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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 가득한 붉은 꽃’ 만강홍(滿江紅), 서정적인 정감을 독백으로 진술하다> 해암(海巖) 고영화(高永和)
‘강 가득한 붉은 꽃’ 만강홍(滿江紅)은 송(宋)나라에서 생긴 사곡(詞曲)의 한 체제인데, 상강홍(上江虹)ㆍ염양유(念良遊)ㆍ상춘곡(傷春曲) 등의 별칭이 있다. 그리고 사패 형식을 보면 전단(前段) 47747783 / 후단(後段) 3333547783로 구성된 총18구(句) 쌍조(雙調) 93자(字) 사(詞)이다. 또한 ‘심원춘(沁園春)’과 함께 가장 인기 있었던 사조(詞調)의 하나로, 89자, 91자, 92자, 94자, 97자 등의 여러 종류가 있으나, 위에서 예시한 18구(句) 93자(字)체가 가장 보편적으로 지어졌다.
○ 또한 우리나라 최고의 사(詞)의 대가(大家)인 고려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만강홍(滿江紅)은 쌍조 93자, 전단 8구 5측운, 후단 10구 6측운의 체에 따랐다. 다만 사운(詞韻) 통용에 있어 약간 무리한 점이 없지는 않았다. 또한 조선후기 문신⋅서예가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4~1887) 또한 익재(益齋)의 형식에 따랐다.
만강홍(滿江紅)의 내용을 살펴보면, 섬세한 미적 의식이나 서정적인 정감을 개인의 독백 형식으로 진술하였다. 그래서인지 늦가을 만산홍엽 (滿山紅葉)을 보고 노년의 쓸쓸함과 늙어가는 여인의 심리를 다루었다거나, 또는 중국의 다양한 고사(古事)를 바탕으로 자신의 심정을 읊거나,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삶을 돌아보며 사(詞)를 지었다. 또 귀양살이로 세월 보내 백발되더니 문득 빨리 해배되어 어부처럼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다거나, 만산홍엽 산하의 아름다운 조국의 뛰어난 승경을 칭송하기도 했다.
○ 한편 사(詞)는 중국 고전 문학 중의 운문의 일종으로서 5언시나 7언시, 민간 가요에서 발전한 것으로, 당대(唐代)에 처음 만들어진 뒤 송대(宋代)에 가장 흥한 문학 형식이다. 원래는 음악에 맞추어 노래를 부르던 일종의 시체(詩體)였으며, 구(句)의 길이가 가조(歌調)에 따라 바뀌기 때문에 장단구(長短句)라고도 부르고, 시여(詩餘)라고도 칭한다. 또 서령(小令)과 만사(慢詞)의 두 종류가 있으며, 보통 상하(上下) 양결(兩闋), 또는 전후단(前後段)으로 나누어진다. 측운은 오측운(五仄韻), 일첩운(一叠韻)이다.
한편으로 사(詞)는 당시(唐詩) 시부(詩賦)에 통용되던 운법과 같지 않아 통운(通韻)이나 전운(轉韻)이 대체로 자유롭다. 덧붙이면 사(詞)의 별칭인 장단구(長短句)는 매구(每句)의 자수가 전편에 걸쳐 일정한 것을 원칙으로 하는 제언체(齊言體)의 시(詩)와는 달리, 사(詞)는 형식상으로 구법(句法)의 장단이 일정하지 않은 점을 따서 장단구라고 부르기도 한다. 시여(詩餘) 전사(塡詞) 악부(樂府) 등의 별칭도 있다.
◉ 이번 <만강홍(滿江紅)> 사(詞)는 먼저 조선후기 문신⋅서예가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4~1887)를 필두로, 고려후기 문인이자 문신이었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 조선말기 문신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 조선중기 주자학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 조선전기 대표적인 관각 문인인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작품을 차례대로 소개하겠다.
