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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강 십자가 - 큰 구원
“ 모든 사람이 죄를 범하였으매 하나님의 영광에 이르지 못하더니24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로 값없이 의롭다 하심을 얻은 자 되었느니라25 이 예수를 하나님이 그의 피로 인하여 믿음으로 말미암는 화목제물로 세우셨으니 이는 하나님께서 길이 참으시는 중에 전에 지은 죄를 간과하심으로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려 하심이니26 곧 이 때에 자기의 의로우심을 나타내사 자기도 의로우시며 또한 예수 믿는 자를 의롭다 하려 하심이니라”(롬 3:23-26)
서론 - 구속의 심오한 깊이
(송명희) 그 이름 - 예수 그이름 나는 말할수 없네 / 그이름 속에 있는 비밀을 그이름 속에 있는 사랑을 / 그 사랑을 말할수 없어서 그 풍부함 표현못해서 / 비밀이 되었네 그이름 비밀이 되었네 / 사람들 그 이름 건축자의 버린 돌처럼 / 버렸지만 내마음에 새겨진이름은 아름다운 보석 / 내게 있는 귀한 비밀이라 내 마음에 숨겨진 기쁨 / 예수 오 그이름 나는 말할 수 없네 / 그 이름의 비밀을 그 이름의 사랑을 / 참 좋은데 뭐라 말 할 수는 없고 / 얼마나 엄청나고 놀라운 구원인가? 왜? 예수 믿어요 하나님이 좋아서요!
“구속의 주제는 영원한 시대를 통하여 구속받은 자들이 마음과 정신과 언어를 총동원해서 배워야 할 문제가 될 것이다. 그들은 전에 그리스도께서 그의 제자들에게 알려 주시고자 하셨으나 그들이 믿음이 없어서 깨닫지 못했던 진리들을 이해하게 될 것이다. ― 실물교훈, 134(영문)” / 과연 쪼달리는 신앙생활인가? 풍성하고 윤택한 생활인가?
철저한 바리새인으로서 율법으로는 흠이 없는 자가되고자 했던 바울은 투쟁과 고뇌 속에서 사람의 의와 다른 하나님의 의를 만났다. 바울은 십자가를 연구하면서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영광스러운 구속의 심오한 깊이를 발견하였다. 그는 십자가가 우리를 위해 이룩한 일들을 보다 더 충만하게 우리에게 이해시키기 위해 “속죄(화목제물)” “구속” “의롭다함”(롬 3:23-26) “화목”(롬 5:10)이라는 4 단어를 사용한다. 그리하여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에 대한 깊고도 풍성한 입체적 이해를 갖게 해 주었다.
1. 화목제물(성소) - 사랑하기에 친히 준비하신 화목제물
죄는 가볍게 처리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죄는 파괴적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죄에 대해 분노하시고 사망으로 정죄하신다. 바울이 십자가를 자랑하는 것은 죄인인 우리가 당하게 되어 있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우리에게서 돌이켰기 때문이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진노를 우리에게서 돌이킨 “화목제물”이시다. “화목제물”이란 표현은 원래는 예물을 드려 신의 분노를 달랜다는 뜻이 담겨져 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사랑하시지 않았는데, 예수께서 자신을 드려서 하나님의 진노를 달래서, 우리에게 대한 태도를 바꾸셨단 말인가? 성경은 분명히 말한다.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 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그러나 이 큰 희생을 한 것이 하늘 아버지의 마음에 사람에게 대한 사랑을 일으켰거나 또는 아버지로 하여금 구원하시고자 하는 생각을 가지게 한 것이 아니다. 결코 그런 것이 아니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요 3:16)다. 아버지께서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은 이러한 큰 속죄를 인함이 아니니 그가 우리를 사랑하시므로 이러한 속죄를 준비하신 것이다.
아무도 인류의 비애를 대신할 수 없다.(질병, 죽음, 고통...) 오직 예수님 - 엄마 숨을 못 쉬겠어.” “아버지 구해주세요. 문이 안 열려요.” 대구지하철 방화사고의 희생자들 중 상당수가 사고 직후 휴대전화로 가족에게 구조를 요청하거나 급박한 상황을 알린 것으로 드러나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지난 2001년 9·11테러 당시 세계무역센터 건물에 갇힌 희생자들이 가족이나 사랑하는 사람들과 ‘마지막 통화’를 시도한 것을 연상케 한다. 중앙일보 보도에 따르면 장계순씨(44)는 18일 오전 10시쯤 학교에 간다면서 집을 나간 딸 이선영씨(20·진전문대)의 전화를 받았다. "엄마 지하철에 불이 났어.” 장씨는 처음에 명랑한 성격의 딸애가 장난을 한다고 생각했지만 계속 울먹이는 목소리에 심상치 않은 기색을 느꼈다. “영아야,정신 차려야 돼.” “숨이 차서 더 이상 통화를 못하겠어. 엄마 그만 전화해.” “영아야, 제발 엄마 얼굴을 떠올려봐.” “엄마 사랑해….” 죽음의 문제에 답을 할수 없는 한, 삶의 문제에 대한 아무런 대답도 없다.
