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漢詩)
여수장우중문시(與隋將于仲文詩)
신책구경문神策究天文
묘산궁리지妙算窮地理
전승공기고戰勝功旣高
지족원운지知足願云止
을지문덕(乙支文德)
그대의 신기한 책략은 천문의 이치를 다했고
기묘한 계책은 땅의 이치를 꿰뚫었도다,
전쟁에 이겨 그 공이 이미 높으니
만족함을 알고 그만 두기를 바라노라.
이 시(詩)는 고구려(高句)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將)이 100만 대군을 이끌고 고구려를 쳐들어온 수(隋)나라 우문중(于仲文)과 우문술(于文述)에게 보낸 시(詩)다. 고구려 제25대 영양왕(嬰陽王)23년에 수(隋)나라를 상대로 압록강에서 대치하고 있다가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將軍)은 혈혈단신(孑孑單身)으로 적진(敵陣)에 항복(降伏)하겠다고 들어가 적정(敵情)을 살피기 위하여 거짓으로 항복(降伏)하고 적군(敵軍)의 허실(虛實)을 정탐(偵探)한 뒤에 적진(敵)을 탈출(脫出)한 뒤에 하루 칠전 칠패(七戰七敗) 하는 지는 척 철수 작전으로 수군(隋軍)을 유인작전(誘引作戰)으로 평양성(平壤城) 30리 밖까지 유인(誘引)해서 우문중에게 보낸 편지 시가 위의 시(詩)다. 우중문은 별동대를 이끌고 을지문덕 장군을 뒤쫓아 평양성 근처까지 쳐들어 왔으나 군량(軍糧) 보급(補給)이 끊겨 곤경에 처해 있었다. 이것을 을지문덕(乙支文德) 장군(將軍)은 전략적(戰略的)으로 이용(利用)한 오언(五言) 고시(古詩)다. 오언절구(五言絶句) 측기식(仄起式) 시(詩)다. 압운(押韻)은 상성(上聲) 29운(韻) 중에 지통(紙統) 운족(韻族) 이(理), 지(止)로 작시(作詩)를 했다. 내용은 우중문을 칭찬한 것, 같지만 이쯤 해서 물러가라는 희롱 조롱의 뜻이 담겨있다. 전쟁에 있어서 적진(敵陣) 속에서 군량 보급이 끊기면 독 안에 든 쥐 꼴이다. 수군(隋軍)은 늦게 고구려군(高句麗軍)에 포위(包圍)된 것을 알고 회군(回軍) 퇴각(退却) 명령(命令)을 내려서 청천강(淸川)을 반쯤 강을 건너갈 때 살수대첩(薩水大捷)으로 고구려(高句麗)은 대승(大勝)를 거둔다. 수나라 군대는 살수대첩(薩水大捷)에서 무참(無慘)하게 참패(慘敗)하고 요동(遼東)까지 살아 돌아간 병사는 2700명에 불과했다는 역사기록이다. 수(隋) 나라는 고구려(高句麗)와 전쟁(戰爭)을 하고 나라가 망(亡)한다. 결국 수(隋) 나라는 건국 37년 만에 멸망한 나라다. 힘만 믿고 무리하게 밀어붙인 무모한 전쟁의 결과다.
수나라를 상대로 고구려를 대승으로 이끈 을지문덕 장군을 삼국사기를 쓴 김부식 평가와 신채호 평가를 보자. 《삼국사기》의 저자인 김부식도 <”을지문덕 열전>에서 나라를 위기에서 건져낸 을지문덕을 칭송하면서 엄청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삼국사기》 <열전>에서는 첫 번째를 차지하고 있는 <김유신 열전> 다음이 바로 <을지문덕 열전>이다. 을지문덕은 자질이 침착하고 굳세며 지략이 있었고, 아울러 문장을 짓고 해석할 수 있었다. 또한 《삼국사기》의 편찬자들은 기록의 부재로 인해, 을지문덕과 관련된 기록을 《수서》에서 그대로 옮겨왔으나 어떻게든 을지문덕에 대해서 좋게 평가하고자 포장했음을 알 수가 있다.“ <”단재 신채호의 <을지문덕전 乙支文德傳>에 “땅의 넓이는 그 십분지(十分之一)에도 미치지 못하고, 인구는 그 백분지 일에도 미치지 못하는 고구려가 저 수나라를 대적하였으니, 그 기개는 비록 장하나 그 방도는 심히 위태로웠다. 그 당시에 ‘하루살이가 큰 나무를 흔들려 한다’는 국외자(局外者)들의 비판을 면하기 어려웠을 텐데도, 을지공(乙支公)은 홀로 의연히 그러한 비판을 못 들은 척하고 적국에 대항하였으니, 과연 무엇을 믿고 그러하였던가? 말하자면, 오직 독립정신(獨立精神) 단 한 가지였다”면서 을지문덕을 자주의식(自主意識)의 상징적 인물로 표현하였다. 그는 여기에 그치지 않고 “후세 사람들이 만약 그의 머리털 하나만큼만 닮더라도 그 나라의 독립을 보전할 수 있을 것이며, 그의 한두 마디의 말만 잘 거두어 간직하더라도 그 나라의 역사를 채워 넣을 수 있을 것이니, 을지문덕이란 사람은 우리 대동국(大東國) 4,000년 역사에서 유일한 위인일 뿐만 아니라 또한 전 세계 각국에도 그 짝이 드물도다”라고 칭송하면서, 당시 대한제국이 일본 제국주의 세력의 침략으로 국체(國體)를 보존할 수 없게 된 가장 근본적인 원인이 조선시대(朝鮮時代)의 사대모화사상(事大慕華思想)에 있었음을 지적하였다. 신채호에게 있어 을지문덕이란 역사 인물은 민족자존(民族自存)과 독립정신(獨立精神)의 표상이었고, 일본인들이 한국에 대한 식민지화 정책을 합리화하려고 내세운 한국인들의 타율적(他律的) 종속성(從屬性) 이론을 논파하는데 롤, 모델이 되었던것이다.“> 이렇게 역사에 훌륭한 장군이 고구려 장수로 나라를 지켰는데도 오늘날 대한민국은 나라에 전쟁이 나도 자주국방(自主國防)의 전시작전권도(戰時作戰權)도 없는 사대의식(事大意識)으로 쪼그라든 못난 민족이 되고 있다. 대한민국 정치인들이여! 깨어나라. 정신 좀 차리라. 광복 79년인 올해도 아직도 제국주의를 미화하는 꼴들을 보라. 핵폭탄보다도 무서운 일본인이 심어 놓은 식민지 의식에서 한치도 벗어나지 못하고, 친일파 잔재는 아직도 청산되지 못한 채로 서로 옳다고 물고 뜯고 분열만 일삼고 있으니, 한심 작태가 아닌가? 나라를 찾겠다고 독립운동을 했던 순국선열들이 지하에 통분하지 않겠는가? 오호통재라! 대한민국이여! 중원대륙을 한 손안에 넣고 통치했던 고구려 광개토대왕의 다물(多勿) 정신을 본을 받으시라. 여여법당 화옹_()_