● 다음 ‘屑’ 운의 사(詞) <만강홍(滿江紅) 부제 크게 탄식하다(題浩歎)>는 조선후기 문신⋅서예가 옥수(玉垂) 조면호(趙冕鎬 1804~1887)의 작품으로, 쌍조(雙調) 18구(句) 93자이다. 이 글 ‘만강홍(滿江紅) 부제 크게 탄식하다(題浩歎)’는 저자가 노년기에 지은 것으로 노년의 감회를 읊은 것이다. 젊은 날의 화려함과 청춘의 꿈이 노년의 쓸쓸함으로 읊었는데, 노년의 쓸쓸함이 늙어가는 여인의 심리를 통해 잘 표현되어 있다.
그 내용을 보면, 먼저 전단(前段)에서는 젊은 날의 화려했던 풍류를 추억하고 있다. 그 추억은 백발이 되어 쇠잔한 작자의 마음속에 여전히 맺혀있다. 그런데 후단(後段)에서는 마음에 맺힌 그것들을 말로 한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는 체념과 한탄이 이어진다. 원래 한(恨)이란 호걸들에게나 어울리는 법이니 청산숙초(靑山宿草) 같은 인물에게 있어, 그것은 9만리 하늘처럼 도달할 수 없고 따라서 말할 필요도 없다. 이러한 견지에서 저자는 노년의 자신을‘가지 끝에 잠시 매달린 한 떨기 꽃에 비유하고 있다.
1) 「만강홍(滿江紅)」 부제 크게 탄식하다(題浩歎) / 조면호(趙冕鎬 1804~1887)
二十年間 스무 해 연간을
回頭是 雲消雨歇 돌아보니 어느새, 구름 걷히고 비 그쳤네.
風流事 至今猶憶 그날의 풍류(風流), 이제 와 추억하니
不敎分別 따질 것 없어라.
白馬銀鞍遊冶處 백마에 은 안장, 질탕 노닐던 곳,
金箱玉笈神仙訣 금 상자, 옥 책상, 신선의 비결.
忽無端 鬢髮已成絲 무정한 세월에, 머리카락 어느새 백발 되어
同心結 마음 함께 맺혔네.
/且休矣 그만이로다!
何堪說 어찌 말로 하랴
終古恨 예로부터 한(恨)이란,
皆豪傑 호걸들의 몫.
向靑山宿草 청산(靑山)의 묵은 풀에
較誰優劣 누가 우열을 따지랴.
弱水三千猶可絶 3천리 약수(弱水)라도 끝이 있지만,
長天九萬無由徹 9만리 장천(長天)은 다함이 없어라.
算此身 暫有似枝頭 이 몸을 헤아려 보니, 가지 끝에 잠시
(殘)殘紅綴 매달린 시든 꽃인 걸.
[주1] 약수(弱水) : 신선이 살았다는 중국 서쪽의 전설적인 강(江). 길이가 3,000리나 되며, 부력(浮力)이 매우 약하여 기러기의 털도 가라앉는다고 함.
[주2] 장천(長天) : 높고 멀고 넓은 하늘.
● 다음의 사(詞) <만강홍(滿江紅)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사마교(駟馬橋)>는 고려후기 문인이자 문신이었던 익재(益齋) 이제현(李齊賢 1287~1367)의 작품으로, 쌍조(雙調) 18구(句) 93자이다. 이 글은 중국 전한시대의 유명한 부(賦) 작가 사마상여(司馬相如)의 파란만장한 고사(古事)를 바탕으로 지은 사(詞)이다.
탁문군(卓文君)의 아버지 탁왕손은 가난한 딸과 사마상여의 결혼을 반대했다. 그러나 뛰어난 재녀(才女)였던 탁문군과 사마상여는 사랑의 도피행각을 벌이었고 주막집을 운용하며 궁핍한 생활을 이어갔다. 세월이 지나 사마상여는 한무제(武帝)에게 사부(辭賦)를 지어 바쳐, 무제의 사랑을 받았고 또한 아내 몫의 막대한 가산 덕택으로 작품을 쓰는 동안에도 안락한 생활을 누릴 수 있었다. 그러나 부유한 남자들이 그러하듯, 그는 첩을 들이고 싶어했으나 탁문군이 보낸 글(백두음)을 읽고 감동해 첩을 들이는 일을 중지했다고 한다. 탁문군이 지은 백두음(白頭吟)은 마음이 돌아선 남편을 다시 되돌아서게 만든 아름다운 이야기가 되어 천고에 전해지게 되었다.
