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드나무하면 천안 삼거리 능수버들이 생각 나고,
흥겨운 민요 가락이 한 없이 정겹습니다
봄이 올 때면 우리 곁에 친밀한 이웃처럼 다가서는 버들의 역사적 사실들은 어떤 것이 있을까?.
기원전 2241년 기록을 보면,
그 해 경자 93년 제재 류궐(庚子九十三年 帝在柳闕) 이라 했습니다
'단제(檀帝)께서 버드나무 궁궐에 계셨다'는 기록으로 보아
궁궐 담장과 사방 연못가에 버드나무가 우거지고,
백성들은 태평성대를 이루었으며 풍요로움이 넘쳤음을 보여 줍니다.
또 한단고기 삼한관경본기3 (桓檀古記 三韓管境本紀3)에는
‘가을 10월 명을 내려 백성들에게 칠회력을 반포하셨다.
이듬해(기원전 2228년) 봄 3월 처음으로 백성들에게 가르침을 베풀고
백아강에 버드나무를 심으셨으며… ‘ (秋十月 以命頒七回曆于民 明年春三月 始敎民 于白牙岡…. )
라는 기록으로 보면 버드나무는 성목(聖木)이었으며,
그 연원이 무척 오래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졸고 '호로자식의 변명'에 기록해 보았습니다만,
청 태종 누루하치는 중국 산해관에서 쌍성 밑까지 그리고 개원에서 압록강 입구까지 3천3백리 길이의
유조변 (柳條邊 버드나무 방책)을 쌓아 한족(漢族)들이 넘어 오지 못하도록 했습니다.
이 곳에 12개의 관문을 설치하여 고조선의 신향(神鄕)을 지키려 안간힘을 썼습니다.
만주지역은 성역이었고, 고조선의 본향이기도 했습니다.
또한 버드나무는 고조선의 신령스러운 신목(神木)이었으며,
한족과 동화됨을 방지하기 위한 방안이기도 했습니다.
이같은 기록들로 보아 버드나무는 또다른 의미의 신단수(神檀樹)는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고구려 시조 주몽의 어머니가 유화부인(柳花婦人)으로 버드나무와 무관하지 않으며,
고구려의 태동지 또한 이 지역이니
한민족과 더불어 유구한 역사가 이어지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버드나무는 한자로는 양지(버들 楊, 가지 枝)로 고려의 문헌인 계림유사에 기록이 보이고,
양지에 접미사 '질'이 붙어 '양지질'이 되었으며
'지'가 잇빨 치(齒)로 변화되어 '양치질'이 되었음을 알 수 있습니다.
양지는 일본으로 건너가 이 쑤시개의 대명사인 '요지'가 됩니다.
고대에는 무당이 귀신을 쫏을 때 버드나무 가지를 사용했고,
죽은 자의 입에 숟가락 대신 물린 것으로 되어 있습니다.
또한 수양버들은 한방에서 유지(柳枝)라 부르고,
수피는 유백피(柳百皮)라 하여 수렴제(收斂劑)로 약용으로 하며
가지는 진통, 마취, 이뇨에도 효과가 있고
아스피린의 원료로 알려져 있습니다.
불교에서는 버드나무가 자비사상과 결합하여 관음보살로 비유되기도 하며,
수류관음보살입상(水柳觀音菩薩立像)은 고려 불화 중 걸작에 꼽히고
불교 용구에서는 버들이 불경함이나, 향로 등의 장식 문양으로 나타납니다.
비니모경 (毘尼母經)에는, 부처님이 어느 날 제자들의 입에서 냄새가 많이 난다는
불평을 듣고, 버드나무 가지로 이를 닦으라는 가르침을 주었습니다.
이후 부터는 승려들이 지녀야 하는 첫 번째 물건이 되었다는 기록도 보입니다.
성경 구약에는 시내 버들이 초막절에 여호와께 드리는 4가지 식물인
아름다운 나무 실과, 종려가지, 무성한 가지 (레 23;40), 와 함께 기록되어 있으며,
'그 땅의 종자를 취하여 옥토에 심되 수양버들 가지처럼 큰 물가에 심더니
그 것이 자라며 퍼져서 높지 아니한 포도나무가 되어 ... ' (겔 17;5 - 6)라 했습니다.
또한 ' ... 그들이 풀 가운데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 (사 44 ; 4)' 라 하고, '
나의 신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내림이' 이 같다 했으니,
복음의 상징이 되겠습니다.
예수님이 처형될 때 만든 십자가 나무가 포풀라 나무였으며,
못이 나무에 박힐 때 흐른 신성한 피가 흐르자
포풀라는 몸을 떨면서 황송함을 표시한 뒤부터 버들은 바람이 없어도 잎을 떨고있다는
기독교의 전설이 있습니다.
최영전 님의 '성서의 식물'에 보면 버드나무는 미루나무(포풀라), 은백양 등 세가지로 구분해야
옳다고 본다라 했습니다.
버들의 라틴어 이름은 살리스(Salix)로 '속성한다' ,
'물과 가깝다' , '소용돌이 치다'는 뜻이 있습니다.
버드나무는 잘라내도 다시 돋아나고, 물가에서 물에 씻기면서도 끄덕 없이
더 잘 자라고 있어 이러한 어원을 갖게 됩니다.
조선조 4대 문장가의 한 사람이었던 상촌(象村) 신흠(申欽)은
'달은 천 번을 이지러져도 그 본질이 남아 있고, (월도천휴여본질 月到千虧餘本質)
버드나무는 백 번을 꺽여도 새 가지가 올라 온다 (유경백별우신지 柳經百別又新枝)라 하여
그 끈질긴 생명력을 노래했습니다.
중국의 문호 임어당(林語堂)은 '버들은 날씬한 가인(佳人)을 연상케 하는
기품이 있어 만인의 사랑을 받는다' 했습니다.
유요(柳腰)는 여인의 호리호리한 허리를, 미인의 애교어린 몸짓을 유태(柳態)라 하고,
버들잎 같이 아름다운 눈섭을 가진 여인을 최고라 했는데
이를 유엽미(柳葉眉)라 했습니다.
도연명(陶淵明)은 벼슬길을 버리고 낙향하여
다섯 그루의 버드나무를 심고 스스로를 오류선생(五柳先生)이라 하고
버들의 아름다운 시를 남기기도 했습니다.
하늘민족(天孫民族)의 장구한 역사와 함께 해 온
버드나무는 하늘님에 대한 성스러움으로, 시어(詩語)로
우리 가슴에 남아 그 뿌리를 세세토록 이어져 오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한문수 2008. 1. 22. 11:4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