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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번에 오늘 본문 내용과 다음에 나올 127편이 바꾸어서 올라왔네요. 오늘 본문 내용을 아래와 같이 수정하겠습니다. ^^" 그리고 새로운 세 분이 같이 하게 되었는데요 이 글은 절대로 거짓이 아니니 다 같이 꼭 좋은 결과를 보셨으면 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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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문염송] 중에서.. (126편)
20220502
심법
영가가 말호대 "마음은 근본이요 법은 티끌이니, 두가지가 마치 거울 속의 그림자 같도다. 그림자와 티끌 다할 때에 광명이 나타나고 마음과 법이 없어지면 성품은 즉시 참되리라"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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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자인데요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心法
永嘉云 心是根法是塵 兩種猶如鏡上痕 痕垢盡時光始現 心法雙亡性卽眞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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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이뭣고]의 곁가지 김태현입니다.(방긋)
한 주일 잘 보내셨지요.. (방긋)
※ 이 글은 주로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주로 쓰이고 있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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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을 번역하는 데 있어서 표현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받아들이는 사람들 입장에서는 느낌이 많이 다를 수 있는데요.
아래와 같이 번역한 내용도 있으니 같이 비교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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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가가 이르되 마음은 이 뿌리며(*心是根) 법은 이 티끌이니 / 두 가지가 마치 거울 위의 흔적과 같다 / 흔적의 때를 다 제거하니 빛이 비로소 나타나고 / 마음과 법을 둘 다 잊으니 성(性)이 곧 진(眞)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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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본문 내용은 본성을 표현한 내용과 본성을 깨닫고 증득하는 과정을 아주 짧게 잘 표현한 내용인데요.
요즘 말로 하면..
"본성(불성/성령/마음)은 일체 만물의 뿌리이며 모든 법은 티끌이니 이 두 가지가 마치 거울 위에 묻은 흔적(잡티)과 같으니 이러한 흔적을 닦아내면 바로 그 자리가 불성 자리이라.."
라는 뜻이랍니다.
본성을 깨닫고 보면 영가 스님 말씀대로 일체 만물이 모두 하나에서 비롯된다는 사실을 알게 되는데요. (진실)
원효스님은 이를 일러 일체유심조(一切唯心造)라 표현하셨고요.
또 다른 표현으로는
만법귀일 일귀하처(萬法歸一一歸何處)라는 표현으로 쓰이기도 한답니다.
쉽게 말해 '우주 만물이 한 통으로 굴러가고 있다는 뜻'입니다.
믿기지 않으시겠지만 깨닫고 보면 우리 몸을 비롯해서 가족, 친지, 친구, 등 모든 사람들과 집과 자동차는 물론이고,
부처님 표현대로 하면 눈에 보이는 모든 것, 눈에 보이지 않는 모든 것들과 우주 만물 전체가 모두 한 통, 한 뿌리에서 굴러가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는데요.
비유하면 우리의 몸은 그저 우주에 붙어 있는 먼지 티끌이라고 보시면 된답니다.
그냥 살아 있으니까 사는 것이고 죽고 나면 또 다른 몸을 받아 그냥 살아가는 것이랍니다.
그런데 이러한 것들이 육체 입장에서 보면 나와 너로 나누어져 보이지요.
그럴 수 박에 없지요. 왜냐하면 각각의 몸이 다르니까요.
그러나 아니랍니다. 큰 착각이랍니다.
나와 너뿐만이 아니라 우주 만물 전체가 한 뿌리 한 통으로 어느 것은 빠르게, 또 어느 것은 아주 느리게 생겨나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고 사라지는 것일 뿐 그 이상도 이 이하도 없답니다.
본성 입장에서 보면 생겨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없다는 뜻입니다..
비유하자면 큰 나무에 붙어있는 잎사귀들과 수많은 생명체들이라고나 할까요?
나무에 붙어서 살아가는 가각의 다른 종의 생명체들도 얼마나 많습니까?
그중에 인간도 한 종류에 속할 뿐이라는 뜻입니다.
지금 영가 스님의 말씀은 수많은 잎사귀들과 종들은 각각 내가 있고 네가 있고, 내가 옳으니 네가 옳으니 하고들 있지만 결국은 한 나무, 한 뿌리에 붙어있는 것이라는 뜻이랍니다.
육체의 입장에서 보면 내가 우주의 주체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 깨닫고 본성 입장에서 보면 나를 포함해 우주 만물이 모두 그 본성 자리에서 태어나고 사라지고 또 생겨나고 사라지는 연속성의 윤회를 하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마치 큰 나무가 계절 인연에 따라 낙엽이 지고 다시 피어나고 또 떨어지고 다시 피는 것처럼 말이지요.
여기서 말하는 [생겨나고 사라지는..] 이란 표현은 불교에서 말하는 생(生)과 사(死)를 의미하는 말인데요..
이 생과 사는 꼭 사람이 태어나고 죽는 것만을 이야기하는 내용이 아니라 우주 만물 전체가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다시 생겨났다가 사라진다는 뜻이랍니다.
생각도 생겨났다가 사라시고,
화냄도 생겼났다가 사라지고,
고통도 생겼났다가 사라지고,
사람도 생겨났다가 사라지고,
지구도 언젠가는 사라지고 또 다른 행성들이 다시 태어나고,
지구가 속해 있는 은하계 또한 언젠가는 인연을 다하면 나무의 잎사귀처럼 사라지고 다른 은하계가 또다시 생겨나지요.
이처럼 모든 만물이 단 하나라도 그대로 영원한 것은 없답니다.
그러나 우리는 꼭 영원할 것처럼 살아가고 있지요.
우리의 몸은 수도 없이 뒤바뀌지만 누구나 가지고 있고 누구나 느끼고 있는 우리들의 본성(불성/성령/마음) 만큼은 늘 수십, 수백수천, 수만 억겁을 그대로 여여하게 그 본질을 흐리지 않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고 있답니다.
이것을 확실히 보고 아는 것을 깨달음이라 하고, 이것이 완전히 증득 또는 내 마음으로 완전히 바뀌는 것을 성불이라 한답니다.
그리고 누구나 이것을 하루속히 되찾아야 하는 것이고요.
그런데 문제는 부처님 표현대로 하면 많은 사람들이 이러한 것이 있는지도 모르고 있고, 알려고 하지도 않고, 들으려 하지도 않으면서 고통과 괴로움 속에서 허덕이는 어리석음에 빠져 있다는 것입니다. (제가 봐도 그러함)
분명히 말씀드립니다만 여러분들이 어떤 위치 어떤 처지에 있건 그것은 모두 허무한 아지랑이와 같은 것이라는 사실입니다.
영가 스님의 말씀처럼 거울 위에 묻은 티끌과 같은 것이요, 흔적과 같은 것이요, 그림자와 같은 것이지요..
영가 스님 말씀대로 이 티끌만, 이 흔적만, 이 그림자만 지우면 바로 그 자리가 광명이요 밝은 빛인데 이것을 못 버리고 있고, 못 벗어나고 있고, 벗어나려고 하지도 않는다는 뜻입니다.
불교에서는 이것을 무명(無明)이라 표현한답니다.
기독교에서는 이것을 길을 잃고 헤매고 있다는 뜻으로 [길 잃은 양]이라 표현하고 있답니다.
무명의 반대는 밝을 명(明)인데요.
정말이지 깨닫고 증득한 자리는 그야말로 밝을 명(明)이랍니다.
너무나 평안하고 안락하고 여유롭답니다. (진실)
그래서 극락이라 표현하기도 하고 기독교에서는 천국이라 표현을 하기도 한답니다..
제아무리 부자고, 제 아무리 똑똑하고, 제 아무리 건강해도 본성 입장에서 보면 영가 스님의 말씀처럼 하나의 티끌에 불과한 것이고 거울 속의 그림자와 같은 것이고 거울 위에 묻은 흔적과 같은 것이랍니다.
부질없다는 뜻이지요.
의식으로 내 몸조차도 버려보십시오.
나를 완전히 버려보십시오.
이것이 불성을 증득하는 또는 성령을 영접할 수 있는 힌트라면 힌트랍니다.
예수님은 이에 대해 이렇게 표현을 하셨답니다.