2) 만강홍(滿江紅)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사마교(駟馬橋) / 이제현(李齊賢 1287~1367)
漢代文章 한 대의 문장으론
誰獨步上林詞客 누가 독보하였나 하면상림부(上林賦) 지어낸 문사(文士)였다.
遊曾倦家徒四壁 외지에 나다니며 지치도록 배웠지만 집은 한갓 사방의 벽뿐이었고
氣呑七澤 기세는 칠택(七澤)을 삼켰었다.
華表留言朝禁闥 화표에 말을 남겨 궁금(宮禁)에 입조(入朝)하였고
使星動彩歸鄕國 사신으로 광채 드러내며 고향으로 돌아와
笑向來父老到如今 웃었다 지난날의 부로들이 지금에 와서야
知豪傑 호걸을 알아보았다는 것을.
/人世事 인간 세상의 일은
眞難測 참으로 예측하기 어렵다.
君亦爾 그대 역시 그러하였으니
將誰責 누구를 책하겠는가
顧金多祿厚 그런데 돈 많아지고 녹이 두둑해지자
頓忘疇昔 급작스레 예전 일을 잊어버렸다.
琴上早期心共赤 금곡(琴曲,거문고 곡조)으로 일찍이 마음 합하자 기약했었는데
鏡中忍使頭先白 거울 속에서 어찌 차마 머리를 먼저 희게 하였나
能不改只有蜀江邊 변하지 않을 것이라고는 단지 촉강(쓰촨성 성도의 강)가의
靑山色 청산의 빛뿐인 게라.
[주1] 사마상여(司馬相如)의 사마교(駟馬橋) : 사마상여는 한 무제(漢武帝) 때의 문사(文士)로 부(賦)를 잘 지었다 하여 그를 부성(賦聖)으로 부르기도 한다. 그는 중랑장(中郞將)이 되어 조정의 사신으로 파촉(巴蜀)에 파견되어 그곳의 혼란을 평정한 일이 있다. 그의 사신 행렬이 지나간 다리를 사마교라 명명하였던 것이다. 이에 앞서 사마상여 자신이 후에 반드시 사두마차를 타는 귀인이 되지 않고서는 이 다리를 지나가지 않겠다고 교각에다 썼다는 전설이 있다. 이 다리는 사천성 성도현(成都縣) 북쪽 유자하(油子河)의 분류(分流)에 걸려 있다.
[주2] 상림부(上林賦) : 사마상여는 먼저 자허부(子虛賦)를 지어 그 이름이 한 무제에 알려졌고, 그 후 다시 무제를 위해 상림부를 지어 바쳐 일약 천하에 이름을 떨치게 되었다.
[주3] 외지에 …… 벽뿐이었고 : 사마상여는 처음 낭관(郎官)으로 경제(景帝)를 섬겨 무기상시(武騎常侍)가 되었으나 그 일은 그가 좋아하는 바가 아니었고, 거기다 경제가 문사(文辭)를 사랑하지 않았으므로 문인을 거느리는 양 효왕(梁孝王)을 따라 양으로 갔다. 수년 후 자허부를 지었으나 양 효왕이 죽어 버려 고향 집으로 돌아갔는데 집안이 씻은 듯이 가난하여졌고 할 일이 없어졌다.
[주4] 칠택(七澤) : 사마상여의 자허부에 ‘楚有七澤’이라는 말이 나온다.
