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은 ‘서생의 문제의식’에서 비롯된 ‘가치’(대동 세상)를 자기 정치의 목적으로 삼아야 하고, ‘상인의 현실감각’을 그 수단으로 삼아야 한다. 대동 세상을 자기 정치의 분명한 목표로 기회 있을 때마다 계속해서 밝히고, 기본 시리즈 정책(기본 소득과 기본 대출과 기본 주택)을 후퇴시키지 말고 오히려 더욱 강화하여 일관된 메시지로 발표해야 한다. 그리고 이에 더하여 무엇보다도 대동 세상의 토대인 모든 사람을 위한 토지평등권과 모든 생명을 위한 생태평등권의 실현을 가장 중요한 정책으로 인식하고 표방해야 한다.
『예기』(禮記)의 <예운>편에 의하면, 대동(大同)의 정신적 기초는 대도(大道)이고, 물질적 기초는 천하위공(天下爲公)이다. 오늘날 한국 교회의 사명은 대도 곧 큰 도를 스스로 실천하면서 널리 전파하는 것이다. 바로 희년의 하나님 나라 복음을 실천하면서 전파하는 것이다.
그리고 한국 사회의 개혁 과제는 천하위공을 실현하는 것이다. <예운>편에서 천하위공이란 천하위가(天下爲家)와 반대말이기 때문에, ‘천하는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이를 그리스도교적으로 재해석하면, ‘천하는 창조세계의 모든 생명을 위한 것’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모든 사람을 위한 토지평등권(토지정의)을 넘어 모든 생명을 위한 생태평등권(생태정의)의 실현이 바로 천하위공의 실현이며, 이 토대 위에 비로소 대동 세상이 실현될 수 있는 것이다.
아래 인용한 천관율의 말은 옳다. 천관율은 이재명을 죽이기 위해서가 아니라 반대로 살리기 위해서 이 말을 하는 것이다. 이재명을 아끼기 때문에 이렇게 조언하는 것이다.
----------------------
[이재명에게 다음이 있을까]
출처: 천관율, alookso, 2022.04.08
“이재명을 직접 겪어본 사람들이 꼽는 특징이 있다. 그는 머리가 좋다. 두뇌 회전이 빠르고 학습능력이 좋다. 이게 특유의 생존본능과 합쳐져 기민하고 한 박자 빠른 이재명식 정치 스타일이 완성된다. 이것은 분명 좋은 자질이지만, 역설적으로 이재명식 정치의 최대 약점을 만들어낸다. 그의 정치를 보아서는, 그가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은지 알 수 없다.
정치인은 두 종류로 나눌 수 있다. 첫째, 어떤 세상을 만들고 싶다는 목적을 품은 사람이다. 자신의 당선은 중요하지만, 그게 목적은 아니다. ‘만들고 싶은 세상’으로 가기 위한 수단이다. 정치가에게 비전이란 정치를 하는 목적 그 자체다. 자신을 버려야 비전이 달성될 가능성이 올라간다면, 그는 자신을 버린다. 두 번째 유형의 정치인에게는, 이 목적과 수단이 뒤집힌다. 그는 자신의 당선이 목적이고, 그걸 위한 수단으로 표를 얻을 수 있는 비전을 찾는다. 그에게 비전이란 마케팅 아이템이다. 언제든 갈아 끼울 수 있다.
2022년 이재명 캠페인은 후자에 훨씬 더 가까웠다.
기본소득은 이재명식 정치의 대표 브랜드였지만, 대선 캠페인 과정에서 슬그머니 사라졌다. 그가 기본소득을 경로로 복지국가로 가려는 비전의 정치가라고 보기는 어렵다. ‘기본 시리즈’는 경기도지사까지 그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했다가, 대선이라는 다른 게임에서는 무대 뒤로 치워졌다. 기본소득에 찬성하든 반대하든, 이 과정에서 알 수 있는 사실은 이렇다. 이재명에게 그건 목적이 아니라 수단이었다.
기본소득 문제는 그저 하나의 예시다. ‘목적과 수단의 주객전도’는 2022년 이재명 캠페인 전체를 관통하는 특징이었다. 이재명 후보의 가장 유명한 슬로건은 “이재명은 합니다”다. 대선 공식 슬로건은 “앞으로 제대로, 나를 위해 이재명”이었다. 뭘 하겠다는 지향이 빠져 있다. 이런 마케팅적 접근법은 단기적으로는 표를 벌어주는 것처럼 보인다. ‘탈모 공약’이 좋은 예다. 하지만 마케팅적 접근법이 캠페인 전체를 집어삼키면 대세를 놓치게 된다. 유권자들은 저 후보가 해결하겠다는 문제가 무엇인지, 만들겠다는 세상이 어떤 모습인지 알 수 없다. 대선 동안 이재명 후보의 메시지는 ‘안티 윤석열 댓글러’처럼 들렸다.