"사랑하라, 그리고 용서하라 네 오른쪽 뺨을 때리거든 너의 왼쪽 뺨도 내 주거라."
라고요.
이 말의 뜻은 예수님처럼 모든 것을 내려놓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지요.
그런데 많은 중생들은 백 년도 못 지킬 이러한 것들을 얻으려고 일평생을 헤매고 다니는 거랍니다.
기독교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천로역정(天路歷程)이라는 책에서 잘 묘사해 두었는데요.
성령을 영접하기 위한 수도사(修道士)들의 구도(求道)의 길을 아주 잘 묘사해 둔 내용이데, 저도 이 책을 고등학교 때 한 번, 30대 때 또 한 번 두 번 정도 읽었던 책인데요.
나도 모르게 가끔 이 책의 내용들과 내 인생 역정(歷程)이 닮은듯해서 나도 모르게 내 마음에 돌아다니던 책이었는데요..
그때는 저도 이 내용이 이해가 잘 안 갔었지만 지금은 완전히 이해를 하게 되었답니다.
아주 먼 옛날에는 어느 지역이나 도인들이 있었는데요.
역사적으로 가장 오래된 수행 기록물은 고조선의 [홍산문화]를 들 수 있답니다.
(참고 자료)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m.blog.daum.net/ky1002027/6583043
(역사는 왜곡할 수 있어도 그 당시 무덤들에서 나오는 증거들은 왜곡할 수가 없음)
곰과 호랑이가 마늘과 쑥만 먹고 토굴에서 곰은 사람이 되고 호랑이는 못 견디고 뛰쳐나왔다는 설화가 모두 수행에 관한 내용들이랍니다.
이에 대하서는 부처님도 수도 없이 말씀하셨는데요.
어느 시대 어느 지역이든 갠지스강의 모래알 수 보다 훨씬 더 많은 수의 보살들이 이 법을 전하고 있다고 말씀하셨답니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다음에 올 메시아와 불교식의 다음에 올 미륵부처님은 같은 뜻이랍니다.
(이 글은 기독교의 수도사 분들도 다수 보고 있음으로 같이 혼용해서 설명하고 있는 점 양해 바랍니다.^^")
아무튼 불교식으로 말하면 수행의 길은 불성을 증득하기 위한 구도의 길이랍니다.
구도(求道)의 길은 마치 천로역정의 내용들처럼 탐험가와 비슷하답니다.
때로는 죽을 만큼 힘들고, 때로는 헤매고, 때로는 죽기까지 합니다. (수행자들 중 죽는 사람들도 많음, 특히 목매 죽는 분들이 많음, 기독교도 매한가지..)
방법을 모르고 하니까 더 힘들었던 경우인데요.
불교 쪽이나 기독교 쪽이나 부처님이나 예수님이 하라는 데로 그대로 하면 참 쉬운 건데 왜들 그렇게 폼만 잔뜩 잡고 어렵게 접근하는지 저로는 이해가 잘 안 가는 부분인데요.
두 종교 다 너무 허례허식에 빠져있어서 그렇답니다.
예수님이 하셨던 기도 수행법도 나를 돌이켜 보기도 좋고 정말 쉽거든요. (기도 수행법은 불교나 기독교 이전부터 있었던 수행법임)
아무튼 거울 위에 붙어 있는 티끌과 흔적만 깨끗이 지워 내면 바로 그 자리가 불성 자리라고 지금 영가 스님은 말씀하고 계시는 거랍니다.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생각 들도 불교에서는 생과 사로 보는데요.
이러한 티끌과 같은 생각들이 사라지는 그 순간이 바로 불성 자리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수행 방법만 잘 알고 버리기만 잘 하면, 누구나 조금만 노력하면 이러한 [생사 해탈]은 할 수 있다는 것이고요. (진실)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성령을 증득하는 순간 누구나 천국의 문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입니다.
불교식으로 말하면 불성을 증득하는 순간 누구나 극락의 세계로 들어간다는 것입니다. (진실)
그러기 위해서는 오늘 영가 스님의 말씀처럼 마음에 비치는 그림자와 티끌과 흔적들을 모두 지우라는 뜻입니다.
요즘 말로 하면 마음을 비우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또 다른 표현으로는 거울을 닦듯이 내 마음을 깨끗하게 닦아 내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흔히 [수행을 닦는다] 또는 [도를 닦는다] 하는 것이고요.
여기서 닦는다란 뜻은 거래질 이나 빗자루질을 하듯이 왔다 갔다 반복하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수행은 이렇게 끊임없이 반복하는 거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도(道)란 불성(마음)의 길을 말하는 것이고요..
그래서 불도(佛道)라 한답니다.
[불성] 이 가는 [길]이란 뜻입니다.
이 불성의 길( 佛道)에는 천도재나, 제사나, 위패 봉안 따위는 없다는 뜻이고요..
기독교 식으로 말하면 믿기만 하면 누구나 천국을 갈수 있다는 말은 꽝이랍니다.
예수님 말씀의 본뜻은 나를 믿고 따라서 하라는 뜻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은 하나이니 늘 주 안에서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라] 안에 모든 수행 방법이 다 들어 있답니다.
예수님이 살던 중동지역은 이미 절대적 신인 하나님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사실을 쉽게 대 놓고 전파를 할 수 없었기 때문에 말을 빙빙 돌려서 이 법을 전했답니다.
결국 이로 인해 같은 형제들인 유대인들에게 처형을 당하시긴 하셨지만 아무튼 예수님 말씀 안에는 기도를 통해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버리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기도 수행법은 늘 내 안으로 의식을 돌려서 기도를 해야 한답니다.
이것이 주 안에서 이랍니다.
내주는 밖에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예수님 말씀대로 성령은 내 주 안에 있는 것이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주란 나를 뜻하는 것이고요.
그리고 마음의 것들을 지우고 버리려면 대표적인 것이..
부처님이 하셨던 현재 이 순간 알아차리는 [위파사나] 방법과,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수시로 보는 [조사선] 방법과,
화두를 바라보는 [간화선] 방법 등이 있답니다..
기도를 통해 하는 방법은 늘 주안에서 참회기도를 하셔야 한답니다.
"아버지 하나님이시여 오늘도 저는 율법에 어긋나는 죄를 지었나이다. 저에게 벌을 내려 주십시오. 다시는 아버지 하나님의 율법에 어긋나는 죄를 짓지 않도록 힘을 주시옵소서 소.."
이 기도 내용만 보아도 모두 내 안으로 의식이 가 있지 않던가요?
이렇게 모든 기도는 의식이 나를 향해 기도를 하셔야 한답니다.
왜냐하면 예수님 말씀대로 주 하나님은 내 주 안에 있기 때문이랍니다.
의식이 밖을 향해 구하는 기도는 백날 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답니다.
(불교 쪽이나 기독교 쪽이나 이것이 가장 큰 문제)
(이 외에도 수행 방법은 오백여 가지가 넘음.. 그리고 어느 수행 방법이든 예수님처럼 의식이 깨어서 하면 더욱 극대화됨)
오늘 본문 내용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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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법에 대한 내용, 질문이 있는 경우 질문 내용
이 란은 우리들의 란인데요.
질문이나 세상살이 이야기 등을 자유롭게 나누는 란이랍니다.
그리고 내용 끝에 (진실)이라는 표시는 제가 체험한 내용들과 마음에 느끼고 있는 것들에 대한 [동의] 표시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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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에 한 수행자분이 e-메일로 온 간화선에 대한 질문 내용인데요. 같이 공유해 보겠습니다.
(질문)
"안녕하세요. 저는 간화선으로 수행을하고 있는 (??)이라고 합니다.
스승님에게 화두를 받고 하고 있는데 내가 왜 이것을 하고 있는지 모르겠다는 생각이 자꾸 듭니다.
제가 모르고해서 그런지는 몰라도 답답하기만 하고 자꾸 하기가 싫고 괴롭습니다.
다른 도반들도 잘 모르는것 같고 방법을 알고 계시는 것이 있으면 알려주실수 있겠는지요?"
라는 질문 내용이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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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답변)
안녕하세요 귀한 질문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간화선은 원체 많은 분들이 하고 계셔서 저까지 할 필요가 있을까 싶어 그동안 설명이 뜸했는데요.