[주5] 화표(華表)에 …… 입조(入朝)하였고 : 화표는 화표주(華表柱)로 성문 앞 같은 데 세워놓는다. 이 구절은 사마교의 기둥에 사마상여가 대성하여 사두마차를 타지 않으면 지나가지 않겠다고 써 놓고 간 것과 그 후 촉인(蜀人) 양득의(楊得意)가 구감(狗監)으로 있으면서 무제(武帝)에게 사마상여가 그의 고향 사람이라 일러주어 사마상여가 불려가 무제를 만나 문명을 떨쳤던 일을 요약한 것이다.
[주6] 웃었다 …… 것을 : 앞서 사마상여가 몰락하였을 때에 그곳 현령의 주선으로, 촉의 임공(臨筇) 땅 거부 탁왕손(卓王孫)의 과부 딸 문군(文君)과 동거했는데 그는 계교를 써서 탁왕손으로부터 많은 재물을 얻어내어 부자가 되었다. 탁왕손은 심중 괘씸하게 여겼었으나 후에 사마상여가 사신으로 촉(蜀)에 행차하자, 그 인물을 일찍 알아보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는 것이다.
[주7] 급작스레 …… 잊어버렸다 : 사마상여가 벼슬이 높아지고 재물이 많아지자 탁문군과의 애정을 저버리고 무릉(茂陵)의 소녀를 맞아들이려 했다.
[주8] 거울 속에서 …… 하였나 : 무릉의 소녀를 맞아들이겠다는 계획을 알게 된 탁문군은 백두음(白頭吟)을 지어 사마상여와 단연코 인연을 끊어 버리겠다는 결의를 표명했다. 이 일에 관해서는 이설이 있다.
● 다음 ‘紙’ 운의 사(詞) <만강홍(滿江紅) 남성(南城)에서 봄을 보내다(南城餞春)>는 조선말기 문신 운양(雲養) 김윤식(金允植 1835~1922)이 제주도에서 종신형의 귀양살이하던 경자년(1900년, 광무4) 봄에 지은(庚子春在濟州時作) 작품으로, 쌍조(雙調) 16구(句) 93자이다. 제주도(南城)에서 봄날 상사일(上巳日)을 보내면서 이 글을 지었다. 본디 제주도는 상사일날에는 ‘사일불원행(巳日不遠行)’이라고 해서 먼 길을 떠나지 않다고 한다.
남녘에서 귀양살이 시간은 흐르는 물과 같다. 봄바람이 갈 길을 재촉하니 혹시나 좋은 소식이라도 올까? 발꿈치 들고 멀리 바라본다. 보이는 건 들판의 꽃풀과 물가의 난초와 언덕의 지초뿐이다. ‘생각하니 뜬구름 같은 세상에서 인생은 한때의 영화를 품고 사는 게 아닐까?’라며 지난 시절을 회상하면서 마무리했다.
3) 만강홍[滿江紅] 남성(南城)에서 봄을 보내다.(南城餞春) / 김윤식(金允植 1835~1922)
閉戶三春 봄 내내 문을 닫고
經過了花朝上巳 꽃피는 상사일(上巳日) 지나쳐버렸네.
又過了淸明寒食 청명이며 한식도 지나쳐버렸으니
光陰如水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구나.
澗草細鋪開餞席 시냇가 풀 곱게 깔린 곳에서 전별연 여니
林風輕拂摧行李 숲의 바람 가볍게 불어 갈 길을 재촉하네.
更可恨觸忤旅人愁 더욱 미워라, 나그네의 시름까지 건드려
勞延企 애써 발꿈치 들고 멀리 바라보게 하네.
/回首六街三市 육가와 삼시 향해 돌아보아도
不見萬紅千紫 붉은 꽃 자주 꽃 모든 꽃 보이지 않네.
覓芳菲 향그런 풀꽃 찾아보니
秪有汀蘭岸芷 있는 건 오직 물가의 난초와 언덕의 지초
撫迹恍疑尋舊夢 자취 더듬노라니 마치 옛 꿈 찾아나선 듯
解携那肯回芳躧 한번 떠난 사람 어찌 발길 되돌릴까
暗思想浮世片時榮 생각하니 뜬구름 세상 한때의 영화로움
都如此 모두 이와 같으리라.