“우리는 다 양 같아서 그릇 행하여 각기 제 갈로 갔거늘 여호와께서는 우리 무리의 죄악을 그에게 담당시키셨도다”(사 53:6).
“아브라함이 가로되 아들아 번제할 어린 양은 하나님이 자기를 위하여 친히 준비하시리라 ”(창 22:8) - 여호와 이레 (창 22:13-14) “이튿날 요한이 예수께서 자기에게 나아오심을 보고 가로되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요 1:29).
하나님은 의로운 분이시기 때문에 죄를 가볍게 용서하실 수 없다. 합법적인 구원의 길을 강구하셨다.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께서 우리가 받아야 할 하나님의 진노를 대신 당하게 하시는 것이었다. 예수님은 십자가에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 즉, 하나님의 진노와 죄에 대한 형벌을 우리대신 당하셨다. 사도 바울이 ‘화목제물’이란 용어로 말하려고 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었다. 그리스도의 죽음은 하나님의 사랑을 드러내는 한편, 하나님의 의로운 정죄를 자신이 친히 담당하심으로써 우리에게서 진노를 제거한다.
(똥구덩이에 빠진 아이를 건직자 뚜ㅢ어든 엄마)
“그리스도의 사랑이 우리를 강권하시는도다 우리가 생각건데 한 사람이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었은즉 모든 사람이 죽은 것이라 저가 모든 사람을 대신하여 죽으심은 산 자들로 하여금 다시는 저희 자신을 위하여 살지 않고 오직 저희를 대신하여 죽었다가 다시 사신 자를 위하여 살게 하려 함이나라”(고후 5:14-15).
2. 구속(救贖)-속량 노예시장
십자가에서 하나님이 이루신 구원을 설명하기 위하여 바울이 선택한 또 다른 단어는 구속(救贖)이란 단어다. 그 단어의 기본적인 의미는 “산다” 혹은 “되산다”를 뜻한다. 고대 헬라 문화에서 “구속”이란 말은 전쟁에서 비롯되었는데, 전쟁이 끝난 후 승자는 패배한 자들을 모아서 데리고 와서 노예로 팔았다. 중요한 사람을 포로로 잡았을 경우 승리자는 원수들에게 그 귀중한 포로에 대해 알리고, 몸값을 주면 풀어주겠다고 제의한다. 고대 유대인들은 구속의 절차에 매우 익숙했다. 재정적 이유로 자기 땅을 부득이 팔 수 밖에 없었던 히브리인 지주는 어느 때건 그것을 ‘무를’ 수 있었다(레 25:25; 룻 4:1-10). 보아스는 룻의 재산을 무르는 사람으로 행동한다. 유대인은 가난하게 되면 자신의 빚을 청산하기 위해 자신을 노예로 팔 수 있었다. 유대인 노예는 가까운 인척에 의해 속량될 수 있었다. 혹은 노예가 갚을 돈이 생기면 자신을 속할 수 있었다(레 25:47-49). 성경에서 주님은 그런 “친족 구주”가 되신다(출 6:6).
인간은 하나님께 반역하여 죄와 사단에게 종살이하고 있다(요 8:34; 딛 3:3; 롬 6:16). 사단의 포로들은 죄의 예속에 맞서서 싸워보지만 헛수고에 그친다. 삶은 고달프다. 쉼이 없다. 목적도 없고, 모든 것이 불확실하다.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전 1:2)라고 사람은 외친다. 사람들은 “썩어짐에 종노릇한다”(롬 8:21).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한다”(히 2:15). 자유가 없다. 그리고 결국 한평생 죄의 종살이를 한 삯은 사망이다(롬 6:23). (결국 죽을려고 열심히 폼나게 고생한다.)