결론부터 말씀드리면 지금 (??)께서는 수행을 아주 잘하고 계시는 거랍니다.
왜냐하면 지금 말씀하신 것처럼 마음이 답답하고 앞이 꽉 막힌듯한 것이 간화선의 핵심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 이유는 간화선은 의문(疑問/의심)으로 들어가는 수행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간단하게 간화선의 원리를 정리해 드리고 보충 설명을 해보겠습니다.
(정리)
여기서 말하는 의문이란 "이게 뭐지?" 하는 의문을 말하는 건데요.
경상도 말로 [이뭣고]라 하지요.
말 그대로 [이게 뭐지?] 하면서 의문을 가지고 하는 수행이란 뜻입니다.
모든 화두가 의문형이란 뜻입니다.
절실하게 알고 싶고, 가지고 싶을 때 누구나 사람은 그것만 생각하고 보게 되잖아요?
이것도 마찬가지랍니다.
예를 들면 간화선뿐만이 아니라 모든 수행은 이런 식으로 하셔야 한답니다.
한 어린아이가 그동안 절실하게 가지고 싶던 장난감을 선물받았을 때 그 장난감이 어떻게 생겼는지 정신없이 빠져들듯이..
누가 불러도 모르고 밥을 먹으라 해도 이 아이는 귀에 들어오지 않지요.
그 이유는 이 아이의 모든 의식은 그 장난감으로 가 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이 아이는 장난감 외에는 다른 것은 생각도 없습니다.
이때 그 아이는 본성과 그 장난감 외에는 남아 있는 것이 없답니다.
만약에 그 아이가 이때 장난감을 버린다면 그 아이는 본성(불성/성령/마음)만 남을 것입니다.
이때가 견성을 하기 위한 좋은 기회랍니다.
모든 수행은 이렇게 접근을 하셔야 한답니다.
화두를 너무나도 간절하고 절실하게 의문을 가지고 보라는 뜻입니다.
그러다 보면 나중에는 그 화두만 남께 된답니다.
이 상태가 마치 의문이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의단(疑團)이라 표현하는 것이고요.
여기서 정말 많은 수행자들이 잘 모르고 계시는 중요한 것이 있는데요.
이렇게 화두만 남아있을 때 화두를 버리셔야 한답니다.
이것이 [화두 타파]랍니다.
이렇게 화두를 버렸을 때 그 자리를 잘 관찰해 보시고 느껴 보십시오.
그 자리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들어보시라는 뜻입니다..
그 자리를 완전히 내 것으로 만드는 방법 또한 그 자리를 보는 것입니다.
여기까지가 매우 중요하답니다.
그 뒤로는 모든 것을 그 자리가 알아서 할 것입니다.
스스로 마음에서 일어나는 것 또는 메시지가 있을 겁니다.
왜냐하면 그 자리는 스스로 굴러가는 자리이니까요.
그리고 그 자리는 (??) 님 보다 피곤하고, 괴롭고, 고통스러운 것들을 더 싫어하기 때문에 절대로 그런 곳으로 (??) 님을 이끌고 가질 않는답니다. (진실)
그런데 아무리 본성(불성/성령/마음) 이 길을 일러줘도 못 알아차리면 아무런 소용이 없겠지요.
그래서 자주자주 마음을 보고 알아차리는 연습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다음부터는 (??)께서 할 일은 모든 것은 그 자리에 맡기시고 믿고 일생을 살아가시면 되는 거랍니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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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충설명)
초기에는 지금 (??)께서 겪고 계시는 현상 등은 누구나 겪는 현상이랍니다.
특히 좌선을 때에는 상기병이라 해서 화기가 머리 위로 솟구치는 경우도 있는데요.
저도 초기에는 화기가 머리 위로 뻗쳐서 겁을 먹고 풀곤 했답니다.
그러나 계속 반복하다 보면 적응이 되어서 괜찮아지는데요.
수행을 하다가 겪게 되는 것들은 큰 걱정을 안 하셔도 된답니다.
제 경우는 초기에 아주 작고 매우 밝은 반딧불 같은 물체가 눈앞을 휙"~ 휙"~ 지나가는 바람에 신경이 쓰이곤 했는데요.
나중에는 제 경우 그놈과 놀았답니다.^^
속으로
"빨리 와? 빨리 다시 와봐..?"
하면서 말이지요.
다른 분들도 별의별 것들이 수행자들을 괴롭히는 경우가 많은데요.
평생을 의식을 밖으로만 돌리다가 갑자기 안으로 돌려서 생기는 현상들이니 큰 걱정거리는 아니랍니다.
제가 (??)에게 당부드리고 싶은 것은..
절대로 어느 것이 되었던 그들과 싸우지 말라는 것입니다.
손오공처럼 그들과 싸워서 이기면 별문제가 없지만 초기에는 대부분 의식에 힘이 없는 상태라 십중팔구는 저팔계처럼 이러한 것들에게 끌려다니기 바쁘니까요.
이럴 때에는 그냥 이것들을 바라보십시오..
간화선도 매 한가지랍니다.
왜냐하면 간화선의 본 뜻은 [화두를 본다]란 뜻인데 화두를 그냥 보시면 된답니다.
문제는 화두를 볼때(또는 들 때) 지금처럼 마음이 답답하거나 괴로운 경우인데요.
이럴 때에는 화두 대신 그 답답한 마음을 화두 삼아 바라보십시오.
만약에 번뇌 망상이 일어나면 그 번뇌망상을 바라보고,
만약에 생각이 번잡하면 그 생각을 바라보십시오.
또 마음이 괴로우면 그 괴로운 마음을 바라보시고요. (혜가가 했던 방법임)
그러다가 생각과 마음이 잠잠해지면 그때 화두를 바라보시면(또는 들면) 된답니다.
무엇이든 좋습니다.
내게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모든 것들을 알아차리고 바라보십시오. (그렇다고 전부 다 알아차리라는 얘기는 아님, 한 가지만 골라서.. 이런 분들이 진짜로 있음^^)
부처님도 고(苦)를 바라보다가 깨달았고,
혜가도 달마가 유도하는데로 그 괴로운 마음을 바라보다가 깨달았고,
경허선사도 여사미거 마사도래(驪事未去 馬事到來)라는 화두에 꽉 막혀서 괴롭고 답답해하다가 [콧구멍 없는 소] 내용에서 힌트를 얻고 마음을 보고 깨달았으니까요.
소는 코로 숨을 쉬는데 콧구멍이 없으면 어떻게 되겠어요?
숨을 쉬고 있는 것을 알아차리고 있는 바로 그놈..
들숨 날숨을 보고 있는 바로 그놈..
(호흡관 수행법은 들어오고 나가는 호흡을 알아차리는 수행법임)
내게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을 보고 알아차리고 있는 바로 그놈..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리고 있는 바로 그놈..
화두를 보고 있는 바로 그놈..
화두를 궁금해하는 바로 그놈..
콧구멍이 없어서 숨을 못 쉬고 있는 바로 그놈..
배고프면 배고픈 줄 알고 똥 마려우면 똥 마려울 줄 아는 바로 그놈..
모든 수행은 이렇게 접근을 하셔야 한답니다. (※)
문제는 많은 수행자들이 잘 모르고 있는 부분은..
화두를 본다고 해서 화두만 보는 사람들이 많으신데요.
이것은 크게 잘못된 수행이랍니다. (화두만 보고서는 결단코 깨달을 수 없음)
화두를 보되 마음도 같이 관찰을 하셔야 한답니다.
손가락이 달을 가리키는데 달은 안 보고 손가락만 봐서야 무슨 의미가 있을까요. (※)
모든 수행은 마음과 연관 지어 하지 않으면 아무런 소용이 없답니다.
문을 열고 들어가야지 문고리만 잡고 만지작 만지작 하고 있어봐야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 이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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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사실을 먼저 아시고 다음은 이렇게 해보십시오.
이렇게 화두를 계속 들고 있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답답한 마음도 안정이 되고 모든 번뇌 망상들도 잠잠하게 되는데요.
이때 화두를 바라보면 화두 하나만 생생하게 남아 있는 것을 아시게 될 겁니다.