[주1] 상사일(上巳日) : 1년 중 첫 번째의 사일(巳日). 즉 정월 첫 번째의 뱀날을 말하는데, 이날 머리를 빗으면 그해 집안에 뱀이 들어온다고 하여 남녀 모두 이 날은 머리를 빗지 않았음.
[주2] 육가(六街)와 삼시(三市) : 도시의 시끄럽고 번화한 구역이다. 육가삼맥(六街三陌)이라고도 한다. 당(唐)나라 때 장안(長安) 좌우에 육가(六街)가 있었는데 후대에 도성에서 대개 이 제도를 보존하였다. 삼시는 대시(大市)ㆍ조시(朝市)ㆍ석시(夕市)로서, 시끄럽고 떠들썩한 저자를 가리킨다.
● 다음 ‘月’ 운의 사(詞) <만강홍(滿江紅) 어부(漁夫)>는 조선후기 실학자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 1762~1836)의 작품으로, 쌍조(雙調) 18구(句) 93자이다. 다산이 어부(漁夫)를 부제로 만강홍을 지었다. 쌀쌀한 늦가을 저 멀리 일엽편주 고깃배가 안개 속을 헤쳐가며 물고기를 잡고 있다. 벌써 인생 백발이니 이젠 더 이상 궁궐로 들어가지 않고 저 어부처럼 유유자적하며 살고 싶다. 저녁 밀물에는 물이 얕아 배 대기 좋고 새벽 밀물에는 해안이 미끄러워 배를 출항시키기 좋다. 애써 물고기를 잡아서 버들가지로 꿰어 와서, 막걸리에 안주 삼아 흥겨이 먹다가 자고 일어나니 강물에 달이 잠겨 있다. 어부의 생활 모습을 간략히 기술해 놓았다.
4) 만강홍[滿江紅] 어부(漁夫) / 정약용(丁若鏞 1762~1836)
一葉漁舟 한 잎새 만한 고기잡이 배
我和你煙波出沒 너랑 나랑 연파 위를 출몰하면서
了不管西江駭浪 서강의 거센 물결이야 전혀 상관 않지.
催人白髮 인생 백발을 재촉하나니
擧手長辭靑玉佩 청옥 차는 일일랑은 손을 들고 사양하고
掉頭不入黃金闕 황금 궁궐은 머리 흔들며 안 들어가야지
聽楓梢曉露荻花風 단풍나무 가지의 새벽 이슬 물억새 꽃에 부는 바람 듣노라니
寒侵骨 추위가 뼈에 사무치는구나.
/哀簫哢 애절한 피리 소리
短歌發 단가가 터져나오고
暮潮薄 저녁 밀물은 얇고
晨潮滑 새벽 밀물은 매끄러운데
取江豚穿過 강돈을 잡아 꿰기를
綠楊枝末 버드나무 가지로 했지
濁酒三杯酬至願 막걸리 석 잔으로 풀고서는
蒲帆一幅留長物 한 폭의 부들 돛에 남은 물건 다 맡기고
只瞢騰熟睡到天明 날이 밝을 때까지 흐리멍덩 잠만 잤더니
江沈月 강물에 달이 잠겼구나.
● 다음 ‘有’ 운의 사(詞) <〈만강홍〉에 차운하다(次滿江紅) 사(詞)의 이름이다(詞名)>는 조선중기 주자학자 고봉(高峯) 기대승(奇大升 1527~1572)의 작품으로, 쌍조(雙調) 18구(句) 91자이다. 고봉 선생께서 종계변무주청사(宗系辨誣奏請使)에 임명되어 중국으로 갈 때 국토의 광활한 바다와 수평선 그리고 강과 산을 차례로 보고 난 후, 지은 글이다. 번화한 인가를 둘러보고는 고담준론(高談峻論)이나 나눠볼까 하더니 사신단 일행의 행차에는 장구 소리 종소리에 술동이에 술이 넘치고 시가 종이에 가득해 흥겨울 뿐이다. 이 얼마나 그윽한 흥취더냐. 돌아와 유선(儒仙)의 삶을 추구할까? 아니면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 한유(韓愈)와 구양수(歐陽脩)처럼 문장가로 호탕한 삶을 살아볼까? 했지만, 돌아와 벼슬을 그만두고 말년을 보내고자 고향으로 돌아가던 중 그해 11월 고부에서 병으로 죽었다.