그리스도께서 오신 것은 죄에 눌리고 마귀에게 종살이 하는 인류를 해방하기 위해서였다. 그분은 많은 사람의 대속물로 자신을 주셨다.(막 10:45; 딤전 2:5, 6). 그리하여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율법의 저주에서 속량하셨다.(갈 3:13). 베드로는 “너희는 그리스도의 피로 속량되었다”(벧전 1:18-19;계 5:9)고 말한다. 그리스도는 자원해서 자신의 생명을 주기로 선택하셨다. 그리고 그 분이 내신 속전은 그분의 피, 그분의 생명이었다.
만성신부전증을 앓고 있는 아버지를 위해 주저 없이 자신의 신장을 떼어준 한 수학 선생님의 효행이 잔잔한 감동을 주고 있다. 부산진구 백병원에서 신장이식 수술을 받고 치료 중인 삼성여고 수학교사 김우형(30) 씨. 김 씨는 자신의 거동도 힘들지만, 중환자실 무균실에서 치료를 받고 있는 아버지(김범화.60)걱정 뿐이다. 40년 전 군대에서 신장을 다치셔서 한쪽을 떼어낸 아버지가 최근 만성신부전증으로 다리가 부어 걷기 힘들고, 호흡곤란 증세까지 올 정도로 악화되자 김 씨는 주저 없이 신장이식 수술을 결정했다. "가족이잖아요. 아버지께서 제게 주신 사랑에 비하면 신장이식수술은 아무것도 아니에요. 결혼 안 한 남동생이 있지만, 행여나 신장수술을 한 사실이 배우자를 만나는데 걸림돌이 될까 봐 제가 이식수술을 하기로 했어요." 결혼한지 얼마 되지 않아 18개월 된 아들까지 있던 김 씨지만, 오직 아버지의 건강한 모습을 보고 싶다는 생각 하나로 술, 담배도 끊고 운동을 하며 체력을 길러오다 지난 9일 아버지와 나란히 수술대에 올랐다. 4시간에 걸친 대수술. 김 씨는 수술대에 오르면서도 그동안 아버지가 혈액투석과 복막투석 등으로 온몸에 기력이 다 빠질 정도로 힘들어했던 모습이 떠올라 두려움 따위는 느껴지지 않았다. 보통 이식수술을 하기 전 조직검사에서 6개 항목 중 하나만 일치해도 위급할 경우 수술을 시행하는데, 놀랍게도 김 씨는 아버지와 4개 항목이 정확하게 맞아떨어졌고, 수술도 성공적으로 끝나 빠르게 회복하고 있다. 통증을 이기지 못해 얼굴을 찌푸리면서도 '아프다' 소리 한번 하지 않는 아들을 보는 어머니 박명선(56) 씨는 그저 눈시울을 붉힐 뿐이다. 박 씨는 "누구와도 바꿀 수 없는 효자 아들"이라며 "건강한 신장을 아버지께 이식시켜 드리기 위해 철저히 몸관리를 하고, 되려 가족들에게 걱정 말라고 위로해주는 대견한 아들"이라고 말했다.
그리스도께서 사단에게 포로된 자들을 원수에게서 취할 권세를 가지신 것은 그분이 하늘 왕국이 통치되는 공의의 원칙들을 만족시키는 희생을 치르심으로써였다. 그리스도께서는 갈바리 십자가에서 인류의 속전을 치르셨다. (얘 내 뒤에 살짝 숨어라 이런방식이 아닐라 정정당당하게 구속의 값 속전을 치루셨다.)
“그가 곤욕을 당하여 괴로울 때에도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음이여 마치 도수장으로 끌려가는 어린 양과 털 깎는 자 앞에서 잠잠한 양 같이 그의 입을 열지 아니하였도다”(사 53:7). /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 6:19-20).
3. 의롭다 하심 (법정)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에서 이루신 구원을 설명하기 위해 바울이 사용하는 또 다른 단어는 “의롭다 하심”이다. 로마서 3장에서 바울이 사용하는 “의롭게 하다”는 단어는 “의롭게 만들다”가 아니라 “의롭다고 선포하다”를 의미한다. 그리스도를 믿는 사람들은 그가 얼마나 많은 죄를 지었든지 상관없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바른 관계에 들어갔기 때문에 의로운 자로 간주된다. 하나님은 그를 의로운 사람으로 보시며, 그렇게 그를 대우하신다. 이것은 모든 죄책으로부터의 무죄 방면이며, 모든 정죄와 형벌로부터의 해방을 발생시킨다. 그것을 나 개인에게 효력 있게 만드는 것은 믿음이다(롬 5:1, 3:25; 갈 2:16, 20).
구원은 오로지 믿음으로 말미암으며, 인간의 행위에 의존하지 않는다.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엡 2:7, 8).
