐 섬길 우상이 없기 때문이다.
'스스로 존재'하므로 자연은 '스스로 존재하는 신'을 닮았다.
그러나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창조된 인간은 존재하는 삶을 포기했다.
인간의 본질이었던 존재하는 삶을 포기하는 대신 소유하는 삶을 추구했다.
소유하는 삶을 추구하는 이들은 눈에 보이는 '물질(맘몬= 우상)'을 신으로 섬기게 되었다.
결국, 하나님의 이름으로 우상을 구하는 시대가 도래했다.
그리하여 신은 죽었고, 인간은 죽은 신인 우상을 하나님이라며 섬기는 것이다.
그리하여 오늘 날 '죽은 신을 섬기는 사람들'이 넘쳐난다.
물질주의,
존재보다 소유를 중시하는 사회에서 맘몬으로부터 자유로울 수 있는 사람은 극소수다.
보이지 않는 것에 대한 가치가 평가절하되고,
눈에 보이는 것으로 평가되는 세상에서 물질을 소유하는 행위는 당연한 것처럼 여겨진다.
물질을 얻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도덕적으로 혹은 윤리적으로 문제가 있는 것도 아니다.
땀 흘리고 수고한 만큼 거두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다.
그런데 정말 오늘날 이 시대는 땀 흘리고 수고한 만큼 공평하게 물질을 얻을 수 있는가?
노력한 만큼 대가가 주어지는 세상인가?
또한, 노력해서 얻은 물질이라도 자신의 삶을 보장해줄 수 있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현대인들은
이 물질이라는 우상을 숭배하고, 심지어는 목숨까지도 기꺼이 바칠 수 있지 않는가?
그리고 이런 우상숭배는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 조차도 눈에 보이는 우상으로 바꿔버렸다.
예를 들면, 명예나 신앙같은 것들이다.
이제 인간은 본능적으로 물질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는지에 따라 자신과 타인을 평가한다.
물질이라는 우상을 섬긴 결과다.
물질은 죽은 신이요, 우상이다.
그런데도 그 우상을 섬기는 이들이 교회마다 넘쳐나고, 교회는 그것을 하나님이라 한다.
아주 작은,
그루터기들만 남아 보이지 않는 하나님의 구원과 영광과 기적을(2,3) 알릴뿐이다.
하나님은 위대하시고 찬양받으실 분(4)이시다.
하지만,
헛된 우상(물질, 맘몬)에 사로잡힌 자들의 찬양으로 인해 하나님의 이름은 더렵혀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