5) 〈만강홍〉에 차운하다[次滿江紅] 사(詞)의 이름이다(詞名). / 기대승(奇大升 1527~1572)
海邦雄觀 바다 나라에 웅장한 경관
天欲借子虛烏有 하늘이 자허와 오유 빌리려 한 듯
儘記得江橫淸麗 진정 알겠네. 강은 비껴 맑고 고우며
峀苞深秀 산은 감싸 깊고 빼어나니
文物煥彬看在此 빛나는 문물 여기에 있고
人烟繁庶渾如舊 번화한 인가 예나 마찬가지
哂吾儕狂態不須嫌 우습지만 우리들 광태(미친 짓) 꺼리고 싫어하지 말고
談天口 고담준론(高談峻論)이나 나눠나 보세.
/腰鼓裂 요고(장구)가 요란하고
華鍾吼 화종(중국 종)도 울리는데
詩滿紙 시는 종이에 차고
樽盈酒 술동이엔 술이 넘실
侑儒仙徘徊 유선(儒仙)을 권하여 배회하노라니
良久幽趣 그윽한 흥취 오래오래
未輸箕潁下高才 기산(箕山) 영수(潁水) 아래 높은 재주에 못지않은데
肯墮韓歐後 한유 구양수 뒤에 떨어지랴
想龍灣掩映送將歸 아마도 용만(龍灣, 의주)의 물 비치는 곳에 장수 보내고 돌아오며
瞻馬首 말 머리를 쳐다보리
[주1] 자허(子虛)와 오유(烏有) : 한나라의 사마상여(司馬相如)가 〈자허부(子虛賦)〉에서 자허, 오유 선생, 망시공(亡是公)이라는 가공의 세 인물을 설정하여 문답을 전개했는데, 자허는 ‘빈말’이라는 뜻이고 오유 선생은 ‘무엇이 있느냐’는 뜻이고 무시공은 ‘이 사람이 없다’는 뜻이다. 후세에 허무한 일을 말할 때 흔히 자허ㆍ오유라 하였다.
[주2] 유선(儒仙) : 유학에 근거를 두면서도 풍류와 여유를 즐기며 신선의 삶을 추구한다는 뜻이다.
[주3] 기산(箕山) 영수(潁水) : 요 임금 때 은자(隱者)인 소보(巢父)와 허유(許由)가 은거하였던 곳이다.
[주4] 한유(韓愈) 구양수(歐陽脩) : 한유는 당송팔대가(唐宋八大家)의 한 사람으로 호는 창려(昌黎), 자는 퇴지(退之)이다. 육경(六經)과 제자백가에 통달하였으며, 유종원(柳宗元)과 함께 변려문(騈儷文)을 반대하고 고문 부흥에 힘썼다. 저서에 《창려선생집》이 있다. 구양수는 역시 당송팔대가의 한 사람으로 자는 영숙(永叔), 호는 취옹(醉翁)이다. 《신오대사(新五代史)》, 《모시본의(毛詩本義)》 등이 있다.
