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6.03.12.
<흐리고 오후에 폭우>
오늘은 목요일, 다낭 여행 5일 째 날이다. 오늘은 오행산과 호이안 투어를 가는 날이다. 오행산은 Marble Mountain이라고도 하는데 호이안 가는 길에 있어 들르기로 했고 호이안은 해가 져야 볼거리가 많다고 해서 늦게 가기로 했다. Grab 기사는 어제 미리 섭외해서 오후 2시에 호텔 앞에서 만나기로 했다. 아침 8시쯤 일어나 스트레칭과 어깨운동 천천히 한 세트 했더니 1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서둘러 세수하고 조식 먹으러 갔다. 오늘도 샐러드, 계란, 베이컨, 호박죽, 바게트빵 등으로 배를 든든히 채우고 투어 나갈 준비를 했다.
기사는 약속대로 2시에 왔다. 그런데 오전에 말짱하던 하늘이 오후가 되니 먹구름이 몰려들더니 또 비가 오기 시작한다. 매일같이 비가 오니 이젠 지겹다. 그러나 어쩌겠는가, 때를 잘 못 고른 내 잘못이지...바나힐 갈 때 샀던 비옷과 우산 챙겨들고 호텔을 나섰다. 오행산은 호텔에서 20분 거리에 있는데 오행산 조금 못 미쳐 Marble Village가 있다고 해서 갔더니 대리석 조각품을 파는 대형 숍이다. 기사가 영어를 해서 편리하기는 한데 기사한테 속았다. 기사가 사람 데리고 오면 커미션을 받는 모양이다. 기사 무안하지 않게 대충 둘러보고 목적지로 향했다.
< Marble Village에 진열된 호화스런 대리석 소파 세트 >
오행산은 해변 가에 바싹 붙어 있는데 이름 그대로 동양 철학의 오행설에 따라 불(火), 물(水), 나무(木), 금속(金), 흙(土) 다섯 개의 봉우리로 이루어져 있다. 자연의 순환을 상징하는 다섯 개의 산이 바닷가에 솟아 있다는 점은 지리학적으로나 철학적으로나 매우 흥미롭다. 이 산은 산 전체가 거대한 대리석과 석회암으로 되어 있는데 대리석 부분은 단단해서 나무가 자라지 못하고 석회암이나 기타 다른 부분은 암석이 풍화되어 나무가 자란다. 멀리서 보면 대리석 부분과 나무가 자란 부분이 확연히 구별된다. 과거 이 지역 사람들은 대리석을 채취해 조각상을 만들어 생계를 유지했다고 하는데 지금은 자연과 관광 자원을 보전하기 위해 채굴이 금지돼 있다.
기사 말로는 먼저 현공동굴(Huyen Khong Cave)을 들어갔다가 엘리베이터로 '수(水) 산(Thuy Son)'을 올라갔다 내려오라고 한다. 수(水) 산은 오행설 중 물에 해당하는 봉우리로 오행산 중에서 가장 큰 봉우리이고 현공동굴은 수산에 있는 6개의 동굴 중에서도 가장 규모가 크다. 현공동굴 입장료는 2만동인데 동굴 입구 앞 조그만 연못에 황금메기가 살고 있다. 이런 색깔의 메기는 처음 본다. 동굴의 입구는 크지 않지만 안으로 들어가면 지름이 약 20~25m에 달하는 거대한 원형 광장이 나타난다. 천장 높이는 약 30m에 육박하여 동굴이라기보다 거대한 천연 사찰이나 성당 같은 느낌을 준다. 동굴 천장에는 5개의 큰 구멍(천창)이 뚫려 있어 평소에는 이곳으로 햇빛 줄기가 내려와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지만 오늘 같은 날은 빛줄기 대신 빗줄기가 쏟아져 내린다. 동굴 내부는 외부보다 항상 4~5도 정도 낮아 여름에는 시원하지만 오늘 같은 날은 오히려 쌀쌀하다.
동굴 안쪽 높은 곳에는 거대한 석가모니 불상이 조각되어 있고 위와 아래로 뻗은 동굴가지에는 천당과 지옥을 상징하는 여러 가지 (조잡한) 조형물들을 만들어 놨다. 지옥문을 들어서니 지옥에서나 볼 수 있음직한 끔찍한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다. 이곳은 베트남 전쟁 당시 베트콩의 은신처이자 부상병들을 치료하던 비밀 병원으로 사용된 곳이라 이런 조형물들을 만들어 놨는가 보다.
천당으로 가는 가파른 계단은 대리석 깨진 조각들로 만들어져 있는데 빗물이 스며들어 몹시 미끄럽고 계단과 계단 사이의 높이가 부담스럽다. 조금 올라가다 위험하다 싶어 도로 내려왔다. 나는 안전 상 포기했지만 많은 사람들(주로 젊은이들)은 올라간다. 동굴에서 나와 보니 빗줄기가 더욱 거세져서 수산(Thuy Son)은 올라가지 못했다.
오행산을 떠나 약 30분 달리니 호이안에 도착했다. 이곳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된 곳이기도 하다. 먼저 간 곳은 코코넛 배 (바구니 배, Thung Chai, 베트남어로 '퉁차이') 타는 곳이다. 대나무를 엮어서 코코넛처럼 둥글게 만든 배에 사람들을 태우고 '투본' 강에서 빙글빙글 돌면서 쇼도 하고 노래도 부른다. 한국 사람들이 타면 한국 노래도 신나게 부른다고 한다. 나는 비도 오고 흥미도 없어 타지 않았다. 이곳에도 여기저기서 한국말이 들린다. 과연 경기도 다낭시 답다.