마치 이 모양이 화두가 뭉쳐 있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의단(疑團)이라고 표현하기도 하는데요.
의문이 뭉쳐 있다는 뜻이지요.
이 상태에서 '의단을 버리는' 또는 '없애는' 것을 [화두 타파]라 한답니다.
[화두 타파] 란 깨어서 없애는 것을 말하는 건데요.
본성과 화두 둘 중에 하나가 없어진다면 무엇만 남을까요? (※ 간화선의 핵심)
[화두 타파]는 사성제로 하면 [멸성제]에 해당한답니다.
어떤 수행을 하시든 어떤 대상이나 형상을 쫒지 마십시오.
화두라는 상도..
부처라는 상도..
예수라는 상도..
신(神)이라는 상도..
왜냐하면 바로 당신이 신(神)이니까요.
그러니 자신을 보십시오.
자신에게서 찾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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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많은 분들이 간화선은 어려운 수행이라고 하시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원리를 알고 하면 전혀 그렇지가 않답니다.
왜냐하면 간화선만큼 확실하게 의문을 던져주는 확실한 수행 방법도 없기 때문이랍니다.
여기서 말하는 의문은 머리를 굴려서 푸는 것이 아니랍니다.
어린아이처럼 그냥 궁금해하면서 화두를 보는 거랍니다.
그리고 그 목적은 화두를 푸는 데 있는 것이 아니랍니다.
화두를 통해 내 마음을 보기 위함이랍니다.
그러면 자연히 화두도 풀린답니다.
왜냐하면 모든 화두는 마음자리 하나를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기 때문에 마음 하나만 풀면 모든 화두는 풀릴 수 박에 없답니다.
이것을 머리로 아무리 풀려고 애를 써봐야 소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설령 머리로 화두를 푼다 해도 그것이 무슨 의미가 있겠습니까?
간화선은 화두 하나로 사방팔방으로 다 열고 들어갈 수 있는 수행 방법이기 때문에 처음이나 끝이나 모두 화두 하나만을 간절히 보셔야 한답니다.
그 외에는 없답니다.
간화선의 최고 장점은 화두 하나로 모든 것을 해결할 수 있는 편리함인데요.
그 편리함을 후대 사람들이 잔뜩 포장들을 해놔서 어렵게 느껴지는 것뿐이랍니다.
끝으로 제 경우는 간화선으로 이 법을 알게 된 경우는 아니지만 깊은 삼매에 들 때에는
"이뭣고.." "이뭣고.." 하면서 의식을 마음자리에 두면서 안으로 깊숙이 깊숙히 밀어 넣는 경우인데요.
제가 느끼는 간화선은 깊은 삼매에 들고자 할 때에 아주 유용한 방법이라고 생각한답니다.
뭐라 그럴까? 뒤에서 한 번 더 쳐주는 그런 느낌이 들거든요..
아무튼 모든 분들이 좋은 결과를 보셨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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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초보자 내용
이 글은 수행을 처음 하시는 분들을 위한 내용이랍니다. ♡
오늘도 사성제(四聖諦)에 대한 내용 중 고성제(苦聖諦)를 끝내고 집성제(集聖諦)의 수행 방법인데요.
사성제의 전체 내용을 한문식으로 표현하면..
고(苦)·집(集)·멸(滅)·도(道)라고 말씀드렸는데요.
이 네 가지의 수행 방법은 해탈로 가는 수행 순서를 말하는 내용이랍니다.
고(苦)와 집(集)은 깨어서 알아차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멸(滅)은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방법을 기록해 둔 것이라 말씀드렸고,
도(道)는 이 모두를 성공시킨 후 [팔정도]나 [바라밀]등을 기준으로 행하면서 후 공부를 이어나가는 것들을 기록해 놓은 것이라고 말씀드렸습니다.
그리고 간화선도 이 사성제를 응용해 중국인들에게 맞게 수행 방법이 개발된 것이라 말씀드렸답니다.
사성제를 요즘식으로 표현하면..
(1)
고통과 괴로움(즐거움도 포함) 등을 깨어서 알아차려보아라,
(2)
모든 괴로움과 고통은 어디서 왔다가 어디로 사라지는지? 그 원인을 알아차려보아라,
(3)
마음에 것들은 욕망의 완전한 소멸이며, 버림이고, 포기이고, 그것으로부터의 해탈이며, 초연함이다.
쉽게 말해 모든 것을 마음에서 들고 있지 말고 내려놓고, 버리라는 뜻입니다.
(4)
도(道)는 깨닫고 증득을 했으면 [팔정도]나 [바라밀] 등을 기준으로 지속적으로 관리해 나가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지금은 이러한 것들은 크게 신경을 쓰지 마시고 열심히 나와 내 마음과 현재 이 순간을 깨어서 알아차리는 일에만 집중해 보시기 바랍니다.
간화선으로 하시는 분들은 화두를 열심히 깨어서 알아차려보시고요.. <고(苦) 와 집(集)>
열심히 하지도 않으면서 수행이 이러쿵저러쿵하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답니다.
그리고
초보자들에게 제일 중요한 것은 (1)(2)랍니다.
(1)과(2)가 숙달된 분들은 (3)으로 들어가시면 된답니다,
(3)을 이루신 분들은 (4)는 한결 수월하게 이루어 나갈 수 있답니다.
그러나 바로 (3)과 (4)로 들어가기에는 어려움이 따를 건데요.
그러나 (3)은 바로 해보시는 것은 의미가 있답니다.
그 이유는 과거 생에 수행을 오래도록 하셨던 분들은 가능할 수 있으니까요.
그러나 일부 사람들이 바로 (4)를 통해 수행을 하는 것이라고 가르치는 분들이 많으신데요.
이것은 모르고 하는 소리랍니다.
왜냐하면 (4)는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이 팔정도 등을 기준으로 오후 공부에 해당하는 것들이라 그렇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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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과 (2)를 하라는 이유는 예를 들어 비유를 하자면 마른 땅에 박힌 잡초를 뽑을 때에는 물을 주고 갈아엎어야 잡초가 잘 뽑히고 곡식을 심기가 좋은 것과 같답니다.
고(苦)의 알아차림을 통해 나의 마음을 말랑말랑하게 하라는 뜻입니다.
(저도 이것을 거쳤답니다.)
그러면 한결 수월하게 멸(滅)을 할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
(1)(2)를 거치지 않고도 (3)이 되시는 분들은 바로 (4)로 들어가십시오.
참고로 부처님이 말씀하시는 고통이란 즐거움과 행복도 포함이 된답니다.
한번 즐거움을 맛보면 대부분이 또 그 즐거움을 맛보려고 다시 그 고통 속으로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깨닫지 못한 사람들은 이미 자신 안에 엄청난 즐거움과 행복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에 자꾸 밖에서만 즐거움과 행복함을 구하려는 것입니다.
자기 안에 보물이 있다는 사실을 모르는 것이지요.
부처님이 했던 방법은 이렇게 네 가지의 순서로 수행을 해나가는 방법인데요.
말만 어렵지 마음먹고 실제로 해보면 쉽답니다.
다만 방법을 모르고 하거나 하고자 하는 의욕과 성의가 없으면 정말로 힘만 들고 어렵지요.
(수행자들 중 이런 분들이 정말로 많음)
간화선도 사성제의 수행 방법을 그대로 응용한 수행 방법이랍니다.
고(苦)는 화두로 대신한 것이고,
집(集)은 의단(疑團)을 말하는 것이고,
멸(滅)은 화투 타파를 이르는 것이고,
도(道)는 도인의 길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우리들도 오늘 내용을 잘 듣고 부처님 식으로 따라 해 보겠습니다.^^
(※)
여기서 말하는 법이란 나의 몸을 포함해 마음 밖의 모든 것들을 말하는 것이랍니다.
먼저 부처님이 무슨 말씀을 하시는지 잘 들어보겠습니다.^^♡
(※)
들으실 때 각자가 본인들 마음과 연관시켜서 들어보십시오.
그러면 한결 이해하시기 좋고 어쩌면 중간에 깨달으시는 분들도 나올 수 있답니다. (진실)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www.youtube.com/playlist?list=PLdI9V6YYR96JCtEaMZJYfcrU6eEYW3ubv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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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것들을 깨어서 알아차리란 뜻이랍니다..)
