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점이 오히려 위대하게 만든다
진정 위대한 존재로 느껴지는 인물을 대할 때, 우리는 그 앞에서 얼어서 긴장하기보다는 그가 오로지 자신의 약점을 통해서 그 위대성을 성취했으리라는 사실에 감동해야 하지 않겠는가.
―루 살로메Lou Andreas-Saome
오늘날 위대한 인물이라고 할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찬란한 영웅들이나 인류사에 업적을 남기 위대한 사람들은 다 역사 속으로 사라져버린 듯하다. 우리 시대인 현대는 전문성을 기치로 너무 잘게 쪼개어져서 한 분야에서 위대한 업적을 이뤘다 하더라도 바로 옆 동네로 건거가거나 공감을 받기가 쉽지 않은 상황이다. 이처럼 우리는 누구에게나 인정받을 만한 위인을 꼽기 어려운 시대에 살고 있다. 그럼에도 우리 시대에 감각에 맞게 조율한다면 인류 사회에 기여한 중요한 사람들의 목록을 만들어볼 순 있을 것이다.
우리는 그처럼 중요한 사람을 대할 때 대체로 긴장하게 된다. 권위에 저절로 고개가 숙여지거나 때로 높이 우러러 보게 된다. 그러면서 우리 눈앞에 보이는 위대함이 마치 하늘에서 뚝 떨어지거나 땅에서 바로 솟아오른 듯이 보게 된다. 말하자면 위대함의 정도가 놓을수록 우리는 그 인물에 대한 평가를 신화화하게 된다. 이러한 전통이 심화되면 아예 그 인물을 신격화하기까지 한다.
그러나 그들의 위대함을 하늘에서 떨어진 것도 아니고 땅속에서 솟아오른 것도 아니다. 오로지 삶을 통해 빚어낸 것이다. 위대함은 타고난 강점을 확대·증폭한 결과라기보다는 약점과 씨름하면서 얻어낸 결과다. 사실 타고난 강점이 있는 사람은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다 보니 뛰어날 순 있어도 위대함으로 나아가진 못한다. 그러나 약점이 있는 사람은 그 약점과 씨름하고 자기 자신을 갈고 닦아 위대함을 향하게 된다. 이것이 위대한 사람이 우리에게 감동을 일으키는 이유다.
그런데 위대한 사람의 이야기는 늘 남의 것이어야만 할까? 우리가 우리 자신에게서 감동받을 수도 있지 않을까? 그러므로 자신의 약점에 대해 슬퍼할 것만은 아니다. 나만 많은 약점을 갖고 있다 해서 불평할 필요도 없다. 다른 사람들은 잘난 것 같다면서 불평등한 세상이라고 자조할 것도 아니다. 약점이 오히려 위대함에 이를 가능성은 훨씬 더 많다. 공연히 근거 없이 바른 생활태도를 권장하려는 것이 아니다. 우리에게 감동을 선사하는 실제 위인들의 이야기를 살펴보자.
빅터 프랭클Viktor Frankl은 약점이 위대함으로 가는 묘책이라는 것을 가르쳐준다. 아우슈비츠 포로수용소에서 생사의 갈림길을 거쳐 나온 프랭클은 그의 극적인 삶을 반영이라도 하듯 《삶의 물음에 ‘예’라고 대답하라》라는 저서에서 이렇게 전율적으로 말한다.
금방 무너질 것처럼 약해진 아치에 돌을 더 올려놓으면 안전해지지요. 인간의 영혼도 이처럼 어떠한 한계 내에서는 ‘하중’을 겪음으로써 오히려 더 강건해지는 것 같습니다.
금방 무너질 것 같은 아치에 어떻게 돌을 올리려는 생각을 했을까? 그런데 거기에 돌을 올려놓으면 오히려 더 안전해진다고 한다. 물론 위치를 잘 잡아야겠다. 이때 그 위치에 놓일 돌을 앎의 공식에 따른 지식을 해법이라기보다는 삶의 통찰에서 빚어낸 지혜의 무게일 것이다. ‘감당할 수 없는 한계’라는 조건이 이를 말해준다. 그 안에서라면 좀 더 큰 삶의 무게가 그 영혼을 더욱 강건하게 한다는 것이다. 삶의 오묘한 역설이다.
―정재현, 『인생의 마지막 질문』, 청림출판, 20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