거석문화의 흔적을 찾아내다(3)
◆동이족의 돌무덤? 장산국기의 무덤 찾아서 역사적 사실 밝혀가자.
장산이야기의 세번째 거석문화 얘기하면서 “상산마고당과 <장산국기>의 여지도를 연관지어보면 이조중엽까지는 장산 아닌 상산으로 불려왔던 것으로 추정되며 <장산국기>도 지도상 동남단에 위치된 것으로 보아 설화상의 장산국과 지도상의 장산국기는 다른 곳일 수 있음에 착안하여 탐사해보는 것이다. 또한 한자어의 표기상 기(基)와 묘(墓)의 글자체가 비슷하여 <장산국기(基)>로 표현된 곳이 어쩌면 장산국의 묘지(墓) 등 거석기념물의 위치표시가 아닐까?”라고 생각했다. 장산국의 족장과 그 부족들 무덤은 어떻게 만들어놓았을까? 東夷族의 묘장법인 돌무덤형태? 받침돌 없이 무덤방 위에 그냥 올려놓은 덮개돌? 평토장에 선돌의 형태? 고인돌? 적석총? 東夷族의 후손 高仙玉은 동해 따라 남하 남해가 맞닿는 바다근처 장산 구릉지에 정착 장산국이라는 나라를 세웠을 것이다. 그들에게도 조상은 숭배되었고 죽음은 소중하여 짐승과 외침으로부터의 보존방법 찾았을 것이다. 돌무덤 찾는 것, 거대한 피라미드, 수많은 고인돌群이 아니더라도, 그 흔적만으로도 장산국의 역사와 청동기문화를 연결하는 작업은 가능 할 것이다. 이것은 현재를 있게 한 과거의 규명과 미래에 대한 약속으로 장산의 훼손을 막아야하는 이유다.
(*피라미드(pyramid)는 일반적으로 정사각뿔 꼴의 고대 유적을 가리킨다. 고대 중국, 이집트, 메소포타미아, 중앙아메리카 등 많은 문명권에서는 피라미드 형태의 유적을 만들었다. 고구려의 태왕릉이나 장수왕릉등도 정사각뿔 형태이므로 피라미드의 일종이다. 그중에서 고대 이집트의 유적, MAk Did he 특히 기자평원의 피라미드가 가장 유명하다. 피라미드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피라미스이며, 이집트인은 “메르라”라고 불렀다 한다. (건립연대 : 기원전 2,500년대)
◆마고문화 찾아가면서, 장산국 건국신화를 역사적 사실로 증명하는 일 해보자!
우리의 육체와 영혼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가? 선사시대 사람들도 육체는 죽어 사라지더라도 영혼은 이승과 저승에서 어떠한 형태로던 존재하여, 인간 세상에 머문다고 믿었을 것이다. 이런 믿음에서 일정한 예식을 갖춘 장묘문화가 발생하게 되었고, 그것이 바로 무덤보존의의 시작이다. 장례의식은 오랜 기간 변하지 않는 그 민족 고유의 전통이다. 적석총, 즉 돌무지무덤은 한반도와 만주에 널리 분포되어 있는 한민족의 전형적인 무덤양식이다. 그러면 장산국 사람들의 무덤은 어떤 형태였을까? 혹시 수장품으로 옥기가 나오지나 않을까 그런 생각도 가져본다. 또 2,300년전 장산국은 모계사회였으며, 마고문화를 계승한 부족국가였을 것으로 추정한다. 마고문화국에서는 왕가의 여성들 가운데 능력 있었던 자가 통치권을 승계했었다.(符都志 참고) 그때 조상들은 장산의 천제단에서 제사를 지냈고, 그 시조 할머니를 마고당에 모셨을 것이다. 그러므로 천제단은 마고당의 북쪽이어야 하고, 정상을 지척에 두고 있는 곳이기도 해야 하며, 마고삼신할미에게 제사(祭祀)지낸 장소이기도하니, 신성시 할 엄숙함도 있어야하며, 천제(天祭)일 동, 서, 남, 북에 흩어져있던 부족민들이 쉽게 모일 수 있는 장소가 되어야 할 텐데 현 장소에서는 그런 흔적을 찾아보기 어렵다. 그래서 장산국의 천제단은 옛 장산국 중심부의 북쪽 방향인 병풍바위 근처로 추정해 보는 것이다. 그래야 장산국 건국신화 역사해석 가능하다. 8월 뙤약볕 아래 꼬마는 돌멩이가 궁금하다. 기청산 암석원보며 장산정상부에도 암석원 조성할 수 있는데…. 아직 공개되지 아니한 동이족의 유적, 내몽골과 중국 서안지역의 피라미드와 고구려 ‘적석총’의 기원문화를 찾아내어, 이집트의 동진문명을, 동이문명의 서진에도 연결시켜보는 상상력을 발휘해 보자!
호랑이가 살았다는 전설의 병풍바위 앞으로 추정되는 곳에 거처흔적 있고 좌측너덜에 사시사철 암반약수 흐르니 전설과도 맞아 떨어진다.
다음호에서는 장산국의 무덤 탐사를 통해 역사 해석 이어 볼 생각이다. |
첫댓글 장산국 마고성 그보다 더 많은 역사가 숨어있겠지요. 더듬어 그려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