다음으로 간 곳은 호이안 올드타운(Ancient Town)인데 15세기~19세기 무역항의 옛 모습이 보존된 곳이라고 한다. 이곳은 과거 일본, 중국, 네덜란드 상인들이 모여들던 국제 무역의 요충지였다. 건물들은 낡았지만 2층 목조 건축물들은 당시 부를 축적한 상인들의 삶의 일면을 보여주는 듯하다. 폭우가 쏟아져 옷이 다 젖었지만 본전 생각이 나 비옷 여미고 우산 받쳐 들고 명소라는 데를 몇 군데를 둘러보았다. 제일 먼저 간 곳은 일본다리 (내원교, Japanese Covered Bridge)였다. 1590년 대 호이안에 거주하던 일본 상인들이 중국인 거리와 연결하기 위해 세운 나무다리인데 지붕이 있고 다리 양끝에 개와 원숭이 조각상이 있다. 이는 각각 개 해에 착공하여 원숭이 해에 완공되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 다음에 간 곳은 풍흥의 집 (Phung Hung Old House)인데 약 200년 전 무역상이 지은 집으로, 현재 8대째 후손이 살고 있다고 한다. 베트남(기둥), 일본(지붕), 중국(창틀)의 양식이 섞여 있고 특히 홍수 때 2층으로 짐을 옮기기 위해 천장에 뚫어놓은 구멍이 인상적이었다. 다음에는 광조회관 (Cantonese Assembly Hall)으로 갔는데 1885년 광둥 출신 화교들이 세운 향우회관이자 사당이라고 한다. 입구의 화려한 용 조각 분수와 내부에 관우상이 있다. 마지막으로 쩐가사당 (Tran Family Chapel)을 가 봤는데 올드타운 중심가에서 조금 떨어져 있다. 1802년 중국계 관리였던 '쩐 투냥'이 조상을 모시기 위해 세운 ‘쩐’가 가문의 사당으로 내부의 골동품들과 정교한 목조 장식은 베트남 상류층의 과거 생활상을 보여준다. 그럴듯하게 보이기는 하지만 거리의 모든 목조 건물들은 낡았고 색상은 퇴색되어 사람들만 많지 않았더라면 귀신이라도 나올 것 같다. 비가 많이 와서 옷이 축축하니 보는 눈도 비관적이다. 사진을 몇 장 찍었지만 렌즈에 물이 묻어 쓸 만한 것이 하나도 없다.
어둑어둑해지니 비도 조금 잦아들고 집집마다 램프, 등불, 네온, 형광등, 레이저 등으로 도시 전체가 휘황찬란해 진다. 호이안은 밤이 백미다. 낮에 보던 낡은 모습은 사라진다. 강물 위에는 수십 척의 소원 배(Wishing Boat)와 수천 개의 등불이 떠다닌다. 사람들은 소원 배를 타고 소원을 담은 등불을 강물 위로 떠 보낸다. 종이배에 촛불을 담아 강물에 띄우는 행위는 개인의 소망과 평안을 기원하는 종교적, 민속적 의미가 있다고 한다. 폭우 때문에 소원 등불을 띄우진 못했어도 나도 '비나 그치게 해 달라'고 소원을 빌었다. 퉁명스럽게 빌었더니 비는 다시 더 쎄게 왔다~쯔쯔.
비도 피할 겸 저녁 먹으러 호이안에서 제일 유명하다는 '모닝글로리' 식당으로 갔다. 이 집은 2024년에 미쉘린 가이드에 등재된 집이다. 이 식당의 주인인 미스 비(Trinh Diem Vy)는 호이안 요리의 선구자로 호이안의 길거리 음식(Street Food)을 세련된 레스토랑 수준으로 개발하여 세계에 알린 인물이다. 혼자라서 여러 가지 음식을 맛보지는 못했고 이 집의 시그니처라는 ‘반쎄오 (Bánh Xèo)’, ‘모닝글로리 마늘 볶음’ 그리고 반미빵을 시켰다. 호이안식 반쎄오는 다낭에 비해 크기가 작고 더욱 바삭한 것이 특징인데 쌀가루 반죽에 강황 가루를 넣어 노란빛을 띠며, 숙주와 새우, 돼지고기를 넣어 반달 모양으로 부쳐낸다. 라이스페이퍼에 각종 야채를 넣고 말아서 반미빵과 함께 먹으니 혀끝이 노래를 부른다. 그러나 모닝글로리 마늘 볶음 (Rau Muống Xào Tỏi)은 실패다. 모닝글로리는 한국어로 '공심채(空心菜)'라고 하는데 줄기 가운데가 빨대같이 비어 있어 아삭아삭한 식감이 한국인의 입맛에 잘 맞는다. 마늘을 듬뿍 넣고 센 불에 빠르게 볶아내어 마늘의 알싸한 향과 공심채의 아삭함이 입안을 개운하게 해 줘야 맞다. 그러나 오늘 것은 아니다. 마치 볏짚 씹는 것처럼 질기고 딱딱했다. 요즘은 모닝글로리가 생산되기 시작하는 시기인데 신선미가 떨어진다. 말린 건가?
식사를 마치고 7시쯤 호이안을 떠났다. 오는 길은 폭우에 오토바이까지 밀려 1시간도 넘게 걸렸다. Grab 기사가 영어도 하고 빗길에 고생도 많이 해서 팁으로 10만동을 주니 머리가 땅에 닿을 만큼 절을 한다. 내일 어딜 가거나 모래 공항 갈 때 메세지 보내면 불나게 달려오겠다고 한다. 역시 돈이 좋기는 좋은가 보다. Daily Note 쓰다 보니 밤 12시가 넘었다. 내일은 바쁜 일 없으니 느지막이 일어나야겠다.