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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대전둘레산길잇기 원문보기 글쓴이: 마중물
과례천(果禮川) 이야기(기존 문헌기록) 대전시의 중앙부 남쪽 중구 보문산에 있는 '청년의 광장' 부근에서 발원하여 북쪽으로 흘러 문화동의 과례마을을 거치고 오류동, 태평동을 지나 수침교(水砧橋)윗부분에서 유등천으로 유입되는 하천이다. 문화동의 옛이름인 과례리(果禮里)에서 지명이 유래한 것으로 보인다. 「여지도서」와「호구총수」에 과례리가 등장한다. 과례리는 문화동에 속한 마을 중 가장 오래된 마을로 알려져 있다. 「대전지명지」에는 고려시대 노거재(老居齋) 우징복(禹徵福)이 보문산의 문필봉 아래 서당을 열고 마을 사람들로 하여금 차례를 잘 지키는 습관을 기르도록 하여 이후 마을에서는 모든 제사에 정성을 쏟는 습관을 갖게 된 데서 과례라고 부르게 되었다하고, 또 마을 뒷산이 풍수상 괘등형(掛燈形)형국에 해당하기 때문에 괘등 아래 있는 마을이라 해서 그렇게 불렀다고 수록하고 있다. |
대전의 옛지도...과례천(果禮川)의 흔적을 찾아보세요.
오늘은 지방하천 탐방이 시작되는 날입니다.
(사)대전문화유산 '울림' 마동 대표님이 오늘 걷는 '과례천'에 관한 예비지식을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과례천의 발원지를 찾아 올라 갑니다
고촉사 못미쳐 있는 약수터에서 목을 축입니다
돌까마귀 고문님 말씀에 따르면 보문산에 약수터가 한때 서른여섯 군데가 있었는데,
다섯 군데는 음용수로서 불합격판정을 받아 폐쇄되고, 현재는 마실 수있는 약수터는 서른한 군데가 있다고 합니다.
예전 저 바위구멍에서 맑은 물이 흘러 나왔었다고 마동님이 설명해 주셨습니다.
포대화상
일행들이 고란초를 찾고 있습니다
드디어 보문산 최고봉인 '시루봉" 정자인 '보문정'
오늘은 연무가 짙어 대전시가지를 조망할 수 없네요
마동님의 열정은 대단합니다. 지도를 펼쳐놓고 대전의 산천을 자세히 설명해 주시고 있습니다
오늘 하천탐방에 나선 기념으로 사진 한 컷!
마동님이 조망터에서 잠시 쉬며 또다시 대전의 산천을 설명해 주십니다
과례골짜기로 내려와 과례천의 발원지를 찾아봅니다
돌까고문님께서 '옛적에 이 곳이 과례마을을 비롯, 문화동일원의 취수원으로 사용했던 곳이었음'을 설명해 주십니다
보문산의 한 골짜기의 물이 과례천에 합류되는 지점입니다
마동님이 과례천을 따라 내려가면서 옛시절 이야기를 해 주시고 있습니다
화신(花信)이 우리 곁에 바짝 다가왔으니, 몸이 왔군요.
여기서부터 과례천은 슬픔을 가득 안고 흘러갑니다.
인간들이 '도로'라는 인공구조물로 과례천을 가렸기때문입니다.
발밑에서 과례천 숨소리 들으며 도로를 걸어갑니다.
도로의 형태를 가만히 살펴보면 직선이 아니고, 원만한 곡선을 이루고 배수시설이 있습니다.
발아래 과례천이 흘러가고 있음을 짐작케 합니다.
충남과학교육원 등나무아래에서 점심을 먹습니다
옛날 과례천을 가로질러 놓였던 다리 '문화교'
마동님은 아파트를 가리키며, 과례천이 아파트단지를 가로질러 갔음을 설명해 주십니다
과례천 물소리가 들려옵니다
과례천은 오류시장앞을 지나갑니다
잠시 서대전역앞에 세워져 있는 서대전역 유래비를 찾아 서대전역 역사(歷史)를 회상해 봅니다
호남선 철도를 가로질러 갑니다. 과례천도 철로를 가로질러 흐르고 있습니다. 서대전역사를 바라봤습니다
간판 글내용이 시선을 끕니다
2백여년 느티나무. 해마다 정월 열나흘에 마을사람들이 목신제(木神祭)를 올린다고 하네요.
1950년대 대전 오류동(五柳洞) 일원 모습...저 멀리 바로 윗사진의 느티나무가 보입니다. 찾아보세요.
돌까 고문님이 쌀 등급에 관해 해박한 지식을 알려주십니다
오늘의 탐방일정이 끝나갑니다. 과례천이 유등천에 몸을 섞기 직전입니다.
과례천이 유등천에 합해지는 지점에서 오늘의 탐방을 기념하는 차원에서 기념사진을 찍습니다
오늘의 탐방 의미를 찾고자 탐방에 참여했던 분들이 돌아가면서, 오늘의 탐방소회(所懷)를 이야기해 주십니다
첫댓글 멋진 과례천 답사기 고맙습니다.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참석해주셔서 답사기 부탁드립니다.
마중물 님께서 완전 상세하게 잘 정리해주셔서 함께 답사한것 같이 느껴집니다. 감사드립니다~
모두 수고많으셨습니다.
같이 탐방을 못해 아쉽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