대념처경. 16 법념처 E 4성제 3 멸성제
2. 괴로움의 소멸의 진리 멸성제
멸성제는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부처님의 가르침이랍니다.
지난주에 이어서 보시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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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20~
마음과 물질의 세계에서 눈의 의식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귀의 의식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코의 의식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혀의 의식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몸의 의식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의식이 유혹적이며 즐거운 것이다.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이다.
~4: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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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우리들은 눈, 귀, 코, 입, 몸, 마음을 통해 들어오는 정보들로 인해 많은 유혹과 즐거움들을 추구하려 하지요.
이러한 것들로 인해 내 마음에서는 수많은 것들이 일어납니다.
때로는 내 마음에서 활활 불이 타기도 하고, 때로는 잔잔한 호수 같기도 하지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내 마음에서 일어나고 사라지는 것들을 알아차리고 바라보십시오.
그러면 거기서 이 욕망이 없어지고 거기서 소멸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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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수행자 내용
이 글은 연꽃이 활짝 피신 네 분을 위해 신설된 글이랍니다. ♡
[유마경]은 [법화경]과 아울러 보살들을 가르치는 경전이랍니다.
이 말의 뜻은 깨닫고 증득한 사람들은 유마경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 보면서 부족한 점들을 보충해 나가 보라는 뜻이 담겨 있답니다.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vtL4VwXhpAU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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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27~
<수보리의 공양>
(좀 길어서 나누어 설명하겠습니다.)
세존께서는 다시 수보리에게 이르셨다.
“수보리여, 그대가 저 유마의 문병을 다녀오지 않겠는가?”
수보리가 여쭈었다.
“세존이시여, 제게는 저 고매하신 분을 문병할 능력이 없으니 문득 다음과 같은 일이 생각나서입니다.
언젠가 바이살리에 사는 유마의 집에 밥을 빌러 간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나의 발우에 좋은 음식을 가득 채우고 나서 말하는 것이었습니다.
‘대덕 수보리시여, 만약 그대가 음식의 평등성에 의해 일체 존재의 평등성을 알고 일체 존재의 평등성에 의해 부처님 본연의 평등성까지 깨달을 수 있다면 부디 이 공양을 받아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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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석)
참으로 옳은 말씀인데요.
깨닫고 보면 모든 것이 평등하답니다.
육체의 입장에서 보면 나와 네가 있고, 높고 낮음이 있지만..
본성을 깨닫고 본성 입장에서 보면 유마거사 말씀처럼 모든 것이 평등하고 그 자체가 한 공간이랍니다.
이것을 다른 말로 둘이 아니라는 뜻으로 불교에서는 불이(不二)라고도 하는데요.
안과 밖이 둘이 아니요 하나라는 뜻이고,
나와 네가 둘이 아니요 하나라는 뜻이고,
그 자리는 높고 낮음이 없는 하나라는 뜻입니다.
예를 들면..
여기에 여러 개의 풍선들이 있습니다.
각각의 풍선들을 하나의 생명체 들이라고 가정해 보지요.
사람 모양의 풍선도 있고, 개 모양의 풍선도 있고, 눈에 보이는 미생물들도 있고, 눈에 보이지 않는 미생물의 풍선들도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풍선 안에 있는 공기와 풍선 밖의 공기는 같을까요? 다를까요?
다르지 않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풍선이 터지고 나면 풍선 안에 있던 공기와 풍선 밖에 있는 공기는 다르지 않기 때문입니다.
우리들도 이와 같답니다.
우리들도 죽고 나면 그냥 본성 자리로 돌아가는 것일 뿐 지금의 나와 눈앞에 보이는 공간과는 다르지 않다는 뜻입니다.
마치 풍선이 터지고 나면 밖에 있는 공기로 돌아가듯이 말이지요.
그래서 안과 밖이 다르지 않다는 뜻에서 불이(不二)라 한답니다.
여기에 내가 있고 밖이 있겠습니까?
그래서 아공(我空)이라 하고 법공(我空)이라 하는 거랍니다.
이쪽 란에 계시는 분들은 이 정도 내용들은 이제 알아들을 줄 알아야 할 것입니다.
안과 밖뿐만이 아니랍니다.
모든 우주가 둘이 아닌 하나랍니다.
그런데 거기에 어떻게 높고 낮음이 있을 수 있고 너와 내가 있을수 있을까요?
오늘 유마거사가 수보리에게 하는 말이 이런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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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란은 최소한 1지 보살 또는 수다원과 이상은 되시는 분들이 보시는 란인데요.
본인들이 진짜로 깨달은 분들이시라면 이러한 것들을 직접 확인해 보실 줄 알아야 한답니다.
그리고 불성을 증득하려면 마음을 비우고 내려놓고 버리는 방법 외에는 없고요.. (진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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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선문답(禪問答)
중국 글은 뜻글자랍니다.
선문답에서는 마음을 뜻하는 것을 알아차리는 것이 키포인트랍니다.
모든 선문답은 그동안 공부한 내용들을 알아보는 것이랍니다.
깨닫고 증득한 것과는 크게 상관은 없답니다.
왜냐하면 우주보다 크고 넓은 이 불성(마음)의 세계를 몇 글자의 글과 말로서 가늠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그리고 깨닫고 증득한 기준점은 글이나 언어에 있는 것이 아니라 불성의 마음에서 오는 언행(言行)이 그 기준점이랍니다.
아무리 선문답을 잘 풀고 경전에 막힘이 없다 하더라도 불성의 마음이 드러나지 않으면 아무런 의미가 없다는 뜻입니다.
그러니 선문답 같은 곳에 너무 집착하지는 마시기 바랍니다.
우리들에게 중요한 것은 선문답을 통해 자신의 마음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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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주 선문(禪問)입니다.
장조(長爪)
[세존께서 장조(長爪) 범지(梵志)와 토론을 하시는데, 그가 언약하여 말하였다. "나의 이론이 지면 나 스스로 목을 베겠습니다." 그러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그대의 이론은 무엇으로 종(宗)을 삼는가?" 이에 범지가 대답하였다. "나는 온갖 법을 받아들이지 않는 것으로 종을 삼습니다." 이에 세존께서 말씀하셨다. "이 소견[見]이란 것을 받아들이는가?" 그러자 범지는 소매를 털고 물러났다.
그는 도중에 가서야 부처님의 말씀을 깨닫고, 그의 제자들에게 말하였다.
"나는 다시 돌아가서 머리를 베어 세존께 사과해야 되겠다." 그의 제자들이 말하였다. "스승께서는 인간, 하늘 무리들 앞에서 천행으로 이기셨거늘 어째서 머리를 베겠다고 하십니까?" 이에 범지가 말하였다. "나는 차라리 지혜 있는 사람 앞에서 목을 베일지언정 지혜 없는 사람에게 이기기를 원치 않는다." 그리고 스스로 탄식하여 말하였다.
"나의 이론이 두 곳에서 지게 되었으니 이 소견을 받아들인다면 진 자취가 거칠고, 이 소견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지는 일이 자세하겠다. 온갖 인간, 하늘 2승(乘)들은 아무도 나의 이론이 진점을 모르지만, 오직 대각 세존과 보살들만은 나의 이론이 진 점을 알 것이다."
그는 부처님께로 돌아가서 말하였다. "저의 이론이 두 곳에서 지게 되었으니 머리를 베어서 세존께 참회하겠나이다."
그러자 부처님께서 말씀하셨다. "나의 법에는 그런 일이 없다. 그대는 마음을 돌려 출가하라." 이에 5백 사람과 함께 부처님께 귀의하여 제각기 깨달음의 지위를 증득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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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
여러분들도 선답을 찾아보셨나요? ^^
만약에 세존께서 범지에게 했던 질문처럼 저에게도..
"그대의 이론은 무엇으로 종(宗)을 삼는가?"
라고 묻는다면 저는 대답 대신 바로 이런 자세를 취하겠습니다.
[좌선을 하고 현재 알아림인 삼매에 들겠습니다. ]
왜냐하면 저에게는 이런 이론이나 종(宗) 따위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굳이 종(宗) 따위를 대답해 보라 하신다면 저는 이렇게 세존께 대답을 올릴 것입니다.
