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송가 435장인 '나의 영원하신 기업'을 들으면서 작은 소리로 따라 부르는데 후렴 부분의 가사에 이르러서 가슴이 뭉클해짐을 느꼈습니다.
'주께로 가까이 주께로 가오니...'
나는 주님께로 가까이 다가 가려고 하는데 주님이 뒷걸음치시면서 나를 멀리하신다는 느낌이 들었던 것입니다. 아, 주님, 왜 그러세요? 왜 나를 멀리하십니까? 나는 지금 주님의 손길이 필요한데..그래서 가까이 가려는데 왜 그러시냐고요..
그런데 잠시후에 마음에 와닿는 성령의 교통하심이 있었습니다. 주님이 멀리하시는 것이 아니라 내 믿음이 주님을 멀리하고 있다는 것을..나의 행실이 주님 보시기에 합당치 않고 나의 허물이 많은 탓에 거룩하신 주님께 내가 가까이 가려고 해도 내 마음같이 다가갈 수 없다는것을..
사랑의 주님은 항상 그 자리에 계십니다. 그런데 우리의 잘못과 부족함으로, 우리의 믿음이 연약함으로 임마누엘의 은혜를 누리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시기를 원하는데, 그러니까 임마누엘의 은혜를 끼치기를 원하시는데 우리의 믿음의 그릇이 작고 믿음의 상태가 건강하지 못하여 가까이 계신 하나님을 가까이 느끼지 못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 찬송가는 아시는 것 처럼 이렇게 시작되지요.
'나의 영원하신 기업 생명보다 귀하다...'
도대체 이 기업이란 것이 무엇이길래 나의 생명보다 귀하다는 것인가.. 내 목숨이 얼마나 귀하고 소중한 것인데..
이 가사에서 기업이란 말은 한자로는 '터 기'자와 '업 업'자를 쓴 것입니다. 그러니까 기업(基業)이 되는 것이지요. 기업체할 때의 그 기(企)자가 아니지요. 기(基)는 터, 기초, 토대, 근본 등등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업(業)은 직업, 일, 과업과 같은 뜻을 지니고 있다고 네이버 사전에 나와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의 영원하신 기업'에서 기업은 우리가 일을 하면서 사는 목적의 기초 또는 근본이 되는 것, 이런 의미일 것입니다. 왜 돈 벌고, 왜 출세하려고 하고, 왜 가정을 가지려하는가 하는 등등의 사람이 살기 위해서 노력하고 있는 그 근본적인 목적이 무엇 때문이냐 하는 물음이라고 말 할 수 있습니다.
그 대답이 무엇이냐 하면 바로 예수 그리스도 입니다. 그 분의 십자가입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얻게된 영생의 복 때문입니다. 이 귀한 것, 세상 어느 것으로도 비교될 수 없는 최고의 가치인 영생이 바로 우리의 영원하신 기업인 것입니다. 그 영생의 주체가 되시는 주 예수 그리스도가 바로 영원하신 기업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께서 택하신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영생을 주시기로 이미 계획해 놓으셨습니다.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그의 아내인 하와와 함께 타락하기 이전에 이미 준비해 두신 것입니다.
"헐몬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에 내림 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령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133:3).
헐몬산의 이슬같은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이 택한 백성들에게 성령으로 임하셔서 그 영혼을 거듭나게 하사 영생을 얻게 하시는 것입니다.
찬송은 이렇게 노래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 간구하고 있습니다.
'나의 갈 길 다가도록 나와 동행하소서'
'험한 길을 가는동안 나와 동행 하소서'
영원하신 기업이신 예수님께 간곡한 심정으로 구하고 있지요. 주님은 동행해 주십니다. 변치 않고 함께해 주십니다. 때로는 우리가 어긋난 길을 가더라도 함께 해주십니다. 바로 잡아주시고이끌어 주십니다. 예수님은 선하신 목자이시기 때문이지요.
세상 어느것과도 바꿀 수 없는 영생을 얻은 하나님의 자녀를 주님의 동행함에서 아무도 빼앗을 수 없습니다. 사탄이 빼앗지 못합니다. 그 어느 것도.. 절대로!
그래서 이 귀중한 진리를 하나님의 은혜로 알게된 사도 바울은 이렇게 고백을 했지요.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가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 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2:2).
예수님을 만나기 이전의 바울은 어떠했습니까? 그는 자신이 이스라엘의 율법에 정통하고 장로들의 유전에 밝으면 그것이 하나님을 바로 믿는 것이라고 여겼습니다. 그러면 이스라엘이 고대하는 메시야를 만나게 될 것이라고 믿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 일에, 그 학문에, 누구보다 열심이었고 또 뛰어 났습니다. 그러나 그가 나중에 알게 된 것은 그 모든 것에 하나님의 구원이 없다는 것입니다. 율법의 완성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분을 만나지 않으면 결코 영생을 얻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이 진리를 알게 된 것입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17:3).
"..아들을 믿는 자에게는 영생이 있고 아들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는 영생을 보지 못하고 도리어 하나님의 진노가 그 위에 머물러 있느니라"(요3:3).
인생은 오늘도 각 사람의 삶에 있어서 치열합니다. 열심을 다해서 사람답게 살도록 해야 합니다. 그러나 잊지 말아야 할 것은 우리의 영원한 기업은 바로 영생이며 그 영생을 얻게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이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 나라의 영생을 얻는 것이 인생의 기업이며 그 근본이신 예수 그리스도가 또한 영원하신 기업입니다. 이 진리를 알고 믿으며 또한 그것이 인생의 자랑임을 여기는 그리스도인들에게, 하나님은 이 땅의 삶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런즉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마6: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