디지털시대의 산골생활
노덕임
“정신 줄만 놓지 않고 살면 참 좋은 시상이여!”
마을 축제에서 덩실덩실 춤을 추신 어르신들께서 옹기종기 모여 앉아
세상 참 좋아졌다고 입을 모은다.
행복버스타고 목욕탕에 가고, 마이골작은영화관에서 최신영화를 본다.
체육대회나 축제가 있는 날이면 맛있는 음식이 넘친다. 쌀농사,
세탁, 청소까지 노동의 대부분을 기계한테 맡기고 여가를 즐길 수 있다.
이런 호사를 누가 누리고 살았을까?
요즈음 나에게 이 보다 더 즐거운 일은 눈을 감고 책을 들을 수 있는 일이다.
첨단기기로 까마득한 옛날의 문학을 즐긴다.
노안이 오고부터 저녁에 책을 보기가 쉽지 않았는데 첨단적인 독서법은
시력과 상관없으니 내게 맞는 독서법이다.
책을 영상으로 보고 싶으면 영상으로 본다! 귀만 열어놓으면 소설이
저절로 들어온다.
옛날에 라디오 연속극 시간 기다리듯 조용한 새벽시간이 기다려진다.
라디오문학관, 팟캐스트, 유튜브, 팟빵, EBS북카페. 튜브메이트......
상상도 못했던 세상이 노안이 온 시기와 맞춰져 행복을 누리고 있다.
고생은 만든 자의 몫, 즐거움은 내가 누린다.
적막강산 진안산골에서 새벽에 아직도 방송중이라는 멘트를 들을 때는
젊은이들의 고생이 짠하고 고맙다.
남의 덕에 이런 즐거움이 쏟아지다니 잘 활용하는 것도 한 가지 방법이다.
교육방송이나 출판사 등에서 하는 프로그램은 대부분 다운로드가 가능하다.
집안일을 하면서도 즐길 수 있어 노동과 여가를 동시에 누린다.
이 재미를 알기 전에는 일찍 잠이 깨면 답답했는데 낭독자와
나만의 오붓한 소통 시간이 설렌다.
무심코 시사용어를 찾아보다가 어!
시가 있네. 소설도 읽어주네.
까마득한 추억속의 동시까지 메뉴가 무궁무진하다.
독립운동가로만 기억했던 이육사시인에서 신세대 시인 오은의 시까지
시공을 초월해서 즐길 수 있다.
죄수번호 264번을 달고 뚜벅뚜벅 걸어 나와 시를 쓰는 듯 몰입이 되어
‘광야’와 ‘교목’은 암송까지 하게 되었다.
교육방송을 통해 오은이라는 시인을 알게 되었는데 디지털 시대에
딱 어울리는 시인이다.
‘엄마걱정’이라는 시를 남겨 놓은 기형도 시인의 시를 들으니
엄마 생각이 많이 나서 ‘엄마걱정’ 이라는 시를 자주 들었다.
기형도 시인의 엄마는 열무 삼십단을 이고 장에 갔지만,
우리 엄마는 소가 새끼 낳는 날이나 돼지가 새끼 낳은 날에
가장 행복해 보였다.
돼지새끼 팔면 밀린 납부금이나 용돈이 모두 해결되었으니 아들딸보다
소와 돼지가 우선이었다.
어미돼지가 성내면 새끼 물어 죽인다고 떠들지도 못하게 했는데
어미돼지한테 먹이를 주다 손가락을 물렸던 기억, 소가 새끼를 낳으면
외양간에다 물을 떠다 놓고 빌기도 했던 엄마 모습이 생각났다.
수 십 년 전에 읽어 제목만 기억하는 책들도 다시 들으면 추억이 솟아
고개를 끄덕인다.
청소년기에 밤새워 울면서 읽었던 미우라 아야코의 ‘빙점’과 세익스피어
명작 등을 들을 때는 희미했던 기억들은 뚜렷해지고 사라진 기억은 되살아난다.
책이 어렵고 두꺼워 관심조차 없던 톨스토이와 도스토예프스키의
인생을 들으면서 순탄한 인생은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유대인들의 생활 지침서 ‘탈무드’를 들으면서 흐트러졌던
마음에 각을 잡았는데 이어 나온 까뮈의 ‘이방인’을 듣고 뇌세포가
헝클어져서 멍 해진적도 있었다.
문명의 발달이란 몸을 편하게 즐겁게 하는 것. 천혜의 자연 환경에서
첨단 기술의 혜택을 받는 디지털시대의 산골생활. 낮에는 호미 들고 일하니
아날로그방식의 식사와 조화를 이룬다.
동호회 가입도 생각하고 있다.
기존 동호회 활동을 들여다보니 같은 책을 공유하고는 소통을 하다보면
이웃처럼 가까운 친구가 될 것 같다.
마을 어르신들 말씀처럼 건강관리만 잘하면 소설이 저절로 귀로 들어오니
들을 때마다 인생의 희극이 쌓여 감성에 젖는다.
조용한 진안 산골에서 나이 들어갈수록 좋은 친구가 될 것 같다.
첫댓글 요즈음 디지털 시대가 좋지요 참으로 편리하고 얼마나 좋은 세상인지 모르겠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