이것은 선거 전략의 실패가 아니다. 생존본능과 좋은 머리가 합쳐져 나오는 이재명식 정치의 본질적 특징이다. 이재명식 정치에서 싸움, 생존, 승리는 수단이 아니라 목적이다. 비전은 더 잘 싸우고 살아남고 이기기 위한 수단인데, 이런 정치가 결정적으로 한계에 부딪히는 무대가 바로 대선이다. 민주당에서 큰 선거를 여럿 맡아 치른 한 정치분석가는 이렇게 말했다. “이 후보가 중도층에 비호감이었던 이유는 도덕성과 비전 문제의 결합이었다. 도대체 어떤 나라를 만들겠다는 건지 알 수가 없으니 불안한데, 잘 모르지만 믿고 맡길 만큼 도덕적이지도 않다. 둘이 조합되니까 중도층에서 ‘불안한 후보’라는 인상을 극복하지 못했다. 그래서 30대와 40대에서 막판 결집이 부족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정치가에게 필요한 자질을 이런 말로 요약한 적이 있다.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 서생의 문제의식이 없으면 정치는 마케팅의 경연장이 된다. 상인의 현실감각이 없으면 정치라는 험난한 과정을 뚫고 원하는 결과에 도착할 수 없다. 그래서 정치가에게 둘은 떼어낼 수 없는 본질적 자질이다. 문재인 대통령은 ‘상인의 현실감각’이 취약하다는 평을 들었다. 그 계승자인 이재명 전 후보는 ‘서생의 문제의식 없는 상인의 현실감각’이 대선 무대에서 어떤 결과를 낳는지 보여줬다.
그래서 현재의 이재명은 가치동맹을 만들 수 없다. 현재 민주당 주류 그룹은 본질상 가치동맹이다. 추구하는 가치가 시대의 요구와 맞든 어긋나든 간에, 이들은 민주화 투쟁의 역사와 노무현 대통령의 개혁 비전을 공유하는 그룹이다. 이재명계가 신주류로 올라선다고 해도, 가치동맹이 되지 않는 한 그 응집력은 현 주류의 공세를 버텨내기 쉽지 않을 것이다.
현재의 이재명이 당대표가 되었을 때 당이 패배로부터 진정한 혁신을 이끌어낼 가능성도 높게 보기 어렵다. 그것은 ‘서생의 문제의식과 상인의 현실감각’을 모두 요구하는 과업인데, 이재명 후보가 대선을 한 발 차이로 졌던 바로 그 약점이다. 초박빙이라는 결과가 그에게 성찰 대신 “하던 대로 한 발만 더 뛰자”는 결론을 남겼다면(이른 등판은 그 징후다), 당대표 이재명은 대선후보 이재명의 문제를 되풀이할 가능성이 높다.
이제 문제가 분명해졌다. 이재명 특유의 생존본능 정치는 그를 이 자리까지 끌어올린 가장 중요한 원동력인 동시에, 그가 ‘안으로는 비주류 밖으로는 비호감’의 덫을 빠져나가기 어렵게 만드는 족쇄다. 가장 믿음직한 성공 방정식이 가장 결정적인 도약을 막아선다. 이런 장면에서 자신의 성공 방정식을 버릴 수 있는 사람은 거의 없다. 이 전 후보의 생존본능 정치는 그를 8월 당대표 도전으로 인도할 가능성이 높다. 이 길이 아니면 죽는다는 후각이 (실제 사실이든 아니든) 이미 발동했다.
이재명에게 다음이 있을까. 지금까지 걸어온 길, ‘상인의 현실감각’을 극대화하는 생존본능 정치로는 2022년 캠페인의 본질적 문제가 해결되지 않을 것이다. 이 길로 가면 ‘후보에는 가까워지고 대통령에는 멀어지는’ 경로가 가능성 높은 미래다. 윤석열 정부에서 민심이 크게 돌아선다면 이런 길로 가도 대통령이 될 수는 있지만, 그건 기본적으로 상황의 통제권을 놓치는 정치다.
그가 ‘서생의 문제의식’을 갖춰 균형 잡힌 정치가로 돌아올 수 있을까. 이 역시 쉽지 않다. 생존과 승리가 목적이고 비전이 수단이라는 순서는 이재명식 생존본능 정치의 본질에 해당한다. 이 관계를 뒤집는 건 새로 태어나는 일이나 다름없다. 그게 가능했다면 2022년 캠페인이 가는 길은 꽤 달랐을 것이다.
“이재명에게 생존본능을 버리라는 건 말이 안 된다. 그건 자기 정치 전체를 부정하라는 얘기다. 하지만 지금 생존본능대로 따라가면 본인도 죽고 당도 죽는다. 유일한 가능성은, 이재명이라는 정치인 안에서 생존본능이 진화하는 길이다. 눈앞의 생존을 보는 본능이, 궁극적 생존을 보는 눈으로 진화해야 한다.” 대선 캠프에서 핵심으로 활동한 재선 의원의 평가다.
그는 대선 막판에 이재명 특유의 생존본능이 한 단계 진화했다고 본다. “젠더 문제에서 당장 표가 눈에 보이는 쪽으로 뛰어가지 않았다. 덕분에 마지막 순간에 청년 여성표 결집이 일어났다. 아 이거 동네축구처럼 눈앞의 표만 쫓아다니다가는 내가 죽는다는 생각이 드니까, 후보가 무게중심을 잡고 버틴거다. 살려고. 생존본능이라는 게 보통은 당장 눈앞을 보는 거지만, 더 진화하면 ‘사즉생’의 경지에 도달할 수 있다.”
발달한 생존본능과 좋은 학습능력이 최대한으로 결합하면, 그 결과는 ‘서생의 문제의식’이 주는 일관성과 가치지향에 한없이 가까워질 수도 있다. 이것은 지극히 이재명스러운 방식으로 이재명의 한계를 뛰어넘는 길이다. 쉽지는 않다. 그가 해낸다면 놀라운 일이 될 것이다. 그러나 역대 민주당 리더들 중에 이 정도 과제도 풀지 않고 대통령이 된 사례는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