[세존께서 굳이 저의 宗 을 물으신다면.. 지금 보고 있는 이 자리, 지금 있는 이 자리가 나의 종입니다.]
라고 대답할 것입니다..
~♡~
다음 주 선문(禪問)입니다. 22
[건달바왕이 부처님께 음악의 공양을 올리니, 그때 산천과 대지가 모두 거문고의 소리를 내었다. 이에 가섭이 일어나서 춤을 추니 건달바가 부처님께 묻되 "가섭은 큰 아라한으로서 모든 번뇌가 다하였아온 대 아직도 저런 습기가 남았습니까?" 하니, 부처님께서 "남은 습기가 없다. 공연히 법을 비방하지 말라" 하셨다.
이에 왕이 다시 세 곡의 거문고를 탔었는데, 가섭이 또 세 차례 춤을 추니, 왕이 묻되 "가섭이 춤을 추는 것이 사실이 아닙니까?" 부처님이 대답하시되 "춤춘 일이 없느니라" 하셨다.
이에 왕이 다시 묻도 "세존께서는 어찌 거짓말을 하십니까?" 하니 부처님이 대답하시되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그대가 거문고를 탔으니 산천과 대지와 목석이 모두 거문고 소리를 내는 것이 사실이 아니냐?" 하셨다.
이의 왕이 "그러하옵니다." 하니, 부처님께서 말씀하시되 "가섭도 역시 그러니라. 그러기에 춤을 춘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건달바왕이 믿어 받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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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문 원본이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하세요.)
獻樂
世尊 因乾闥婆王 獻樂 其時 山河大地 盡作琴聲 迦葉 起舞 王問佛 迦葉豈不是阿羅漢 諸漏已盡 何更有餘習 佛云 實無餘習 莫謗法也 王又撫琴三徧 迦葉 亦三度作舞 王云 迦葉作舞 豈不是 佛云 寔不曾作舞 王云 世尊何得妄語 佛云 不妄語 汝撫琴 山河大地木石盡作琴聲 豈不是 王云 是 佛云 迦葉亦復如是 所以寔不曾作舞 王乃信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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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내용에서도 마음을 뜻하는 것은 무엇이고 어떤 내용이 들어있는지?
잘 알아차려 보시고 선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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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다음 주 선문염송
[선문염송] 중에서.. (127편) 20220523
시비 (是非)
영가가 말호대 "글러도 그르지 않고 옳아도 옳지 않다. 털끝만치 어긋나도 천리를 잃는다. 옳으면 7세의 용녀가 당장에 부처가 되고, 그르면 선성 비구가 산채로 지옥에 빠진다" 하였다.
(뜻을 아시는 분들은 간단히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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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본 글자인데요 필요하신 분들은 참고해 보시기 바랍니다)
是非
永嘉云 非不非是不是 差之毫氂 失千里 是則龍女頓成佛 非則善星 生陷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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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답이 가능하신 분들은 답을 주시면 되겠습니다.
혹시 개인별로 답을 주시거나 질문이 있으시면 메일로 주셔도 됩니다.
e-mail : 119e@daum.net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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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법문 동영상
★ 오늘 내용도 예전에 도반 분들과 라디오를 통해 매일 같이 들었던 [고승 열전] 중에 하나를 골라보았는데요.
전편에서는 경허선사의 이야기를 들었고요.
오늘은 그의 수제자라 할 수 있는 [만공 대선사]의 이야기인데요.
한번 들어보시면서 같이 배워 보겠습니다. ^^
오늘 내용 중에도 가장 중요한 대목은 왼쪽 아래쪽 숫자에서 (1:16:33~)부터 경허선사와 훗날 만공선사와의 대화 내용이랍니다. (※중요)
그리고 후에 만공선사가 첫 번째 깨달음에서 일원상(一圓相) 을 보았다는 내용이 나오는데요.
쑥스럽지만 이것은 저도 2018년 12월 31일 저녁 12시 30분쯤에 보았답니다.
제 경우는 2016년 여름에 1차 그리고 2018년 12월이 2차인 경우인데요.
그날 저는 하루 종일 당구장에서 놀다가 차를 몰고 집으로 오는 중에 빙판길에 미끄러지면서 제 차가 버스를 받았고 뒤차가 제 차를 받는 바람에 죽다가 살아난 적이 있었는데요.^^
다행히 갈비뼈 두 개만 부러지고 자동차는 폐차를 시킨 적이 있었는데요.
(그때는 갈비뼈가 부러진 상태에서도 또 당구장에 가서 놀 정도로 당구를 좋아했었음, 지금은 완전히 끓음^^)
그때 자동차에 부닥치는 순간부터 대강 30여 분 가량을 [일원상]이 내 눈앞에서 떠 있었던 적이 있었답니다. (진실)
그런데 신기했던 것은 2년 후쯤에 일물 선원에 선원 장님과의 대화에서 스님도 똑같은 경험을 했다는 소리를 듣고 더욱 공감을 했던 내용인데요.
아무튼 여러분들도 알아차림을 열심히 하다 보면 별의별 일들을 많이 느끼게 될 것인데요.
그 모양은 완전히 둥근 모양은 아니었고요.
송구공 만한 것이 천주교에 가면 성모 마리가 가슴에 품고 있는 둥글고 빛나는 모양과 닮아 있었답니다. (진실)
아무튼 좋은 내용들이 많으니 천천히 들어보시면서 힌트를 얻어 보시기 바랍니다.♡
제목: 불교고승열전 05집 만공대선사 01~16 송만공1871~1946 스님
(아래의 링크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P33xcexlg7o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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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은 여기까지 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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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바라본다는 것은 지켜본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까?
여기서 지켜본다 means 의식으로 주의를 기울여 두루두루 자세히 보고, 자세히 따져서 생각한다.
(1)
(답변)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그리고 질문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바로 답변드리겠습니다. ♡
[바라본다는 것은 지켜본다는 의미로 보면 되겠습니까?]
이 내용은 맞는 말씀입니다.
그러나 어느 방향을 바라보고 지켜보느냐? 가 매우 중요하답니다.
뒤에 말씀하신 내용으로 보아 방향이 매우 잘못되어 있습니다.
수행은 의식의 방향을 어디에 두고 하느냐가 매우 중요합니다.
영가 스님은 이를 두고 "한치만 어긋나도 천 리 길로 빠진다" 했답니다.
알아차림의 방향이 중요하다는 뜻이지요..
이런 식으로 알아차려 보십시오..
내 안에 또 다른 나가 있다는 마음으로 해보십시오.
[현재 이 순간 알아차리고 바라보고 있는 또 다른 나..]
또는
[보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피부)의 느낌 감촉 등, 마음의 상태 등을 알아차리고 있는 또 다른 나..]
(2)
예를 들어..
(1) 밥을 먹고 계시다면..
[식감..? 씹는 소리..? 촉감..? 등을 알아차리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 의식이 가 계시면..? = OK]
[식감..? 씹는 소리..? 촉감..? 등에 의식과 마음이 빼앗겨서 생각 등과 함께 끌려가고 있다면.. NO입니다]
(2) 음악을 듣고 계시거나 또는 누구와 대화를 나누고 계시다면.. 상대의 말소리에 귀를 기울이시되, 듣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 의식이 가 있어야 한답니다.
(물론 중요한 대화나 강의 등은 그 대상에 집중을 하셔야 하고요, 이럴 때에는 의식만 한 번 더 깨어서 보고 들으시면 일도 하고, 수행도 하고, 본성의 알아차림도 극대화되고 양수겸장, 兩手兼將이라 할 수 있답니다)
여기서 중요한 포인트는 일을 하거나 할 때에는 의식이 밖으로 향해 있으되 51% 이상은 잠깐씩이라도 보고 있는 그놈 쪽으로 와 있어야 한다는 점입니다. (이상태가 찰나 삼매 임)
(3)
시간이 나서 혼자 할 때에는 의식을 한번 더 깨어서 현재 이 순간 알아차리고 있는 또 다른 나에게 의식이 가있어야 하고요..
이런 상태로 몇 분.. 혹은 몇십 분.. 혹은 며칠.. 몇 달을 알아차림 한 군데에 몰입하는 것을 일심 삼매라 한답니다.