마틴 루터는 로마서 3;21-26 이 구절들이 로마서 복음의 핵심을 담고 있을뿐 아니라 전체 성경의 중심으로 간주하기까지 하였다. “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 있게 하려 함이니라20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롬 3:19-20)
도덕법은 유대교의 체계와 마찬가지로 우리를 구원할 수 없다. 죄인을 구원하는 것은 도덕적 율법의 기능이 아니다. 율법은 사람을 의롭게 만들기 위해 의도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율법은 우리의 부족을 지적하고 우리를 그리스도께로 인도하기 위한 것이다. 율법이 구원을 줄 수 없는 것은 마치 증상이 병을 치료하지 못하는 것과 같다. “이제는 율법 외에 하나님의 한 의가 나타났으니 율법과 선지자들에게 증거를 받은 것이라”(롬 3:21).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대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그대는 죄를 도무지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앞에 받아들이는 바 된다.”(정로의 계단, 62)
마틴 루터는 하나님께 가납을 받고자 가톨릭의 자원을 샅샅이 뒤진 사람이다. 그는 선행의 길을 시도해보았지만, 그런 행위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을 발견했다. 루터는 후일 그 이유를 알게 되었다. 개별적인 죄들은 모두 인간의 잘못된 본성에서 자라나기 때문이었다. 본성(존재) 자체가 타락해 있었던 것이다. 거기에서 계속 나쁜 행위의 싹들이 움트고 있었다. 참회 제도는 잘못한 것들만 대상을 삼았다. 실상은 용서 받아야 할 대상은 전적으로 인간 자체라는 것을 그는 마침내 간파하게 되었다. 그렇게 빛을 찾아 헤매던 그는, 마침내 “하나님의 의”란 하나님이 은혜로 자비를 베푸셔서 우리의 믿음을 보시고 우리를 죄가 없는 것으로 취급하시는 그분의 의라는 사실을 발견했다. 1517년 10월, 마틴 루터가 로마서 연구로 얻은 이 새 통찰의 결과로 인해 개신교 종교 개혁이 시작되었다. 루터는 이렇게 말했다. “나 자신을 바라보면 어떻게 내가 구원을 받을 수 있을지 모른다. 그러나 예수를 바라보면 어떻게 내가 구원을 잃어버릴 수 있을지 모른다.”
“우리는 하나님의 율법의 요구들을 충족시킬 수 있는, 우리 스스로 만들어 내는 의는 조금도 가지고 있지 못하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피할 길을 만드셨다. 그분은 이 세상에서 우리가 당하지 않으면 안 되는 그런 시련들과 시험들 가운데서 사셨다. 그분은 죄 없는 생애를 사셨다. 그분은 우리를 위하여 죽으셨다. 이제 그분은 우리의 죄들을 가져가시고, 그분의 의를 우리에게 주겠다고 제안하신다. 그대가 자신을 그분에게 드리고, 그분을 그대의 구주로 받아들이면, 그대가 아무리 악한 생애를 살아왔다 하더라도, 그대는 그분 때문에 의롭다고 간주된다. 그리스도의 품성이 그대의 품성을 대신하게 되고 그대는 죄를 범하지 않은 것처럼 하나님의 앞에 가납된다”(정로의 계단, 62).
4. 화목(친밀한 연합)
“오직 너희 죄악이 너희와 너희 하나님 사이를 내었고 너희 죄가 그 얼굴을 가리워서 너희를 듣지 않으시게 함이니”(사 59:2)
죄인을 구원하는 하나님의 첫 긴급조치 / - 하나님의 구원은 우선 바른 관계로 정상화 하는 일에서부터 시작된다. (탕자에게 아들의 옷을 입히신 것처럼)
사도 바울은 십자가에서 하신 하나님의 구원 사역을 설명하는 네 번째 단어로 화목이라는 단어를 사용한다. 화목은 깨어진 관계를 전제로 한다. 죄는 얼마나 무서운가. 아담과 하와에게 어떤 일을 저질렀는지를 보라. 그것은 하나님과 그들 사이를 갈라놓았다. 그것은 사람과 사람 사이를 갈라놓았다. 부부 사이를 갈라놓았다. 사람 내부도 갈라졌다. 인류와 자연계 사이도 갈라놓았다. 화목이란 단어는 가족 내에서 사용되는 단어다. 사이가 벌어진 구성원들 사이의 하나 됨을 말한다. 이 개념은 죄로 인해서 깨어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관계의 회복을 말한다.
“곧 우리가 원수 되었을 때에 그의 아들의 죽으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화목하게 되었은즉 화목하게 된 자로서는 더욱 그의 살아나심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을 것이니라”(롬 5:10).
