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9년 봄, 나는 강원도 태백의 수도 공동체인 예수원에서 3개월 동안 지원훈련을 받았다. 예수원 본당에는 “노동하는 것은 기도요, 기도하는 것은 노동이다”라는 표어가 붙어있었다.
당시 노동자 출신의 두 형제님과 한 자매님으로부터 ‘노동과 영성’에 대해 강의를 들었다. 삶에서 우러나온 세 분의 강의가 모두 감명 깊었다. 그 가운데 특히 한 형제님의 강의는 지금 그 강의록을 다시 읽어도 큰 감동을 느끼게 되는데, 그 일부는 다음과 같다.
“17살부터 공장에서 노동했다. 돈을 벌기 위해 하루 12시간 노동했다. 처절한 삶이었다. 내면의 갈등이 있었다. 공허했고 허무했다. 시간 때우기 노동이 되었다. 돈만 벌기 위한 노동은 힘들고 허무하다.
왜 노동은 기도인가? 이웃을 생각하며 하는 노동이기 때문이다. 이웃을 생각하며 하는 노동은 기도이다.
기도하고 쌀 80kg을 옮길 때와 기도하지 않고 옮길 때의 차이가 있다. 기도하면 주님께서 도와주신다. 노동 중에 나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을 체험한다. 하나님은 노동 중에 함께 하신다. 노동 중에 하나님을 만난다. 예수원의 보일러가 고장 났을 때 보일러를 붙들고 기도했다. 노동 중에 체력과 기술의 한계에 부딪혔을 때 기도했고, 기도 가운데 하나님의 함께 하심을 체험했다.
노동자와 지식인은 공존하며 공동체를 이룬다. 노동자와 지식인이 서로 겸손하게, 서로에게 배우면, 서로 전혀 몰랐던 사실을 이해하게 된다.”
그리고 당시 교육책임자였던 다른 자매님이 “노동이 기도가 되기 위해서는, 맡겨진 일을 빨리 끝내고 쉬려 하지 말고, 일하는 속도를 조금 늦추고, 일하면서 동시에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라고 실제적인 조언을 주었다.
그래서 나는 그 조언대로 예수원에서 건축이나 농사 같은 작업을 할 때나 주방에서 설거지할 때,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이려 노력했다. 그러던 어느 날, 설거지하는 가운데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하나님과 대화를 나누는 은혜를 경험하기도 하였다.
3개월이 지나 귀경한 지 얼마 후에, 당시 내가 섬기던 성경적토지정의를위한모임(현 희년함께)의 사무실에서 <토지와 자유>라는 회지를 발송하는 작업을 했다. 큰 봉투에 받는 이의 주소가 프린트된 라벨을 붙이고 그 안에 회지를 집어넣어 봉하는 작업이었다. 그런데 그 양이 수백 통이었다.
단순하고 반복적이며 지루한 작업이었기 때문에, 평소 같으면 “빨리 해치우고 쉬자”라고 생각했을 텐데, 그때는 예수원에서 배운 대로 작업의 속도를 조금 늦추고 손으로는 봉투에 주소 라벨을 붙이고 그 안에 회지를 집어넣으면서 동시에 마음으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다.
그때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봉투에 받는 이의 주소가 프린트된 라벨을 붙이는 내게 주님은 말씀하셨다. 그 봉투가 그 라벨 주소대로 가는 것처럼,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라.”
그리고 그 봉투 안에 회지를 집어넣는 내게 주님은 또 말씀하셨다. 받는 이에게 그 봉투 안의 회지가 그대로 전달되는 것처럼, “가서 내가 네게 말하는 것을 너는 그에게 대언하라.”
그런데 이 말씀은 예레미야가 하나님께 예언자로 부르심을 받을 때 하나님이 하신 말씀과 비슷하다.
렘 1:7, “내가 너를 누구에게 보내든지 너는 가며 내가 네게 무엇을 명령하든지 너는 말할지니라.”
그 단순 반복의 지루할 수 있는 노동이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기도가 되었다. 일하면서 마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음성에 귀를 기울였더니, 노동이 기도가 되었다. 그 노동과 함께 이루어진 기도 가운데, 나는 하나님께 부르심을 받았다. 비록 그 비좁은 사무실은 수백 통의 발송 작업 때문에 어지러웠지만, 내 영혼이 느끼기에 하나님의 거룩한 임재로 가득 찼다.
그로부터 얼마 후, 구로동으로 이사한 사무실에서 회지 제작을 위한 편집 작업을 하고 있었다. 사역 초기에는 몇 해 동안 사명감 하나만 가지고 무급으로 또는 거의 무급으로 섬겼었는데, 그 날은 수중에 돈이 떨어져 돌아갈 버스비만 있었다. 점심을 굶고 컴퓨터 앞에서 작업을 했다. 그 당시 나는 굶는 것을 별로 두려워하지 않았다. 돈이 다 떨어져 굶어야 한다면, 대범하게 “금식 기도하는 시간으로 삼으면 되지 뭐”하고, 돈이 없다 하여 안절부절못하지 않았다.
그런데 오후 4시쯤 되었을까, 멀리 부산에서 한 분으로부터 전화가 왔다. “어제 밤에 기도하는데, 하나님께서 박창수 형제에게 돈을 보내라고 내게 말씀하셨다.”고 하시면서 내게 계좌를 가르쳐달라고 했고 그 분은 거액을 입금하셨다. 그때 나는 그 분에게 감사드리면서, 하나님의 은혜에 감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것은 돈 때문이 아니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나를 책임져 주신다는 사실 때문이었다.
“하나님은 내가 무슨 일을 하고 있는지 또 어떻게 일하고 있는지 다 보고 계시고 다 아시는구나. 나의 형편을 아실뿐만 아니라 그것을 책임져 주시는구나!”
그때 사무실은 내 영혼이 느끼기에 하나님의 자비로운 임재로 가득 찼다. 사무실은 내게 하나님과 함께 거한 성소가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