● 다음 ‘有’ 운의 사(詞) <만강홍(滿江紅) 찡그림을 흉내 내다>는 조선전기 대표적인 관각 문인인 사가정(四佳亭) 서거정(徐居正 1420~1488)의 시집 황화집(皇華集)에 수록된 작품으로, 쌍조(雙調) 15구(句) 93자이다. 부제 ‘찡그림을 흉내 내다’는 자신의 재주는 헤아리지 않고 억지로 남을 흉내 내는 것의 비유로 쓰인다. 춘추 시대 월(越)나라의 미인 서시(西施)가 심장병을 앓아 이맛살을 찡그리자, 찡그린 모습도 매우 아름답게 보였으므로, 이웃의 추녀(醜女)가 그의 찡그린 모습을 흉내 냈더니, 마을 사람들이 모두 그녀를 피해 버리고 보지 않았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그러나 실제 이 글의 내용은 서거정(徐居正)이 조선의 도읍지 한양 도성의 웅장함과 뛰어난 승경, 그리고 풍요로운 도성의 모습을 칭송하고자 중국 고사들을 인용해 엮어 놓은 사(詞)이다. 경치 좋은 성남(城南), 동방의 별 조선, 큰 자라의 땅, 철통같은 금성탕지(金城湯池), 한강에서 행락하는 풍류, 유리 술잔에 맛좋은 호박주, 호중(壺中)의 별유천지(別有天地), 당나라 사걸(四傑)에 비견할 뛰어난 인재 등이다.
6) 만강홍(滿江紅). 찡그림을 흉내 내다. / 서거정(徐居正 1420~1488)
尺五城南形勝地 척오의 성(도성) 남쪽은 경치가 뛰어난 곳이라
畜眼未有 내 눈으론 일찍이 본 적 없네.
自太古尾星分野 태고 시대로부터 미성(尾星)의 분야(조선왕조)에 속하여
巨鼇孕秀 큰 자라가 빼어남 잉태했기에
宅都定鼎金湯堅 도읍 정하고 왕조 세워 금성탕지(金城湯池) 이뤘거니
分裂元非麗濟舊 고구려 백제처럼 원래 분열된 게 아니었네.
蘭槳桂棹 목란 노와 계수나무 노를 저어
風流行樂漢江口 한강 어귀에 떠서 풍류로 행락하누나
/鷁首飛鼉面吼 뱃머리는 나는 듯 악어는 포효하는데
瑠璃鍾琥珀酒 유리 술잔에 호박주를 마시어라
使佳會安得天長地久 좋은 만남을 어찌하면 천지같이 장구하게 할꼬.
江山是壺中物外 강산은 바로 호중의 별천지이고요
人物非王前盧後 인물은 모두 왕전 노후(王前盧後)가 아니로다.
明日參商 내일 헤어져 삼상(參商)이 되고 나면
南北何處空搔首 남북 그 어디서 서로 머리만 긁적일런고.
[주1] 황화집(皇華集) : 조선 시대 명나라의 사신(使臣)과 그들을 영접(迎接)하던 조선의 원접사(遠接使)가 서로 창수(唱酬)한 시(詩)를 모은 책인데, 명나라 사신이 처음으로 조선에 나온 세종(世宗) 말년으로부터 인조(仁祖) 때에 이르기까지 무려 180여 년간, 24차례에 걸쳐 양측 사신이 서로 창수한 시를 모아서 편집한 것이다. 그러나 여기서는 서거정이 당시 명사(明使) 기순(祁順) 등의 원접사가 되어 창수했던 시 중에 자신의 시만을 따로 모아서 이를 ‘황화집’이라 이름한 것이다.
[주2] 척오(尺五)의 …… 곳이라 : 척오는 하늘과의 거리가 한 자 다섯 치라는 뜻에서, 본디 대궐과의 거리가 아주 가까움을 의미한다. 《신씨삼진기(辛氏三秦記)》에 “성 남쪽의 위씨와 두씨는 하늘과의 거리가 한 자 다섯 치일 뿐이다.(城南韋杜 去天尺五)”라고 한 데서 온 말로, 이는 본디 당대(唐代)에 대궐 가까이에 모여 살았던 호문 귀족(豪門貴族)인 위씨와 두씨 등을 가리킨 것인데, 여기서는 도성 남쪽을 당대의 성남에 비유한 것이다.
[주3] 내 눈으론 …… 없네 : 두보(杜甫)의 〈조전부니음미엄중승(遭田父泥飮美嚴中丞)〉 시에 “술이 취하자 새 성도 윤을 자랑하면서, 내 눈으론 일찍이 본 적이 없다 하네.(酒酣誇新尹 畜眼未見有)”라고 하였다.