하나님과 사람 모두 죄에 의해 영향을 받았다. 인류는 반역과 죄책감을 통해 하나님에게서 멀어졌다. 한편 하나님은 죄에 대한 심판으로 인간으로부터 분리되었다.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화목을 막는 장벽을 제거하셨다. “또 십자가로 이 둘을 한 몸으로 하나님과 화목하게 하려 하심이라”(엡 2:16). “그의 십자가의 피로 화평을 이루사 만물 곧 땅에 있는 것들이나 하늘에 있는 것들이 그로 말미암아 자기와 화목하게 되기를 기뻐하심이라”(골 1:20). “곧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 계시사 세상을 자기와 화목하게 하시며 그들의 죄를 그들에게 돌리지 아니하시고 화목하게 하는 말씀을 우리에게 부탁하셨느니라”(고후 5:19). “이제는 전에 멀리 있던 너희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리스도의 피로 가까와졌느니라”(엡 2:13)
화목의 결과들 1) 하나님과 더불어 평화한다 2) 하나님의 은혜와 복에 접근 - 양자됨 3)
하나님을 우리 아버지로 부름. 하나님과의 교제 3) 기쁨 4) 동료 인간들과도 화목 5) 우주가 반역의 결과가 청산됨으로 말미암아 우주적 평화
“대쟁투는 끝났다. 죄와 죄인들은 없어졌다. 온 우주는 깨끗해졌다. 오직 조화와 기쁨의 맥박만이 온 우주의 만물을 통하여 고동(鼓動)한다. 생명과 빛과 환희가 만물을 창조하신 분에게서 끝없이 넓은 우주로 퍼져나간다. 가장 작은 원자(原子)로부터 가장 큰 세계에 이르기까지, 만물은 생물계와 무생물계를 막론하고 조금도 흠이 없는 아름다움과 완전한 기쁨으로 하나님은 사랑이시라고 선포한다”(각 시대의 대쟁투, 678).
미국의 앤드류 잭슨 대통령 재임 시에 있었던 일입니다. 조지 윌슨이라는 사람이 우편물을 훔치는 사람을 발견하고는 그를 권총으로 쏴 죽였습니다. 이로 인해 조지 윌슨은 체포되어 사형 언도를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그가 우편물을 훔치는 강도를 쏜 것이므로 정상이 참작되어 대통령이 그에게 무죄 석방의 특별 사면장을 내렸습니다. 그런데 조지 윌슨은.. 그에게 내려진 사면장 받기를 거부했습니다. 대통령이 사면장을 내렸는데 사형수가 이를 받으려고 하지 않으니 큰 문제가 되었습니다. 이 문제는 대법원까지 상정되었고, 마침내 수석 판사인 존 마샬이 유명한 판결을 내렸습니다. “사면장은 하나의 종이 쪽지이지만 그 가치를 받아들이는 사람에 의해 결정된다. 만약 사면을 거절한다면 그 사람은 용서받을 수 없다. 그러므로 조지 윌슨은 처형을 당해야 한다.” 조지 윌슨은 분명히 용서를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그 용서를 거부함으로 말미암아 결국 사형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결론 - 믿음은 하나님의 은혜를 받는 손
십자가를 통해서 사중(四重)의 구속 사역이 이루어졌다. 얼마나 영광스러운 구원인가. “우리가 이같이 큰 구원을 등한히 여기면 어찌 그 보응을 피하리요”(히 2:3).
그리스도의 희생적 죽음이 개인적인 칭의 경험으로, 속량(구속), 속죄 경험으로, 하나님과 화해하는 화목의 경험으로 체험되는 유일한 길은 믿음뿐이다. 복음은 하나님의 능력이다. 그러나 믿음 역시 공로가 못된다. 오직 은혜로 말미암아 놀랍고 풍성한 구원의 길이 준비됐다.
“이러하므로 내가 하늘과 땅에 있는 각 족속에게15 이름을 주신 아버지 앞에 무릎을 꿇고 비노니16 그 영광의 풍성을 따라 그의 성령으로 말미암아 너희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옵시며17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너희 마음에 계시게 하옵시고 너희가 사랑 가운데서 뿌리가 박히고 터가 굳어져서18 능히 모든 성도와 함께 지식에 넘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아19 그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함을 깨달아 하나님의 모든 충만하신 것으로 너희에게 충만하게 하시기를 구하노라”(엡 3:14-19)
(존 뉴톤의 구원 풍성함 -자비;로운 주하나님! 날 구원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