이렇게 모든 알아차림(수행)의 방향은 나를 향해 있어야 한답니다.
절대로 님의 말씀처럼 수단이나 의식으로 주의를 기울여 두루두루 자세히 보고, 자세히 따져서 생각해서는 안 된답니다.
왜냐하면 이러한 것들은 모두가 의식이 외부로 가있다는 것이 되고, 두루두루 분별 심을 내고 있다는 것이 되고, 거기다가 생각까지 하고 있다는 것은 정 반대로 수행을 하고 있는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모든 수행은 의식이 나를 향해 있어야 한답니다.
밖을 알아차리고 있으되 51% 이상은 의식이 나를 향해 있어야 한답니다.
절대로 깨닫고 증득하기 전에는 의식을 밖으로 빼앗겨서는 안된다는 뜻입니다.
(4)
물론 깨닫고 증득한 후에는 이미 본성(불성/성령/마음)을 찾아서 쓰고 있는 상태라 어느 것이든 물들지 않기 때문에 상관이 없지만..
깨닫고 증득하기 전에는 조금만 알아차림을 방심해도 생각이나 망상 또는 밖으로 휩쓸려 들어가기 쉽기 때문에 삼천포로 빠지기 쉽다는 뜻으로 영가 스님도 "조금만 어긋나도 천리길로 빠진다" 하신 것이고요.
일단 깨닫고 증득한 후에는 의식만 안으로 돌리면 바로 본성의 삼매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에 큰 문제는 없지만 그전에는 아무리 안으로 의식을 돌려도 깜깜할 수 박에 없을 건데요. (이런 상태를 無明이라 함)
(5)
의식이 밖으로만 향해 있으면 죽도 밥도 아무것도 아닌 것이 된답니다.
깨닫고 증득해서 본 참에 들어가기 전까지는 마음에 힘이 없기 때문에 다른 방법이 없답니다.
깨닫고 증득하기 전까지는 아무리 몇십 년씩 수행을 하신 분들이라 하더라도 무조건 화두나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리는 것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답니다.
여기서 알아차리는 방향은 알아차리고 있는 또 다른 나로 향해 있으려고 노력하셔야 하고요..
간화선도 같답니다.
"화두를 보고 있는 나..!"
"화두만 남았을 때 화두만 치워버리면 남는 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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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연기 (6)
음..
마침 이에 대한 좋은 내용이 있어서 같이 첨부해 보겠습니다.
내용은 경허선사와 훗날 만공선사와의 즉문즉설 내용과 만공선사와 훗날 벽초 스님인 몽실 소년과의 즉문즉설 내용인데요..
중요한 내용만 따로 뽑아서 표시를 해 두었으니 잘 들어보시고 따라 해 보시기 바랍니다.
(표시)는 동영상 아래 왼쪽 부분의 숫자를 표시해두었는데요. 숫자를 맞추어서 잘 들어보시기 바랍니다.. (견성을 하는 데 있어선 아주 좋은 방법임.. 그러나 성불은 또 다른 문제임, 견성을 성불로 아시는 분들도 있는데 이것은 잘못된 것임)
(아래의 사이트를 복사 또는 누르세요..)
https://youtu.be/P33xcexlg7o
(화면 왼쪽 아래 숫자 표시임)
(1:29:20~1:31:59)
"깜짝 놀란 놈이 과연 무엇인고?" ~ "바로 스승입니다요 라는 바로 그놈은 누구냐 말이다."
(1:31:45~1:38:43)
"경허선사는 나에게 경학을 잘 하라거나 염불을 잘 외우라거나 그러시질 않으셨다."
(1:39:03~1:23:17)
그렇게 무겁게 느껴지던 바랑이 왜 가벼워졌을까요..?
PLAY
@공무연기 (7)
(3:15:25~ 3:20:33)
만공과 훗날 벽초 스님이 되는 몽술이와의 대화 내용 "아야~" 하는 바로 그놈!"
(4:07:33~4:12:00)
버리기, 끊기, "내 안에 또 다른 나~?"
(4:12:00~4:16:50)
몽실의 답변 중에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는다. 그럼 없는 것 아니냐?"
"아닙니다. 분명하게 있기는 있는 것 같은데 보이지도 않고 잡히지도 않습니다요."
위의 내용들은 잘 참고해 보시면서 따라 해 보십시오..
♡
@공무연기 (8)
(그 외 참고 사항)
★ 어떤 수행이든 의식이 밖으로 향해 있으면 안 됩니다.
★ 알아차림을 하는 목적은 본성을 알아차리기 위함 이랍니다. 또는 찾는 것입니다.
★ 그러기 위해서는 어느 수행으로 하시든 오직 하나에만 의식이 고정되어 있어야 합니다.
★ 그 고정되어 있는 장소는 내 몸 밖에 쪽이 아니라 안쪽이어야 하는 것이고요.
이상하게 들린 수 있겠으나 나 안에 또 다른 나가 있답니다.
이것을 찾아야 합니다.
그러기 위해서 나를 보라는 것이고요.
@공무연기 (9)
★ 다른 이론으로 자꾸 이것은 볼 수 없는 것이라느니? 찾는 것이 아니라느니? 하는 등의 말들은 모두 모르고 하는 소리랍니다.
★ 수행에서 말하는 [바라본다] [지켜본다] [알아차리다] 등의 의미는 모두가 조견(照見)을 말하는 거랍니다. 조견이 아닌 수행은 수행이 아니라 모두 외도(外道)로 보시면 됩니다. [조견]이란 내 쪽으로 돌이켜 보는 것이고요.
★ 현재 지금 이 순간 깨어있어 보십시오. 그러면 나도 모르게 "어?!" 하면서 알아차리는 것이 있을 겁니다. 그 후에 다시 저에게 답글을 주시면 점검 후 그다음 공부는 어떻게 하는지 알려드리겠습니다. (※)
★ 이것이 왜 중요하냐 하면 그놈은 늘 현재 이 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이놈은 과거도 없고 미래도 없고 오직 지금 현재 이 순간에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현재 이 순간에 의식을 두어야 하는 것이고요.
@공무연기 (10)
★ 지금 말하고, 듣고, 냄새 맡고, 맛보고, 몸으로 느끼고, 마음으로 느끼는 바로 그놈입니다.
★ 그놈을 찾아서 바라보고 알아차리고 친하게 지내는 것이 진정한 수행이고 알아차림이랍니다. 그전에는 현재 이 순간이든, 화두든 알아차림 연습을 하셔야 하는 것이고요..
★ 계속 현재 이 순간에 의식을 두다 보면 바로 나도 모르게 "어?!" 하면서 발견하는 날이 분명히 온답니다. 때로는 하자마자 바로 알아차리는 사람들도 더러 있고요.. 알아차리고 있는 공(空) 한 바로 그놈을 보실 수 있어야 합니다. (진실)
★ 어느 수행이든 절대로 의식이 밖을 향해 있어서는 안 됩니다. 생각이 돌아가서도 안 됩니다. 그리고 두루두루 자세히 보고 따지고 생각해서는 절대로 안 됩니다. 이렇게 되지 않기 위해서 한 곳에 의식을 두는 것이랍니다.
@공무연기 (11)
★ 간화선의 원리도 화두든 뭐든 한 곳에 의식을 두고 바라보고 알아차리다 보면 그 알아차림 하나만 남을 수 박에 없답니다. 이때 그 남아 있는 화두만 버리면 남는 것은 본성 하나만 남아있겠지요. 이때 그 공한 마음을 보시면 되는 것이고요.
★ 밖에 있는 대상들이 아니라 내 안에서 알아차리고 있는 놈을 아는 것이 중요하답니다.(※)
★ 사실 이것은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현재 이 순간 알아차리고 있는 상태에서 살짝만 안으로 의식을 돌리면 바로 느낄 수 있는 것이랍니다. 또는 의식이 깨어서 보는 그 순간 바로 느낄수 있는 것이랍니다.(※)
@공무연기 (12)
★ 수행은 이렇게 늘 깨어있는 것이고 늘 현재 이 순간에 의식을 두는 것이랍니다. 그 외에는 할 것이 없답니다. 해서도 안되고요.