[주4] 미성의 분야 : 미성(尾星)은 이십팔수(二十八宿) 가운데 하나로 동방(東方)에 위치한 별인데, 분야(分野)는 바로 조선에 해당한다.
[주5] 큰 자라 : 발해 동쪽 바다의 신산(神山)을 머리에 이고 있다는 전설상의 자라들을 말한다. 《열자(列子)》 〈탕문(湯問)〉에 발해(渤海)의 동쪽에는 대여(岱輿), 원교(員嶠), 방호(方壺), 영주(瀛洲), 봉래(蓬萊)의 다섯 신산(神山)이 있었던바, 이 산들이 조수에 밀려 표류하여 정착하지 못하므로, 천제(天帝)가 혹 이 산들이 서극(西極)으로 표류할까 염려하여 처음에 금색의 자라 15마리로 하여금 이 산들을 머리에 이고 있게 함으로써 비로소 정착하게 되었다. 뒤에 용백국(龍伯國)의 거인(巨人)이 단번에 이 자라 6마리를 낚아 감으로 인하여 대여, 원교의 두 산은 서극으로 표류해 버리고, 방호, 영주, 봉래의 세 산만 남았다는 전설이 있다.
[주6] 금성탕지(金城湯池) : 쇠로 만든 성곽과 끓는 물로 채운 연못. 방어 시설이 철통같이 튼튼한 성을 말한다.
[주7] 악어는 포효하는데 : 두보(杜甫)의 〈잠여임읍……(暫如臨邑……)〉 시에 “악어가 포효하니 바람은 거센 물결 이루고, 고기가 뛰노니 햇빛은 산에 비치도다.(鼉吼風奔浪 魚跳日映山)”라고 하였다.
[주8] 호박주(琥珀酒) : 호박 빛깔이 나는 좋은 술을 말한다. 이백(李白)의 〈객중행(客中行)〉에 “난릉의 좋은 술은 울금향초로 빚는데, 옥 주발에 담아 오면 호박빛이 선명하네.(蘭陵美酒鬱金香 玉椀盛來琥珀光)”라고 하였다.
[주9] 호중(壺中)의 별천지(別天地)이고요 : 후한(後漢) 때 시장에서 약(藥)을 파는 한 노인이 있어, 자기 점포 머리에 병 하나를 걸어 놓고 있다가 시장을 파하고 나서는 매양 그 병 속으로 뛰어들어가곤 했다. 당시 시연(市掾)으로 있던 비장방(費長房)이 그 사실을 알고는 그 노인에게 가서 재배(再拜)하고 노인을 따라서 그 병 속에 들어가 보니, 옥당(玉堂)이 화려하고 좋은 술과 맛있는 안주가 그득하여 함께 술을 실컷 마시고 돌아왔다는 고사에서 온 말이다.
[주10] 인물은 …… 아니로다 : 왕전 노후(王前盧後)는 ‘왕발(王勃)의 뒤’와 ‘노조린(盧照鄰)의 앞’이란 뜻이다. 초당(初唐) 시대 문장으로 천하에 명성을 나란히 한 왕발, 양형(楊炯), 노조린, 낙빈왕(駱賓王)이 당시에 사걸(四傑)로 일컬어졌는데, 양형이 사걸의 호칭 순서에 대해서 말하기를 “내가 노조린의 앞에 있기는 송구스럽고, 왕발의 뒤에 있기는 수치스럽다.(吾愧在盧前 恥居王後)”라고 했던 데서 온 말이다. 여기서는 곧 명사(明使) 등 좌중(座中)에 있는 이들을 당나라 사걸에 비할 바 아니라는 뜻으로 한 말이다.
[주11] 삼상(參商) : 두 별 이름인데, 삼성은 서방에, 상성은 동방에 각각 떨어져 있어, 두 별을 동시에 볼 수 없다는 데서, 전하여 서로 멀리 떨어져 있어 만나지 못하는 사이에 비유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