★ 사실 늘 한자리에 고정되어 있는 것이기 때문에 찾고 말고 할 것도 없습니다. 그냥 현재 이 순간 깨어서 보시면 바로 눈앞에 있답니다. 중요한 것은 본인이 그것을 알아차려야 합니다.
예를 들어..
현재 이 순간 눈을 통해 뭔가를 보고 있다면 보고 있는 그 대상에 의식이 가있는 것이 아니라 지금 보고 있는 나를 알아차려 보라는 것입니다. (※)
★ 옛 어른들은 이것을 [눈으로 눈을 보라]고도 표현하셨는데요. 같은 의미랍니다. (※)
@공무연기 (13)
★ 그런데 여기서 특이한 점은 사람에 따라 어떤 사람은 눈을 통해 잘 알아 치리는 사람이 있고,
또 어떤 사람은 귀, 코, 입, 몸, 마음 등을 통해 잘 알아차리는 사람이 있답니다.
제 경우는 눈과 마음을 통해 잘 알아차렸던 경우이고요.
무엇이든 좋습니다.
잘 되는 쪽으로 현재 이 순간을 알아차리고 바라보되 의식은 그 알아차리고 있는 경계(境界) 선에 있어야 합니다.
@공무연기 (14)
★ 예를 들면 눈에 경계는 어디겠습니까?
앞을 보고 있는 눈알 표면 맨 끝 쪽에 바깥세상과 맞닿는 부분이 경계겠지요. 바깥세상과 눈이 만나는 그 지점 말입니다.(※)
바로 그 지점에서 찾아보십시오.
그러면 바로 눈앞에 있을 겁니다.
★ 눈으로 잘 알아차리기 좋은 사람은 눈을 통해서..
귀로 잘 알아차리는 사람은 귀를 통해서..
코로 잘 알아차리는 사람은 코를 통해서..
마음으로 잘 알아차리는 사람은 마음을 통해서 그놈을 보십시오.
부처님을 포함해 많은 선사들도 눈을 통해 깨달은 분들이 많답니다.
서산대사는 귀를 통해 닭 울음소리를 듣다가 그 경계선에서 알아차리셨답니다.
그 외에도 부지기수로 많답니다.
제 경우도 눈을 통해서 알아차렸던 경우이고요.
@공무연기 (15)
★ 그래서 옛 어른들은 바로 눈앞에 있다고도 하고, 바로 코밑에 있다고도 하는 거랍니다.
★ 호흡관을 할 때에는 들이 마시고 나가는 숨결 바로 그 경계에..
들숨 날숨을 알아차리고 있는 바로 그 자리에 그놈이 있다는 뜻입니다.
★ 절대로 말씀하시는 것처럼 means 의식으로 주의를 기울여 두루두루 자세히 보고, 자세히 따져서 생각해서는 안 된답니다.
특히 따지거나 생각을 해서는 더더욱 안되고요.
이것은 그냥 무념무상(無念無想)으로 보아야 한답니다.
그 어떠한 생각이나 대상을 쫒아가면 안 된답니다.
지금 바로 서 있는 그 자리에서 보든, 듣든, 냄새, 맛, 피부 느낌, 마음 상태 등을 알아차려 보십시오..
그리고 그 알아차리고 있는 또 다른 나를 발견해 보시고요..
@공무연기 (16)
★
그리고 끝으로 내가 전생에 얼마나 수행을 닦았는지 알아보는 방법이 있는데요.
이것을 불교에서는 근기(根氣)라 한답니다.
첫째 : 나는 마음을 보고 느낄 줄 안다. 그리고 마음을 비우고 버리기도 잘 된다. (최 상급)
둘째 : 나는 마음을 보고 느낄 줄 안다.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버리기는 잘 안된다. (상급)
셋째 : 다른 것은 모르겠고 나는 나 자신이 어떤 생각을 하고 있고 어떤 행동을 하고 있는지 잘 알 수 있다. (중급)
넷째 : 나는 아무것도 모르겠다. (하급)
여기서 네 번째에 해당하시는 분들은 화두나 아니면 어떤 대상을 쥐여 주고 알아차리게 할 수 박에 없는데요.
그 외에 분들은 이 중에서 잘 되는 쪽이 있으면 선택해서 알아차리고 바라보시면 된답니다.
@공무연기 (17)
★
(바라보기의 핵심 정리)
1. 무엇을 알아차리든 현재 이 순간 알아차리고 있는 내 쪽에 의식을 둘 것 (※)
2. 시간이 많을 때에는 좌선을 하든, 의자에 앉아서 하든, 아니면 서서 하든 허리를 곧게 펴고 깊이깊이 그 현재 이 순간의 알아차림으로 들어가 보십시오. (일심 삼매)
3. 일을 하고 있거나 움직이고 있을 때에는 순간순간 의식을 그 현재 이 순간의 알아차림에 둬보시고요. (찰나 삼매)
@공무연기 (18)
★
(마음을 비우고 버리기 핵심 정리)
1. 이것은 알아차림이 확립된 후라야 가능하다. 왜냐하면 알아차리지를 못하면 그 무엇도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2. 분리해서 알아차리면 유리한 네 가지 기능
[나는 (몸)의 기능을 분간할 줄 안다. 모른다?]
[나는 (의식)의 기능을 분간할 줄 안다. 모른다?]
[나는 (생각)의 기능을 분간할 줄 안다. 모른다?]
[나는 (마음)의 기능을 분간할 줄 안다. 모른다?]
이 네 가지 기능을 모두 분간할 줄 알고 알아차릴 수 있으면 (최상급)
@공무연기 (19)
하나라도 모르면 방편으로 넓은 곳에 나가서 눈을 감고 걸어보십시오.
눈을 감고 걸어보면 모든 기능 들은 비상 상태가 되기 때문에 이 네 가지 기능들은 모두 따로따로 분리되어 돌아갈 수 박에 없게 됨,
이때 생각의 기능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몸의 기능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
의식의 기능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마음의 기능은 어떤 상태에 있는지?
등을 분리해서 점검해 보십시오.
@공무연기 (20)
여기서 주의 깊게 보셔야 할 점은..
사람은 누구나 [몸]과 [생각]은 늘 쓰고 있는 것들이라 잘 알고 있는 반면..
[의식]과 [마음]은 굳이 내가 신경을 쓰지 않아도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관심을 두고 있지 않아서 잘 모른다는 점입니다.
복잡한 일이나 몸이 아프면 내게 신경을 쓰지 말라고 해도 몸이 아프기 때문에 쓸 수 박에 없지만
의식과 마음은 방치를 해도 잘 돌아가고 있기 때문에 대부분의 사람들은 신경을 안 쓰는 편이지요.
직접 해보면 처음에는 그동안 한 번도 내 의식과 마음을 분리해서 본 적이 없기 때문에 헷갈려 할 수가 있는데요. 그래도 계속 눈을 감고 걸으면서 이 네 가지 기능들을 구분해서 분리해 보는 법을 배워보십시오.
이것이 되어야 깨닫고 나서도 다른 공부들을 해나갈 수 있답니다.
@공무연기 (21)
이 네 가지 기능들을 분리해서 볼 줄 모르면 당분간은 위에 있는 알아차림을 지속적으로 하셔야 함,
만약에 분리해서 볼 수 있다면 의식의 힘으로 마음의 것들을 밖으로 끊임없이 밀어내 볼 것,
몸과 생각을 버리는 것도 같은 방법임, 그러나 마음을 비우고 버리는 것이 더 중요함, (이것이 100% 되면 성불)
이 버리기 내용이 세존이 흑씨범지에게 양손에 들고 있는 합환 오동꽃 두 송이를 버리라는 내용과 같은 뜻이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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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무연기 (1) ~ (21)
친절하게 설명하여 주셔서 감사합니다. 건강하셔요.
감사합니다.🙏
님께서도 늘 건강하시고,
부처님 법은 조금도 거짓이 아니니 열심히 하셔서 이번 생에는 꼭 성불을 기원드립니다.🙏
그리고 언제든지 알아차림을 하시다가 막히는 부분이 있으시면 질문을 주십시오.
왜냐하면 말씀이 없으시면 어디에 막혀있는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